젠더이슈, 남녀대립 프레임이 무의미한 이유

성별 임금 격차의 진실

지난번 글 <남녀임금 격차 떡밥의 숨겨진 진실>에는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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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임금 격차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한국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남녀임금 격차가 상승하는 추세도 가장 빠른 나라이기도 하다.

가령 20대의 성별 임금 격차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30대까지는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의 평균 수준이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질수록 임금 격차는 더욱 상승한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한국이 어느 나라보다 더 빠른 경제성장과 사회변화(여성이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역사적 기간이 절대적으로 짧다)를 겪은 것에서 기인한다.

또 다른 부분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생애 주기상에서 결혼·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과 그로 인한 임금감소(M자형 임금 곡선)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처 YTN

이 문제는 단순히 남성이 여성을 ‘억압’해서 저임금으로 ‘착취’한다는 논의구도로 바라볼 수 없다. 이것은 생애주기와 생활양식의 변화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에 더 가깝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을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노동소득을 늘리고, 노동시장에서의 경력단절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맞벌이가 보편화하는 추세 속에서 여성의 경력단절 해소를 통해 저임금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가구의 평생 소득을 늘릴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점에서, 노동소득의 양성평등은 기혼남성에게도 유리한 방향이기도 하다.

이것을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설득시킬 방법이 있다.

남녀 간의 분노의 정치가 봉착한 한계

그런데 문제는 성별 임금 격차를 제기하는 일부에서는 이것을 남녀대립의 문제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의미한 논쟁만을 반복해서 일으킨다.

특히 감정적 대립을 일으키는 것은 남녀가 바라보고 있는 곳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넷상에서 젠더이슈에 민감한 20~30대 남성의 경우 자신들이 또래 여성보다 자신이 노동시장에서 특별히 더 유리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오히려 군 복무 등으로 인한 늦은 노동 시장진입에서 오는 역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전반적인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한 객관적 통계조차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비교기준이 어머니나 이모가 아니라 또래 여성과 자신의 ‘현재 소득’이기 때문이다.

한편 젊은 여성의 경우는 자신의 이모나 어머니 그리고 여자 선배가 비교 대상이다.

더 열악한 노동시장에서 더 낮은 대우를 받으며 또한 결혼·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는 모습을 흔하게 보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닥쳐올지 모를 평생 소득의 감소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 대립은 지금까지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남녀대립

결국,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해 (애초에 누구를 대상으로 투쟁해야 하는 건지도 불분명한) ‘분노와 투쟁의 서사’에 몰입하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노동소득의 양성평등 실현이 남녀가 한 가구를 이룰 때 모두의 평생 소득을 늘릴 수 있다는 지점을 주목하게 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한국의 가사노동 통계와 남녀격차

이번에는 가사노동시간 분담에 대한 통계를 다뤄볼까 한다. 한국의 기혼남녀 가사노동 분담률도 성별 임금 격차만큼이나 OECD 국가 중에서 최악이다.

이를 다룬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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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기사는 독자들에게 ‘분노’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상대로?

2011년에 발간된 OECD <한눈에 보는 사회상>을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비교적 오래된 2012년 기사이다. OECD 국가의 남성 평균 (가사노동을 포함한) 무급근로시간은 하루에 2시간 11분이지만 한국 맞벌이 남성은 45분으로 꼴찌였다고 한다.

한국사회 분노의 숫자(18) : OECD 국가별 유무급노동시간 비교(출처 오마이뉴스)

반면 한국 맞벌이 기혼여성의 하루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 47분이었다. 5배 이상의 격차가 나는 셈이다. 기사가 언급한 통계는 5년 주기로 작성되는 통계청의 생활시간 조사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가 참조하는 통계는 2009년 기준이다.

한편 기사가 언급한 남녀 간 가사노동부담 격차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통계청의 생활시간 조사에 의하면 2014년에도 20세 이상 기혼여성의 가사노동시간(가정관리와 가족 보살피기 노동)은 하루평균 3시간 58분이지만 기혼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은 53분에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4배 가까운 격차를 보이는 셈이며, 절대적인 시간으로 볼 때 여성이 남성보다 3시간 더 가사노동을 하는 셈이다.

가사노동 격차에 맞먹는 경제적 노동시간 격차

한편 이 통계가 말하지 않는 또 다른 사항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사노동시간과 연관된 다른 통계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사노동시간 격차의 이면에는 경제적 노동시간의 격차가 존재한다.

같은 기간에 발행된 OECD 통계에 의하면 한국 남성의 평균 유급근로시간은 주당 46.7시간이지만 여성의 유급근로시간은 41.7시간이다. 하루 평균으로 환산하면 남성이 하루에 6.67시간 유급노동을 하고 여성은 5.96시간 유급노동을 하는 셈이지만 가사노동 격차에 맞먹는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이것은 임금 근로 기준에 한정된 것이므로,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한국경제의 특성상 전반적인 경제적 소득이 수반된 노동시간에 관한 생활시간 조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 기사가 언급한 것과 같은 기준으로 작성된 통계를 볼 필요가 있다.

2014년 20세 이상 기혼 남녀 인구를 기준으로 볼 때, 남성의 경우 하루평균(휴일 포함) 5시간 2분을 일한다면 20세 이상 기혼여성의 경우 2시간 32분을 일한다.

이에 더해서 출퇴근을 포함한 이동시간(남성은 1시간 52분 여성은 1시간 24분)까지 고려하면 남녀 격차는 세 시간 가까이 벌어진다. 앞서 본 가사노동시간 격차에 맞먹는 수치이다.

참고로 이동시간 역시 학습시간과 더불어 일, 가사노동과 함께 ‘여가’에 대비되는 ‘의무생활시간’으로 산정된다(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2015).

2014년 20대 이상 기혼남녀 생활시간 조사(통계청)

여성의 경제적 노동시간이 남성에 비해 낮은 것은 임금 격차와 별개로 또 다른 남녀 간 경제적 불평등의 징후이기도 하다. 그만큼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OECD 국가에 비해 낮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 여성고용률은 49.5%로 외환위기 이후로 계속 정체된 상황이며 71.4%인 남성보다 한참 낮으며 2009년 OECD 평균(50.9%)에도 미달한다. 또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도 남성보다 파트타임(시간제) 근로를 하는 비중이 더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은 장기간 노동시간과 야근에 시달리는 나라이기도 하다. 2015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어 OECD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기라도 하듯이 한국은 가사노동시간 자체도 남녀불문 OECD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즉, 남녀 모두 여가는 물론이고 가정을 돌볼 절대적 시간이 적다는 소리이다.

결국, 한국 기혼남녀의 생활상을 요약하자면, 남녀 모두에게 장시간의 노동시간이 부과되고, 남녀 모두에게 짧은 가사노동과 여가가 허용되며, 가사노동은 여성에게 전가되고 야근 및 잔업 등의 장시간의 경제적 노동은 남성에게 전가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남녀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물론 많은 언론과 여성계는 이 중에서 여성의 불행만을 말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페미니즘은 남녀 모두에게 이롭다는 주장은 이런 지점에서 설득력을 잃는 것이다.

앞서 단편적인 통계 일부만을 인용한 <오마이뉴스> 기사가 주문한 대로 여기서 우리가 ‘분노’해야 한다면, 결국 가사를 제대로 분담하지 않는 남성들을 상대로 ‘분노’하고 ‘투쟁’하고 그들을 ‘계몽’ 시키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보았듯이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분노하기 이전에 멈춰서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말로만’ 페미니즘이 모두에게 좋다고 말하기 전에

이런 종류의 남녀격차를 보여주는 여러 통계에 대해서 페미니스트들, 특히 넷상의 페미니스트들은 으레 계몽주의적인 스탠스를 취하곤 한다.

‘보라, 얼마나 여성에 차별받고 억압받는지를’

그러나 계몽된 그들이 그 근거로 가져오는 통계들은 전반적인 진실을 보여주기에는 지나치게 취사선택되어 있는 경우들이 많다.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작성된 통계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하는 경우도 드물다.

또한, 페미니즘은 성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남성에게도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도 대개 막연한 선언적 주장에 그치곤 하며 또한 많은 이들에게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기보다는 일종의 ‘화전양면전술’로 받아들여진다.

출처 고함20

왜냐하면 (1) 여성에게 지워진 부담을 나눠 가지는 만큼 남성에게도 무엇이 좋은지, 그리고 (2) 여성에게 지워진 부담의 반대편에서 다른 누군가 어떤 부담을 가져왔는지, 그것을 대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사노동격차나 임금 격차는 그중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항들을 개선하는 것이 남녀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을 설득할 방법은 분명히 있다. 단지 그들은 남녀 간의 투쟁서사와 분노를 자극하는 기득권 싸움의 프레임에 몰입하느라 그것에 무관심할 뿐이다.

물론 이미 임금 격차 통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한국에서의 남녀 간의 격차를 보여주는 각종 지표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연령별로 크게 달라지며 언뜻 보기에는 남녀 간의 뚜렷한 대립 전선도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희미해진다.

가령 가사노동의 경우에도 임금 격차만큼 연령이 높아질수록 남녀 간의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이 빠른 경제발전과 사회변화를 이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항이기도 하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했던 가부장제 구조가 연령별로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음에도, 바로 그 빠른 속도 때문에 과거의 정체된 모습이 여전히 통계적으로 강하게 대표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변화의 ‘방향’과 ‘속도’이다.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도 그저 남녀격차만을 줄이는 것을 넘어서 그것이 가구의 평생 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향이라는 것을 사회 전반에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가사노동의 경우에도 절대적인 노동시간을 줄이고 질 좋은 일자리 제공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을 높이는 것이 가사노동의 공평한 부담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남성 측에게 손해 볼 일도 아니며 이러한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남녀 문제 이전에 일하는 계급 전체의 이해와 일치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의식의 계몽을 과시하는 것을 통해 단번에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사실 변화는 이미 현재 진행 중이다.

70년대부터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산업화를 겪은 한국에서의 변화와 계몽은 (흔히 비교 대상이 되곤 하는) 20세기 초반부터 산업화를 겪었던 다른 선진국보다 빠른 속도로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문제는 이 속도를 어떻게 유지하거나 더 가속화할지이다.

박가분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단행본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paxwon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