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법, 엇나간 여성 정책 철회를 요구합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지난 4일 공약한 신종 3대 여성폭력 근절 정책 중 가정폭력전과공개제도(일명 클레어법) 도입에 대해 ‘진보너머(정의당 청년당원 의견그룹)’가 철회를 요구했다.

지난 4일 세종문화회관 심상정, ‘신종 3대 여성폭력 근절’ 정책 제시

클레어법은 2009년 영국 ‘그레이터-맨체스터주’에 살던 클레어 우드(Clare Wood)라는 여성(36)이 자신의 전 남자친구 조지 애플턴(40)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 후에 도입이 주장된 제도이다.

클레어 우드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이 남성의 전과를 알았다면 그와 같은 결과가 없었을 것이라며 도입을 주장했다.

이에 당시 영국 보수당 정부의 ‘테레사 메이’ 성평등부 장관(현 영국 총리) 등의 강력한 추진으로 2012년부터 시범운영, 2014년부터는 전국에 확대 운영됐다.

정의당이 밝힌 클레어법의 구체적 내용은 없다. 영국은 클레어법을 다음과 같이 운영한다.

먼저 가정폭력 혹은 데이트 폭력 위험에 처한 피해자가 범죄전과 등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면 24시간 이내에 피해 내용과 인적사항 등에 대한 기초조사를 한다.

기초조사 후 10일 이내에 신청자에 대한 대면면담을 통해 신청의 목적과 정황을 파악하며, 대면면담 후 10일 이내에 과거 전과경력에 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종합 위험성 평가를 한다.

신청접수에서 종합 위험성 평가까지 최대 21일이 소요된다. 그 후 전문가로 구성된 지역 정보공개 결정위원회의 심의 후 전과기록이 제공된다.

진보너머는 클레어 우드를 비롯한 여성들이 겪고 있는 폭력, 특히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이 겪는 폭력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느끼며, 이런 문제들이 실제로 해결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에 어떤 이견도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 영국 <가디언>을 비롯한 유력 진보언론과 심지어 영국 현지의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인 ‘Refuge’(피난처)에서도 이 법은 숱한 논란과 비판을 받아왔다.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까지 존재한다.

남친의 폭력전과를 조회하는 영국 ‘클레어법’

클레어법 데이트 폭력에 대한 예방책이 될 수 없다

클레어법을 옹호하는 측은 클레어법이 데이트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전과 사실을 미리 알게 되어 폭력적 성향의 남성을 만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생긴 발단이 된 클레어 사건의 내용을 보아도 이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진보너머는 설명했다.

진보너머는 “클레어가 살인을 당한 것은 클레어가 상대방의 폭력성향을 몰라서가 아니다”라며 “경찰의 미숙한 대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클레어는 심각한 성폭행을 포함해 여러 차례 경찰에게 조지 애플턴(가해자)을 신고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위협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잠시 그를 체포했지만 그 후 보석으로 석방하고, 또 (클레어에 대한 접촉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보석 조건 위반으로 체포했지만, 경찰서에 가지도 않고 그를 풀어주었다고 한다.

<가디언>은 “클레어는 이미 당시에 가해자의 폭력적 성향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피해를 받았다”며 “진정한 문제는 클레어가 전과를 알 수 있었느냐가 아니라, ‘경찰이 가정 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일관되게 이행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디언>은 경찰에게는 클레어법 같은 새로운 계획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경찰들을 위한 전문 교육의 질을 향상하는 데 소중한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래야 경찰관이 희생자에게보다 적절하게 반응하고 클레어와 같은 여성이 심각한 해를 입을 위험에 처했을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영국의 가정폭력피해자 지원 단체인 ‘Refuge’의 대표는 클레어법의 전국적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이유는 가정폭력은 23%만이 경찰에 신고 되는데, 즉 상습으로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자도 전과기록이 있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안은 여성들이 전과기록을 보는 것으로 자신이 안전하다고 안심하게 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A group session at a probation office about domestic violence. Photograph: David Levene

클레어법, 여성 피해자에게 책임 전가

클레어법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 클레어법은 ‘여성이 파트너에게 폭력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여성이 “떠날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을 전제한다.

그러나 영국 현지의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단체 ‘Refuge’의 대표는 그러한 전제는 가정폭력의 복잡한 내용과 작동구조를 몰이해하고 매우 단순하게 바라보는 법안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관련 글 Refuge opposes national roll-out of domestic violence disclosure scheme known as ‘Clare’s Law’

여성이 폭력을 가하는 상대방을 떠나는 일에는 ‘많은 현실적이고 심리적인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여성이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고 있을 수도 있다. 생활공간을 현재 함께 나누고 있어 당장 분리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자녀가 있는 여성의 경우 자녀를 놓고 떠날 수도, 무작정 자녀를 데리고 나와 키우기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다.

한편 즉각적으로 관계를 끊고자 할 때 폭력의 위협이 가장 크다고 한다. 이렇듯 여성이 헤어지려 해도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 안전과 관련된 문제 등이 있다.

그러나 전과기록이 제공되었음에도 피해가 생긴다면, 정보를 알려주었는데도 피하지 않은 여성 본인의 책임 때문이라며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1. ‘Clare’s Law’ is little help if the police don’t perform their basic duty
2. Clare Wood murder
3. Why Clare’s Law won’t prevent domestic violence

클레어법, 실효성 없이 낙인만 찍는다

클레어법을 시행한 이후 영국 정부는 긍정적으로 법이 시행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국 경찰대 산하 치안정책연구소가 이 평가서를 검토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총 4,724건의 정보공개 신청이 접수되어 이 중 1938건이 공개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경찰관서와 협력기관 그리고 가정폭력 전담경찰관 등은 제도 시행에 긍정적이고, 높은 이해도를 보인다고 평가서에 적시되어 있지만 정작 정보 공개 결과 데이트 당사자들 간의 관계유지 여부, 공개된 사안들에서 범죄가 발생하였는지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다.”
-강용길, 박재풍, 박원규, 이춘삼, ‘데이트폭력’의 예방 및 대응 관련 쟁점사항에 관한 연구, 치안정책연구소, 2016

즉 공개를 했다는 얘기만 있지, 그 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잘못을 씻고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폭력전과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과가 공개되어 연인을 사귈 수 없다면, 폭력전과가 있는 사람은 영원히 범죄자로 낙인되어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더 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게 된다. (윤상민, <데이트 폭력에 대응하는 입법적 대책에 대한 검토>, 2016)

Victims of domestic violence need police protection and support rather than the information proposed in “Sarah’s Law”, says Lucy Reed. Photograph: Jim Wileman

낙인찍는 것이 아닌 실질적 지원과 회복을 위한 정책이 필요

여성에 대한 데이트폭력 등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성에게는 낙인을 찍는 방식이 아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책이어야 한다.

프랑스 사회당의 경우 핫라인 구축과 전문 대응반 구성에 대한 예산을 대폭 지원하고, 조속한 피해자 구출,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에 곧바로 대처할 수 있는 키트 상시 준비 및 바로 지급 등을 여성 폭력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실제로 진행되고 있고 많은 성과를 거두어 프랑스 성 평등 순위가 45위에서 16위로 상승했다.

총선 당시 이미 문제 되었던 법, 철회 요구

클레어법은 지난해 총선에서 정의당 여성 공약으로 제안된 바 있다.

당시 한국 여성의 전화는 정의당 여성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클레어법이 실효성 없이, 남성에 대한 낙인만 가할 것이라며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한국 여성의 전화는 ‘데이트 폭력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것이 아닌, 폭력 전과만 있어도 남성에게 낙인을 찍는 일일 수도 있으며, 실제로 데이트폭력은 솜방망이 처벌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나라에서는 전과로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는 의견을 밝혔었다.

클레어법과 관련해 여성의 전화 기자단에서는 아래와 같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생활 침해의 문제와 범죄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관계의 범주 설정에 관한 문제, 그 실행 방식과 절차의 문제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애정 문제가 얽혀 있는 경우가 대다수인 데이트 폭력의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폭력을 폭력이라고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상황에서 좋은 법이 마련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것이다.”
– 한국 여성의 전화 기자단(2016년 4월 20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다시 이번 대선에서 정의당의 대표적인 여성 정책으로 제안됐다.

진보너머는 “이렇게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논란의 여지가 많은 법안이 정의당의 대선 공약으로 제시되어서는 안 된다”며 엇나간 여성 정책인 <가정폭력전과공개제도(클레어법) 도입> 철회를 요구했다.

김승한 기자

의학전문기자. 전 대학병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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