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녀의 기원

된장녀, 예토전생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된장녀’는 지난 2006년 즈음부터 인터넷 유행어로 번지기 시작해 이제는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그리고 ‘10년 역사의 온라인 여성혐오’를 주장하는 넷페미들의 ‘여혐사관’의 시조 격이기도 하다.

사실 된장녀라는 단어는 ‘김치녀’ 등장 이후 실질적으로 잊힌 단어가 되었으나, 넷페미들은 여성혐오가 된장녀부터 시작해서 루저녀를 거쳐 김치녀까지 내려오게 되었다고 당당히 주장하며 잊힌 ‘된장녀’를 부활시키고 있다.

그리고 ‘된장녀’라는 대상은 실체가 없으며, 남자들의 열등감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주장은 ‘된장녀’라는 단어가 나오게 된 맥락을 자세히 따져보면 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일단, 된장녀와 루저녀 그리고 김치녀는 ‘10년 역사의 여성혐오’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엮이기 어렵다. 애초 각 단어의 개념을 잘 뜯어보면, 지칭하는 대상들이 각각 엄밀히 다르기 때문이다.

(출처 KBS)

그리고 남자들의 열등감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말도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된장녀가 정확히 어떤 여성들을 의미하며, 어떤 맥락을 담고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된장녀, 누구냐 넌?

사실 된장녀의 정확한 의미를 획정하는 일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터넷에서 익명의 네티즌을 중심으로 유행한 단어이다. 둘째, 당시 특정 행태를 보이는 여성을 비판하는 신조어가 거의 없었다. 셋째, 당시만 해도 인터넷 유행어의 의미나 맥락을 진단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워낙 유행한 말이기에 몇 가지 흔적들을 남겼고, 그 흔적에 기반을 둬 언어를 정립하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다.

다음은, 2009년에 발행된 <대중문화사전>에 나오는 된장녀의 기원과 의미이다.

스타벅스(픽사베이)

된장녀란 말은 2006년 야후 코리아가 조사한 인터넷 신조어와 유행어 1위에 오른 단어다.

된장녀는 웬만한 한 끼 밥값에 해당하는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시며 해외 명품 소비를 선호하지만 정작 자신은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기에 부모나 상대 남성의 경제적 능력에 소비 활동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젊은 여성을 비하하여 일컫는 말이다.
(중략)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따르면, 된장녀는 2005년 주간지 <뉴스메이커>에 스타벅스 커피에 빠진 20∼30대 여성들에 대한 특집 기사가 실리고 나서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된장녀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던 2005년에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해외 명품을 선호하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로 의미가 국한돼 있었다.

그때는 밥보다 비쌌다.

중요한 것은 당시의 물가이다. 당시 최저시급(1999년)은 1600원이었다. 반면 스타벅스 커피값은 3000원으로 지금과 큰 차이가 없었다.

최저시급으로 비교하자면, 2017년 기준으로 대략 1만2000원짜리 커피를 팔던 것이다. 커피 두 잔에 케이크 한 조각이면 지금 돈으로 4만원 정도가 나온다.

참고로 말하자면, 지금 가로수길 커피숍도 이것보단 싸다.

한국 스타벅스 1호점 이대점

지금의 4000원대 커피와 7000원대 밥의 기준으로 보면 ‘밥보다 비싼 커피’는 존재하지 않지만, 1999년의 3000원 커피와 2000원 밥의 기준으로 보면 ‘밥보다 비싼 커피’라는 수사가 영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것은 아니다.

물론 이것은 1999년에서 200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그리고 된장녀 논란은 이런 맥락이 6~7년간 쌓인, 2005년경 부터 나왔다.

즉, ‘이대-루이비통-외국물-스타벅스‘의 이미지를 소비하기 위해서 스타벅스 커피를 샀지만, 짝퉁 루이비통 가방을 메고-이대를 다니지도 않는, 스타벅스 커피 하나로 자신의 계급성을 알량하게 포장하는, 그런 여자들을 까는 단어가 ‘된장녀’였다.

된장녀의 어원에 대한 여러 가설 중에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혹은 “똥인데 된장인 척하는 여자”들이 있다는 점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해, 된장녀는 ‘계급주의적 속물근성을 가진 여자’에 대한 얘기였다. 그리고 된장녀에 대한 비판은 사실 그들 특유의 ‘계급주의적 속물근성’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이다.

최근에 부상한 ‘카푸어’에 대한 비판과 비슷하다. 성별과 상관없이, 계급주의적 속물근성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비호감은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된장녀’가 ‘한남충’들의 실체 없는 후려치기 전략이었다는 주장은 무식의 결과고, 계급주의적 속물근성을 보이는 여성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특권의식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