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파면, 승복과 불복 사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청와대 관저에서 퇴거하기까지 수많은 사람은 다름 아닌 ‘승복 메시지’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것 말이다.

사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사건 선고가 있기 전부터 공중파와 종편은 결과가 어떻든 승복하는 것을 강조했다. 분열을 수습하고, 화해의 시대를 열기 위함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면 원래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는 탄핵 심판 사건에는 불복하건 승복하건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실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심제에 해당하는 탄핵 심판 선고와 재심이 없는 절차적 문제 때문에 더 이상 불복의 여지가 없다.

지난 10일 오전 11시 21분.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의 입에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주문이 선고되는 순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정부 측 권력을 모두 상실했다.

출처 MBN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승복 선언’은 애초에 무의미하다.

사실 승복이나 불복이나 그 진실은 내면에 담겨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 파면에 대해서 승복 혹은 불복 의사와 무관하게 자신을 무고한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불복으로 인식하기도 하는데, 이 점을 조금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먼저 오해하진 마시길 바란다. 필자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에 이견이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이 글에서 주장하고픈 것은 ‘승복 메시지’에 굳이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표명해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언급하기 위함이다.

출처 jtbc

다시 되돌아가자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당했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상황은 헌법재판소의 결정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바로 그녀는 검찰 수사와 사법부의 판단을 추가로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입장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서 전적으로 승복한다는 별도의 언급은 피청구인 박근혜가 아니라 뇌물죄를 비롯한 피의자 박근혜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발언이 될 수 있다.

바로 헌법재판소는 ‘뇌물죄’ 등에 대한 사실 판단으로 파면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승복 혹은 불복 선언이 없는 것은 일견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형사소송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러한 자신의 입장과 무관하게 정치인 박근혜로서 언급해야 할 메시지는 있다. 바로 자신의 지지자들을 위한 메시지를 의미한다.

탄핵 결정 그날. 종로의 어딘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 세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삼성동 사저 앞에서 진을 치고, 폭력과 위협으로 탄핵 사건에 대응하는 이들이 있다.

출처 YTN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은 내면의 불복은 언제든지 사상의 자유로 존중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지지자들은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며, 다른 이의 자유와 생명권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침묵과 방관은 커다란 문제가 있다.

본인 스스로는 피의자 박근혜로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범죄 혐의를 가진 개인으로서의 박근혜의 입장으로 용인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정치인 박근혜로서는 다른 과제가 있다.

즉, 헌재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더 이상 실효적 불복 수단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자신의 지지자들을 갈등이 아닌 평범한 일상으로 돌려보낼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후 며칠이 지나도 이러한 메시지가 없다. 즉, 지지자들을 갈등과 혼란의 장소가 아닌 각자의 삶으로 되돌려 보내는 메시지는 승복 혹은 불복과도 무관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졸렬한 지도자로 기록되고 싶은 모양이다.

임형찬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