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과 진보진영의 적폐청산

정의당 대선 레이스의 관전 포인트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된 이후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었다. 이번에 진보정당인 정의당에서는 심상정 후보를 내세워 대선 레이스를 완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87년 백기완 후보 이후 진보적 의제를 확산시키기 위해 대선국면에 ‘민중대선후보’를 내세우는 전술은 진보진영의 오랜 관행이었지만 그때마다 흥행과 표몰이에 참패하는 등 대선은 ‘진보(정당)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대선에서 지금까지 진보정당은 단 한 번도 유의미한 득표율을 얻은 적이 없었다. 지난번에는 이정희, 지지난번에는 권영길을 대선후보로 내세웠지만 역시 완주에 실패하거나 무의미한 득표율을 얻고 이후 정치 이력을 종결지었다.

따라서 이번의 심상정 후보의 출마 귀추는 지난번과 과연 다를까 하는 것이 관심사라 할 수 있겠다. 심상정 후보는 과연 대선을 완주할 뿐만 아니라 유의미한 득표율까지 얻고 대선 이후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넓힐 수 있을까.

출처 jtbc 썰전

지난날 진보진영이 대선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이유는 대선을 일종의 이슈 파이팅의 장으로 활용하거나 선거유세 과정 자체를 민중운동의 일환으로 사고했기 때문이다.

사실 당선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당선 이후 제도와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구체적인 안 자체도 없었다는 점이 치명적이기도 했다.

물론 87년 당시처럼 진보세력 전반의 표현 자유가 오랫동안 위축되었다가 오랜만의 대선국면에서 열린 표현과 발언의 장을 십분 활용한다는 것은 이해할 만 하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한편 대외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의 내부적인 상황도 달라진 것이, 이제는 정의당 자신이 과거 민중운동 혹은 사회변혁운동 중심의 진보정당이 아니라 ‘제도권 정당’(헌법 내의 진보)을 표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대선과정에서 정의당이 제도권 정당으로서 어떻게 차별성을 드러낼지가 주목된다.

이웃 나라 일본의 역사적 교훈

여기서 잠깐 일본의 사례로 우회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최근 박근혜 탄핵 이후 시민사회는 연일 축제 분위기다. 별다른 소요사태 없이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으로 민의를 모아 권력자를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계적으로 귀감이 될 선례이다.

한편 일본 경우 상당수 언론과 평론가들은 이러한 사태에 의아함을 표시한다. 일부는 단순히 국민감정에 사법부가 휘둘렸다는 엉뚱한 진단을 내놓기도 한다. 단순히 여론이 아니라 법리와 증거를 확인하는 제도적 절차를 통해 권력자를 교체했다는 사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왜 일본은 이렇게 되었을까? 왜 국민의 집합적 행동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되었을까?

그 역사적 기원을 소급해 들어가면 아무래도 70년대의 전공투(전학생공동투쟁) 학생운동의 몰락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일본은 60년대 미·일 안보협정에 항의한 이른바 ‘안보투쟁’ 이후로 학생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이 활발했다.

전학생공동투쟁이 꿈꾼 세상은 고립에 기반한 연대, 즉 바리케이드 안의 해방구였다(출처 참여연대)

특히 60년대 후반 신좌익 학생운동인 전공투가 결성되면서 천황제·냉전·대기업·관료제로 집약되는 일본사회의 시스템 전체를 부정하는 학생운동이 격렬해졌다.

그러나 학생과 일부 강사들이 69년 도쿄대를 점거농성한 이른바 야스다 대강당 사건 이후 학생운동은 시민사회에서 고립되기 시작했고, 일부 분파는 적군파 테러와 아사마 산장사건 등의 테러를 일삼다가 완전히 몰락하기에 이른다.

“연대를 구해 고립을 두려워 않고 힘 미치지 못해 쓰러지는 것은 개의치 않지만 힘 다하지 않고 꺾이는 것은 거부한다.”

-일본 도쿄대 야스다 강당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학권력과 국가권력에 저항하다 1969년 1월 19일에 체포된 어느 학생이 남긴 낙서다.

처음에는 국민의 일정 부분 지지를 얻고 시작한 운동이 고립되고 자멸하는 패턴을 따른 것이다. 이러한 사건을 겪은 이후 일본은 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시민사회 자체도 정치적으로 유명무실해졌을 뿐만 아니라 일체의 집합적 행동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상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대중과 시민사회의 공감대에서 유리된 운동권 세력이 사회적으로 도태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현재 일본사회에 남아 있는 좌파세력이 미치는 영향력은 기껏 일부 문화적 영역(문화평론·정체성 정치 등)에 국한된다.한편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다행히 일본과 같은 경로를 밟지 않았다.

최근의 촛불시위만 보더라도 일부 청와대 진격 등의 과격주장이 있었지만 결국은 평화적인 수단을 택하여 다수의 시민을 광장으로 불러내었고 청와대를 고립시키며 탄핵을 이끌어내었다.

단순히 운동권과 진보가 주도한 집회가 아니라 다수의 시민이 헌법질서의 수호라는 관점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체제 내의 명예혁명인 셈이다. 이러한 변화된 정치환경 속에서 상대적으로 세력이 빈약한 진보가 택해야 할 길은 이러한 거대한 민심의 흐름을 이끌기보다는 겸손하게 따르면서 자신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다.

진보정당 적폐 들여다봐야

그러나 아직 진보진영, 특히 정의당 내에도 불안요소들이 남아 있다.

첫 번째는 제도권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당에서조차 옛 운동권 문화의 적폐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운동권 문화란 잠들어 있는 대중의 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해 먼저 나서서 정치적 행동을 감행하는, 일종의 ‘선도투쟁’ 문화이다.

이것은 단순히 거리에서의 시위와 집회의 과격화로 발현될 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언론상에서의 과격한 구호와 진영논리에 대한 집착이라는 양상으로도 나타난다. 이러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자신의 일종의 시대적 선각자라는 지사(志士)적 사명의식이다. 지금에서는 그것은 누가 품든 바보 같은 생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정의당 내의 이러한 운동권의 적폐가 아직 청산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정의당 자체가 태생적으로 여러 진보정당(일부 노동당, 일부 NL, 참여계 등등)과 급진분파들이 이합집산해서 결성된 정당이기 때문이다.

통합 과정에서 당내 의결기구인 전국위원회의 자리 일부를 정파별로 배분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운동권식 구태정치의 일환이기도 하다.

출처 연합뉴스TV

또한, 지난날 메갈리아 사태 때 당이 클로저스 사태에 대한 문예위의 논평을 철회시킨 것과 이를 비판하는 전국위원회의 결의문 채택 등 일련의 당내 내홍도, 알고 보면 여성주의 대 반여성주의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여성주의를 앞세워 세를 과시하는 일종의 운동권식 세력다툼에 지나지 않는다.

메갈리아가 무엇인지, 인터넷 혐오 발언의 실상이 무엇인지,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이렇듯 한국사회의 적폐를 비판한다면 진보정당 자신의 적폐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인물 중심주의이다. 사람들은 흔히 박근혜의 실정을 비판할 때 정치적 국면마다 박근혜 주위로 친박세력이 집결해왔던, 일종의 보스정치를 비판한다. 박근혜 자신이 당을 깨고 친박연대를 만들어 선거를 치르고 다시 당에 들어와 친박세력을 결집해 당을 장악하는 등의 일을 거듭했다.

그러나 사실 정의당의 간판 정치인인 노회찬-심상정 역시 여러 번 당을 깨고 만드는 과정(민주노동당→진보신당→통합진보당→정의당)을 반복했던 이력이 있다. 이런 부분마저도 진보세력이 보수세력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셈이다.

한편 대선 이후 ‘심상정’ 내지는 ‘노회찬’을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인물이 있을까도 관전 포인트이다. 각자 간판격이 되는 얼굴을 내세우며 뒤에서 정파 세력이 실속을 차리는 운동권식 구태도 벗어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과연 이번에는 인물이 아닌 가치와 정책 중심으로 제도권에 안착한 진보정당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운동권 동아리와 정파가 아닌 대중이 당의 중심이 되는 진보적 정당을 대선 이후에 볼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한국사회가 일본과 같은 경로를 밟지 않기 위해

진보세력은 좋든 싫든 한국사회에 필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의 경우처럼 진보세력이 폭주할 경우 시민사회와 동반해서 자멸할 위험성도 존재한다. 다행히 한국은 그러한 경로를 밟지 않았지만, 몇 번 그런 경로에 근접한 일이 있었다.

국가보안법과 집시법같이 진보세력의 활동을 제약하는 요인들이 있었지만 동시에 진보세력 자신이 스스로의 외연을 갉아먹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반FTA 투쟁이나 광우병 시위 때에도 진보진영의 실책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글이 길어지므로 생략한다.

중요한 것은 메갈리아 사태 이후 시민사회 자체에도 조건 없는 동정표나 혹은 조건 없는 혐오를 넘어서, 진보진영의 폭주를 적절히 감시·견제할 항체와 내성이 생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진보진영 자신도 변화된 정치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책임정치를 내면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의당이 목표로 공언하는 제1야당이 되든, 집권당이 되든, 그때 자신이 대내적으로 청산하지 못한 적폐(운동권 문화, 인물 중심의 패거리 정치, 정책과 대안의 실종 등)가 고스란히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 앞으로의 대선과정과 그 이후가 진보 내 적폐청산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다.

박가분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단행본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paxwon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