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메갈리아 사태’로 어떻게 무너졌나

‘촛불혁명’에 정의당을 위한 자리는 없다를 주제로 4회에 걸쳐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1회 ‘촛불혁명’에 정의당을 위한 자리는 없다
2회 당원이 바라본 정의당의 ‘짓밟힌 당내 민주주의’

2016년 7월 20일, 정의당의 부문위원회 중 하나인 문화예술위원회는 당 대변인실을 통해 논평을 발표한다. 해당 논평은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고, 정의당은 유례없는 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당의 지도부는 이 사태를 초기에 해결하긴커녕 큰 문제라 인식하지도 못했고, 특정 정파와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당원들 간의 갈등은 정의당을 사실상의 내분 상태로 만들었다.

결국, 대규모의 탈당 소동이 벌어진 뒤, 정의당은 이전의 상승세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의 지지율 폭락을 맞이하고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다.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를 한 문단으로 정리하자면,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전후 맥락을 전부 이야기하면 엄청난 분량의 논문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왜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는 뜬금없이 김모 성우의 ‘메갈리아 티셔츠’를 옹호하고 넥슨을 비판해야만 했을까?

김자연 성우의 메갈리안 후원 티셔츠 인증 트윗
 

왜 정의당의 몇몇 정파 세력들은 기존의 당론과는 전혀 맞지 않는 ‘메갈리아-워마드’식의 성차별주의, 혐오주의 노선을 채택했어야만 했을까? 왜 심상정과 노회찬과 같은 정의당의 단둘밖에 남지 않은 유명 정치인들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을까?

이를 모두 이해하려면 정의당뿐만 아니라 현재 진보운동권 세력을 자처하는 집단들을 모조리 꿰고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굉장히 복잡하고 지지부진한 이야기가 될 것이므로, 이 자리에서 논하는 건 무익할 뿐이다.

쉽게 말해, 필자는 이 글에서 ‘메갈리아 사태’의 전후 맥락을 자세히 설명할 생각은 없다. 사실, 이미 메갈리아와 워마드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병신년’을 뜨겁게 달궜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겹도록 퍼져나가지 않았나?

그들에 대한 규정은 ‘성차별주의와 혐오주의 폭력을 휘두르다가 사회의 비판에 직면하니 페미니즘이라는 방패막이 속으로 숨은 한국판 IS 단원들’ 정도면 충분하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2017년 대선에 있어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가 대한민국의 적폐를 해소하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 자격이 있는가를 논하는 연장선에 있다.

따라서, 이번 회에선 ‘정의당 메갈 사태’에 있었던 당내의 몇몇 사건들과 정의당 지도부가 보여준 행동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러니 두 혐오주의 커뮤니티의 비중이 작더라도, 독자들께서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시길 부탁한다.

짧은 사족을 달자면, 필자는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한 집단으로 정의하고 되도록 동시에 언급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 몇몇 혐오주의자와 이들을 돕고자 하는 ‘자칭 활동가’들에 의하면 두 커뮤니티는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하나, 같은 가치관과 방향성, 그리고 상당수의 성원을 공유하는 상황에서 폭력의 방식과 집회 장소까지 일치하는 집단을 ‘다르다’라 주장하는 건 상식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진영 내의 혐오주의 방식에 대한 상호 간의 비판은커녕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을 통한 단결이 굳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동의할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 본 글에선 성차별주의와 혐오주의를 내세우는 커뮤니티에 대해 ‘메갈리아-워마드’라는 방식의 표기를 이용할 것임을 미리 밝혀두도록 하겠다.

1. 들어가기에 앞서, 정의당의 강령과 당규로 바라보는 ‘위악은 약자의 투쟁 수단’론

그토록 무더웠던 지난 2016년 여름, 정의당의 심상정 상임대표는 수많은 명언을 남겨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가슴 속에 화병을 남겼다. 그 쟁쟁한 명언 중에서도 단연 백미가 바로 ‘가진 자는 위선을 하고, 못 가진 사람, 사회적 약자는 위악이 투쟁의 수단이다. 바람직하냐 안 하냐를 떠나 약자의 투쟁 수단’이라는 발언이었다.

즉, ‘메갈리아-워마드’ 특유의 성차별주의와 혐오주의에 입각한 폭력 행위는 그들이 사회적 약자(여성)이기 때문에 진짜 악이 아닌 위악이며, 투쟁의 수단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그들의 표현 방식은 노동운동 세력의 화형식과 같이 폭력적일지언정 정당한 하나의 투쟁 방식일 뿐이란 것이다.

자, 이 발언에 대한 찬반 논쟁은 이미 지난 병신년에 질리도록 벌어진 것이니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겠다. 다만,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해당 발언은 정의당의 당 대표가 할만한 내용이 결코 아니었으며, 명백히 잘못된 발언이라는 점이다.

각 정당은 그들만의 강령과 당헌, 당규를 만들고 유권자들에게 보이고 있다. 이는 각 정당의 방향성이나 내부의 규칙들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들을 지칭한다. 따라서 정당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강령과 당헌에 따라 당규에 명시된 조항들을 기준으로 당정을 이끌어나가야만 한다.

이 과정에 당규를 위반하는 문제가 생긴다면 내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징계 시스템 또한 명시되어 있다. 쉽게 말해 각 정당에도 헌법과 형법, 민법과 같은 규칙들이 마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정의당 내 페미니즘 갈등, 중앙당 책임은?(출처 뉴스타파-뉴스포차)

그렇다면 정의당의 강령과 당규는 ‘메갈리아-워마드’의 폭력적인 언행들에 대하여 어떻게 규정을 하고 있을까? 아래는 강령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5) 누구나 존중받는 차별 없는 사회
우리는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것이다. 성별?성적 지향과 정체성, 장애, 병력, 소득, 연령, 언어, 국적, 인종,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과 출산 여부, 가족 형태와 가족 상황, 종교와 사상, 학력과 학벌, 고용 형태에 대한 차별을 없앨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고 시민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며, 물리적?사회적?문화적 환경을 개선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 것이다. 소수자들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고 더욱 확대하기 위한 제도와 문화를 만들 것이다.
(중략)
우리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가해지는 어떠한 폭력이나 괴롭힘, 차별과 배제, 낙인과 편견 등을 없앨 것이다. 소수자 혐오 범죄를 강력히 규제하며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할 것이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 차별 없이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할 것이다.

정의당의 강령에 의하면 그 어떤 경우에도 성별, 성적 지향과 정체성, 신체 조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인정할 수 없고 이를 근절해 나가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당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강령에서조차 ‘메갈리아-워마드’의 혐오주의적 행각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세세한 법에 가까운 당규에선 이들의 행위를 어떻게 규정할까?

제13호 성차별·성폭력·가정폭력 방지와 처리에 관한 규정
제1조 (목적) 본 규정은 당 강령의 정신에 따라 당내 성차별·성폭력·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예방과 조치를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정의) 본 규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성차별이라 함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과 성정체성을 이유로 행하여지는 모든 구별?배제 또는 제한을 말하며, 성중립적이거나 성별과 성정체성에 관계없는 표현으로 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한 성이 다른 성에 비하여 현저히 적고 그로 인하여 특정성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며 그 조건이 정당한 것임을 입증할 수 없는 때에도 이를 성차별로 본다. 또한 물리적이고 언어적인 폭력이나 그 외의 분쟁 상황 안에서도 그것이 성이나 성정체성의 차이를 바탕으로 발생한 경우에는 성차별로 본다.

2) 성폭력이라 함은 범죄 행위의 구성 여부와 관계없이 개인의 성적 자율권과 성정체성을 침해하는 모든 언어적, 정신적, 물리적, 환경적 폭력을 의미한다. 또한, 개인의 성 정체성을 본인이 원하지 않는 대상에게 폭로(아웃팅)하는 행위나 성 정체성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는 행위 역시 성폭력으로 보며, 위의 개념과 행위는 동성 간 성폭력에 대하여도 같이 적용된다.

5) 2차 가해라 함은 성차별, 성폭력, 가정폭력 행위자 또는 그에 동조하는 자가 정신적인 협박이나 물리적인 강압, 집단적인 따돌림, 업무적인 괴롭힘, 피해자 신변 공개, 사건과 관련 없는 피해자의 과거 경력이나 행동 성격 등을 문제 삼는 행위 등의 수단으로 피해자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는 행위를 말하며, 이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

정의당의 당규에 입각한 관점으로 바라보자면, ‘메갈리아-워마드’에서 행해지는 이른바 ‘한남충’에 대한 폭력들, 심상정 상임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약자의 투쟁 수단’들은 성차별과 성폭력에 해당한다. 또한, 이 혐오주의 커뮤니티의 의견에 동조하는 자가 ‘이 사건과 관련 없는 피해자’에 대해 피해를 주는 행위는 성차별 혹은 성폭력 행위의 2차 가해에 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심상정 “‘메갈논쟁’에 대한 미숙한 대응, 아프게 생각한다”(출처 뉴스타파-뉴스포차)

따라서 심상정 상임대표가 ‘메갈리아-워마드’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표출해야 하는 건 당 지도부로서 너무나 당연한 의무였으며, 이들의 행위에 찬동하는 행위는 성차별 행위와 성폭력 행위에 동조하는 일종의 2차 가해로 규정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옳고 그름을 떠나 약자들의 투쟁 수단일 수 있다’는 발언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이후 정의당의 특정 몇몇 정파 세력들은 심상정 상임대표의 의견에 힘을 얻어 자신들을 ‘당내 여성주의 그룹’으로 지칭하고 ‘메갈리아-워마드’식 폭력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당론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정의당은 ‘여성주의 강화’를 대의원과 전국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채택하게 되었고, 2017년 대선 국면에서도 ‘여성주의’를 주요 코드로 채택하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담담하게 말하자면, 지난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는 정의당의 강력한 정파들과 ‘활동가 집단’, 그리고 당 지도부부터 강령과 당규조차도 무시한 채 답을 정해버린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는 이야기다.

당의 대표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옳고 그름을 떠나 약자의 투쟁 수단’이라는 말은, 결국 ‘여성주의’란 이름으로 한 정당의 강령과 당규조차 철저하게 무시당한 예시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필자가 이 글을 통해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당 지도부를 비롯한 유명 정치인들과 특정 정파 세력이 보여준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위이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정의당의 당규가 얼마나 유명무실해졌는지를 보이려 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사건들에 대해 읽기 전, 위에서 밝힌 것처럼 정의당의 책임자이자 대선 후보부터가 강령과 당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행동했다는 것을 전제해주길 바란다.

2. 문화예술위원회 논평 사태에서 드러나는 ‘꼬리 자르기’와 ‘유체이탈’

다시 ‘메갈 사태’의 초기로 시간을 돌려서, 지난해 7월 20일 자의 논평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당시 문화예술위원회는 넥슨의 온라인게임 ‘클로저스’의 한 성우가 ‘메갈리아-워마드’를 후원하는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는 논쟁에 휘말려 계약 해지를 겪은 것에 반대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하지만 문예위는 이를 ‘해고’로 간주하였으며, 당 내외의 수많은 유권자는 ‘계약 해지와 해고는 엄연히 다른 이야기’임으로 논평의 사실관계부터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논쟁은 논평을 지지하는 쪽에서 ‘결국 문제는 티셔츠를 향한 여성혐오(미소지니)적 시각에서 비롯된 트집 잡기’라는 비난을 개시하고, 결국 정의당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메갈리아-워마드’와 같은 혐오주의 성향의 커뮤니티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변질되었다.

따라서 모든 논쟁의 시작은 문화예술위원회의 7월 20일 자 논평인 셈이다. 물론, 정의당의 당원이 아니라면 잘 모를만한 전조들이 있기는 했다. 2016년 총선 전후의 ‘중식이밴드’ 사건, 또 5월에 있었던 ‘메갈리아-워마드’의 강남역 집회의 반혐오주의 피케팅을 진행한 당원에 대한 청년 간부들의 집단 제소 사건이다. 5월의 집단 제소를 주도했던 다섯 간부 중 두 명이 위의 논평을 발표한 문화예술위원회의 두 부위원장단이므로, ‘메갈리아-워마드’에 대한 논평의 관점을 이해하는 배경 지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여하튼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역사 속 유례없는 촌극을 불러일으킨 이 논평, 그리고 문화예술위원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자들이었는가? 이들은 정의당의 부문위원회로, 당 대표가 설치하는 당의 공식 집행기구이다. 각 부문위원회는 위원장이 당의 대의기구 중 하나인 전국위원회의 인준을 받아 당 대표의 공식 임명을 거쳐 성립하게 된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대통령이 설치한 뒤 위원장 후보를 선정하여 국회의 인준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어찌 됐던, 이들은 정의당의 당규에 명시된 공식 집행기구다.

문화예술위원회는 그 부문위원회 중 하나로, 어찌 됐던 당의 공식 집행기구이니만큼 해당 사안에 논평을 내걸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던 것으로 보인다. 혹은, 위에서 언급한 두 달 전의 ‘반혐오주의 피케팅 당원에 대한 공동제소’ 사건으로 미루어볼 때 특정 커뮤니티에 대해 우호적인 의도를 가졌을 수도 있다.

여하튼 그들은 논평을 내기로 결정했고, 대변인실은 이를 7월 20일 자로 발표하였다. 이렇게만 보면, 결국 모든 문제는 이 문화예술위원회의 탓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심상정 지도부는 억울한 피해자일까? ‘문제의 시작이 문화예술위원회의 논평이었으니, 결국 진보세력의 맏언니는 애들 장난의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것’이 잔존한 정의당 내의 주요 여론 중 하나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심상정 상임대표를 위시한 정의당 지도부는 해당 사건의 주요 책임자이자 주범이다.

이제 정의당이 해당 논평을 철회하는 과정을 보도록 하자. 아래는 7월 25일 자 제93차 상무위원회(지도부 회의)의 내용 중 논평을 철회한 이유에 대한 언급이다.

첫째, 문화예술위원회의 논평은 ‘정치적 의견이 직업 활동을 가로막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제목처럼, 예술인이 정치적인 의사 표현을 이유로 노동권이 부당하게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의로 작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예술인은 2016년 7월 19(화) 본인의 블로그에 해당 회사와 원만하게 합의한 사실을 밝힌 바 있고, 당사자의 입장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7월 20일 자 논평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당의 논평으로서 부적절한 것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둘째, 이 논평은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 여부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이 친메갈리아인가 아닌가라는 수많은 논쟁만 야기시키고, 부당한 노동권의 침해라는 본 취지의 전달에는 실패하였다는 점에서 이 논평을 철회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울러 상무집행위원회에서는 이번 논평의 발표 과정 중, 부문위원회의 최고 책임자인 김세균 공동대표에게 보고되지 않은 채 사무부총장의 선에서 결정된 문제점에 대해 질책하였고, 향후 절차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결의가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제93차 회의에서 문제가 된 것은 첫째, 당사자가 합의한 문제라서 둘째, 논평의 취지 전달 실패 셋째, 최고 책임자에게 보고되지 않은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라면, 시기는 늦었을지언정 납득할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흘 뒤, 제94차 상무위원회는 은근슬쩍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발표한다.

1. 현재 문화예술위원회에는 당 대표로부터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은 당직자가 없음을 확인함.

당의 집행기구로 설치되어 전국위의 인준을 받아 권한과 책임을 행사할 수 있는 당직자는 위원장뿐임. 현재 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 외의 임원은 위원회 내부의 임의 직책으로서 당 대표의 임명을 받은 자가 아님.

결과적으로 문화예술위원회는 위원장이 유고 중인 상황이며, 이에 따라 인사권자인 상임대표가 차기 위원장 인선을 위해 추천 등의 과정을 진행 중임.

1-1. 상무집행위원회는 현재 문화예술위원회에 대표로부터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은 당직자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고, 또 문화예술위원회 집행체계 정상화를 위해 위원장 인선이 완료될 때까지 김세균 공동대표가 문화예술위원회를 직접 관장토록 재확인함.

2. 최근 문화예술위원회 내부에서 임의로 구성한 임원들이 당 안팎으로 여러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함.

쉽게 말해 정의당 부문위원회에서 논평을 낼 자격이 있는 건 위원장뿐인데, 당시 문예위는 위원장이 공석이었단 것이다. 그런데 부위원장 둘이 뜬금없이 논평을 내버렸고, 우리 지도부는 굉장히 화가 났다. 따라서 이제라도 위원장을 선출할 것이며, 그때까진 김세균 당시 정의당 공동대표가 문예위를 관리하겠다는 게 94차 상무위원회의 입장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 모든 책임을 ‘적법한 권리가 없는 문예위의 임의 직책(부위원장들)’의 탓으로 돌린 비열한 행각에 있다. 잠시 위쪽의 글부터 다시 읽어보시라. 해당 논평은 정의당의 공식 대변인실을 통해 발표되었다.

즉, 지도부의 책임 전가와는 달리 해당 논평은 ‘당의 공식 입장’이 확실했다. 문예위의 독단이 아니라 대변인실을 통한 이상, 이는 당연히 당의 공식 논평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정의당의 논평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발표되는 것일 것일까? 정의당의 부문위원회 중 하나인 청년학생위원회의 전 관계자에 의하면, 부문위원회 차원에서 논평을 작성하면 대변인실에서 내용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뒤에 글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수정하는 과정이 있고, 문제가 없다면 최종적으로 대변인실의 이름을 통해 논평이 발표된다.

즉, 위의 문화예술위원회 논평 또한 대변인실의 내용 검토를 이미 거친 후 승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문예위뿐 아니라 대변인실도 책임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지도부는 대변인실의 문제를 지적, 혹은 사과하거나 대변인실 당직자에 대한 징계를 밟지 않았다. 오히려 이에 대해 언급조차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위 상무위원회의 입장을 확인해보라. 논평을 허가해주고 발표해준 대변인실에 대한 언급을 확인할 수 있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이 문제에 연루된 것이 대변인실뿐인가, 그렇지 않다. 각 부문위원회의 보고체계와 책임소재는 위원장단뿐 아니라 정책위원회 혹은 사무총국, 그리고 궁극적으로 부문위원회를 설립하고 위원장을 임명하는 당 대표에까지 있음을 당규를 통해 명시하고 있다. 엄연히 이들의 모든 활동은 중앙당을 통해 당 대표에게 보고가 되어야만 했으며, 당장 제93차 상무위원회에서도 논평 철회의 이유를 ‘사무부총장이 당 대표에게 보고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사무부종창 또한 응당한 징계를 받거나 해당 논평에 대한 책임을 졌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도부는 사무부총장의 책임을 언급한 사흘 뒤 모든 문제를 문예위에 덮어씌우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따라서 정의당 지도부는 병신년 7월 말의 논란 속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의도적인 ‘꼬리 자르기’를 시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메갈리아-워마드’의 방식에 동의하느냐 아니냐는 일종의 이념 논쟁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주정당에서 당내 기구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운용되는가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가 명확하냐는 점이다.

하지만, 해당 논쟁에서 정의당이 보여준 행각들을 다시 떠올려본다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도, 당원들에 대해 사건의 개요와 책임소재를 명확히 설명하지도, 문제를 일으킨 자들에 대해 당연한 징계를 내리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이 문제를 지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지난 정권에 대해 분노했던 추태엔 박 전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행정부의 모든 부패와 위법행위, 정치계의 모든 추태에 대하여 방관자적 태도를 보이고 모든 문제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했다. 행정부의 보고체계와 책임소재와 같은 원칙은 박씨의 철저한 무관심과 ‘유체이탈’ 속에 짓밟히고 파괴되었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해졌고, 유권자들이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든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3차 대국민담화(출처 MBN)

이에 맞서 싸우는 ‘원내 유일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정의당과 심상정 당 대표라면 당연히 이에 반대되는 선택을 했어야만 했다. 당규에 명시된 보고체계와 행정상의 모든 절차를 준수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하나하나 명확히 해결했어야만 했다.

즉 문제를 일으킨 당직자들에 대해선 적법한 징계를 내리고, 사건이 발생한 경위를 당원들에게 알린 뒤 당규상의 최종적 책임자인 당 대표가 직접 사과를 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심상정과 그 지도부는 이런 ‘정의로운 길’이 아닌 ‘박근혜의 길’을 선택했다. 모든 문제 제기에 대해선 답변을 회피했고, 결국 ‘개인의 일탈’을 근거로 한 꼬리 자르기 끝에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들의 ‘자진 사퇴’로 사건을 끝맺으려 했다.

필자가 이 문제를 지적하는 점은 여기에 있다. 결국, 심상정의 문제 해결방식이 박 전 대통령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비열한 사건 처리방식과 반민주적 행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일종의 부정부패에 대하여 한 당원으로서 몇 점의 점수를 줄 수 있을까? 과연 이들이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해소할 차기 정권으로써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독자들의 의견을 묻고 싶다.

3. 정파 정치를 이길 수 없는 ‘노유진 당원’의 결말

진보정당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선민의식에 가득 찬 엘리트주의자들과 진보 의제에 공감한 평범한 시민들의 연대와 갈등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기껏 진보정당에 함께 하러 들어왔더니 ‘먹물’들의 멸시와 차별을 못 견디고 나가는 과정을 되풀이한단 소리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소시민에 대한 이야기는 학력의 높고 낮음이나 직업의 귀천에 대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정파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당신이 ‘아직 정치를 잘 모르는 평범한 대중’이라면 위의 내용이 무슨 헛소린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당신은 ‘정치에 대해 끽해야 인터넷에서 주워들었거나 술자리에서 귀동냥으로 이해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운동에 대한 경험’도 없고 ‘이를 가르쳐줄 선배’도 없는 당신이 이 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진보정당의 핵심 당원이 될 수 없다. 어디까지나 변두리 당원일 뿐이다.

이렇게 무의미하고 차별적인 언사들은 진보정당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림자다. 이들은 커뮤니티에 새롭게 유입된 이들이기 때문에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있으며, 대부분 당적과 활동이 오래된 이들에 비해 ‘진보’에 대한 지식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

그 결과 이들은 모든 담론에서 소외되거나 특정 조직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도로 흘러가게 되는데, 어찌 됐던 진보정당의 흐름 속에서 이들이 주축이 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의 역할은 그저 지갑을 열고 당비를 낸 뒤 친지들에게 당의 이름을 알리는 것으로 족하다. 모든 당직자와 간부, 궁극적으로 국회에 진출할 자격은 ‘선수’들의 몫이니까.

정의당에도 이렇게 정파에 소속되지 않고 개별로 입당을 선택한 이들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있었다는 과거형이 옳겠다. 이들은 정의당이 한참 상승곡선을 그리며 발전하던 시기의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보고 입당한 당원이라고 해서 ‘노유진 당원’이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혹자는 ‘걔들 유시민 좋아해서 입당한 애들이니까 참여계지!’ 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정의당의 참여계란 정파 자체가 자기들끼리도 뭉치기 힘든 명목상의 정파인 마당에 이들을 ‘따라서 정파 당원’으로 분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본 필자가 정의당의 몇몇 오프라인 당원 모임 사업을 계획했을 때 상당수의 신규 당원들은 자신을 ‘노유진 당원’으로 분류했으며, 이들은 당의 논의나 사업은커녕 정파 간의 알력다툼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필연적으로 당내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2016년 7월,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가 발생한다. 이후 약 한 달여 만에 1000여명이 넘는 당원들이 탈당을 선택했다. 당연하겠지만, 정파 조직을 중심으로 1000여명의 탈당자가 발생했다면 그건 해당 정파의 위기 또는 소멸을 뜻하는 일이다. 이들은 대부분 안타깝게도 당에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씨알도 먹히지 않는 현실에 부딪혔던 ‘노유진 당원’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정의당은 이 ‘노유진 당원’, 새로 가입하거나 덜 적극적인 평범한 당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까? 이들을 왜 당에 남게끔 설득하려 하지 않았던 것일까? 간단하다. ‘노유진 당원’들이 탈당을 선택했다면, 정의당은 그들이 아닌 다른 한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들을 통틀어 ‘정파 세력’이라고 지칭할 것이다.

총선 기간 오유에 감사를 표시한 심상정 대표

정의당의 정파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의 주요 이념 등에 대해선 다음 회차에서 다룰 것이기에 지금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다만, 이 ‘정파 세력’이라는 자들이 어떻게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에서 승리를 거뒀는지를 조명하려 한다.

사실을 조명하고 자시고를 떠나, 모든 정당은 필연적으로 정치 집단이니만큼 ‘힘 센 놈’들을 기준으로 뭉치는 구조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즉,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가 터졌을 때도 ‘정파 세력’에 속해있는 당내 활동가들은 상당수가 ‘메갈리아-워마드’와 문화예술위원회 등을 강력히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사실 그들 중 상당수가 해당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했고(한 부문위원회의 간부는 자신이 직접 해당 커뮤니티에서 활동함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당시 여성계와 문화예술계의 상당수가 혐오주의 방식에 대해 각종 정당성을 부여하며 동조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형적이고 변태적인 ‘동지애’는 결국 진보정당의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선민의식의 자연스러운 발현이었다.

그런 이들이 보기에 ‘메갈리아-워마드’에 반대하는 이들은 결국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정당계에 산재해 있는 활동가 그룹, 이른바 ‘정파 세력’에 포함되지 않은 아웃사이더의 주장일 뿐이다.

즉, ‘공부를 덜 한 노유진 당원’의 의견은 진보정당의 주축이 될 수 없는 ‘지갑들의 반란’에 불과했기 때문에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정의당 내 ‘정파 세력’들은 일련의 ‘여성주의자 그룹’을 형성, 당에 조직적인 목소리와 압박을 통해 ‘메갈리아-워마드’에 우호적인 목소리를 내세웠다.

그렇다면 ‘노유진 당원’들 또한 자기네들끼리 뭉쳐서 싸우면 그만 아닐까? 실제로 그들은 일부 ‘메갈리아-워마드’에 반대하는 참여계 당원들과 모여 ‘당원비상대책회의’란 이름의 그룹을 만들었다. 간단하게 말해, 그들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이유 또한 간단했다. 애초에 상황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9월 5일, 제10차 전국위원회는 ‘정의당의 차기 스타 후보’로 주목되던 조성주를 대표로 ‘정의당 문예위 논평 발표 이후 당내논쟁과 관련한 특별결의문’을 발의,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가결한다. 해당 특별결의문의 내용은 아래(사진 1)와 같다.

정의당 문예위 논평발표 이후 당내논쟁과 관련한 특별결의문(사진 1·출처 Pgr21)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빼놓을 수 없이 주옥같은 것들뿐이다. 정의당 내의 여성주의를 강화하겠단 선언뿐만 아니라 문제의 논평을 낸 문화예술위원회의 정상화, ‘노유진 당원’들이 목소리를 내던 당원 게시판에 대한 새로운 운영계획의 수립 요구 등 하나같이 ‘정파 세력’의 이익이 담겨있는 내용이다. (당원 게시판과 관련해선 1회차의 ‘당원 게시판 봉쇄 계획’ 참고)

당원 총투표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권위를 가진 대의기구인 전국위원회의 해당 결의안은 도대체 어떤 경위로 나오게 된 것일까? 여러분이 생각한 그대로다. 당연히, 전국위원 대부분이 ‘정파 세력’을 대표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지역위원회나 당내 기구, 부문위원회(여성위원회나 청년학생위원회 등 문예위에 우호적인), 그리고 추천직 전국위원 등 대부분이 당내 정파에 소속되어 있는 당원들이기에, 이제 가입한 ‘노유진 당원’들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상황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해당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지금은 정의당을 떠난 조성주는 당내 기구인 미래정치센터 소장의 자격으로 추천직 전국위원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제10차 전국위원회가 열리기 4일 전인 9월 1일, 미래정치센터엔 김정진 현 소장이 임명되었고, 조성주는 8월 말 이미 미래정치센터의 방을 뺀 상황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유머’의 한 이용자가 밝혀낸 사실이지만, ‘사임했다’는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권고사직으로 퇴임한 상황이었다.

출처 오늘의유머

어찌 됐던 자진 사임이 아닌 권고사직으로 인한 사실상의 해임이라 하더라도, 하여튼 추천직 전국위원으로 임명된 근거가 미래정치센터 소장이었다면 당연히 해당 전국위원회의 대표발의는커녕 참석조차 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다. 이에 대해 조성주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발표했다.

(중략) 저는 지난 8월 말 미래정치센터 소장직을 사임했습니다. <주:물론 앞서 말했듯이 사실은 권고사직이었다> 그리고 사임 이후 중앙당으로부터 제10차 전국위원회(9월 3일) 참석을 요청받았습니다. 저는 중앙당에 제 전국위원 자격 유지 여부를 질의했고, ‘추천직 전국위원’이기 때문에 미래정치센터 소장 사임과는 관계없이 전국위원 자격이 유지된다고 중앙당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신임 미래정치센터 소장님이 이미 임명된 상황이니 제가 전국위원을 사임하고 신임 소장님이 10차 전국위원회부터 추천직 전국위원으로 참석하시는 게 좋겠다”고 제 의견을 다시 중앙당에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중앙당으로부터는 아직 신임소장에 대한 전국위원 추천 건은 계획이 없고 상임대표로부터 조성주 전 소장의 전국위원 자격을 유지했으면 한다는 의향을 전달받았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중앙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전국위원 자격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이하 생략)

즉, 조성주가 근거조차 불명확한 전국위원의 자격을 가지고 해당 ‘여성주의 결의안’을 대표 발의하는 과정에는 심상정 상임대표의 의향이 있었단 점이다. 따라서, 해당 발의안이 ‘정파 세력’을 주축으로 통과되는 과정에서 정의당의 지도부 또한 이미 동의했다고 유추해낼 수 있고, 최소한 발의 과정에서 도움을 준 것은 명확하다.

이 사건에서도 드러나듯이, 정의당은 당시에 ‘정파 세력’들이 당직과 대의기구 등의 요직들을 모두 점거한 상황이었으며 심지어 지도부까지 연결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조성주의 전국위원 자격과 같은 논란조차도 심상정 당 대표 개인의 의향에 의해 ‘여성주의 강화’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요약하자면, 애초에 ‘노유진 당원’들은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에 있어 지도부부터 대의기구, 당내 집행기구나 지역 방송 등 정의당 전체를 적으로 두는 상황이었고, 이 과정에 원리원칙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야다. 이 싸움을 ‘노유진 당원’들이 이길 수 있었다고?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의 시작부터 끝을 다루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따라서 필자는 본 기고문 전체의 주제인, ‘과연 정의당과 심상정은 대한민국을 개혁해나갈 차기 정권과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정의당 내 원리원칙에 대해 풀어나가고자 했다. 2회차에서 정의당의 당내 민주주의가 붕괴되었다는 점을 피력했다면, 이번 회차의 주제는 정의당의 원리원칙, 특히 당규가 특정 세력들에 의해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필자의 연작 기고의 마지막이 될 다음 회차엔, 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인 정파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필자가 직접 보고 경험했던 것들, 그리고 여러 당원이나 정의당 전 관계자들이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통해 일부나마 정의당과 진보정당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지적할 것이다. 이러한 고질적 병폐들은 현 시국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이 시국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고려되어야 할 문제라 자신한다.

다음 기사 정의당, ‘그들만의 진보정당’은 무한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