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주의, 책임은 ‘부정’ 은폐는 ‘교육’

최근 대학 캠퍼스에서는 여러 사건이 터지고 있다. 아마도 새 학기인 3월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아재스러움으로 이야기하자면 벌써 세월은 흘러 IMF 외환위기 즈음에 태어난 사람들이 이제 대학에 입학하는 시대가 됐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할 때 캠퍼스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부분 학교는 학과에서 학부제로 전환했고,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위기 속에서 캠퍼스의 낭만도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딱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 과거에는 ‘낭만’으로 포장된 집단주의적 악습도 점점 사라져갔다.

그런데 최근 캠퍼스의 동향을 살펴보면 집단주의의 악습이 되살아나는 것인지 아니면 숨겨져 있던 악습이 스마트 모바일 시대의 기술적 혜택으로 밝혀지는 것인지 사건·사고가 많이 터지는 모양새이다.

물론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기성 언론에서도 조명한 ‘음주 문화’일 것이다. 이미 신입생 환영회의 사건·사고로 희생자들이 발생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목숨을 잃는 희생자의 존재 때문인지 이러한 경우는 대체로 공론화가 되고 학교 차원의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들은 ‘학생 자치’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구습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23일 단국대 천안캠퍼스 졸업식에는 성희롱 요소가 다분한 현수막(사진)이 걸려 논란이 됐다.

‘오빠’! 나 지금 ‘축’축해 ‘졸’‘업’ 됐어

재미 혹은 감동조차 없는 문장을 기획한 형편없는 감각과는 별개로 진짜 문제를 보여준 것은 학교 측의 태도였다.

논란의 ‘오빠’ 나 지금 ‘축’축해 ‘졸’라 ‘업’ 됐어 현수막

논란의 현수막을 기획하고 제작한 사람은 일개 개인이 아니라 학생 자치 기구인 대의원회였다. 그로 인한 학생들의 반발이 거셌는데, 학교 측은 징계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징계 결과는 공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른바 징계를 받은 특정인을 공지하게 되면 개인정보보호법이나 명예훼손 등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징계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징계 결과는 공지하지 않는다는 단국대의 입장

만약 개별 개인이 성희롱 요소가 담긴 현수막을 내걸었다면 학교 측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학생 자치와 관련된 ‘대의원’이었다는 점이고, 그중 한 명은 단과대 상임의장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즉, 학생들이 알아야 할 정보였던 셈이다.

게다가 성명과 학과, 학번 중 일부와 같은 징계 정보는 개인정보 유출과는 무관하게 공지할 수 있으며, 징계 대상이 대의원이었다. 학생 자치 및 선출과 관련된 인물이면 일반 학생들이 알아야 할 이유에 따라 법적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단국대의 답변대로 일이 처리되었을 경우에는 우리는 참 묘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즉, 학내 평판을 토대로 선출 혹은 대표가 된 사람들이 평판의 악재가 될 잘못은 저질렀음에도 보호받게 되는 상황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선출직 대통령이었고, 국민이 알아야 할 ‘세월호 7시간의 행적 ’이었음에도 갑자기 ‘개인’이자 ‘여성’으로 돌아간 채 ‘사생활’을 읍소했던 어떤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출처 YTN

유사한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영향력 확대로 이른바 ‘대나무숲’이라는 익명 폭로 페이지가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용도에 걸맞게 학내 단톡방 성희롱과 병영폐습 등이 하루가 멀게 고발·폭로되고 있다.

필자는 최근 이러한 사건을 유심히 보면서 의미심장한 키워드 하나를 발견했다.

‘집단주의’

앞서 단국대는 굳이 가해자들의 신상을 보호하며, 사건을 대외적으로 무마하려는 시도를 펼쳤다. 바로 학교의 명성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함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나무숲’에서 붉어진 여러 캠퍼스 폐습을 대하는 주변인들의 태도도 유사했다. 부산대 댄스동아리나 조선해양공학과 병영문화에 대응하는 소속 관계자들은 “성급한 일반화를 하지 말라”거나 내부 고발자를 되레 비난하는 경우가 있었다.

조직의 명예와 자신의 명예를 동일화시키고, 그 조직의 일부로서 개인이 동화되는 것이다. 앞서 단국대 천안캠퍼스 사안의 경우에는 학교 측에서 축소하려는 행정처리보다 ‘징계’를 공론화함으로써 학생 자치의 한계에 대해서 분명히 선을 긋는 행동이 더 현명했다. 징계 공고는 평판으로 선출돼 대의기구, 대표성을 가지는 ‘학생 자치’의 책임성을 교육할 기회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특검 조사에 앞서 ‘개인’을 강조했다. 분명 공적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는 헌재의 결정문을 기억하자. 헌법재판관들은 사실상 ‘헌법수호의 의지’ ‘공직자로서의 책임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런데 이 재판은 단지 박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파면 징계는 다음 대통령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한계’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분명 집단 내의 ‘갈등’에 대해서 좀 더 소란스러움이 필요하다. 개인과 조직을 타자화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성인이지만 성인이 아닌 존재로서 학생을 규정하는 학교 측. 그리고 그 속에서 불리하면 보호받아야 할 개인과 ‘미성숙한 학생’의 지위로 회피하는 개인이 존재할 때, 더 이상 청춘이란 진보와 희망의 아이콘이 될 수 없다.

임형찬

헬조선 개청년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