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J 레스토랑’ 사장과의 인터뷰

SJ 레스토랑 사건,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가

지난해 여름 뜨겁게 달아오르던 메갈리아·워마드 논쟁이 식어갈 무렵, ‘SJ 레스토랑’ 사건이 발생했다. 10월 21일경 경기도 이천 소재 ‘SJ 레스토랑’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일베 메갈 워마드 친일후손은 출입을 제한합니다’ 공지가 사건의 발단이 됐다.

SJ 레스토랑의 트윗

이를 본 인근 친메갈리아 성향의 청강대 학생과 트위터리언들(트위터는 평소 일명 트페미를 주축으로 메갈리아 옹호성향이 강한 집단이 상주하는 SNS이다)이 강하게 반발하며 일부에서 SJ 레스토랑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가게의 위생상태가 엉망’, 사장이 ‘알바생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성희롱’을 당했다는 주장이 가게에서 일했던 일부 아르바이트생들로부터 나왔다.

SJ 레스토랑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며 트위터에서 피해자라고 주장한 아르바이트생 두 명에 대한 법적 대응(명예훼손)을 밝혔다. 이후 이 사건에 알바노조(청년좌파라는 운동권 집단의 외곽단체)라는 조직이 개입하면서 사건은 더 커졌다.

알바노조는 SJ 레스토랑 사장의 사과와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고소취하를 요구하며 성희롱과 임금문제를 가지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고 또한 레스토랑 인근에서 시위를 벌였다.

출처 알바노조

SJ 레스토랑 사장이 폭로자를 고소한 이후 시간이 몇 개월 흘렀다. 현재 ‘자칭 피해자’라고 호소한 아르바이트생의 글은 전부 지워진 상태이며, 일부 악플러는 사법처리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장을 성희롱과 노동착취를 일삼은 악덕 업주로 규정한 공지사항이 여전히 알바노조의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상황이다.

알바노조 홈페이지 성희롱 레스토랑, SJ 레스토랑

SJ 레스토랑에 대한 성희롱과 임금체불 논란은 알바노조의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에 퍼졌고, 여러 매체에서 기사화됐다. 하지만 정작 온라인에서 여러 정황과 물증으로 폭로를 반박하며 억울함을 호소한 사장의 입장은 제대로 담겨 있지 않았다. 기사 대부분은 ‘자칭 피해자’의 주장만 담겨 있는 내용이었다.

사건을 공론화한 알바노조는 SJ 레스토랑 사장으로부터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제보를 받는다는 공지를 올리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 “눈치를 보고 자기검열을 할 사람은 바로 가해자인 사장님이다”.

하지만 정말로 가해자로 지목된 측의 “자기검열”과 “침묵”이 능사일까. 또 알바노조는 레스토랑 인근 기자회견 자리에서 사장에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지 말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실제 피해를 당한 사람은 사장이다.

언론과 SNS에서 ‘악덕 업주’로 몰린 SJ 레스토랑 사장은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와 개인 SNS에 간간이 글을 올리는 식으로밖에 반론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강자는 곧 가해자이고 아르바이트생은 약자이므로 당연히 피해자일 것이라는 프레임 아래 사건의 당사자인 사장의 입장을 언론이 외면한 것이다.

그런데 약자는 항상 진실을 말하는가. 그리고 조직과 언론을 상대로 외롭게 항변해야 했던 한 개인이야말로 약자가 아닐까.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이에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아니, 공개될 수 없었던 사장의 입장은 무엇인지 그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고자 한다. 현재 그는 신경정신과에 입원한 관계로, 지난 1일 모처 병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올해 초 가게를 휴업하고 입원했다는 소식을 SNS로 알려왔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은데, 가게를 운영하게 된 계기와 사건의 발단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세요

아버지가 이천에서 이 가게를 연 것은 약 4년 전입니다. 그 직전까지는 해외에서 일하다가 아버지께서 매우 편찮으셔서 제가 3년 전에 입국했습니다. 입국한 후 아버지와 함께 레스토랑을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같이 일하던 어머니마저 편찮으셔서 지난해 5월부터는 아르바이트생을 본격적으로 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인근 (청강대)학생 위주였습니다. 많을 때는 1주일에 9명까지 고용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 가게는 청강대에서 4.5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생의 친구들도 가게에 많이 몰려왔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학생들의 편의를 많이 봐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업을 20대부터 하다 보니까, 노동법이나 근로자 처우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관심도 많았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어기지 않고 1분 1초라도 돈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모든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하루에 밥 한 끼를 꼭 챙겨주려고 했고 인근에 자취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음료수와 과일 그리고 빵도 챙겨주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아르바이트생과의 관계는 화목했다고 생각합니다.

신메뉴를 개발할 때 아르바이트생들과 같이 시식을 해서 평가를 받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신메뉴 출시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원래 요리를 천성적으로 좋아하다 보니 같이 시식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웃음).

SJ 레스토랑의 음식(출처 구글)

어머님이 가게를 그만둘 즈음에 채용한 아르바이트생이 학생 B입니다. B는 횟수로는 1주일에 두세 번 정도, 하루에 약 3시간 정도 일을 했습니다. 아마 한 달 정도만 근무했을 것입니다. 그다음에 A라는 학생이 일을 시작했고 그가 이번 사건의 시발점이 된 학생입니다. A가 처음 SJ 레스토랑에 대한 거짓 폭로 글을 올리고, B가 이를 리트윗하는 방식으로 함께 공모했습니다.

1주일에 많게는 9명까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다고 했는데, 그 많은 아르바이트생을 다 관리하려면 근무 시간표를 짜기도 쉽지 않았겠네요

저는 근무시간표를 제가 직접 다 짰습니다. 또 근무시간표가 정해지면 카톡이나 전화로 모든 아르바이트생에게 일일이 직접 연락을 했습니다. 또 실제 근무시간을 다 메모해두어서 장부도 남겨두었습니다(알바노조는 홈페이지와 기자회견을 통해서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근무시간을 축소하는 등 꼼수를 썼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지난주 토요일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근무하라고 공지하고 개인마다 출근부를 1분 단위로 작성했습니다. 보통 자영업자들은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일부 아르바이트생은 출퇴근도 시켜주었습니다.

SJ 레스토랑 사장이 보여준 그동안의 근로계약서들과 출근시간표, 장부들. 그의 말대로 1분 단위로 출퇴근 기록을 장부로 정리해 놓았다. 사장의 꼼꼼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지금도 아르바이트생과 손님에 대한 외모 비하 등의 성희롱을 했다는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인가요

제가 아르바이트생과 손님들에게 외모 평가와 외모 비하를 했다고 하는데, 애초 아르바이트생 외모를 보고서 뽑은 것도 아니고, 저는 아르바이트가 필요한 학생들은 대부분 다 받았습니다. 구직을 문의하는 전화가 오면 언제든지 대부분 받아주는 타입이었습니다. 바로 거절하면 상처 받을까 봐 거절하지 못했던 것도 있고요.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온 대부분 학생이 여학생이었고 지금까지 30명 정도가 이 가게에서 일했던 것 같습니다. 그중 두 명이 남학생이었고요. 아르바이트생 중에는 자매, 같은 과 친구들, 동기 친구들도 모여 있었습니다.

모두 공평하게 대하고, 또 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배려하려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회식을 시켜주기도 한다든가, 기숙사나 집에 가야 하는 아르바이트생 한 명 한 명 차로 태워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성희롱이나 외모 비하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또 제가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한 B는 정작 제 어머니와 1달 동안 일했는데, 그 기간 제가 성희롱을 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30명 넘게 아르바이트생들이 일했는데, 그렇다면 누군가 이 일을 증언해줄 수 있지 않나요

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서 진술서를 써준 아르바이트생들이 있습니다.

평소 ‘성희롱’과 ‘임금체불’ 등의 행동이 없었다는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제출한 진술서

그렇다면 어떤 계기로 사장님을 고발하는 글이 트위터에 유포됐다고 생각하나요

최초 폭로자인 A는 2015년 12월 초부터 2016년 10월 19일까지 이 가게에서 근무했습니다. 평소 시간약속이 꼼꼼하지 않아서 어머니께서는 부르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그래도 한번 가게와 인연을 맺은 아르바이트생을 냉정하게 대하는 것은 싫어서 근무시간표를 배분해줬습니다.

당시에는 휴학생이라서 기존 근무자가 펑크가 나면 주로 그 시간을 채우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제 시간에 나오지 않은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약속 문제 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인가요

아르바이트생끼리 인수·인계가 잘 돼야 하는데 그 부분도 소홀히 했습니다. 그래도 자르게 된 계기는 인수·인계 문제도, 시간약속도 아니었습니다. 근무시간에 늦어도 질타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이가 틀어지게 된 계기는 불성실한 업무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가게는 코스요리를 대접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런치 시간에 샐러드드레싱을 미리 만들어놓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코스 요리니까 수프 먼저 나오고 본 요리가 나오는 이런 순서로 음식을 대접하는데, 나중에 대접해야 할 샐러드에 A가 드레싱을 미리 뿌려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샐러드는 서브 직전에 뿌려서 서브해야 합니다. 손님이 들어오기 전부터 미리 드레싱을 뿌리면 채소 숨이 죽습니다. 손님에게 제일 맛있는 상태로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취지에서 질책했습니다.

제가 그 과정에서 잘못한 것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 ‘미친 거 아니야’라고 말한 부분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A가 ‘실장님 말씀 좀 심하게 안 하시면 안 돼요’라고 하니까 저도 말이 심한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에 오징어 먹물 리조또를 대접하고 화해를 하려 했습니다.

나도 말을 조심할 테니 손님에게 제일 맛있는 상태의 요리를 내놓고 싶은 것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샐러드는 어찌해도 좋은 것 아니냐는 태도로 나오니까 당황했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요리 밖에 없고 제일 좋아하는 것도 요리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 심정을 이해해주지 못한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고 결국 가게를 그만두게 했습니다.

SJ 레스토랑 사건의 발단은 트위터에 올린 메갈·일베 출입 금지 공지에 대한 논란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지인이 자신의 폰으로 쓴 글이라는 해명을 했는데, 트위터 계정으로 올라간 경위는 어떻게 되나요

제가 인터넷 카페 활동을 통해 만난 지인이 창업 차 요식업을 배우기 위해 제 가게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평소 일간베스트하고 메갈리아를 싫어했는데 그때 관련 주제로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죠. 당시만 해도 일베(일간베스트)는 저도 잘 알고 있었고,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패륜 때문에 극도로 싫어했지만 메갈리아는 당시만 해도 잘 몰랐습니다.

지인으로부터 메갈리아가 저지른 일에 관해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럼 일베와 메갈리아 유저들은 손님으로 받지 말아야겠다는 이야기기가 나왔고 그것이 반영되어서, SJ 레스토랑 계정에 공지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저도 지인이 저희 가게 계정에 공지를 올리게 된 과정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노키즈존(No Kids Zone)과 같은 생각으로 접근했습니다.

SJ 레스토랑의 ‘친일파 후손 및 메갈 일베 출입 금지’ 공지 취지는 노키즈존(출처 KBS)

그런데 공지를 올린 당일 직후에 핸드폰에 알람이 엄청나게 많이 와 있었습니다. 지인들도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했고요. 얼마 전 가게에서 잘렸던 A가 저희 가게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 ‘SJ 레스토랑 가지 마세요. 40 넘은 아저씨가 돼지 같은 년이라고 욕하고, 위상상태도 나쁘다’는 둥 헛소문을 트위터에 퍼뜨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B가 리트윗하고. 그 결과 저는 인터넷에서 엄청나게 공격을 받게 됐습니다.

특히 B라는 사람이 트위터에서 공개적으로 피해사례를 모집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학생들까지 끌어모으게 된 것이죠. 여기에는 청강대 특정 학과가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만화창작과와 게임과 쪽에 주로 몰려있었습니다. 친구 1명이 고소를 당하게 되니까, 집단으로 뭉치게 된 것이죠.

사건이 터진 후 신변에 대한 위협이나 폭언들이 있었나요

개인적으로 온 욕설이나 폭언은 없었고, 단지 SNS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저에 대한 비난을 가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어이없었던 게 자신을 까만 차에 태우면서 전신을 훑으며 성희롱을 했다는 에피소드입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제 차는 하얀색 차인데요.

또 트위터에서 제가 손님들이 먹는 음식에 정액을 넣었다는 주장도 돌았습니다. 음식에 정액을 넣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유포한 친구(현재는 청강대 휴학생)는 검찰에서 조건부 기소유예가 나왔습니다. 이토록 터무니없는 공격에 동참했는데도 법이 이런 부분에서는 너무 관대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민사까지 다 걸 생각입니다.

조건부 기소유예제도는 범죄예방자원봉사위원의 선도, 소년의 선도·교육과 관련된 단체·시설에서의 상담·교육·활동 등을 조건으로 19세미만 소년범죄에 대해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제도다.

SNS에서 사장에게 가해졌던 폭언

트위터상의 욕설과 폭언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앞에서의 시위로 인해 몸살을 겪게 되었는데, 이후 생활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폭로 이후에 장사를 하면서 사건에 대해 모르고 오는 손님도 있고, 알면서 저를 응원하는 손님도 있지만, 여전히 제 마음은 편하지 못했습니다. 여자 손님이 오면 ‘혹시 이 사람도 나를 성희롱범으로 몰지 않을까’ 하는 피해의식이 자꾸만 들어서, 도저히 친절하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보통 같으면 친절하게 응대하고 나갈 때 인사도 했겠지만···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실을 알면서도 진실을 왜곡했던 학생들이었습니다. 가는 길이 힘들거나 시간이 늦었다 싶으면 학생들 일일이 기숙사까지 픽업 서비스까지 했습니다. 폭로자인 A와 B에 동조했던 아르바이트생들 중 일부는 지난해 10월 전까지만 해도 종종 가게에 와서 밥을 먹었던 학생들이었습니다.

그 아르바이트생 중에는 남친이 있다길래 데려오라고 해서 밥을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치킨 배달까지 부탁했던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10월 이후에 갑자기 돌변한 것에 놀랐고 또 배신감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에서의 악플 같은 것으로 제 자아가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제가 법적 대응을 시작한 이후 알바노조가 개입을 하면서부터입니다. 그들은 여성의 전화, 청강대 측과 연대계획을 세우고 있다면서 SNS 메시지로 접근 했습니다. 그때 제가 고소를 한 A와 B, 그리고 여러 아르바이트생들이 알바노조에 결합한 시점이었습니다.

알바노조는 자기들 노조에 가입한 제 가게 아르바이트생이 11명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알바노조를 통해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던 학생들은 6명이었습니다.

알바노조와 어떻게 악연이 시작됐나요

알바노조가 저에게 연락해, ‘노조원들의 신고가 들어왔다. 임금체불, 매장의 위생상태, 성희롱 발언이 신고됐다, 우리가 찾아갈 수 있느냐’고 묻기에 찾아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다시 전화를 걸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자기들이 바라는 건 ‘사과’와 ‘문제 해결’ 그리고 ‘고소취하’라고 하더군요. 저는 ‘A와 B의 거짓폭로 때문에 업무적으로 너무 큰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그 둘만큼은 반성문을 쓴다 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이후로 알바노조는 공론화를 해서 저희 가게를 완전히 매장을 시키는 방향으로 돌아섰습니다. 가게 인근에서 기자회견과 집회도 열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공론화한 거죠. 지금도 피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해 2월에도 <KBS>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다루는 뉴스에서 이미 문을 닫은 저희 가게 간판을 자료화면으로 내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관련 방송 <KBS> ‘맞대응에 속앓이만’ 직장내 성희롱

언론으로부터 받은 피해도 매우 컸겠네요

언론에서까지 악덕 업주·악덕 사장으로 낙인찍힌 이후로 아주 힘들었습니다. 공론화라는 것은 서로의 입장이 부딪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의 주장으로, 일방의 주장으로 공론화를 했습니다. 저쪽에서는 제가 아르바이트생에게 ‘예쁜 엉덩이 다칠라’라고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을 그대로 실은 <한겨레> 기사에는 엉덩이를 만지는 사진까지 나왔습니다.

관련 기사 <한겨레> 알바노조, “레스토랑 사장, 알바생에게 ‘예쁜 엉덩이 다칠라’ 성희롱”
-고한솔 기자의 기사에는 엉덩이를 만지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현재는 사진 삭제).

가게는 2005년에 개업했습니다. 원래는 충남에서 영업하다가 경기도 이천으로 옮겨 왔는데요. 2005년부터 거의 12년 넘게 해온 걸 지금은 폐업 위기까지 처하게 됐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피해사례를 <KBS>, <SBS>, <MBC>, <JTBC>에도 제보를 했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을 기사화했던 <경향신문> 기자와도 전화했는데, 제 연락을 피하기만 하더군요.

결국, 언론은 진실에 관심이 없었고 여론을 그냥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가져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약자 편에 서서 사건을 공론화시키는 것이 공익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정작 저의 입장이나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SJ 레스토랑 앞에서 시위 중인 알바노조(출처 알바노조)

이건 강자와 약자의 구도가 뒤바뀐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결국 사장은 개인으로서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고, 아르바이트생들은 알바노조라는 조직과 함께 언론을 업고서 개인을 매장한 구도처럼 보이네요

진실은 결국 언젠가는 알려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가족끼리 이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제 누나가 좀 똑똑하세요. 생각이 깊으신 분인데, ‘네가 그 학생을 자를 때에도 자르기 전에 경고를 하고,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언제까지 그만둬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했어야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네가 학생에게 과거에 했던 말이 학생들이 마음의 상처를 줬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샐러드 드레싱 문제에 대해 질책을 했을 때도) 너에게 악의를 가진 것이 아니라 손님을 위해 필요한 것을 말한 것이라고 말해도 그쪽에서 악의가 있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고, 그렇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일 수 있습니다.

또 제가 분위기를 편하게 해준다고 해도 상대는 편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금체불이나 손님에 대한 욕설 그리고 성희롱에 대한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은 참기 힘듭니다.

특히 제가 손님 뒤에서 외모 평가와 욕을 하고 음식에 이물질을 넣었다는 주장은 충격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요리 외길 인생만 걸어온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유도를 해왔습니다. 유도에 빠져 있었죠. 제가 한 가지에 몰입하게 되면 거기에만 빠져드는 성격이라, 유도 이후에는 요리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요리사이시기도 했고, 미군 부대와 큰 호텔에서 요리사로 근무하신 적도 있으세요. 저는 원래 평생 요리를 안 할 줄 알았는데 대학 졸업하고 사업 좀 하다가 안 되니까, 2005년도에 요리를 배워보라고 아버지가 권유하셔서 그때부터 요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요리 독학도 하고 전국으로 많이 돌아다니면서 배우고, 그렇게 빠져든 요리 외길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손님에게 줄 요리에 장난을 치고 손님에게 모욕을 준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건 이후 온라인에서 많은 사람이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관련해서 주변 지인들의 도움이 있었나요

성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정말 가까운 사람 아니면 이 문제를 말도 못 꺼내버리는 분위기가 생겨납니다. 또 저는 지금 성범죄자로 지목받았는데, 주변에 억울하다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사실 수치스럽죠. 그래서 가까운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결국 저 혼자 싸울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법기관이나 변호사 외에는 제 직계가족에게만 저의 이야기를 호소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오히려 정작 주변 지인들에는 저에게 생긴 문제를 떠벌리고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해자에게 사과를 바라지 않나요

주동자 A와 B 외에 휩쓸려 들어온 아르바이트생들은 안타까운 마음이 많았지만, 이제는 누구로부터도 사과를 바라지 않습니다. 현재는 오로지 법이 공정하기 바랄 뿐이고, 공정한 심판을 내리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사과해도 용서를 할 수 없는 기분입니다. 용서할 기회를 많이 줬고 지금에 와서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반대로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달게 처벌을 받겠습니다.

그동안 많이 힘든 일을 겪었을 텐데, 앞으로의 계획은 있나요

알바노조는 이제 침묵 모드입니다(실제로 2016년 12월 23일 이후 알바노조에는 관련 입장이 올라와 있지 않다). 알바노조가 노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면 공익을 위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익이라는 것도 성인으로서 어느 정도 가치관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노조의 힘을 키우기 위해, 노조의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저 역시 법적인 모든 수단과 제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서 저들을 상대로 진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알바노조와도 끝까지 가려고 합니다. 민사소송도 크게 걸 겁니다. 주동자인 2명에 대해 1심 판결이 나오면 그 둘에 대해서도 민사도 진행할 생각입니다.

저에 대해서 인권위에 고발을 한 6명이든 11명이든 다 제가 가지고 있는 근거들을 통해 반박할 예정입니다. 알바노조에 대해서도 인권위에 역으로 진정으로 넣을 생각입니다. 제가 충분한 대화를 시도했음에도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자 저를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하려 했습니다.

저는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이번 2월에는 신경정신과에 입원했고 혈압에 문제까지 생겨서 다음 주 월요일에는 진단서가 나올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자살 충동을 자주 느껴서 129라고 자살의 전화에서 상담받았습니다. 그러자 이천 센터에서 집까지 찾아오더라고요. 완전히 심리적으로 망가졌습니다. 이것도 피해자 코스프레입니까. 저는 이런 부분들을 반드시 보상받고 싶습니다.

사장이 129 자살의 전화와 상담한 통화 목록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는 가게를 제대로 열지 못했습니다. 응급실에 실려 가기 전까지 매일 집에서 혼자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술을 마시곤 했습니다. 가게를 쉬던 중에도 손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예약하고 싶다는, 안타까웠습니다. 손님들께 죄송하지만, 지금은 동네 자체에 들어가기 싫습니다. 가게를 연다면 다른 곳에서 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냥 그 동네 자체에 대해서 학을 떼게 되었습니다.

동네에서 유동인구가 많지도 않고 장사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거기에 몰려가서 성희롱했다는 현수막을 걸고 시위할 때 지역사회에서 저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제가 떳떳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누군가 성희롱범으로 보는 것 같은 시선들이 느껴져 그게 결국 병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게이다 보니 아버지에게도 뵐 면목이 없었고 그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회복되면 어디에서든 어떻게라도 가게를 열고 싶습니다.

박가분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단행본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paxwon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