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체제의 적폐···빛과 그늘 1

1987년 이후 30년을 성찰한다

박근혜의 진짜 죄
‘적폐청산’이 5·9 대선 정국의 화두가 되고 있다. 오랫동안 쌓인 폐단이 적폐인데, 도대체 적폐가 뭔지, 청산은 또 뭔지, 누가 청산 대상인지는 오리무중이다.

촛불이 일렁이는 광화문광장에서는 “국정농단-부정부패-정경유착-친일부역-보수 기득권-재벌” 등을 지목하는 듯하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서울광장에서는 맞불 작전인지 “친북좌익-좌파포퓰리즘-강성노조-수구 진보 기득권” 등을 지목하는 듯하다.

서로가 서로를 청산·척결되어야 할 ‘악’이나 ‘불의’로 규정한다. 존재 불인정, 시퍼런 적의, 개념의 신축성과 자의성은 1945~53년의 해방공간에서 숱한 생사람을 잡았던 ‘빨갱이’나 ‘친일부역자’를 방불케한다.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그 시기에 휘몰아치던 대량 학살의 심리도 꿈틀댄다.

구한말을 방불케 하는 민족·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위기 타개 방략을 뒤로 한 채,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며, 대선 선거전을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대결로 몰아가는 행태야말로 진짜 적폐인지 모른다. ‘적폐청산’ 태풍에 대선판의 단골 핵심 화두인 ‘담대한 변화와 개혁’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2015년경만 해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규제 개혁과 공공, 노동, 금융, 교육의 4대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다. 2016년 6월 제20대 국회의 개원 시점만 해도 격차, 불평등, 양극화, 경제민주화와 제4차산업혁명 등이 주요한 화두였다.

2016년 가을 광화문 광장과 서울 광장에서 촛불과 태극기 물결이 넘실거릴 때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 등 개헌이 주요한 화두였다. 그런데 지금 이런 중차대한 화두는 ‘적폐청산’과 ‘선-악’, ‘정의-불의’, ‘전쟁 프레임’에 가려져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북핵과 미사일, 중국의 사드 보복과 미·중 갈등 같은 국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화두들도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의 지하 수천 미터 깊이에 파 묻혀버렸다.

대신에 국정농단, 블랙리스트, 부정부패, 정경유착, 재벌 갈취, 구속·탄핵 여부, 세월호 7시간, 백옥주사, 태반주사, 올림머리, 화장실 변기 등 구시대적 ‘적폐’와 호사가적 관심이 광장을 덮어 버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 31일 오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검찰차량을 타고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출처 SBS)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역사적 죄악은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겠지만, 그 맨 윗줄에 올라갈 죄악은 진짜 청산해야 할 적폐와 진짜 화두로 삼아야 할 국정 현안을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린 것이 아닐까 한다.

86세대 인생의 중간결산
지금 우리가 개탄하고 아파하는 밑도 끝도 없는 갈등, 혼돈, 불안은 1987년 이후 30년의 적폐를 대관소찰하지 못한 데서 온다. 계절이 바뀌었는데도 옷차림과 생활방식을 바꾸지 못해 지독한 독감을 앓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격변의 시대였던 지난 30년을 짧은 글로 대관소찰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적폐 청산’이 대중적 호응을 받을 정도로 큰 변화와 개혁이 요구되는 정치적 격변기에는 30년을 대관소찰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1987년 이후 대한민국을 큰 틀에서 규율해 온 1987 체제의 빛과 그늘, 성과와 한계를 중간결산하는 것은 나를 포함한 86세대와 민주화 운동 세력의 인생을 중간결산하는 일이다.

동시에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개혁 운동을 중간결산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가늠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분명한 것은 1987 체제의 빛과 그늘을 종합적, 균형적, 거시적, 세부적으로 살피지 않으면, ‘친일부역세력’ 혹은 ‘유신독재 잔당’ 청산이니, ‘보수 기득권’ 혹은 ‘수구냉전 기득권’ 어쩌고 하는 30여년 전 운동권 대학생 수준의 문제의식으로 세상을 재단하게 되어 있다.

시대를 대관소찰하지 않으면 변화와 개혁이 오히려 사회를 더 깊은 혼돈과 갈등의 수렁으로 몰아갈 수 있다.

1. 구한말을 방불케 하는 위기
지금 대한민국의 내우외환 혹은 외파위기와 내파위기는 구한말을 방불케 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환경 위기, 점증하는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 남북 간의 일측촉발의 긴장,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거친 보복과 국론 분열, 중국과 미국·일본 간의 군사적 긴장 등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일제강점, 6·25전쟁의 악몽을 되살아나게 한다.

산업생태계가 황폐해져 가고 있다. 중국과 인도 등 후발 개도국의 부상으로 인해 비교 우위를 상실한 산업과 기업들은 속출하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산업과 기업은 생겨나지 않고 있다. 자연생태계도 황폐해져 가고 있다. 기후변화와 중국의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가뭄, 산성비, 황사 등으로 인해 농토와 산림이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15년째 반전되지 않는 초저출산 현상은 청년세대의 결혼과 출산의 불능, 기피, 연기(만혼 등)의 산물이다. 이는 중장년 세대의 청년 세대에 대한 과도한 수탈이나 부담 전가에 대한 복수라고 보아야 한다.

‘N포 세대'(출처 YTN)

임금, 소득, 재산 등 모든 측면에서 양극화가 심화했다. 재벌지배권, 재산(땅), 좋은 직장과 직업 등 여러 방면에서 세습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국가)의 문제 해결 능력도 저하됐다. 사회 기풍도 더 불건전해졌다. 멸사봉공이 아니라 멸공봉사가 상식처럼 됐다.

당연히 분열과 갈등은 더 극심해졌다. 동서로, 계층으로, 세대로, 이념으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제는 다시 금 모으기 신화를 연출할 수 없을 것이다.

불평등, 양극화, 저출산, 청년 일자리, 파괴적 경쟁과 갈등 문제가 국가적 현안으로 부상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책을 수립해 적지 않은 재정을 투입했지만, 문제 해결은커녕 완화되지도 않고 있다.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안은 기득권의 강력한 이해관계에 의해 과녁을 크게 빗나가면서 엉뚱한 규제를 만들고, 엉뚱한 곳에 재정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OECD 평균에 비해 현저히 나쁜 지표들, 즉 복지(공공사회) 지출, 사회복지인력, 공공부문 고용비중, 단기 근속자 비율, 임시직고용비중 등은 면밀한 구조와 원인 분석 없이 민간복지업자의 배를 불리거나, 공공·노동 기득권을 확대, 강화하는 것으로 이용되곤 했다.

구한말 내우외환 위기의 뿌리
구한말에 밀어닥친 내우외환은 기본적으로 왕과 핵심 지배층과 양반사족 등 식자층의 혼미, 무능, 둔감, 위선, 분열에서 왔다. 이들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일본과 중국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변화를 알지 못했다. 무서운 기세로 일어서는 일본을 왜놈이라 깎아내렸다.

그 결과가 한반도 지정학적 위험에 대처하지 못한 외교·안보 참사다. 따지고 보면 한반도 분단과 좌우익 간 내전과 한국전쟁 역시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에 대한 무지의 산물이다.

구한말 내우외환은 물질적 문화적 퇴행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정치경제체제의 모순에서도 왔다. 조선의 양반 관료와 지방 사족과 아전의 지독한 착취와 억압, 배제와 차별, 그리고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등이 그것이다.

조선은 정조 사후 허울뿐인 왕을 세워놓고 세도가들과 양반 사족과 지방 아전의 국정농단이 질기게 지속됐다. 이 참상은 구한말 조선을 다녀간 수많은 외국인(외교관과 상인과 여행자)의 기록에 남아있다.

벼슬은 돈을 주고 사고파는 백성 고혈 착취 면허증에 불과했다. 세금 대부분은 지방 아전들의 아가리에 들어갔다. 양반 사족들은 지방 아전의 약탈도 면하고, 세금도 면할 수 있었기에 일반 백성들의 아비규환에 모르쇠했다.

중앙 정치에 관심이 있는 조선의 식자들은 백성들이 양반 사족과 지방 아전의 혹독한 탐학에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거나, 알아도 외면했다.

현대판 차별. 노조도 계급이 있다(?)

문중(가문) 차별, 양천 차별, 적서차별, 남녀 차별, 사농공상 차별, 서북지방 차별 등 온갖 명분을 갖다 붙인 차별과 배제, (지식과 자리) 독점이 얼마나 사회를 물질적 문화적으로 황폐화하는지 잘 모르거나 외면했다.

백성들도 양반의 특권과 특혜(주로 세금, 노역, 병역 면제)를 철폐하려 한 것이 아니라, ‘너만 면제냐? 나도 면제받자’ 식으로 너나 할 것 없이 국가에 대한 각종 의무를 면제받는 양반이 되려고 몸부림쳤다.

지금의 고시공시 열풍과 상향평준화론은 구한말의 온 나라 양반 되기 열풍과 일맥상통한다. 특권과 특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처럼 그 대상자를 확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중앙정치에 관심이 집중된 조선의 식자들은 사회의 속살과 바닥 현실을 모르거나 외면했다.

이 점은 오늘날 SNS나 광화문과 시청 광장에서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떨쳐 일어선 시민들과 흡사하다. 물질적 생산력을 높이는 방법(시장, 상공업, 과학기술 등)을 몰랐고, 산림의 황폐화로 인한 자연재앙의 파괴력을 몰랐다. 국가 개혁 관련해서도 총론은 좀 알았을지라도 각론은 너무 약했다.

유형원, 이익, 유수원, 정약용으로부터 내려오던 개혁 유학(실학)의 전통과도 단절돼 있었다.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소중화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기승전‘정권’ 쟁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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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socialdesign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