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체제의 적폐···빛과 그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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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이후 30년을 성찰한다

2. 1987 체제의 빛
1/N의 값은 N이 크면 점점 작아진다는 것은 초등 수학이다. 서울에서 서쪽으로 100km를 가면 서해고, 북쪽으로 100km를 가면 북한 땅이라는 것은 초등 지리다. 1987 체제의 그늘과 적폐도 그 구조를 통해서 윤곽을 알 수 있다.

1987 체제의 빛과 그늘은 수많은 통계로 뒷받침되는 것이 생산·분배구조와 미시 격차(인센티브)구조로도 분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 시장, 사회 등을 망라하려면 체제의 핵심가치가 만든 구조로 분석할 수밖에 없다.

‘1987 체제’는 가치, 이념, 문화와 정치제도(헌법, 선거법, 국회법, 정당법, 지방자치법 등), 정치 지형(정치적 대립 구도) 등이 맞물려서 돌아가는 어떤 공고한 구조 또는 체제다. 이 구조에서 공명선거를 통해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까지 6명의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정부가 출범했다.

1987 체제는 1987년 6월항쟁, 7~9월 노동자 대투쟁, 10월의 헌법개정과 12월의 대통령선거, 1988년 3월의 선거법개정과 4월 총선으로 탄생했다. 1987 체제의 정치 제도적 근간은 결선투표 없는 5년 단임 직선 대통령제와 소선거구 상대다수득표제 국회의원 선거제도다.

1987년 6월 항쟁

정치적 대립의 기본 축은 영호남의 지역주의와 보수-진보의 이념적 대결 구도다. 그 이념은 대체로 북한에 대한 태도다. 보수가 레드콤플렉스를 무기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1987 체제는 그 이전에 한민족과 대한민국을 규율했던 정치 체제(조선, 식민통치, 분단 정전체제, 국가주도 발전체제 등)의 유산과 접합돼 일종의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1987 체제 하나의 공과만 분리할 수는 없다.

1987 체제는 국제 정치, 경제, 기술적 변화와 생태환경 위기 등과 상호 작용을 해왔다. 1987년 이후 30년간은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정치, 경제, 기술, 생태 환경적 변화가 일어났다.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되면서 냉전질서가 해체됐다. 중국 등 대부분의 문명국가가 WTO 체제에 편입되면서 돈, 자본, 상품의 국제적 이동을 가로막던 장벽들이 한층 낮아졌다. 중국의 세계시장 참여와 고속성장으로 인해 세계 경제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한국은 가장 많은 경제적 혜택과 충격을 받았다.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의 대중화로 인해 사람과 사람의 소통, 교류, 관계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국내적으로는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WTO 가입, 1996년 OECD 가입, 1997년 외환위기와 여야 간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뒤이어 몇 년 동안 관치경제 청산(기업, 금융, 노동, 공공의 4대 개혁) 기치 아래 박정희 시대에 형성된 국가(정치)-금융-재벌-노동의 협력, 유착 관계를 거칠게 해체했다.

남북관계도 몇 번의 전기가 있었다. 1994년에 김일성이 급사하고, 2000년에는 6·15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2011년에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3대 세습체제가 들어섰고, 북한의 핵과 로켓 능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됐다.

우리가 공기와 물처럼 누리는 자유, 민주, 인권, 법치, 상식 등은 오랜 과거로부터 내려오던 유산이 전혀 아니다.

대한민국은 조선 체제, 식민통치, 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 유신독재와 군부독재의 유산이 너무나 두터운 나라였다. 야만적 고문과 사건 조작이 횡행하고, 공무원과 공권력은 국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영화 남영동 1985

관존민비, 공직부패,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뿌리 깊은 관행이었다. 사회적으로도 약자 무시, 강자 전횡은 일상이었다. 1987 체제는 이런 악성 유산들을 상당 정도 쓸어냈다.

1987 체제가 공고화되면서 비로소 삼권분립과 법치주의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사법부의 시녀화와 입법부의 통법부(거수기)화도 탈피했다. 행정부 공무원들도 부당한 지시와 명령에 대해서는 법과 규정, 공무원 노조와 행정소송 등을 방패로 삼아 어느 정도는 저항할 수 있게 됐다.

내 손으로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수준(사실상 지방공무원 자치)이지만 어쨌든 지방자치도 시작됐다. 오래전에 헌법에 들어와 있었지만, 허울에 불과했던 기본권 조항도 전향적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노동자, 농민, 빈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정당한 권리, 이익 쟁취 투쟁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기업도, 언론도, 은행도 권력의 눈치를 덜 보게 되었다. 오로지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던 경찰, 검찰 등 공권력도 비로소 민의 눈치를 살피게 됐다. 공작정치도 현저히 약화되고, 공직부패도 줄어들었다. 사회 전체적으로 권력에 비굴하게 굽신거리고,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는 풍토도 많이 퇴조했다.

1987 체제의 지지 엄호 하에 영업(경영)의 자유, 파업(쟁취)의 자유, 표현의 자유, 행복 추구의 자유 등이 만개했다. 각자의 자유와 권리가 확장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하지만 1987 체제는 이 충돌을 제대로 조정, 통합하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경제도 거침없이 성장했다. 정부별 평균 성장률을 보면 노태우 정부 8.36%, 김영삼 정부 7.1%, 김대중 정부 4.38%, 노무현 정부 4.42%였다. 세계 평균 성장률보다 각각 5.43%, 3.1%, 1.23%, -0.17% 높았다. 중국, 인도, 소련동구, 동남아, 아프리카 등 세계가 잠자고 있을 때 먼저 뛰어나간 이점이 컸다고 보아야 한다.

1987 체제의 성과물인 공명선거, 평화적 정권교체,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표현, 학문의 자유, 국민의 기본권, 지방자치제 등은 1987년 이후 최강의 복합권력(행정부, 입법부, 언론, 경제계, 종교계 등)이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표현의 자유가 만개하면서 대통령 조롱하기와 비판하기가 누구나 별 부담 없이 참여하는 국민스포츠처럼 됐다. 1948년부터 근 40년간 한국사회의 핵심 걸림돌로 간주하던 후진국형 독재는 거의 사멸했다.

3.1987 체제의 유전자
1987 체제의 빛과 그늘, 성과와 한계는 그 유전자(핵심 가치) 속에 대부분 내재되어 있다.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저성장, 저출산, 절망과 불신 등으로 집약하는 1987 체제의 그늘은 어떤 환경적 조건의 악화로 인해 생긴 게 아니다. 빛을 만든 가치 자체가 시간이 흐르면서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1987 체제는 국민주권을 명시한 헌법 제1조 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따라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아 권력을 국민의 발아래 두려는 의지가 만들었다.

영화 변호인

1987 체제가 부르짖은 민주주의는 반독재였다. 대통령이나 다수당이 전횡하지 못하게 하고, 장기집권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요컨대 국민주권과 독재(장기집권)방지 의지가 1987 체제의 핵심 가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대통령의 권능을 약화시키고, 국회의 권능을 강화하고, 사법부(법원과 헌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제도를 만들어 냈다.

대통령 5년 단임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삭제, 헌법개정 요건 강화(국회 3분의 2 이상 동의), 대통령의 계엄선포권 견제(국회 재적인원 과반수의 해제 요청 시 해제), 헌법재판소 제도 신설, 주요 공직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제도와 임명동의 요건 강화 등이 그것이다. 또한, 교섭단체끼리 상임위원장도 나눠 가지는 등 국회운영도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87 체제의 또 하나의 유전자는 외세, 권력, 대자본에 억눌려 있던 내 자유(표현, 학문, 사상 등), 권리(노동권, 생존권, 주거권 등)와 내 빼앗긴 몫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권력, 자본, 이념에 억눌려 있던 이익집단의 욕구들이 1987년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화산처럼 폭발하게 만들었다. 힘센 이익집단의 권리, 이익의 상향과 공권력의 연성화와 자본의 양보는 필연이었다.

요컨대 1987 체제는 국민주권의 이름으로 국가권력(대통령, 공무원, 국회 등)과 국민의 관계를 크게 변화시킴으로써 수많은 연쇄적 변화를 만들어 냈다. 국가와 시장 및 사회의 관계도 변화시키고, 중앙과 지방의 관계도 변화시키고, 조직의 위와 아래의 관계도 변화시키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

1987 체제는 민주화, 자유화, 개방화, 지식 정보화의 진전과 기본권 강화에 따라 독재 하의 조화와 균형은 파괴되었지만, 새로운 조화와 균형은 형성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국가, 시장, 사회 곳곳에서 권한과 책임, 권리와 의무, 혜택과 부담, 이익과 위험 등의 균형이 무너졌다. 개인과 기업의 창의와 열정을 북돋우고, 이들이 떠안는 위험과 이들이 갈망하는 안정(안전)을 조화시킨 새로운 발전 체제를 아직도 만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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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socialdesign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