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체제의 적폐···빛과 그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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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87 체제의 짙은 그늘

공화주의
1987 체제는 헌법 1조 1항(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명기된 ‘민주’는 쉽게 이해했지만 ‘공화’는 주목하지도 못했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는 다수(국민)의 지배로, 주권재민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공화’는 원래 법의 지배, 양심과 이성(지혜)의 견제와 인도, 대의제, 소수파 배려, 국민 전체의 이익(지속할 수 있는 자유와 행복), 화이부동, 구동존이 등으로 해석된다. 아무튼 ‘민주’처럼 간단한 가치가 아니다.

주민주권
대한민국은 미국·독일·스위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과 달리, 작은 마을이 모여서, 계약을 통해 지방 정부를 만들고, 지방이 모여서 계약을 통해 (연방)국가를 만든 나라가 아니었다. 따라서 헌법 1조 2항의 국민주권 속에 (지방)주민주권이나 직접민주주의(국민발안, 주민소환 등) 개념이 취약했다. 단지 국가권력(국민주권)을 한시적으로 위임받는 대리인(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공명선거로 선출하는 것이 민주주의로 이해됐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미국, 일본 등 두 발을 땅에 딛고 선 민주주의는 작은 마을과 상공업자(조합)들이 모여, 자신들이 생산할 수 없는 공공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지방 정부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방이 모여서 계약을 통해 (연방)국가를 만들었다. 마을에서, 상공업자 조합에서, 지방정부 광장에서, 학교 교육 현장에서, 자신들의 비용(세금) 부담을 전제로, 민주공화적 숙의를 통해서, 공공서비스 제공자의 과업, 고용(임용), 임금, 직책, 직위 등을 책정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국가권력은 5100만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규제와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기에 주민으로부터 너무나 먼 곳에 있다. 마을과 지방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중앙에 수북이 쌓여있는 자원(예산)을 지역으로 끌어올 힘센 지역 일꾼을 선출하고, 더 나아가 중앙 정부 요직에 우리 지역 사람을 많이 집어넣는 것을 능사로 알 뿐이다.

출처 경남도민일보

마을 자치
1987 체제의 민주주의의 한계는 토크빌이 1830년대 초, 인구 2000~3000명 규모의 미국 타운 민주주의에 대한 통찰 속에 집약돼 있다.

“타운 집회가 자유에 대해 가지는 관계는 초등학교들이 학문에 대해 가지는 관계와 같다. 타운집회에서는 자유가 주민들의 손이 닿는 범위에 들어 있게 되며, 그런 집회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누리는가를 가르쳐준다. 한 민족이 자유로운 정부를 세울 수도 있겠지만, 자치제도가 없이는 자유 정신을 가질 수 없다. 일시적인 열정, 짧은 시간 동안의 관심, 또는 우연한 상황 때문에 외형적인 자주성이 조성될 수도 있겠지만 사회 체제의 내부로 밀려 들어갔던 전제적 경향(despotic tendency)이 조만간 다시 표면으로 나타날 것이다.”
알렉시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121페이지


“타운집회는 행정위원들을 포함한 많은 타운 관리를 뽑는다. 과세사정관은 타운 전체의 세율을 정한다. 징세관은 세금을 거둔다. 보안관은 질서를 유지하고 거리를 감시하고 법률을 집행하도록 임명된다. 타운의 서기는 타운의 투표, 명령 및 인가를 기록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감독관은 구빈법(the pool-laws)을 집행하는 어려운 과업을 수행한다. 교육위원들은 학교 교육과 공공교육을 관장한다. 도로감독관은 타운의 대소도로를 관장하는 주요 관리들의 명단을 작성하기도 한다. 타운에는 모두 19개의 주요 관직이 있다. 모든 주민은 이들 여러 가지 직책을 수행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가난한 시민들이 손해를 보지 않고 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거의 모두 보수를 지불한다.”
알렉시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124페이지

타운 민주주의나 지방자치 없이 민주주의가 도저히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작은 마을이나 학부모회의나 지방 차원에서, 자신의 참여와 부담 하에 법 제도와 기준을 만들고, 공직 보수를 책정하고, 공직 인사(평가)를 하고, 공공서비스를 생산, 소비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민주주의는 거대한 권력자(대통령)를 선출하거나 반대하거나, 아니면 권좌를 쟁취하거나 사수하거나 하는 식으로 축소·변질했다는 얘기다.

조선의 왕도정치 유산
헌법 제1조 2항의 국민주권 사상은 국가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아, 어진 통치를 고대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7 체제를 관통한 민주화는 마을 자치나 지방자치, 혹은 숙의민주주의나 직접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마을에서, 지방정부 광장에서, 학교 교육현장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숙의를 통해서, 자신들의 책임, 부담을 전제로 어떤 결정을 하는 그런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이는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임금인 요순우탕 같은 성왕(통치자)이 선정(善政)을 베풀기를 고대하는 조선의 왕도정치와 오십보백보다. 국민이라는 양떼를 잘 지키고 먹일 선한 목자를 학수고대하는 것과도 비슷하고, 자판기에 돈(투표)을 집어넣고 좋은 물건(정치 리더십)이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더 나은 대한민국에 대한 갈망은, 마을과 학교와 직장과 지방정부 광장을 건너뛰고, 오로지 왕이 사는 궁정 앞(광화문 광장)에서의 항의 시위와 대통령 선거로 모여들었다. 왕에게 추상같이 간언하고, 도부상소도 하고, 때론 권당(성균관 유생들의 수업거부 상소)도 하고, 반정(쿠데타)도 하는 조선적 정치 투쟁과 유사하다.

조선시대 상소

사실 조선의 양반 사족들이 벌인 그 치열한 정치투쟁은 민생이나 부국강병을 둘러싸고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유교적 도덕률을 가지고 서로를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면)‘적폐’ 세력이라면서 모조리 탄핵해야 한다고 싸웠다. 그 결과 동인에서 서인으로, 노론에서 소론으로, 또 노론으로 바뀌어도 민생은 계속 피폐해지고, 나라는 쇠락해 갔다.

그런 점에서 1987 체제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그런대로 정착됐는데,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미흡하다’는 얘기는 틀렸다.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매우 협소하게 이해했다. 그래서 단지 대통령의 전횡을 어느 정도 막아내고, 공명선거를 통해서 평화적 정권교체에만 성공했을 뿐이다.

하지만 국가권력의 본체인 법령, 규제, 예산, 징벌, 징세와 부처, 공기업, 정당 등은 민주공화적 통제 원리에서 너무나 멀다. 권한과 책임,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서 벗어난, 결코 공공적이지 않은 권력도 많다. 그래서 예산은 약탈과 쟁취의 대상이요, 권좌(정부 요직과 공기업 요직 등)는 찬탈의 대상이다.

누가 이기든 국민이 지는 선거제도
1987 체제가 채택한 대통령 선거 제도는 1위 득표만 하면 권력을 독식할 수 있다. 후보가 3명 이상이면 30%대, 10명 이상이면 10%대 지지율로도 100%의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소수파에 의한 다수파의 지배를 허용하는 현행 선거제도는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약체 정부를 만들어낸다.

약체 정부는 관료, 재벌, 직능협회 등 거대 기득권 집단의 이해에 반하는 큰 개혁은 하려야 할 수가 없다. 임기 초반에는 3당 합당, 의원 빼오기, 꿔주기와 검찰, 국세청, 예산, 자리 등을 동원한 협박과 회유의 공작 정치를 구사한다. 임기 후반에는 무리한 국정 운영에 따른 추문과 측근 비리가 터지고, 여당은 붕괴하고, 대통령 정파는 폐족이 된다. 1987년 이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됐다.

1987 체제가 채택한 대통령 선거 제도는 1위 득표만 하면 권력을 독식할 수 있기에, 양강-양당 경쟁 구도를 강제한다. 1차 투표로 확인된 표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온갖 농간이 작용하는 여론조사에 의한 밀실-각서 단일화를 강제한다. 후보 단일화가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선거 과정에서 국정운영 능력 검증도, 비전정책 경쟁도 실종된다. 친일독재니, 친북좌익이니, 적폐세력이니 하면서 상대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주된 선거전략이 된다.

양강-양당의 독점 구도에서는 상대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면 이긴다. 선거전략의 기본은 자신이 되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상대가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인식시키는 것이다. 여당과 야당이 갈린 후에도 마찬가지다. 정부·여당이 실패해야 야당에 기회가 온다. 그러므로 누가 이기든 국민은 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교착체제
1987 체제는 정부·여당의 전횡과 장기집권 방지에 주안점을 두었기에, 주요 정치세력들이 대승적 견지에서 타협 절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치적 교착 체제이기도 하다. 정치세력간 나눠 먹기 체제이자, 정치적 무능을 구조화한 체제이기도 하다. 18대 국회(2012~2016년) 후반부에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은 그 정수다.

새누리당 권성동 전략기획본부장과 신의진 대변인이 2016년 1월 11일 국회 의안과에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1987 체제는 독재 방지를 위해 책임정치, 유능정치를 많이 희생한 체제이자 정치적 책임을 모호하게 만든 체제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은 대통령과 다수당에 가기 마련이라, 역대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임기 말이나 퇴임 후에 불행하게 되었다.

개혁의 무풍지대
1987년 이후 국가의 핵심 기능인 입법, 사법, 예산, 규제, 감독, 공기업, 공직 인사 측면에서는 투명도(개방성)가 약간 개선된 것 말고는 큰 진전이 없었다. 검찰과 법원과 국세청, 감사원 등은 개혁의 무풍지대였다. 국회는 입법 보좌 기능 강화(입법 조사처 등)이 많이 강화됐으나 이들을 활용하는 정치와 정당의 부실로 인해 잠재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공기업은 김대중 정부 시기에 민영화가 약간 진전되었다.

가장 큰 정치, 행정상의 변화는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통해 본격화된 지방자치였다. 자율과 책임(감시와 견제), 권한(예산)과 능력의 균형 개념 없는 자치제는 지자체장을 소황제로 군림하게 만드는 제도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결과적으로 지방자치는 지자체장과 지방공무원 자치처럼 되었다. 이에 더하여 지방선거는 지방 행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양당이 독과점하는 중앙정치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됐다.

노태우의 우려
6·29선언과 1987년 헌법개정을 주도하고 1987 체제의 첫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신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기를 ‘민주화시기’라 규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화의 시기는 욕구분출의 시기이다. 이 거친 욕구분출은 역사의 대세이고 당위이므로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아서, 어설프게 막으려 하다가는 둑이 터지고,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마을을 휩쓸어 생존의 근거를 무너뜨린다. 나는 지금도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라 비싼 대가를 치러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귀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미국 독립선언의 기초자인 토머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는 독재자와 애국자의 피를 마시며 자란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했겠는가.”
노태우 <노태우 회고록> 상권 머리글

원래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은 경제산업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산업이 성장하고 인민의 욕구가 천차만별로 분화되면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노태우의 말대로 민주화가 개인과 집단의 욕구분출을 의미한다면, 아무래도 힘센 개인과 집단이 더 많은 욕구를 분출하고 더 많이 실현하게 되어 있다.

자신의 욕구를 좇아 각개 약진하는 존재들, 즉 재벌, 관료·공무원, 토건회사, 전문직능, 노조 등은 강한 국가나 정치에 의해 제어되든지, 경쟁자나 소비자에 의해 제어되든지, 하다못해 사회적 책임의식(공덕심)에 의해 제어되지 않으면 가치생산생태계를 피폐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안철수가 우려한 한국 IT 생태계의 ‘삼성·LG 동물원’화가 바로 그런 현상이다. (동물원은 그래도 먹여 살려주는데, 한국의 많은 기업생태계는 그냥 잡아먹고, 털어먹은 후 다른 초지로 옮겨가는 약탈적 수렵 행태를 띠곤 한다.)

1987 체제는 정보든, 규제든, 예산이든, 인허가권이든, 단결력이든, 면허증이든 뭐든 하나씩 가진 존재들의 약탈을 완전히 내버려 둔 체제다. 한국 사회를 직업적 소명보다는 직업이 보장해 주는 임금, 연금, 기회, 이권 등을 좇는 가치전도, 본말전도 사회로 만들었다.

권리이익 즉자적 상향확장의 그늘
1987년 이후 한국 노동운동은 수익성과 교섭력이 좋은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이들의 철학과 정서는 “단결하면 힘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익성과 교섭력이 좋은 곳에서 선도적 투쟁을 통해 근로조건을 끌어올리면 주변 지역이나 동종 산업으로 파급되어 나머지 전체의 근로조건을 끌어올린다는, 사익과 공익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허구적 가정을 깔고 있었다.

“단결하면 힘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과거의 약자가 강자가 되고, 부당하게 빼앗기는 자가 빼앗는 자가 되는 일이 무수히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익집단들은 이미 사회적 강자가 되었음에도 권리·이익 상향, 확장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각자가 억눌린 자유와 빼앗긴 권리, 이익을 좇아 힘차게 각개약진만 하면 그것이 공동체 전체의 자유와 행복의 증진으로 연결될 수는 없다는 것은 상식이었지만, 자유·권리·이익의 적정성이나 공공성을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법원, 검찰을 포함한 관료사회의 전관예우 현상도, 전·현직 관료(부처) 커뮤니티가 민간업자들과 결탁해 일종의 ‘마피아’처럼 되는 것도, 대·공기업 조직노동의 일자리가 대물림하고 싶을 정도로 엄청 좋은 일자리가 되어 버린 것도, 국가의 규제(면허증 발급 수, 독점적 권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부 전문직능이 청년 인재의 블랙홀처럼 되어 버린 것도, 국토계획이나 도시계획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것도(그래서 엉뚱한 곳에 지어진 초고층 아파트가 얼마나 많은가), 가계자산의 80%가 부동산인 상황에서 부동산 개발이익의 환수 메커니즘이 지극히 허술한 것도 하나같이, 강력한 이익집단의 각개약진을 정치와 공공이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 혜택과 부담, 기여와 이익의 원리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의 자유, 권리, 권한 확장에 매진해 온 거의 모든 존재는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여 주변 장기들을 기능부전에 빠뜨리는 암세포처럼 됐다. 한국에서는 기업의 욕구분출 자유를 사실상 무제한 허용한 자유시장 시스템이 초래한 파국적인 결과(1930년대 대공황과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는 누구나 알고 있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공공적으로 통제 되지 않는 공공(정치인, 공무원, 공기업 임직원 등), 노조, 협회, 언론 등의 패악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형평·공평·공공의 부재
1987 체제의 핵심 가치인 내(우리) 자유와 권리 쟁취 사상은 기본적으로 그 주체인 ‘내’와 ‘우리’가 협소하다. 그뿐만 아니라 자유에 따르는 책임, 권리에 따르는 의무, 이익에 따르는 위험(기여), 권한에 따르는 실력(책임)의 균형=형평=공평 개념도 부실하다.

요컨대 1987 체제에서 내 몫은 내가 가치 창출에 기여한 만큼이 아니다. 내 권리도 내가 지는 의무·부담만큼이 아니요, 내 권한도 내가 지는 책임과 가진 실력에 상응하는 만큼이 아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크면 클수록,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것이다. 이는 서로 짝이 맞아야 하는 가치를 재는 자와 저울(공평 감각)이 머리나 마음속에 아예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임금 등 근로조건은 쟁취의 대상일 뿐이다. 예산과 권좌(자리)도 마찬가지다.

공무원 연금 개혁에 저항하는 전공노(출처 SBS)

그 결과 지금 한국 사회는 보수 기득권과 진보 기득권, 공공(관료) 기득권과 배타적 업역을 가진 민간이익집단의 기득권들의 담합, 각축 체제이다. 결국, 외부자, 청년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한다. 이 결과가 20세 이상 인구 기준 분위별 소득 점유율 통계일 것이다. 선진국이라면 1000만명이 먹을 파이를 한국에서는 500만명이 먹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기도 힘들고, 새로운 산업과 기업도 태어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새로운 국가 비전의 부재
1987 체제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기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까지 근 10년간 거침없이 성장했다. 노동 소득분배율, 지니계수, 소득의 (5 또는 10) 분위 배율, 상대 빈곤율 등 각종 소득분배 지표도 1996년까지 경향적으로 개선됐다.

사실 1998년을 제외하면 한국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까지도 여전히 꽤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아무튼, 농업국에서 불과 30년 만에 자동차, 반도체 같은 상품을 선진국에 수출하고, 평등한 소득분배구조까지 이뤄낸 한국식 자본주의의 신화(한강의 기적)로 인해, 1960~1980년대 야당과 재야민주화운동 세력이 심취했던 거대담론, 사회주의, 민족경제론, 종속이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독점강화-종속 심화론),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봄눈 녹듯 사라졌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 이루 한국 정치를 주도하기 시작한 86세대 정치인들과 노동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시민운동 출신 정치인들은 나라 없는 설움을 알 길이 없고, 보리고개로 상징되는 헐벗고 굶주리는 설움을 알 길이 없었다. 이들에게 다가온 시대정신은 성장문제가 아니라, 분배문제(빈부 격차 해소)와 사회정의(역사 바로 세우기 등)와 민주주의(반독재 탈권위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농업과 공업의 균형발전에 입각한 자립경제론(민족경제론), 식민지반봉건사회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독점강화-종속 심화론), 사회주의 계획경제론 등 개방적 자유시장 경제와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성장·체제 담론도 있었으나 1980년대 중후반에 밀어닥친 3저 호황 이후 거의 10년을 지속한 고도성장과 소련 동구의 몰락, 중국의 개혁개방, 북한의 낙후성 등이 중첩되면서 봄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진보의 주류에서 비주류로 내려앉았다고나 할까?

그로 인해 관치경제 타파와 경제력집중 억제는 식민지 시기에 태어나, 지독한 궁핍을 겪고, 박정희(1917년생) 치하에서 30~50대를 보낸 전두환(1931년생), 노태우(1932년생), 김영삼(1927년생), 김대중(1924년생) 정부를 관통하는 경제개혁의 핵심 가치였다. 출신과 성향은 달라도 경제개혁의 기조와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특히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개혁의 호기로 보고, 민영화·자유화·시장화(자율책임성 강화)·유연화(인력사업 구조조정 등)·재벌개혁(5+3원칙) 등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노무현 정부는 이 후과(부동산 폭등, 신용카드 사태 등)로 몸살을 앓았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거친 구조조정의 성과, 한계와 중국 경제의 성장이 맞물리면서 불평등, 양극화, 청년 일자리, 저출산 문제 등이 우리 사회의 핵심 현안으로 부상했다.

이후 자유(규제 완화), 시장, 기업, 경쟁, 개방 등을 중시한다고 자부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여전히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자, 진보는 더더욱 양극화 해소-경제민주화(재벌개혁)-복지 강화를 지상과제로 생각하게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성장은 자동으로 된다고 생각했다. 공정, 혁신, 소득주도 등의 수식어를 붙인 성장 담론은 있었지만 새로운 경제성장 담론은 사실상 없었다. 자유화(규제 완화), 시장화, 민영(기업)화, 경쟁 강화, 개방화 등을 더 불편하게 생각하게 됐다.

요컨대 1987 체제는 물질적·문화적 생산력을 지속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적 가치·자원 분배 체계에 대한 확고한 구상, 즉 국가 비전을 가진 정치집단이 주도하여 만든 체제가 아니었다. 이는 정치집단들이 뒤늦게라도 정교한 국가 비전을 정립하지 못함으로써 더욱 악화했다.

1987 체제에서 변화를 주도해 온 민주·노동·민중·시민세력은 보수세력과 마찬가지로 박정희가 만들고, 김대중이 거칠게 수술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발전(성장과 통합) 체제를 재건축수준으로 리모델링 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대체로 자신이 부당하게 빼앗기도 억눌려 온 약자라는 확신을 깔고 상하좌우(공동체 전체)를 살피지 않고 자신의 권리, 이익의 상향 확장으로 일관해 왔다고 보아야 한다.

그 결과, 서로 공공적 가치라고 주장하는 노동권과 자본(경영)권, 공급자 권리와 소비자 권리, 원청의 권리와 하청의 권리, 청장년세대의 권리와 노인세대의 권리, 현세대 권리와 후세대 권리 등이 충돌하고 있다. 그 외에도 검찰권과 피의자 인권, 검찰권과 경찰권, 교권과 학생인권, 의권과 약권, 세입자 권리와 주인의 권리, 표현의 자유와 거짓, 왜곡,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 인권 등이 충돌하고 있다.

선거제도에서는 선거의 공정성과 국민의 알 권리,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고 있다.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제각기 ‘족’(토건족·복지족·보건족·사학족 등)이나 ‘마피아’를 구성해 충돌하고 있다. 이는 정부부처 간의 충돌로도 나타난다.

다음 기사 1987 체제의 적폐···국가주의라는 마수 1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socialdesign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