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수익내는 슈퍼 트레이더, 제자 어떻게 키우나

1회 트레이더가 저지르는 사고 2가지
2회 수십억 수익내는 슈퍼 트레이더, 제자 어떻게 키우나
3회 루저가 ‘이제부터 상승장이야’ 외치면 매도 타이밍

슈퍼 트레이더가 제자를 양성하다.

KTB 알고리즘 사고에 대한 얘기는 조금 뒤로 미뤄두고, 트레이더란 무엇인가에 대해 일화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트레이더가 제자를 양성하는 과정을 흔히 도제식 교육에 비교한다. 도제식 교육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이면이 있다.

영업비밀을 전수함으로써 제자가 막대한 금전적 혜택을 얻을 수 있기에 그만큼 미리 생색을 내고 괴롭히는 사람의 심리를 빼놓을 수 없다. 좁은 곳에서 폐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사제간의 권력의 차이가 클수록, 제자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나 혹은 불이익이 클수록 이런 권력형 괴롭힘은 심하지 않은가. 심지어 학계 교수들도 이렇게 치사를 떤다 하니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면인가 보다.

또 다른 면은 소중한 기술이니만큼 ‘비인부전(사람이 안 된 놈에게는 기술을 전수하지 않겠다)’을 하겠다는 것이다. 인간이 되지 않은 자에게 좋은 기술을 가르쳐봐야 나쁜 곳에 쓰일 것 아니겠는가 하는 우려이다.

이는 금융인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트레이딩룸은 사고에 예민하다 보니 더욱 그렇겠다. 그러나 통상 명분과 변명이 지저분하게 뒤섞여 갈등으로 이어지니 결국 아름다운 사제관계가 완성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트레이딩은 기술 자체가 워낙 일반인이 접하기 힘들고 진입장벽이 높으므로 트레이딩 기술을 익힌 사람들은 후학 양성에 야박하다. 희소성 자체가 트레이더들의 몸값을 높게 유지해주는 법이니, 그 희소성을 굳이 희석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돈을 버는 방법들은 간단했다. 찾기가 어려울 뿐. 그러니 쉽게 떠먹여 주겠는가. 그래서 모든 것은 비밀의 장막 뒤에 있었다.

그럼에도 몇몇 트레이더들은 후학 양성에 아주 열정적이었다.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산업의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이런 트레이더들의 심리는 ‘터틀 트레이딩’이라는 80년대의 전설적인 실험에서도 나타난다.

터틀 원년 멤버가 직접 공개하는 터틀 트레이딩 기법을 담은 ‘터틀의 방식’

리처드 데니스라는 당대 최고의 트레이더가 어느 날 친구 윌리엄 에카르트에게 “나 같은 트레이더는 얼마든지 양성할 수 있어”라고 말하자 친구는 “너는 타고났기 때문에 절대로 복제될 수 없다”며 내기를 제안했고, 그에 따라 일반인을 마구잡이로 뽑아 트레이더로 양성하는 과정을 여러 번 진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실제 교육 시간은 몇 시간에 불과했다고도 한다.

트레이더는 스스로 내면 아주 깊은 곳에서 특별한 질서를 찾아낸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인데 발견되지 않은 질서인지, 내 마음속에만 있는 특별한 무엇인지에 대한 실존적 호기심이 일어나 참을 수가 없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과정을 필자 역시도 여러 번 반복해봤다. 결과는, 트레이딩 사제 관계에서 역대 최고의 제자라 할 수 있는 브루스 코브너의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트레이딩은 “배울 수는 있어도 가르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말이다.

후학 양성에 있어 가장 파격적이었던 사람은 대우증권의 트레이더 J.S다. 나에겐 까마득한 선배라 길거리에서 인사를 드린 정도밖에 연을 나눠본 적은 없지만 트레이더로서도 리더로서도 대단했다. 안정적이고 뛰어난 수익도 대단했지만, 매매기법 자체를 대중 앞에서 동영상 화면으로 전부 공개하며 해설까지 했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상하기 힘들다.

그것도 당시 10년 넘게 손실 없이 수익을 쌓고 있는 대형 증권사 팀장의 매매였다. 그가 없었다면 다른 트레이더들도 감히 후배를 키울 생각을 못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기법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무나 익히기 힘들어 실제로 익힌 후배는 거의 없다는 슬픈 후일담이 있다. 마치 밥 로스처럼 “어때요? 참 쉽죠?”를 반복한 느낌이랄까.

이제는 고인이 된 밥 로스의 “어때요? 참 쉽죠?”

그의 매매를 듣자 하니 한번 진입해서 20~50만 원을 벌거나 0원에 도망치거나를 종일 반복해서 하루평균 1000만원 정도를 버는 단타 매매였다. 매일 벌 뿐만 아니라 일 년에 20~30억원씩 꾸준히 버는 그야말로 돈 찍어내는 공장이었다. 이런 기법을 ‘스캘핑(극초단타 매매)’이라고 하는데 훗날 다시 설명하겠지만, 선물 스캘핑·옵션 스캘핑·주식 스캘핑은 각자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세대별 변화를 계속했다. 그의 매매는 소량의 선물로 스캘핑하는 방법론 중에 가장 안정적인 기법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기록을 세운 트레이더 중에 고졸 출신으로 백 오피스 업무를 보던 어느 누님이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팀장이 ‘매매 한번 해볼래?’라며 기회를 줘 시작한 옵션 스캘핑 매매에서 그날부터 300일 이상 연속으로 수익을 내며 업계 최강자로 군림했다고 한다.

불법이겠지만 누군가 그의 모니터를 몰래 녹화한 것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가 첫 은퇴를 하고 한참 후의 일이다. 종일 또각 또각 마술처럼 돈을 뽑아내는 게 ATM이나 다름없었다. 보고도 그 기법을 다 알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이 영상을 본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참고로 이 기법은 당시에는 통했으나 나중에는 통하지 않는, 시대적인 제약조건을 활용한 방법이었다. 항상 첫 시장을 찾아낸 자에게 부와 명예가 몰리는 법이 아닐까. 그러나 이 영상이 유출된 탓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 기법을 유추한 탓인지, 한 세대의 옵션 스캘퍼가 같은 방법론을 깨닫고 매매해 큰돈을 벌었다.

업계 최강자인 그는 장중에 한 성깔을 부려서 매일 모니터와 마우스를 집어 던지는 취미가 있었는데, 주위에서 방음 유리 벽을 설치해주었다고도 한다. 은퇴 후에도 호쾌하게 트레이딩룸에 놀러 오곤 했는데, 그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전설이기 때문이 아닐까. 성격 아주 좋아 보인다고 주위에 물어보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여장부야’라고만 했다.

여하간에 J.S 선배와 같은 이들의 긍정적 영향을 받아 꽤 많은 트레이더가 소수의 후배라도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 대신 그런 소그룹은 철저하게 배타적이고 폐쇄적이었으며, 상당히 강력한 공동체 의식 내지는 군기로 유지됐다. 일종의 문하생 집단이었다.

차트

문제는 대다수 트레이더가 자신의 것을 제대로 가르치는 방법을 몰랐고, 너무 신기에 가까운 기술들을 끝없이 설명하는 방식, 트레이딩에 훈수를 두는 방식으로 가르치다 보니 제대로 성장한 제자들이 극히 소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스스로 막대한 손익으로 제자들의 비용을 충당하며 5~6명의 제자를 키우던 트레이더들의 조직을 보면, 결국 제자 중 누구도 제대로 올라서지 못하고 마이너스만 누적하다가 팀이 해체되기 일쑤였다. 이것이 제자의 탓인지 스승의 탓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에 눌린다’는 표현 마냥, 뛰어난 트레이더 옆에 있으면 대체로 잘할만한 사람도 주눅이 들어 모든 매매가 엉망이 된다는 점이다. 조금만 잘못해도 혼이 날까 걱정이 되고, 조금 잘하기 시작할 땐 더 욕심을 부리게 된다. 잘해봤자 칭찬을 못 듣기도 쉽고, 아무리 잘한들 팍팍 밀어주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니 결국은 자기 살고자 독립을 한다. 팀워크가 이뤄지지 않으면 의리를 지킬 여유조차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식으로 독립한 어느 선배는 본인의 사수를 떠올리며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가장 훌륭한 사수는 자신의 모든 것을 가르쳐준 후, 자기 기법의 한계로 인해 무너지는 모습까지 몸소 보여주고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사수다”

그의 사수는 엄청난 커리어 끝에 큰 손실을 보며 그 기법의 한계를 가장 식은땀 나는 방법으로 증명했다. 그래서 그 제자는 그 기법의 마지막 약점들을 보완해 그다음 경지로 승화시켰다. 이 말이 얼핏 건방지고 배신적이지만 한편으론 겸양이 담겨 있었던 것은, 자신의 후배에게도 그런 최후를 보여줌으로써 매매가 세대를 거치며 발전하길 기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런 정신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 같다. 특히나 언제 어디서나 완벽한 매매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또, 완벽한 정권도 없고 완벽한 정치도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사 속의 모든 이들이 가져야 하는 겸양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이성계가 이방원을 께름칙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트레이더는 후배를 다소 께름칙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오만을 돌아보면, 후배의 오만 속에 자신이 얼마나 쉽게 잊힐 존재인지 눈에 선할 것이다. 잘 키운 자식한테 잡아먹힐 어느 독거미의 마음이 아닐까.

이렇게 한 세대의 트레이더들이 정규직으로 시작해, 철저히 베일에 싸인 방식으로 돈을 벌고, 동시에 성과급율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여가며 업계에서 트레이더라는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러나 한국 트레이딩룸의 비극은 차세대 트레이더들의 부재에 있었다. 비인부전이, 사람이 없어 전수할 수 없는 시대로 연결된 것은 아닐까.

역시 돈이 오가며 눈물과 고성이 흩뿌려지는 트레이딩룸이 가장 흥미진진하겠지만, 드라마를 극대화하기 위해(?) 배경설명으로 먼저 밑밥을 깔아둔다.

천영록

핀테크 스타트업 (주)두물머리를 창업한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트레이더 출신이라 투자나 금융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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