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브리티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자기기만

종종 할리우드 셀러브리티의 페미니즘 지지 선언이나 페미니스트 선언이 화제가 되곤 한다. 그러나 최근 유명인사들 전부가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한 것도 아니다. 내친김에 그 사례들을 길게 열거해 보자.

<택시>, <퓨리아>,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등에서 열연한 마리옹 꼬띠아르는 “평등은 가령 영화 10편 중 5편은 남자, 5편은 여자가 연출하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행위는 분열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라고 발언했다.

겉보기의 평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즘과 선을 그은 것이다.

프랑스 여배우 마리옹 꼬띠아르(출처 위키피디아)

메릴 스트립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 관련 인터뷰에서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저는 휴머니스트입니다”라고 대답하며 페미니즘이라는 자기규정을 완곡하게 거부한 바 있다.

그가 페미니즘을 거부했다는 논란이 되자 메릴 스트립은 다른 인터뷰에서 재차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아세요? 저는 어머니입니다. 저는 한 아들의 어머니이고 한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저는 남자들을 사랑합니다. 페미니즘이 역사적으로 의미해왔던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이 젊은 여자들에게 의미하게 된 것, 바로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페미니즘은 그들을 그들이 삶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소외시킨다고 느끼도록 만듭니다. 그게 저를 어지럽히지요”

출처 <BBC> Suffragette’s Meryl Streep ‘paid less than male co-stars’. 2015년 10월 08일. 다소 까다로운 문장이었던 이 발언의 번역에 도움을 준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 저자 이성민씨에게 감사드린다.

최근의 페미니즘 조류를 둘러싼 논의를 완곡하게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스트립은 “나를 페미니즘에 대한 자기 정체화(self-identification)가 아니라 페미니즘적 행동으로 평가해 달라”고 부탁했다.

메릴 스트립

이념에 대한 자기규정이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은 노배우로서의 연륜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또한 <스노든> 등에 출연한 쉐일린 우들리는 한 인터뷰에서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전 남자를 사랑하니까요. 여성이 권력을 가지고 남자에게서 힘을 뺏는다는 생각은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밸런스가 필요하니까요.”

출처 <TIME> Shailene Woodley on Why She’s Not a Feminist. 2014년 05월 05일. 

한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와 <마리 앙투아네트>에 출연했던 유명 배우 커스틴 던스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성성’이 조금 폄하되어온 느낌이 있습니다. 우린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야죠. 하지만 집에서 돌보고, 어머니가 되고, 요리하는 것, 이건 제 어머니가 창조한 가치 있는 것들입니다”

“때로 당신은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를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남자가 납자답고, 여자가 여자다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이죠”

커스틴 던스트

이 같은 발언에 대해서 커스틴 던스트가 ‘전통적인 성 역할을 옹호한다’는 여성계의 비난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커스틴 던스트는 젠더 이론가가 아니기 때문에 젠더 문제에 대해 멍청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출처 <US Weekly> Kirsten Dunst Offends With Traditional Gender Role Comments in Harper’s Bazaar UK: “You Need a Man to Be a Man and a Woman to Be a Woman”. 2014년 04월 08일.

앞서 언급한 페미니즘의 일부 조류를 비판하거나 페미니즘과 거리 두기를 한 여배우들의 발언은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심지어 던스트의 경우처럼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이 아님에도 페미니즘 이슈화가 되어서 논란이 된 배우도 있었다.

또한,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에 비중 있는 역으로 출연한 메릴 스트립에 대해서는 ‘페미니스트냐 아니냐, 정체를 분명히 하라’는 식의 항의가 쏟아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출처 <Celebitchy> Meryl Streep makes another nonsense statement about feminism: what the what?. 2015년 10월 09일.

그가 평소 영화계 내 성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개념 배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일종의 배신감이었다. 그러나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다.

애초에 평소 여성의 임금 차별에 대해 항의했다고 해서 한 배우가 본인도 생각지 못한 사이에 어느 순간 급진적 페미니스트 투사가 되었다가, 또 어느 순간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말했다는 이유로 페미니즘의 배신자로 규정되는 것 자체가 우스운 현상일 뿐이다.

게다가 개별 배우가 어떤 사상을 갖느냐의 문제를 떠나, 남녀 간의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고 차별을 개선하라는 목소리를 냈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노동자의 노동권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사회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인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노동권 주장하면 다 마르크스주의자?

사실 사회주의나 마르크스주의가 단순히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 ‘이상’을 말하는 사상이듯이, 페미니즘 역시 단지 성 평등을 추구한다는 것 ‘이상’을 말하는 사상이라는 것을 정직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직함을 발휘해야 할 대목에서 대부분 페미니스트는 자기기만에 빠져든다. ‘페미니즘은 성 평등을 추구하는 사상이므로, 우리가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라는 레토릭이 페미니스트의 단골 메뉴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도 자기 자신도 믿지 않는 거짓말이다. 성 평등을 추구하는 방법론에서 페미니즘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투쟁과 표현의 수단을 종종 선택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차별에 반대하는 여배우나 셀러브리티 중에서도 종종 페미니즘이라는 규정에 완곡하게 거리를 두는 사람이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결국, 배우들의 발언 하나하나에 페미니즘이냐 안티페미니즘이냐는 사상검증 소동이 벌어진 이러한 일련의 해프닝들은 상당수 페미니스트 스스로가 부지불식간에 얼마나 허구적인 진영논리에 중독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페미니스트의 본심(?)

이것은 자신도 정확히 그 외연을 정의할 수조차 없는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한 채, 그것을 자의적으로 편을 가르는 잣대로 휘둘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것은 전체주의적인 여론형성을 강요하는 것에 동참해 놓고서도 스스로 문제의식조차 못 느끼는 지적 불감증을 불러들였다.

사실 배우 한명 한명의 발언에 페미니스트이든 안티페미니스트이든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영화계의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배우조차 페미니즘이라는 자기선언 내지는 자기규정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셀러브리티의 페미니즘 선언에 환호성을 지르곤 했던 페미니스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페미니즘은 여전히 논란이 많은 주제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페미니즘은 언급하기 꺼려지는 논란이 많은 주제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앞서 본 것처럼 개개인의 솔직한 발언을 검열하고 사상검증을 하면서 그 무수한 논란을 만들어내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광신적 태도’가 잘 설명해준다.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스트라는 선언이 낙인을 불러들인다고 불평하곤 하지만, 바로 그만큼 페미니즘의 구호 자체가 다수의 남성과 여성에게 낙인을 가해왔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박가분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단행본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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