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체제의 적폐···국가주의라는 마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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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기단과 3대 가치
하나의 국가체제를 논하려면 기본적으로 가치와 자원을 할당하는 국가·시장·사회(공동체)라는 3개 거대 시스템을 살펴야 한다. 이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국가의 역할과 위상이 커지고 높아지면, 시장 및 사회의 역할과 위상은 작아지고, 낮아진다.

아무튼, 국가·시장·사회는 자원(에너지·식량 등), 풍토와 외세(지정학), 해외시장(지경학)과 상호작용한다. 또한, 인간은 의식이 있는 존재이기에 종교와 이념과도 긴밀하게 상호 작용한다. 제도와 종교·이념은 닭과 달걀 같은 관계다.

한반도 상공에는 4대 기단(시베리아기단, 오호츠크해기단, 양쯔강기단, 북태평양기단)이 존재하면서 날씨를 결정한다면, 한민족의 혈관에는 조선 유교 체제와 풍토, 지리(지정학과 지경학)에서 연유한 3대 가치(국가주의, 가족주의, 위계·서열주의)가 흐르면서 사고와 행동을 규율한다. 정전 체제도, 박정희 체제도, 1987 체제도 이들과 결합할 수밖에 없다.

국가주의
국가주의는 한마디로 국가권력의 힘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사상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국가주의는 국가를 가장 우월적인 조직체로 인정하고 국가권력에 사회생활의 전 영역에 걸친 광범위한 통제력을 부여하는 사상이다.

국가주의는 국가권력의 소극적 관여·개입이 아니라 적극적 관여·개입을 요구한다. 멀리는 플라톤의 철인정치, 조선의 왕도정치, 가까이는 히틀러의 나치즘(국가사회주의), 박정희의 유신독재 등이 그 전형이다.

아돌프 히틀러

지금 위대한 어버이 수령-자애로운 어머니 당-사회주의 강성대국 운운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전형적으로 체현하고 있다. 국가주의는 대개 전체주의, 엘리트주의, 정치(권력) 만능주의를 동반한다. 관료주의는 이들 뒤에 붙어 오게 되어 있다.

국가주의와 국가의 역할, 위상은 서로서로 지지, 옹호하는 관계다. 닭과 달걀 같은 관계다. 분명한 것은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국가의 역할과 위상이 크고도 높다. 국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생활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깊숙이 관여하고 개입한다. 아니 국가가 관요·개입해 달라고 요구한다.

역사적으로 국가주의는 외침이나 자연재앙 등 정치공동체의 위기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시에 시장, 사회(공동체), 지방, 개인의 자위, 자치, 자율 조정·제어 능력에 대한 불신, 폄하와 국가권력(정치, 관료, 당)의 지성, 덕성이나 조정, 통제 능력에 대한 과신, 과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플라톤이나 조선 사대부들의 순진한 이상주의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플라톤

어쨌든 미국, 스위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 같으면 개인, 사회, 시장, 지방(지역)이 알아서 할 일을 한국에서는 국가가 깊숙이 관여, 개입, 조정, 통제한다. 이는 단순히 권력의 요구만이 아니다. 국민도, 시장, 사회, 지방도 이를 요구한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74번이나 언급된 ‘국가’는 거의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를 의미한다. 따라서 관여, 개입, 조정, 통제의 주체는 대통령, 국회의원과 고시·공시로 선발된 중앙정부의 직업 관료다. 조선시대에는 왕과 유교적 소양이 높은 신료였다.

국가주의는 왕도정치와 양천차별, 적서차별, 사농공상의 위계서열을 내면화한 조선유교 사상과도 친화성이 높다. 인간의 물질적 욕망과 자유로운 선택에 바탕을 둔 시장과 기업을 대체로 불온하고 불편하게 바라본다. 조선은 아예 화폐와 상공업조차 천시, 억압했다.

조선시대

국가주의는 국가(관료)는 공익을, 시장(민간)은 사익을 추구한다는 낡은 좌파이념(사회주의, 반신자유주의, 큰 정부)과도 친화성이 높다. 자본은 돈(효율)만 좇고, 규제를 풀어주면 마구 사람이나 자르고, 갑질을 일삼는 등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현대 한국의 국가주의 혹은 그와 근친 간인 반신자유주의 사상은 반기업, 반재벌, 반시장 정서와 친화성이 높다.

가족주의
가족주의는 한마디로 “피를 나눈 우리 식구끼리 잘 먹고 잘살자 주의”다. 공동체(연대) 의식을 느끼는 범위가 ‘우리 식구’로 협소하다. ‘우리 식구’는 ‘우리 회사’, ‘우리 부서’, ‘우리 고향’, ‘우리 조합원’ 등으로 변형, 진화해 왔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외부자(남의 식구)와 내부자(우리 식구)를 가르는 경계가 높다. 가족주의는 파편화, 원자화된 사회(공동체)의 결과이자 원인으로, 대체로 각자도생주의로 나아간다. 이는 한국 특유의 기업별 노조와 관료마피아를 만들어냈다.

현대판 차별. 노조도 계급이 있다(?)

위계·서열주의
위계·서열주의는 개인의 가치(실력)가 아니라, 소속 집단에 따라 권리와 의무, 부와 권력(권한)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상이다. 한마디로 개인의 실력, 기능이 아니라 개인의 소속이나 품계가 먼저인 계급주의 사상이다.

위계와 서열은 어떤 중심이나 정점을 전제로 한다. 또한, 실력이나 기능에 따른, (위와 아래의) 자리바꿈이 쉽지 않은 구조를 전제로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열, 위계, 계급에 따른 배제, 차별이 심한 사회 혹은 우대와 특권이 과도한 사회에서는 좋은 자리나 위계로 올라가기 위해 결사적으로 노력한다. 이런 노력을 요즘 말로 표현하면 ‘지대추구’ 내지 ‘소속 프리미엄 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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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서열주의는 뿌리가 깊다. 상업사회=계약 사회적 성격이 강했던 그리스, 유대, 로마, 유럽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계약 관계였다. 인간과 신 및 대리인(예수, 마호메트 등)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한 관계였다.

하지만 자급자족의 농업 사회였던 조선은 조화와 안정을 위해서 조상신이나 왕 앞에서 다양한 위계(직계, 방계, 외가 등)와 서열(장자, 차자 등)이 필요했다. 엄청나게 발달한 존댓말(경어)과 가족 호칭이 그 증거다. 한마디로 한반도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의 중심에는 신과 계약이 아니라, 왕 및 가족과 위계·서열이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명하복이 요구되는 군대조직은 위계·서열주의가 강고하다. 하지만 실력과 기능에 따라 위치나 자리바꿈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평등사회, 상업사회는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에 개간한 계단식 논을 연상케 하는 위계·서열이 유지되는 것은, 오랜 역사, 문화와 더불어 관치영역이 넓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시장이나 사회에 거래당사간 현격한 힘(선택권과 거부권)의 불균형에 따른 먹이사슬 구조다.

위계·서열주의는 가족주의와 결합해 직장이 곧 계급이 되고, 고용형태(정규직), 근속연수, 면허증 등도 계급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 낸다. 국가주의와 위계·서열주의가 결합하면 공공은 양반 귀족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가족주의가 추가되면 OB와 YB가 상부상조하면서 잘 먹고 잘살자는 이념으로 뭉친 관피아를 길러낸다.

또 하나의 계급

위계·서열주의는 좋은 자리 차지하기, 곧 지대추구를 당연시한다. 교육(시험)경쟁도, 취업 경쟁도 본질적으로 좋은 자리 차지하기 경쟁으로 변질한다. 사람들의 로망도 부잣집(재벌·대기업)이나 권세가(공공부문) 식구가 되는 것이다.

1987 체제의 한계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비교할 국가가 없는 한국의 초강력 국가주의는 기본적으로 조선유교 체제와 식민통치, 한국전쟁과 정전체제의 위기의식, 국가주도발전체제의 빛나는 성과와 유산, 독재에 대한 피해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87 체제 역시 국가주의를 거의 떨쳐내지 못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깊은 뿌리 외에도 1987 체제의 주도세력인 민주, 진보, 노동세력의 이념 자체가 반신자유주의와 20세기 초중반의 국가주의적 사민주의와 민주화=반독재라는 등식에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과 기업의 자유와 탐욕을 온갖 악덕(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저성장, 저출산 등)의 원흉으로 간주하고, 이를 국가의 더 촘촘하고 강력한 규제, 처벌과 공공부문 확대 등으로 해결하려고 해왔다. 여전히 국가주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국민의 골수에서 피부 솜털까지 관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컨대 초과근로 수당을 못 받는 근로자가 많다고 하면, 근로감독관을 10배쯤 늘려 국가 감시, 단속력을 강화해서 해결하려고 한다.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또 연대해서 지키고, 국가는 이를 도와주는 존재라는 생각 자체가 취약하다. 대통령 후보도, 그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국민도 기본 철학은 유사하다.

비정규직 문제와 저임금 문제도 기업 탐욕의 소산(악)으로 규정하고, 국가규제(비정규직 기간 제한, 사유 제한, 최저임금 상향 등)와 형벌을 통해서 해결하려 한다. 고용형태나 임금 수준이 다양한 위험과 이익, 생존과 번영 방략을 타산한 기업의 불가피한 선택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대부분의 문명국은 교육에 관한 한 개인(학생·학부모)의 자유로운 선택을 중시하며, 교육 공급자인 학교 자치와 비용 부담자이자 교육 수요자인 지방 자치를 존중한다. 자치는 자조에 기초한 연대이자, 자율에 따른 책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모든 것을 국가규제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 사교육이나 선행교육 문제는 과외 금지법과 선행학습금지법을 통해, 과도한 공부는 주말 사교육(학원교육) 금지법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학생들의 역사관이나 가치관이 문제라 생각되면, 국정역사교과서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 교육부 관료의 횡포가 문제라 생각되면, 이를 학교자치와 지방자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중앙통제 기관인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서 해결하려 한다.

박근혜의 ‘자식된 도리’···국정교과서(사진=뉴스타파)

중앙통제 기관에서 참여하는 사람을 좀 바꾸고, 결정 방식을 독임제에서 합의제로 좀 바꾸고, 권한을 좀 나누는 식이다.

한국 전역의 도시의 공동화, 노후화 문제도 국가의 ‘도시재생 예산과 정책’을 통해서 해결하려 한다. 해당 지역 주민과 도시(지자체)의 자조와 자치는 뒷전이다.

당연히 이 예산이 생겨난다면, 이를 먼저 많이 따오기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은 치열한 로비전을 벌일 것이다. 아마 도시재생의 신이 예산 할당의 우선순위와 방법을 정한다고 해도, 불공정과 비효율 시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 대통령 선거가 전쟁처럼 되는 이유는 뻔하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규제, 형벌, 예산, 정책, 인사 등에 목을 매는 사람, 불만이 가득 찬 사람, 큰 기대를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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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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