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법 졸속 개정안, 폐기·재논의해야

[논평] 주민번호 임의번호 도입도 없고, 번호변경 요건 까다롭다

“주민번호 끝자리수 몇 가지만 바꾼다는 정부 방침은 얼굴 빼고 모자이트 처리해주겠다는 꼴”

지난해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번호의 변경을 보장하지 않는 현행 주민등록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프라이버시는 녹색’을 내세워온 녹색당은 이날 해당 판결을 환영하며 주민등록번호제도 전반의 개혁을 촉구했었다.

그러나 국회 안전행정위원회가 지난 11일 전체회의에서 의결한 개정안은 이와 같은 사항을 거의 무시하고 있다.

우리가 당시 요구했던 내용은 “변경에 까다로운 절차와 요건을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개인정보가 없는 숫자를 임의로 부여”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임의번호 도입을 담지 않았다. 또 주민번호변경 허용 대상을 주민번호 유출로 생명·신체상의 위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재산상 중대한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성폭력·성매매와 가정폭력 피해자 등으로 제한했다.

그동안 일어난 유출 사건과 유출량을 감안하면 모든 국민이 주민번호 유출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에 노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행 주민번호는 생년월일, 성별, 지역 등 개인정보가 드러난다. 주민번호를 임의번호식으로 바꿔야 한다

정부 방침대로 끝자리수 몇 가지만 바꾸는 것이 개인정보보호에 과연 얼마나 유효할까. 모자이크 처리를 해준다고 해놓고 얼굴을 뺀 나머지 부분만 처리해주는 꼴이다.

임의번호 도입이 당장에 어렵다면 주민번호 변경을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국가는 아예 10년주기로 주민번호를 일괄 갱신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연간 15만 명 이상이 이름을 바꾸고 있으며 생년월일 등 주민번호를 정정하는 인원도 연간 2만 여명인데 주민번호의 변경에 이런저런 단서를 붙여가며 유독 까다로운 제약을 가할 이유가 없다.

국회 안행위가 의결한 개정안은 프라이버시 보호의 책무를 저버린 처사임은 물론 헌법재판소 판결 취지를 극소화한 것이다.

그간 널리 공론화되지도 않은 문제를 두고 제19대 국회 막바지에 졸속 심사가 이뤄졌다.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부터 본회의 의결까지의 절차에서도 시간상 민주적 토론은 매우 어렵다.

녹색당은 제19대 국회의 폐회와 함께 이 안을 자동폐기 처리하고, 제20대 국회가 개회한 뒤 다시 본격적으로 주민등록법 개정을 논의할 것을 국회에 촉구한다.

김승한 기자

김승한 기자

의학전문기자. 전 대학병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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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