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가치를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다가오고 조기 대선국면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야권의 대선후보들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은 여전히 부동의 대선주자 1위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야권후보들이 자신만의 선명성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반해서 반기문이 사퇴한 후 보수진영에서는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나는 대선후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TV

한편 이와 더불어 탄핵국면 이후 야권에서 이재명처럼 진보적 선명성을 내세우는 후보들보다 상대적으로 안정감을 갖는 문재인에게 지속적으로 지지가 쏠리는 현상 그리고 최근 안희정 후보가 빠른 지지율 증가세를 보이는 현상은 생각볼만한 여지가 있다.

확실히 진보좌파성향의 야권 지지자들에게 문재인은 ‘맹탕’에 가깝다. 그다지 선명하지 못하다는 불만이다. 그럼에도 문재인에게 지속적으로 다수의 지지가 쏠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보수진영에 실망한 다수의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내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안희정 지사의 지지율 증가도 중도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의 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보수진영의 후보는 어느 누구도 중도층뿐만 아니라 중도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박근혜의 국정농단 사건과 이론 인해 불거진 탄핵국면은 보수진영의 ‘정치적 위기’일 뿐만 아니라 ‘보수적 가치’ 그 자체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한국인은 그동안 보수적 가치에 입각해 보수정당과 보수 후보에게 표를 던져주었다. 하지만 이번의 사건을 계기로 소위 보수진영이 건전한 보수적 가치를 담지한다는 신뢰 자체가 완전히 무너졌다. 이것이 지금 유래 없는 야권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쏠림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전에 윤여준이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현 사태는 ‘보수의 몰락’이 아니라 ‘수구의 몰락’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그러나 수구와 변별되는 보수의 가치를 회복하기에는 지금 보수진영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이인제·김문수·남경필 등 여권 대선잠룡들이 보수의 가치회복을 내세우며 대선출마의 포부를 밝혔지만 이들이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5년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보수의 가치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담아낼 정책과 의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시간조차 부족할지도 모른다.

윤여준은 보수의 핵심 가치를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고 정리한 바 있다. 이미 오랫동안 이야기된 원칙론이므로 이것에 의견을 달리할 보수파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체로는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이므로 이것을 조금 더 세분화해서 볼 필요가 있다.

보수적 가치는 결국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1. 경제적 차원에서는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2. 정치적 차원에서는 공정한 법적·제도적 절차로 인한 갈등 최소화 3. 사회적 차원에서는 국민통합. 그 동안의 보수세력이 보수가 아닌 수구에 가까웠다는 진단은 그 동안 보수세력이 앞서 말한 보수적 가치에 오히려 역행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를 조금 더 세분화해서 살펴보자.

먼저 보수는 재벌과 수출중심의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이것이 마치 자연스러운 시장경제 질서인 양 여론을 호도하며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왜곡해왔다. 물론 보수는 진보와 달리 분배상에서의 결과적인 평등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현행의 불평등이 공정한 경쟁의 결과라고 경제주체들이 납득 가능한 수준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희박하다.

국가에 의한 2차적 소득분배는 둘째 치더라도 애초에 1차적 소득분배가 이뤄지는 시장질서 자체가 왜곡되고 불공정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누적된 경제적 불만이다.

앞으로의 보수는 수사적이고 이념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 동안 진행된 경제력의 집중을 해소하고 내수시장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방안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정치적 차원에서 보수는 그동안 법치주의(=법에 의거한 정치적 지배)를 내세웠지만 이번의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오히려 보수세력이 행정권력의 사유화와 사법권력의 사유화를 자행했다는 의심을 샀다.

물론 보수는 진보와 달리 사회적 갈등을 전면적으로 노출시키고 거기서 분출되는 적대적 에너지를 동원하는 전략을 지지할 필요는 없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보수는 사회적 갈등을 순화시키기 위한 각종 제도적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법치주의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 전에 현행의 법질서와 법제도가 사회적 갈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누적되어왔고 이것이 오히려 법치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현실인식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보수야말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솔선해서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선거연령 인하와 비례대표제 강화 등이 그 사례이다. 보수는 사회적 ‘유혈혁명’을 방지하기 위해 오히려 진보보다 더 선제적인 제안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보수는 특정계층이나 계급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해를 도모한다고 자처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보수진영이 끊임없이 이념대립, 계층대립, 지역대립을 양산했다.

특히 자신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반대자들을 법질서의 파괴자, 종북 등 ‘비국민’으로 몰아가는 태도가 고질적이었다. 보수는 진보와 달리 체제외부의 존재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보수는 적어도 체제 내부의 국민에 대해서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

특히 보수는 앞으로 국민통합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를 재정립하는 데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특히 지금 시대에 ‘반공주의’와 ‘성장지상주의’ 그리고 ‘지역주의’는 보수의 가치를 오히려 저해한다는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산적한 과제들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보수에게는 끈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선 전 ‘개헌’을 논하는 보수인사들은 과연 지금 현 상황이 보수세력에게 안겨주는 도전과 위기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개헌은 필요하고 보수진영이 개헌논의를 주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개헌에 관해 이런 저런 정치적 유불리와 조건을 걸어두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단기간에 한다는 것은 애초에 개헌을 정략적인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보수가 수구로 전락하고 도리어 보수의 가치를 왜곡했한 것은 한국근현대사의 비극이지만 동시에 진보진영에게도 비극이다.

왜냐하면 보수가 분단과 개발독재 이후 1. 시장경제를 빙자한 성장지상주의와 독점 2. 법치주의를 빙자한 권위주의와 권력 사유화 3. 국민통합을 빙자한 반공이데올로기에 안주했기 때문에, 역으로 진보진영에서 보수에서 방기된 보수적 의제를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진영에서 보수에서 방기된 의제를 떠맡아야 했기 때문에 이것은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이념적 혼란과 분열을 거듭하게 되었다.

가령 진보의 본령과 무관한 극단적 민족주의가 진보진영에서 출몰하며 진보 내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사실 보수의 책임방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보수는 이것을 진보를 비난하는 빌미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방기의 결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 조윤호 기자의 책 제목처럼 대한민국은 ‘보수의 나라’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국은 여전히 분단국가로서 다른 나라보다 더 높은 안보 리스크를 지니며 상대적으로 높은 대외의존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에서는 당분간 보수가 수적 다수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에 안주하는 한 보수는 언제나 수구일 수밖에 없다. 한국이 보수의 나라라는 것은 달리 말해 한국사회 변화의 이니셔티브는 진보가 아닌 보수가 쥐고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보수세력은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박가분
경제학 박사. 프리랜서 작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2019, 공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paxwon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