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와 소득주도 성장론

문재인 정부와 소득주도 성장론

문재인 정부 출범을 맞아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론’ 혹은 ‘임금주도 성장론’이라는 말이 간간이 언론에 나오곤 한다. 대선 이전에도 문재인 캠프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이라든지 ‘임금주도 성장론’과 같은 말들이 자주 나왔다.

소득(임금)주도 성장론이란 쉽게 말해서 보통 서민들의 소득을 늘리거나 노동자의 임금을 늘리는 것이 안정적인 경제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는 논의이다.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한 배후의 논리는 언론 지면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을 경제학적 근거가 없는 일종의 선동으로 간단히 치부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득주도 성장론’ 배후의 이론적 논의에 대해서 조금 더 소상히 다뤄보고자 한다.

2014년 11월 12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 2차 토론회

포스트 케인즈주의 학파

우선 ‘소득주도 성장론’이란 경제학설 중에서 이른바 포스트 케인즈주의 학파의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 케인즈주의란 무엇일까? 이들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까?

사실 이들은 ‘유효수요 관리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케인즈의 사상을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마르크스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일부 케인즈주의와 포스트 케인즈주의(PK)는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경제가 창출한 부가가치를 노동자의 임금과 자본가의 이윤으로 분할하는 ‘갈등적’ 시스템으로 자본주의를 표상한다. 노동과 자본은 자신들이 창출한 소득의 분배를 둘러싸고 경합하는 관계이다.

마르크스

한편 주류경제학에서는 그러한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주류경제학은 노동자의 임금이 노동의 한계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말한다. 노동의 한계생산성이란 노동 한 단위가 투입될 때 가져오는 생산량의 증가이다. 주류경제학 모형에서 실질임금은 시장 법칙에 의해서 자동으로 그 한계생산성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PK는 실질임금이 자본-노동 간의 협상에서 서로가 갖는 사회적 힘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임금은 절대로 노동이 발휘하는 생산성에 대한 온전한 보상이 아니다. 나아가 노동시장은 다른 시장과 달리 각종 고용 관행, 제도, 규칙 등에 의한 틀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어떤 정책을 투입하느냐에 따라 노동소득의 분배 양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 주류경제학의 이론과 달리, PK는 자본 친화적 소득분배가 우세한 경제에서는 임금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라부아 스톡해머, 2012).

실제로 많은 나라의 국민경제 통계에서 실질임금의 상승률이 노동생산성의 상승률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경우에 노동소득분배율은 악화된다.

주요 선진국들의 노동생산성(파란색)과 실질임금(빨간색) 비교(출처 ILO)

칼레츠키의 장기유효수요 이론

소득주도 성장론의 배후에 있는 PK 이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칼레츠키(Kalecki)의 유효수요이론일 것이다. 칼레츠키는 폴란드 태생의 경제학자로서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과 마르크스의 이론을 결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테면 칼레츠키는 마르크스처럼 자본주의 경제를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으로 구성된 계급사회로 생각하는 동시에, 자본주의 경제를 수요 주도적(demand led) 경제로 모형화했다는 점에서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을 따른다.

유효수요이론이란 우선 (정부 부문을 배제한)국민경제가 그 정상적 상태에서 행하는 지출(E)이 소비(C)와 투자(I)로 이뤄지며, 그 지출(E)의 증가는 그에 상응하는 고용(L)과 생산(Q) 및 소득(Y)을 증가를 가져온다는 이론이다.

사진=EBS 다큐 프라임

이것은 보통 경제의 전반적인 생산성이 그 경제의 생산 규모와 지출의 규모를 결정한다는 주류이론과 다르다. 주류이론과 달리 소비와 투자지출이 현재의 생산수준과 소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한편 자본주의 경제에서 보통의 경우 소득과 지출의 균형이 달성되는데 총지출과 총소득이 일치하는 상태(E=Y) 또는 사실상 같은 의미이지만 자발적 투자와 자발적 저축이 일치하는 상태(I=S)로 정의된다(박만섭, <경제학 더 넓은 지평을 향하여>).

[총소득]Y = C+I = E[총지출]

칼레츠키의 이론에서 핵심적인 것은 저축과 투자의 인과관계는 주류의 이론과 달리 저축에서 투자가 아닌 투자에서 저축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후기 케인즈의 이론대로 투자는 사전적 저축이 필요하지 않으며 투자의 재원은 주로 은행신용을 통해 조달된다. 이처럼 현대의 칼레츠키 유효수요이론은 기업의 수요에 맞춰 은행이 신용창조를 통해 화폐를 공급한다는 내생화폐론을 전제한다.

칼레츠키의 유효수요이론은 일반적인 케인즈학파와 주류경제학의 유효수요이론과도 사뭇 다르다. 주류경제학은 단기의 유효수요가 통화 당국의 화폐공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생화폐론을 견지하는 PK 학자들은 이 같은 통념을 거부한다.

화폐공급은 통화 당국의 재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화폐 수요에 의해 결정되고 그 수요를 만족하게 하는 주된 수단은 시중은행과 금융기관의 신용창조(대출)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류경제학은 민간소비와 투자를 통한 유효수요의 진작이 일시적으로만 생산과 고용을 증가시킨다고 보지만 칼레츠키는 유효수요가 장기적으로도 생산과 고용을 견인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장기 유효수요이론을 따르면 임금의 증가는 주류이론과 정반대로 경제의 성장과 고용의 증가를 불러온다. 이 경우 노동 수요곡선은 교과서와 정반대로 임금에 대해서 우하향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향한다. 즉 임금이 상승할수록 오히려 노동수요는 증가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임금의 상승은 소비성향이 비교적 큰 노동자 사이에서 소비의 상승을 불러오고 그것이 경제 전체의 수요 상승을 불러오며 그에 따른 고용의 상승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보통의 경우 자본주의 경제의 자본가동률이 100%에 미달하기 때문이다.

즉 기업이 완전가동률 미만에 있을 때 수요상승에 맞춰 고용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자본설비를 풀가동하는 상태였다면 추가고용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한편 임금의 상승은 기업에게 이윤압박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칼레츠키 학파는 이는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개별기업에게 임금상승은 당장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거시적으로 소비 수요의 상승으로 인한 판매증가로 상쇄되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에서 창출된 부가가치 중 임금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몫이 기업의 이윤으로 돌아가는데 이 임금이 전부 소비로 지출된다고 가정하면 결국 이윤의 원천은 기업의 투자와 자본가들의 소비가 된다. 자본가와 기업의 지출이 결국 자신의 이윤의 크기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임금의 증가는 이윤의 증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니콜라스 칼도어는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노동자는 번 만큼 쓰지만, 자본가는 쓰는 만큼 번다.”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기업이 이윤의 하락에 시달린다면 그것은 노동자의 임금인상 때문이 아니라 그들 경쟁에서 실패할 두려움과 상황의 불확실성 등을 이유 삼아 그들 자신이 투자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 전체의 소득과 고용을 유지하거나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제도적·정책적으로 개별 기업의 이기심을 억제하며 임금인상을 유도하고, 더 나아가 투자를 독려하는 것이 거시경제적으로 더 현명하다.

임금주도 성장체제

앞서 언급한 칼레츠키 모형은 매우 단순한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노동자의 소비성향이 100%라는 칼레츠키 학파가 가져간 초기의 가정은 지금의 현대사회에서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칼레츠키의 모형이 여전히 의의가 있는 것은 그것이 현실경제에서 임금이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임금은 기업 입장에서 ‘생산비용’이자 동시에 거시경제적으로 보았을 때 ‘시장구매력’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임금의 상승은 소비의 증가로 인해 내수(유효수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개별기업의 비용압박을 통해 투자를 제약하고 내수를 감소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두 가지 효과 중 어느 것이 더 큰지를 실증적으로 비교·분석할 수 있다. 임금상승의 효과 중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효과와 긍정적인 효과 중 어느 것이 더 크냐에 따라 경제의 성격을 달리 볼 수 있는 것이다(라부아 스톡해머, <임금주도 성장론>).

이처럼 칼레츠키의 영향을 받은 PK 학자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분배-성장의 패턴을 이른바 ‘임금주도 성장체제’와 ‘이윤주도 성장체제’로 구분한다.

소득분배가 이윤(임금)에 유리하게 바뀔 때 그것이 총수요의 증가율과 노동생산성 증가율에도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을 ‘이윤(임금)주도 성장체제’(profit(wage) led growth regime)라고 부른다. 만일 임금주도 성장체제라면 노동에 유리한 소득분배와 경제정책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또한, 임금주도 성장체제에서 자본친화적인 시장정책과 소득분배 정책은 오히려 불안정한 저성장 경로를 고착화할 수 있다. 이처럼 칼레츠키의 성장-분배 이론은 단순히 도덕적이고 당위적인 맥락에서만이 아니라 ‘지속할 수 있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이라는 맥락 아래서 분배의 중요성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서로 부합하지 않는 분배정책과 경제체제의 경우, 성장은 외부자극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안정한 성장패턴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라부아 스톡해머

이것이 바로 PK 학자들이 그동안의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이다. 다수의 국가는 저마다 맞는 경제적 특성이 있고 상당수는 임금 주도적 성장 시스템이라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의 전일적인 이식은 이들에게도 이윤 주도적 축적모델을 강요했고 이것이 결국 경제의 불안정과 저성장을 가속했다는 것이다. 이하 표는 각각의 성장체제에 맞는 분배정책의 관계를 도식화한 것이다.

자료 라부아 스톡해머, 2012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경제가 ‘이윤주도 성장체제’인지 ‘임금주도 성장체제’인지의 여부이다. 우선 김진일(2013)은 1970년에서 2011년까지의 한국경제가 대내적으로는 임금주도 성장체제였지만 대외부문을 고려하면 전반적으로 이윤주도 성장체제라고 분석했다.

한편 주상영(2013)은 한국의 자영업자의 소득 전부를 자본소득으로 계산하는 한국은행 방식의 노동소득분배율 산정기준을 비판하고, 이를 보정해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했다. 또한, 그는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노동소득분배의 개선이 내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결과를 보고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박강우(2015)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노동소득분배율 자료를 바로잡으면 대한민국이 임금주도 성장체제라는 평가를 한 바 있다.

종합하자면, 대외의존도가 높고 내수의 비중이 작으며 수출 주도적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대한민국이 산업화 초기에는 이윤 주도적 성장체제였을지는 모르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한국경제도 임금주도 성장체제로 전환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에는 노동소득의 개선이 적어도 내수의 개선에 미치는 영향이 뚜렷하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의 약점으로 내수의 비중이 적고 대외변수에 취약하다는 것이 자주 거론되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연구결과이다.

이처럼 저성장-고용불안 시대에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동 친화적 소득분배를 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내에서 커지고 있다. 이것이 한국사회에서의 소득주도 성장론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관전 포인트

ILO 등 국제기구에서도 소득주도성장론을 의제로 꺼내든 이상 한국사회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의는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결국 문제는 정책수단이다. 보통 소득주도 성장론이 꺼내 드는 카드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최저임금 인상, 두 번째는 생활임금의 확산, 세 번째는 일자리 나누기이다. 이들 모두 지금 막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이것을 어떻게 추진하는지 앞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저소득층의 삶의 수준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임금 인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때 우리나라의 문제는 자영업자들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자영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이다.

정책 패키지가 없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한계 자영업자들을 퇴출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임금인상의 거시경제적 효과를 반감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만원 수준으로 인상할 것을 공약했다. 이에 따라 어떤 보완적 정책이 동반되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사진=청와대

두 번째로 생활임금이란 물가와 평균적인 가계지출비를 고려해 평균적인 생활 수준을 보장하는 임금제도를 의미한다. 최저임금을 넘어서 인간다운 삶의 수준을 유지하는 임금을 보장한다는 취지로써 저임금 공공기관 근로자들에게 우선으로 적용됐다.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세 번째로 일자리 나누기이다. 일자리 나누기의 골자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생산성을 향상하고 이로 생긴 여유분으로 (청년과 경력단절 여성 등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고용을 늘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 나누기가 경제활성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생긴 생산성 상승만큼의 ‘시간당’ 임금인상이 수반되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해 상승한 노동생산성만큼 시간당 임금이 증가하지 않는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는 오히려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분배를 악화시키고 정책의 취지를 퇴색시킬 것이다.

박가분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단행본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paxwon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