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정통 합기도] 무도, 어찌 유익하지 않겠는가?

옛 문헌을 통해서 무술에 대한 인식과 발전과정 그리고 필요성을 생각해 보았다.

<조선왕조실록>은 옛 무술에 대한 판단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개국의 과정이 무신의 난 그 자체였고, 난의 주체였던 태종 이방원 스스로 중앙에 집중되지 않는 군사력의 위험성을 잘 알기에 철저한 “사병혁파”를 이루어 낸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이 무신을 멸시하는 풍조를 만들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한 단면을 만들어 내었다.

국가의 통치 철학인 성리학은 문(文)을 더욱 귀하게 여기며 발전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겪은 어려움도 무관에 대한 견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진왜란 당시의 <선조실록>을 보면 투항한 왜군이 우리 군의 살수(殺手)를 보고 “아이들 놀이와 같다”고 하였고 또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은 전세(戰勢)를 만회하기 위해 왜군의 검술을 배우라고 지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며 배우지 않는 것을 한탄하는 기록이 있다. 또한 <선조실록>에는 배우고 익히는 것에 대한 유익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왜인의 검술을 익히되 주야로 권장하여 그 묘법을 완전히 터득한다면, 이는 적국의 기예가 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인데, 어찌 유익하지 않겠는가?”

조선시대 과거 시험
조선시대 과거 시험

옛 기록들을 보면 현대에 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무(武)보다는 문(文)에 치우쳐져 있는 조선시대의 환경이 현대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성인 수련생이 없는 어린이 위주의 도장문화가 ‘마치 아이들 놀이와 같다’는 옛 기록과 닮았다. 지금은 살수(殺手)를 써서 누구를 죽일 정도로 무서운 기술이 필요한 시대는 아니다.

그렇다면 무술의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옛 살수를 펼치던 일본의 무술은 현대에 와서 어떻게 변했는가?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전수 방식을 고수하는 유파들은 이제 명맥만 유지할 뿐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반대로 현대 검도는 스포츠로 크게 성장하였다.

유도는 하계 올림픽 종목이 되면서 세계적인 스포츠로 성장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 내에서도 도장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을 멈춘지 오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은 살수(殺手)를 펼치는 무서운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UFC와 같은 격투기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것을 배우는 사람은 소수의 매니아들 뿐이다.

프로레슬링의 화려하고 멋진 기술을 보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 레슬링장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와 같다. 살수를 펼치던 옛 검술에서 정신적인 성장을 바라는 검도로의 변화는 지금 시대가 바라는 모습이다. 검도가 스포츠의 인기를 가지면서도 무도로써 남기를 희망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모든 무술은 살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에만 치중하는 것은 복잡하고 전쟁 같은 현실에서 생존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만 가중시킬 뿐이다.

전통적인 전수 방식을 고수하는 유파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완벽주의에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승부에 대한 집착과 수직적인 상하 관계는 모든 것을 경직 시킨다. 그것은 결국 무술은 힘든 것으로 훈련은 고통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모든 생물은 원래되로 돌아가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좀 더 편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희망이다.

목적을 가지고 강한 승부욕을 불태울 수는 있지만 그것이 오래 계속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시합을 하며 경쟁을 촉발시키는 운동은 오래가지 못하는 단점을 갖는다. 동기유발이 누군가를 이겨서 얻는 것이라면 그런 운동 자체가 즐거움 일 수 없다. 검도가 시합이 주(主)가 아닌 정신적인 성장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완벽주의는 부족한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인간 관계에서도 실수를 용납치 않으며 능력과 자질의 부족이 더 이상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바라본다. 시합에 나가서 이길 수 있는 선수에게만 집중하는 코치의 마음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완벽에 대한 집착이다. 조그만 가능성에 대한 무시와 인간 천시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파괴이다.

아이키도1

합기도(아이키도)는 인간 존중의 무술이다. 부족한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 인간 그 자체의 본성에 희망을 갖고 하나 하나와 협력하면서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운동신경이 둔하거나 없어도 꾸준히 따라하다 보면 성장을 경험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무술이 필요한 이유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성공적인 생존을 위함이다.

열심히 일을 하던 사람이 마음을 돌려 여가 생활을 즐기는 것은 자신의 일을 더 집중하게 하기 위함이다. 일만 하거나 오직 한 곳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다른 곳을 보지 못한다. 결국 시야가 흐려지는 시력처럼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고 일은 고통으로 바뀐다. 일은 지겨운 것이 되고 현실 도피를 위한 탈출구를 찾는다. 하지만 충분한 여가 활동을 즐기는 사람은 자신의 일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무도는 그런 것이다. 마음을 잠깐 돌려서 자신의 인간성 향상에 대한 성장과 더 높은 정신성을 갈망하는 구도(求道)의 길이다. 그것은 완벽을 향한 고통스런 구도가 아니라 세상에 대해 좀 더 선명하고 분명한 삶을 위한 철학이다.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곧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다. 자연(타인)을 의식하는 것이 무술의 시작이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말이다.

나는 합기도(아이키도)를 통해서 약간이나마 그 해답을 찾았다. 합기도는 현대 생활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유익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을 걸어 이루고 싶은 목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합기도는 무도(武道)다. 과거의 교훈에서 처럼 합기도(아이키도)가 일본 것이라고 해도 유익함이 있다면 배울만한 이유와 가치가 충분하다.

윤대현

국제합기도연맹(IAF:International Aikido Federation) 정회원·공인 6단
(사)대한합기도회 회장
합기도신문 발행인
aikido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