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체제의 적폐···니들이 적폐를 알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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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체제의 적폐···국가주의라는 마수 2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시점을 기점으로 잡든, 1987년 민주화를 기점으로 잡든 점진적으로 혹은 비약적으로 나아진 것이 정말 많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 등 민주적 제권리,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사회권), 산과 거리의 기초질서, 부정부패, 주택, 교통, 공원 인프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정권 교체를 거듭해도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거나 답보 상태인 것들이 수두룩하다.

출산율, 분위별(개인, 가구) 소득분배구조, 괜찮은 일자리난(취업난), 대·중소기업 격차와 노동시장의 분절화, 벤처·중소기업의 어려움,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세습오너의 리더십 수준, 경제사회적 활력과 성장률, 가계부채의 규모와 성격, 교육문제(입시경쟁, 교실 붕괴, 사교육비 등), 금융서비스와 규제 문제, 고시·공시 열풍과 관료의 보신주의, 사회문화적 풍조(각자도생, 만인에 대한 불신, 선공후사의 실종), 사회적 경쟁과 갈등의 성격(지대추구), 정치리더십 수준, 국가의 문제해결력 등은 답보 상태거나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경제성장률의 경향적 하락이야 선진국적 보편성이고, 악화되는 환경생태 문제야 전 지구적 보편성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만 유독 심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엘리트층은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만 고시·공시 등을 통해 지대의 성채에 들어가서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누리면 되니, 80~90% 서민의 고통은 내 알바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 상위 10% 소득집중도 최고 수준(출처 jtbc)

아무튼,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사태, 2016년 한진해운 파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서 드러난 황당한 몰상식, 몰염치, 총체적 부실은 번듯한 나라치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용·노동
1987년 이후 가장 불공정해 진 시장이 바로 노동시장이다. 사람 값(임금)이 노동의 질(직무성과)이 아니라, 소속에 따라 천양지차가 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이중화로 인해 한국사회는 직장계급 사회, 정규직(내부자)계급 사회, 연공계급 사회, 공공양반 사회, 지대추구 사회, 본말전도 사회가 됐다. 노조는 대기업과 공공부문과 규제산업의 전유물이 되어, 불평등과 양극화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시키고 있다.

김영삼·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고용 유연화는 공공부문과 조직노동을 비껴갔다. 이는 이 정부들이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는 노동시장을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에 맞게 유연화 하려고 했는데, 의도와 다르게 성안은 거의 유연화 되지 않았고, 성밖만 과도하게 유연화됐다.

성안·귀족들이 감당해야 할 시장의 압력이 성밖으로 이전(전가)되면서 성밖은 더 유연하고 더 열악해져 버렸다. 성밖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인심 좋게 개방해 훨씬 열악해져 버렸다. 개방화에 따른 경쟁 강화는 (건설노동자 등) 중하층 노동시장에 집중됐다. 공적인(적정한) 규제 감독 없이 실행된 자율화들은 대체로 사회적 약탈을 초래했다.

노조는 공무원과 함께 1987년 체제의 최대 수혜자 중의 하나이다. 노조는 1987체제 빛과 그늘을 전형적으로 체현하고 있다. 노조의 영향력은 조직률 10%-협약적용률 10%보다 월등히 크다. 고용체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5000만명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출처 MTN

노조는 공무원을 포함한 수많은 이익집단의 롤모델이다. 노조 간판을 달지는 않았지만 거의 모든 기득권집단은 자신의 권리, 이익을 상향, 확장시키는 조직을 갖고 있다. 노조 간판을 안 달았다고, 파업을 못 한다고 해서, 노조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공
공공부문은 한국에서 정년보장이 가장 확실하고 연공임금·승진 체계와 경직된 보직체계를 전형적으로 체현하고 있다. 공공부문(공무원, 공기업, 공공기관)과 규제산업은 노동조합의 핵심 근거지다. 공공부문의 고용, 임금, 복지, 연금 등 근로조건은 한국 사회 전체에서 위력 있는 표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근로조건의 표준(고용임금 패러다임)을 결정하고, 감독(처벌)하며, 노동시장과 생산물 시장을 규율하는 규제와 시스템도 운영한다는 사실이다.

독점적 업역을 가진 공기업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시장(생산물시장, 자본시장 등)에 의한 통제도, 국가에 의한 공공적 통제도, 사회(노조 상급단체 등)에 의한 통제도 안 된다. 서울메트로와 은성PSD의 운영 상황이 그 징표이다.

공무원 등 공공부문 종사자는 현대판 양반이 됐다. 청년 인재와 기업가 정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고교생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됐다. 국민의 애환이나 시대적 요구에 대한 반응성과 책임성도 낮다. 고용(임용과 보직 등)은 너무나 경직적이고, 임금은 너무 높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하지만 돈값(임금과 복지)에 상응하는 공공서비스 질은 높을 수가 없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마인드도 취약하다.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권한(재량권)이 많아, 전관예우, 관피아 등 공직부패를 일으킨다. 공기업 관리도 총체적 실패했다. 그 징표가 ‘신의 직장’이다.

복지
지난 20년 동안 복지지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그 구조는 너무나 후진적이다. 민간복지공급업자나 중간전달자(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에게 너무 많이 샌다. 노후 보장(국민연금)을 보험 방식으로 하다 보니 보험료를 못 내는 취약근로자와 영세자영업자들은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거대한 사각지대가 좀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소득재분배 장치를 장착했지만,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이 40%든 50%든 여전히 고소득 근로자들에게 유리하다. 무엇보다도 현세대에게 너무 유리하게 되어 있다. 복지재원은 노인, 실업자, 고졸자, 출산육아 여성 등 진짜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너무 적게 간다. 한마디로 기득권에 너무 편향되어 있다.

교육
국가주의는 대체로 교육을 체제 유지의 첨병으로 삼는다. 교사를 국가공무원으로 만드는 등의 방식으로 특권과 특혜를 제공하고, 대신에 교육과 관련된 모든 것을 국가(중앙정부)가 촘촘하게 통제하는 식이다.

이리하여 교원 자격 요건, 교육과정(프로그램), 학교인가 요건 등을 국가가 틀어쥐었다. 교육은 지방 자치와도 분리되고, 비용 부담자(학부모)와도 분리되고, 교육소비자(학습자와 기업, 산업 등)와도 분리됐다.

1987체제의 꽃인 전교조 운동은 처음에는 촌지 거부와 국가나 교장의 부당한 지시 명령 거부로 출발하였으나 결국 국가라는 거대한 단일 사용자와 그 대리인 교장에 맞서 교사의 자유, 권리, 이익을 상향, 확장하는 교육 노동운동으로 귀결됐다.

전교조 결성 27주년 전국교사대회

교사들은 처우 개선 요구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처우 자체가 7급 공무원과 연동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올라가는 연공임금 체계를 적용받았다.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참교육도 국가가 거의 모든 재원을 부담하고, 교육 과정 등을 규제하는 국가주의 교육체제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처럼 원하는 교육과 호주머니 사정이 천차만별인 지방이나 교육 특구의 학부모(교육세 납세자)들과 지방정부와 교사들이 자율책임하에 꾸려가는 교육체제는 교사들도, 학부모들도 원하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내 자식만이라도 좋은 교육을 시켜 서울의 일류대에 보내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았다. 교사들은 경쟁이 없을 수 없고,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교육 체제에서, 경쟁 교육을 거부하고, 행복한 학교를 부르짖었다.

교육과 시험은 면허직업, 규제산업, 공공부문으로 들어가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됐다. 즉 교육이 안정적 지대 수취가 가능한 직업, 직장으로 들어가는 사다리가 되면서 본령에서 너무 멀어졌다.

부동산
한국민의 가계 자산의 70% 이상이 축적된 부동산 자산(토지, 건물, 주택 등)의 가치는 원래 감정 평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기대(투기) 수익에 의해 요동친다.

부동산 자산의 가격은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와 선분양제 같은 부동산시장 규제, 공기업(토지주택 공사)의 택지공급 정책과 가격(분양가) 정책,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금융규제 정책, 보유세와 거래세 등 세금 정책의 산물이다.

또한 국가(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키를 쥐고 있는 용도, 용적률 등 토지이용규제와 도로, 지하철(역), 다리, 공원, 공항, 공단, 항만, 공원 등 국토계획과 도시계획(지방 혁신도시와 세종시, 지자체 차원의 신도시 개발 등)과 예산 등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부동산과 주택 문제는 압도적으로 정부의 공적 규제와 정책의 문제이다. 동시에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인구와 생산 시설 집중의 산물이다.

또한,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욕구와 부동산 불로소득(자산 소득)에 대한 열망의 산물이다. 천문학적 이익이 발생하기에 건설회사들의 로비도 무시할 수 없다. 건설회사와 지역 부동산 보유자(유권자)들은 규제와 정책을 만지는 정치인과 공무원과 전문가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부동산 관련 규제와 정책은 사익에 이리저리 편향되면서 숱한 부동산 거품과 불로소득을 양산했다. 국내 정책에 관한 한 무소불위처럼 보였던 박정희, 전두환 정부조차 부동산 투기, 거품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주거 비용도 상승하고, 기업의 투자 비용도 상승했다. 토지와 건물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사업자는 토지와 건물주에게 속절없이 잉여를 뜯겼다.

재벌
재벌대기업은 1990년대 자유화, 개방화에 힘입어 약진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체질 개선을 바탕으로 냉전 해체로 인한 세계 시장의 확대, 개도국의 개발 수요 확대를 활용해 힘차게 세계로 뻗어 나갔다. 주력산업인 반도체, 자동차(부품), 조선, 석유화학, 철강 등은 물 만난 고기와 같처럼 힘차게 세계로 뻗어 나갔다.

그런데 개발연대의 자본, 노동의 위험 분산, 완충 시스템이 해체된 이후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면서, 기업들은 국내 투자와 고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투자와 고용을 하더라도 외주하청화(아웃소싱)로 돌렸다. 부채비율을 줄이고, 현금 보유량을 늘렸다. 이것이 현재 천문학적 사내유보금으로 존재한다.

재벌대기업과 협력업체의 거래는 시장원리에 따라 경쟁 입찰로 전환하면서 과거처럼 우호적 가격이 사라졌다. 그 결과 상당수 협력업체로서는 과거보다 더 피폐해졌다.

재벌대기업의 지배권은 2세→3세→4세로 상속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 다양한 변칙, 편법이 동원됐다. 2세→3세→4세로 지배권이 상속되면서 경영 기풍은 더 보수적으로 변했다. 챙겨줘야 할 자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찌질한 다각화(계열사 건물 내에서 하는 빵집, 카페 등)가 좀 더 심해졌다.

빵집 운영하는 재벌 딸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협력업체에 대한 갑질은 항상 있었는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서로 어느 정도 배려하는 일본식 원하청(영주-가신) 관계보다는, 입찰 가격에 따라 거래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하는 미국식 원하청 관계가 대세가 되면서 힘없는 협력업체의 어려움은 더 가중됐다.

시장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 중에서 좀체 풀리지 않거나 악화되는 것은 대체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과 거래라는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거나, 공공성 원리가 비껴가는 곳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사회적 보상징벌(인센티브-패널티)체계와 사회적 지배운영(거버넌스)구조가 왜곡된 곳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조선 말기 수준의 악덕이 창궐하는 곳은 대체로 혜택-부담, 이익-공헌, 위험-보상의 균형을 잡아주는 시장(가격)을 내친 곳이다. 대체로 지대가 넘쳐나는 곳이다. 조선 말기 수준의 악덕이 창궐하는 곳은 거의 예산과 권좌 쟁탈전(예산 폭탄론)에 익숙한, 공공성을 상실한 정치와 안정, 면피, 기득권 편향의 관료적 규제가 판치는 곳이다.

세월호 참사

단적으로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도 정부와 소비자가 제값 안 내고 해운 서비스와 보건의료서비스(전염병 대처 등) 공급을 요구하면서 터진 문제다. 메르스 사태가 악화된 것은 시장과 공공을 내몰고, 병원의 변칙(과잉 검사·진료, 장례식장, 비급여 병실 등)에 기대어 시스템을 돌린 결과다.

정치
국가, 시장, 사회 등 거의 모든 것을 통할하는 정치의 품질도 경향적으로 저하됐다. 물론 구조적 문제다. 정치 독과점(특정 지역에서는 독점)을 초래하는 선거제도 등으로 인해 정당이 부실해졌다. 정당은 포말이고, 운영은 독재적이다. 내용상으로는 출마자 카르텔이다. 그로 인해 정치 엘리트의 선발, 검증, 훈련도 안 되고, 국정 노하우의 축적과 공유도 잘 안 된다.

정치리더십은 김영삼, 김대중을 정점으로 그 안목과 리더십이 점점 떨어졌다. 정치지도자의 자질이 점점 떨어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안보, 성장, 격차, 통합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을 심화시키고, 숙성시킬 계기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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