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체제의 적폐···니들이 적폐를 알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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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체제의 적폐···니들이 적폐를 알아? 1

한 15년쯤 전, 탤런트 신구씨가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고 말하는 광고가 있었다. 노인과 바다를 패러디한 광고였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

그런데 나는 적폐 청산을 고창하는 사람들을 보면, “니들이 적폐를 알아?”라는 말이 입에서 맴돈다.

내 눈으로 보면 적폐를 즐겨 많이 떠드는 자가 오히려 적폐의 본당이다.

이들이 말하는 적폐는 친일부역세력 미청산, 재벌 독식-낙수효과론, 신자유주의가 데려왔다는 작은 정부론, 비정규직 과다, 친북좌익 타령, 박근혜·최순실·우병우·김기춘의 국정농단, 홍준표와 자유한국당 등을 적폐 리스트 상위에 놓는 듯하다.

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한심한 생각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과 눈물도 모르고,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 내지 부실을 모르는, 참으로 지적으로 게으른, 배부른 자들의 생각이다.

생활고 시달리던 세 모녀 동반자살

긴 얘기 짧게 줄이면, 1987체제의 모순과 부조리는 부동산, 경제(재벌, 산업생태계 피폐), 노동, 공공, 교육에 집중되어 있다.

노동이 양극화 주범의 하나로 된 것은 노동권 강화가 민주요, 노조 친화가 진보라는 유럽산 이념이 상식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공공이 양극화 주범의 하나가 된 것은 공무원이 하면 다 공공적이고, 시장(기업)이 하면 다 사익 추구라는 조선에서 내려오는 국가주의, 사농공상 이데올로기가 상식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교육이 고비용 저효율의 전형이 되어 버린 것은 그 스스로가 지대추구를 하고, 또 교육시험을 지대의 성채로 들어가는 수단(사다리)으로 삼고, 이를 국가주의 교육체제로 강력하게 지지·엄호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이 양극화 주범의 하나가 된 것은 부동산 규제와 정보를 쥔 공무원과 교수와 언론인 등의 은밀한 재산 증식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에 대한 우회적 약탈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표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재벌의 변칙·편법 상속, 일감 몰아주기와 우월적 지위의 오남용(갑질) 등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잘 모르는 후미진 뒷골목에서 행한 갈취이기 때문이다.

양대 주범 박근혜와 이재용(출처 청와대)

후미진 뒷골목에 CCTV 많이 설치하고, 순찰차 잘 돌리면 야만적 폭력(갑질)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생산성(국제경쟁력)에 따른 격차는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부동산과 재벌 문제는 방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교한 (연착륙) 기술의 문제이다. 진보든 보수든 특효약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천문학적 가계부채와 연동되어 있기에 부동산 거품을 확 꺼뜨릴 수 없다.

재벌 역시 국제경쟁력 문제를 도외시한 소유지배구조 개혁을 할 수가 없다. LG그룹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지배구조가 선진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높은 국제경쟁력을 담보하지 않는다.

결국, 문제는 노동과 공공이다. 이것을 풀면 교육 문제의 상당 부분이 풀린다. 공공은 정치, 규제, 예산, 징벌, 공기업, 지방자치, 공직 인사, 공공부문 고용임금 등을 망라한다.

따지고 보면 교육 문제, 산업구조조정과 산업생태계 문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문제, 제4차 산업혁명 문제와 금융문제조차 공공 문제의 파생물이다.

사실 고용·노동 문제와 10 vs. 90 양극화 문제도, 교육문제도 그 뿌리는 공공이다. 규제, 표준(고용임금패러다임)과 공공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 시대 대부분 문제는 공공성을 상실한 공공=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공공기관 ‘빚과 방만 경영’ 경제 위협(출처 KBS)

이렇게 본다면 진보 노선은 1987체제의 최대 적폐인 노동과 공공 문제를 대체로 더 악화시켰다. 1987체제의 그늘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시장, 경쟁, 개방, 자치분권, 견제와 균형, 권한과 책임의 일치, 민주공화적 통제에 대체로 역행하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엄청나게 바뀐 경제 사회적 환경에서 진짜 민주, 진보, 정의, 공화가 무엇인지 묻지 않고, 자신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민주, 진보, 정의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야말로 적폐의 온상이다.

물론 우리 시대의 보수, 자유, 성장, 안보에 관해서 묻지 않으면서 자신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보수, 자유, 안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만언봉사의 상황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이율곡의 만언봉사(선조 7년(1574))에서 묘사한 조선의 현실과 흡사하다.

“만 칸의 큰 집을 오랫동안 수리하지 아니하여, 크게는 들보에서 작게는 서까래에 이르기까지 썩지 않은 것이 없는데 서로 떠받치며 지탱하여 근근이 하루하루를 보내고는 있지만, 동쪽을 수리하려 하면 서쪽이 따라 기울고, 남쪽을 보수하려 하면 북쪽이 일그러져 무너져버릴 형편이라, 여러 목수가 둘러서서 구경만 하고 어떻게 손을 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고 수리를 하지 않는다면 날로 더욱 썩어 문드러져 장차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의 형세가 무엇이 이것과 다릅니까.”

주요 정치세력의 철학, 가치, 정책과 1987체제가 만든 정치지형을 보면, 대한민국은 1987체제의 모순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깊은 어둠 뒤에 새벽이 온다는 자연의 법칙을 믿는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socialdesign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