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서관장 임명 언제까지 미룰 셈인가

국회도서관장 임명 과정에 대한 비판적 고찰

역대 국회도서관장 재임자 수십명 중 최장수 관장이 탄생할 예정이다. 현 이은철 국회도서관장은 지난 2014년 12월 26일 국회 운영위에서 임명안이 가결된 이래 제20대 국회가 개원한 지 1년 1개월이 지나는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2017년 5월 25~26일 양일간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 호텔에서 제14차 한국학술정보협의회 정기총회 및 세미나가 제4차 산업혁명과 도서관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개최됐다. 이은철(국회도서관장) 한국학술정보협의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이 관장은 도서관장으로 취임한 이래 국회도서관의 대국민 개방성을 높이고(민간인 출입 시 투명백 사용 강제 등 휴대 물품 소지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불편하다는 민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인문적 차원에서 기획한 짜임새 있는 대내외 행사들도 꾸준히 벌이는 등 유의미한 성과들이 적지 않았다. 또 역대 도서관장과 달리 이 관장은 이런 성과들을 관장의 업적화, 치적화, 홍보용 등으로 요란하게 동원하지 않았다는 점도 긍정적 평가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물도 오래 고이면 썩는 법이고, 아무리 좋은 옷도 반복해서 입으면 낡아지며, 맛난 음식도 오래 접하면 물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더군다나 현 도서관장도 후임 결정을 염두 하느라, 좀 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신규사업을 책임감 있게 추진할 의욕을 내지 못하고 있다. 과도적이고 관리자적인 역할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회도서관 내 임직원들의 비공식적 목소리를 들어보면 대체로 말을 아끼고 조심스러우면서도 하소연이 뒤섞여 있다. 리더가 바뀌면 그것에 맞게 내부에서도 새로운 동기부여로 열정 있는 직원들의 활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단일 리더십의 장기집권이 정기인사로 해소되지 못하는 미묘한 인사 경직과 나른해진 내부 분위기를 만들어 업무 집중도 또한 현저히 낮아진 상황이다.

새로운 혁신이나 능동적 창안도 제기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체증’에도 불구하고, 현 관장에 대한 경의와 예우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모든 지성과 지식이 모여드는 아카이브인들 답다는 생각도 든다.

국회도서관장의 임기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한, 일만 잘한다면야 2년인들 어떻고 4년인들 어떠하랴 싶다. 다만 국회는 전국에 걸쳐 실력과 경험을 갈고닦은 인물들이 모여드는 중앙무대이고, 뜻있는 신예들에게 적절히 자리는 양보 되어야 한다. 무대는 다양한 콘텐츠와 다양한 연출을 보여주며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정가 일각에서는 역대 교수 출신 관장들의 리더십 타입에 대한 근본적인 한계도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혹여 정치꾼, 정치권 언저리언이 낙하산으로 다시 내려와 잔뜩 물만 흐려놓고 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들이 가득하다.

국회도서관 안팎의 사정이 이렇듯 답답해진 것은 현 관장의 잘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국회 운영진이 이 관장이 박수 칠 때 떠날 타이밍을 놓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국회도서관장직을 여야 간 정치적 노획물로 취급하면서 자리 나눠 먹기로 일삼더니, 급기야 국가 공직자를 특정 정당 내부에서 이틀 만에 후다닥 공개모집 절차를 거치게 하는 등 절차적 위헌성을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측근(출처 청와대)

게다가 국정농단과 탄핵, 파면이라는 사태가 초래된 데에 일정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이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앉히려 한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국회도서관장을 ‘폐족의 도피처, 스펙 쌓기용’으로 전락시키려는 시도도 서슴지 않고 벌이고 있다.

온 국민이 새로운 정치, 새로운 리더십, 수준 높은 윤리정치, 새로운 대한민국, 새로운 헌법 체제를 간절히 바라는 이 마당에, 비록 그 직급이 차관급이라 할지라도, 한 나라의 최고 지성의 전당에 국정 파탄의 공동책임이 있는 이를 앉히겠다는 발상은 답답하다 못해 서글프기까지 하다. 이 나라의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지식의 관리자로서 나름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국회도서관 400여명 직원들에게도 안타까운 일이다. 내정되었다는 후보자 또한 정치적 역량이 갖췄을 것이고, 맡으면 잘할 수 있겠지만, 일정한 자숙과 자발적 유배 기간을 갖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다.

강조하건대, 국회도서관장은 선거 출마에 집중해온 정치권 선수도, ‘도서관’밖에 모르는 샌님도 적절치 않다. 꼿꼿하고 순진하고 고고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 인사일지라도, 도서관이 갖는 본질적 특성에 부합하는, 나름의 인문(학)적 활동 양상과 성과를 쌓아온 품격을 갖춘 자이어야 하며, 도서관학이나 문헌정보학 내지 사서 출신일지라도 나름의 집필성과 등 자신의 지식과 연구 세계를 구축한 수준 있는 지식인 이어야 한다.

또한 다선 중진에 준하는 정무적 판단 역량이 있거나 정치에 대한 융통성 있는 이해와 서비스 의식을 보여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혹자들은 도서관학계 전문가가 계속해서 국회도서관장을 맡는 전통이 정착되어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전공’과 ‘학맥’이라는 장벽을 둘러치는 또 다른 ‘폐쇄적 문벌주의’요 ‘그들만의 리그’다. 전공과 공직 직무가 반드시 매칭되어야 한다는, 이종교배를 허용치 않는 강박 또한 또 다른 차원의 순혈주의요 진골·성골 따지는 적폐적 발상이다.

그럼 대체 누구를 선발하라는 것이냐 반문도 있을 법하다. 어려운 문제지만, 도서관학계, 행정 전문가, 일반학계, 역사학계, 언론계, 정계(국회의원 초·재선) 등에서 지성과 인문적 성과를 쌓아온 이들이 번갈아 가며 관장직을 맡는 것이 합리적이다.

국민이 공감하는 울림을 주는 스토리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맥락만 검증할 수 있다면, 하다못해 북카페 사장이나 헌책방 경영인, 재야 사학자, 비주류 저술가 또한 국회도서관장으로 발탁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2017년 1월 19일 오전 10시 30분 국회접견실에서 신년업무보고를 받는 정세균 국회의장

상황이 이러한데, 사려 깊고 경륜을 갖춘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도서관장직을 처삼촌 벌초하듯 내버려 두는지 알 수가 없다. 혹여라도 국회도서관장이 그저 국회의장의 수행조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국회도서관장은 제1야당 몫이라는 구습에 타협하며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미 1년여를 끌어왔으니 그냥 1년 후 후반기 국회의장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국회도서관장 임명 과정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라는 학계의 연구논문에 두고두고 기록될 민망한 선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라도 시급히 특정 정당의 원내대표가 아니라 국회의장의 지도로 공직자 발탁을 위한 정식 공개모집 절차를 거쳐 투명하고 공명정대하게 도서관장을 선발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 저마다 보장된 공무담임권(공직에 도전할 권리), 평등권(공평하게 응시할 권리), 행복추구권, 직업선택의 자유, 의회주의하에서의 참정권, 공무원 중립성 원칙에 기한 임면 과정의 절차적 공정성, 국회 차원의 거버넌스 정신 구현 등에 부합하는 길이다.

아울러 국회도서관장의 적절한 임기(예컨대 2년, 1회 연임 가능)도 입법화되어야 할 것이다. 제1야당 정우택 원내대표도 자신이 쓴 소책자 <긴급제안>에서 밝힌 ‘책임정치’와 ‘낡은 정치 청산’을 위해 대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보고 배우고 따라 할 후학들을 위해, 구습을 과감히 걷어내는 결단을 촉구한다.

이경선

한국입법정책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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