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탓만 하는 ‘성평등교육’ 어떻게 변해야 할까

한국의 모든 정당은 당원이 받아야 할 ‘성평등교육’이 당헌·당규에 명시되어 있다. 양성평등 혹은 성평등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만 큰 틀로 보면 어떤 용어를 쓰던 차이는 없다. 필자는 양성평등보다 성평등 용어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페미니즘에 관련한 몇 차례의 글에서 밝혔듯,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 문제는 사회·정치적으로 여전히 중요하고 지속해서 전개되어야 함은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지구 종말이 오는 날까지 성평등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양성평등

각 정당은 매번 성평등 문제에 대해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으며, 정당 내 당원 교육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예컨대, 정의당의 당규를 보면, 제4장 당원교육 ②항에 <광역시·도당은 지역위원회와 협의하여 당원을 대상으로 당규 제13호 성평등교육과 제14호 장애평등교육을 포함한 인권교육을 연1회 이상 실시해야 하며 모든 당원에게 충분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선출직·임명직·추천직 당직자는 반드시 각 당부에서 개최하는 오프라인 교육을 이수하여야 하며, 그 외의 일반 당원들도 각 당부의 오프라인 교육을 통해 당원의무교육을 수강을 권고한다. 당원의무교육 프로그램은 <성평등교육 및 장애평등교육>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으며, 교육시간은 각각 2시간 이상이다.

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진보정당의 당원이었으며, 대부분 여성위원회의 간부로서 ‘성평등교육’을 직접 주최하고 성평등 강사 섭외, 성평등 교육안 검토, 각 시도당 여성위원회 주최 성평등교육 관장 등을 맡았다.

필자가 성평등교육 실무를 직접 담당하면서 시민사회단체 중 여성단체들과의 교류와 행사 및 토론회 참석을 하며 절감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정당에서 실시하는 1년에 2시간짜리 성평등교육이 그야말로 의무 사항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단순 교육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남성 당원들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성평등교육이 의무적인 요식행위, 시간 때우기라는 인식은 그들의 대화나 행동에서 알 수 있다. 그 시간이 매우 곤혹스럽고 힘든 시간이라는 것이다. 남성 당원에게 성평등교육은 성가신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게 솔직한 표현 아닌가.

이뿐만 아니라 여성 당원의 경우에도 성평등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남성 당원 못지않게 비중이 높았다. “여성인 내가 성평등교육을 왜 받아야 하나? 진보정당의 당원이라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성평등 아닌가?”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성평등교육을 실시하면 여성 당원 참석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성평등교육 이해도나 참석률 부진이 남성 당원, 여성 당원의 탓으로 돌려야 하나? 필자 경험에 따르면 1년에 2시간짜리 성평등교육이 성평등에 얼마나 이바지하고 개선시킬 수 있는지 사실 늘 의문이다.

수적으로 정당의 당원 중 여성 당원의 비율이 낮다. 여성 당원의 비율이 30% 넘는 정당이 없다. 가뜩이나 정치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참여하는 여성 당원의 수가 적기 때문에 성평등교육프로그램을 1년에 필수적으로 실시하지만 실질적인 제도 변화 등은 효과도 낮고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성평등교육 담당 강사의 수준이다. 과연 이들 성평등 강사가 21세기 맞는 성평등 의식과 지식수준, 미래지향적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양성평등교육전문강사를 위촉해 파견하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있다. 정당 중 당원들 가운데 직접 성평등 강사를 양성해서 강사로 위촉해 성평등교육을 하는 정당도 있지만, 대개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강사를 섭외한다.

민무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교육사회학 석사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교육사회학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는 ‘양성평등교육 전문강사는 남녀차별적 의식과 관행을 개선하고 양성평등의식 확산을 위해 가정과 직장, 학교, 지역사회의 각 영역에서 다양한 주제로 양성평등교육을 담당하는 강사입니다’라고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양성평등강사는 ∆인권과 성인권 ∆성평등 정책 패러다임 ∆페미니즘과 젠더 ∆문화 다양성 시대의 성인지 감수성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젠더 ∆성문화와 성담론 ∆한국사회 젠더 지형의 성찰 ∆국제사회와 양성평등정책 ∆가정 그리고 양성평등 ∆여성과 정치 ∆여성과 노동 ∆젠더 관점으로 본 여성 건강 ∆미디어, 젠더, 양성평등 등의 주제를 가지고 성평등 교육안을 만든다.

하지만 성평등 강사들의 교육 내용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교육 내용도 이제는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대부분의 성평등교육 내용을 들어보면 오래된 수십 년 전 내용을 반복하며 현 세대의 눈높이, 사고의 변화와 시대 환경에 대한 불균형 등 21세기에 맞지 않는 뒤떨어진 교육 내용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현 젊은 세대는 누구보다 성평등 의식이 높은 시대다. 거기에 맞게 성평등교육 전문강사들의 세대 교체 필요성과 진일보한 교육내용으로 진정한 의미의 성평등을 위해서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대상에 맞는 내용을 가진 전문강사 양성이 이루어져야 21세기에 맞는 성평등교육도 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장에서 성평등교육을 담당하는 강사들의 내용도 구시대적인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예컨대 몇 해 전 모 정당에서 실시한 성평등 강사의 교육 내용 중 핵심은 이렇다.

<양성평등을 가로막는 것들>
①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 남성이 가장이다 → 농협 편파 해고, 98년 현대자동차 식당 선별 정리해고, 여성 비정규직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 여성의 주된 직종들부터 비정규화, 아웃소싱 되는 것 등

② 여성노동자의 조직률이 낮고 의사결정구조의 소외가 계속됨
– 할당제에도 불구하고 고위직급의 여성 비율이 현저히 낮다

③ 경제 위기와 고용 위기가 차별을 심화시킨다

④ 오랫동안 익숙한 문화로 성차별을 깨닫지 못한다
– 남성위주의 성 문화
– 여성에 대한 오해
– 성적 언행이 일상화된 생활문화 등

위의 교안을 보더라도 여전히 성평등교육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

21세기 성평등문제는 제도적인 개선, 정책적인 사안을 중심으로 다차원·다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고령화시대에 맞게 여성노인 빈곤문제, 미혼모들이 처한 환경 개선, 가정폭력을 피해 쉼터에 거처하고 있는 곳의 환경개선, 여성환경미화원들의 휴식 장소 개선 등 우리 사회에서 현실적인 개선이 필요한 곳의 제도적, 정책적 이슈에 집중해야 한다.

홍익대 환경미화원과 경비직원 140여명이 지난 2011년 집단 해고를 당했다.

정당 내의 성평등교육 내용도 변화해야 하고, 성평등교육을 담당하는 강사 또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종전대로 1년에 2시간짜리 성평등교육프로그램이 무슨 성평등문제를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며, 교육을 받는 당원들의 태도 또한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래 소개하는 글은 필자가 읽었던 책 중 양성평등에 관해 짧은 내용이지만 매우 탁월한 문제의식을 보여준 글을 소개한다.

<양성평등> 에바 플렉켄 지음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적게 일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 정의로운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나쁜 성적을 받는 현상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 정의로운가?

이러한 질문은 양성평등과 관련해 다루어야 하는 문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양성평등의 의미는 남성과 여성의 삶의 현실을 모든 정책 영역에서 체계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양성평등은 분배 정의의 네가지 원칙을 관통하고 있으며, 특히 성과기반 정의와 기회의 평등원칙에 투영된다.

양성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남녀 성역할의 차이는 줄어들지 않았다. ‘기저기 갈기 견습생(육아휴직을 신청한 남성을 비웃는 표현)’, ‘까마귀 부모(아이를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를 일컫는 표현)’ 논란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양성평등 이슈는 사회·정치적으로 여전히 유의미하다. 성역할을 둘러싼 논란이 끊임없이 새롭게 등장하고 상승작용을 통해 증폭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주의(페미니즘)의 내용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변화를 거듭해왔으며 강조점 또한 이동하고 있다. 197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서 급진적 요구가 불가피했다면 현 시기 여성주의는 협력관계에 기초한 양성평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구조적인 변화와 여성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에도 여성주의적 요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로 남아있다.

여성주의자들의 요구는 독일 복지국가와 관련해서 특별한 정당성이 부여된다. 예를 들어 노년층 빈곤은 여전히 여성의 문제이며, 부부합산과세제도는 현실에서 여성 고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구나 최근 들어 일부 영역에서는 남녀 불평등의 새로운 징후, 남성차별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그로인해 남성과 여성이 모두 불평등에 대항해 투쟁하는 중이다. 하나의 불평등을 또 다른 불평등으로 상쇄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정책적으로 양쪽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오히려 현대 사회의 양성 불평등이 다차원적이라는 것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도 보육의 문제를 잘 알고 있다. 남성 간호사도 여성 간호사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저임금으로 고통받고 있다.

즉, 양성평등 이슈는 다층적이며,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현실적 문제인 것이다.

다원적인 사회는 분배 정의를 위한 좀 더 정교한 전략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차별화된 접근을 요구한다. 이는 양성평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에바 플렉켄은 독일 사회민주당 연방국회의원 정치보좌관이며 현재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의사소통 이론적 비판에 관해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뮌스터대학과 빈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사회학·거시경제학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