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의 치명적 착각 5가지 1

문재인 정부와 한국 진보, 노동 진영을 관통하는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담론을 살피다 보면, 그 근저에 깔린 독특한 사유체계들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많이 만나는 사유체계는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문제의 핵심 원인을 재벌 대기업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 곧 부당한 약탈과 억압에서 찾는 것이다. 원인을 이렇게 규정하면 국가규제와 준엄한 형벌이 핵심 해법이 될 수밖에 없다.

장하성 현 청와대정책실장(전 고려대 경영대 교수)의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의 주장이 그 전형이다.

장하성 전 교수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출처 KBS)

이 책의 핵심 지론은 이렇다.

“한국의 불평등의 근원은 재산의 격차보다는 소득의 격차이며, 소득의 격차는 임금의 격차로 만들어진 것이며, 임금의 격차는 고용의 격차와 기업 간 불균형에서 찾아야 하며, 고용의 격차와 기업 간 불균형의 책임은 재벌 대기업에게 있다.”(28쪽)

장하성은 한국에서 불평등의 근원은 재산이 아닌 “소득 불평등과 고용 불평등”이라는 주장이 “기존의 불평등에 대한 논의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독창적인 논리라고 자부한다. 재산의 격차 보다 소득의 격차가 빈부 격차의 핵심 원인이라고 하는 근거는 “모든 계층에서 노동소득(임금)이 전체 소득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평균적인 가계의 경우 재산 소득은 가계 소득의 1%도 되지 않고,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고소득층도 재산소득(이자, 임대료, 배당 등)은 5%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25쪽)

장하성은 임금 격차의 뿌리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된 고용 불평등”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불균형”을 지목하고, 이 책임은 “재벌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에 있다고 했다.

재벌 그룹의 주력 기업인 초대기업이 분배구조 악화 내지 빈부격차의 핵심 원인이라고 한 근거는 기업의 고용과 순이익 비중 통계다.

“한국에는 약 50만개의 기업이 있다······재벌그룹에 속하는 100대 기업의 매출액 비중은 29%고, 모든 중소기업은 35%다. 재벌 100대 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4%에 불과한 반면에 중소기업은 72%다······재벌 100대 기업은 한국 모든 기업의 순이익의 60%를 차지한 반면에 중소기업은 35%에 불과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청 구조 정점에 있는 초대기업이 고용을 만들어내지 않으면서 이익을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다수의 고용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정상적인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간신히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2차 하청기업의 임금은 원청기업인 초대기업 임금의 3분 1이고, 3차 하청 기업은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동일한 생산 사슬에 있는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사이에 이렇게 엄청난 임금 불평등은 어떤 합리적인 경제이론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고용을 창출하지 않는 초대기업이 순이익을 독차지하는 지극히 불균형한 기업 생태계는 대기업이 ‘갑의 힘’이라는 시장 외적 요인으로 만들어 낸 것이지 공정한 시장이 작동한 결과가 아니다.”(27~28쪽)

장하성의 치명적인 무지와 착각 다섯 개

장하성이 범하고 있는 치명적인 무지와 착각을 헤아리려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란 데, 우선 가장 치명적인 것 다섯 가지만 말하겠다.

첫째, 노동시장의 부조리(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고용 불평등)를 생산물시장의 부조리(기업 간 불균형)의 그림자나 파생물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노동시장과 생산물시장이 서로서로 지지하면서 각각의 부조리(불평등과 불균형)를 더욱 확대, 강화한다. 요컨대 한국 특유의 노동시장의 심각한 부조리를 간과하고 있다.

둘째, 생산물시장 부조리의 핵심 원흉으로 초대기업을 지목하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 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1차와 2차, 2차와 3차, 3차와 4차의 이윤·임금 격차까지도 하청 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초대기업(재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는 논리적 비약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초대기업 이상으로 부조리를 심화시키는 노동조합, 공무원과 공공부문, 규제산업과 면허직업, 낡은 법·제도·규제를 간과하고 있다. 한국 사회 전방위, 전층위에서 갑질(초과착취와 부담전가)이 일어나는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초대기업의 이익을 협력업체나 소비자에 대한 불법적 갑질=약탈의 산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불법적 약탈이 아니라, 공정위, 검찰 등이 아무리 유능하고 공정해도 결코 처벌할 수 없는 합법적, 제도적 부조리다. 기업 간 생산성 격차와 대항력(불리한 거래조건 거부권) 격차를 간과하고 있다는 얘기다.

넷째, 한국의 불평등에서 재산 격차의 비중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이 모든 무지와 착각의 뿌리에는 거래비용이나 위험과 이익 등을 타산해 움직이는 시장과 기업에 대한 몰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외주하청화, 비정규직 과다, 국내 투자와 고용 확대를 극력 기피하는 현상(사내유보금 등)의 원인과 구조를 이해 못 하니, 이를 불법적 약탈이나 노사 간 힘의 불균형에 혐의를 두고, 규제와 징벌이라는 국가주의적 해법으로 내 달리는 것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출처 KBS)

높은 생산성의 산물인지? 갑질에 의한 초과이윤의 산물인지?

셋째 문제부터 살펴보자. 재벌 대기업의 왕초(?)인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 재벌 주력기업의 매출과 이익 대부분은 국외 시장에서 얻어진다. 국내 협력업체나 소비자에 대한 약탈은 한참 후순위다. 1차 협력업체의 경영성과와 임금도 원하청 관계에 편입되지 않은 독립기업에 비해 대체로 좋다. 상당수 협력업체가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성토하지만,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훨씬 많은 기업이 잘 나가는 재벌 대기업의 협력업체가 되지 못해 안달한다.

장하성은 재벌 대기업의 많은 이익이 높은 생산성의 산물인지, 독과점이나 국가규제에 의한 초과이윤의 산물인지, 사법적 수단으로 단죄해야 마땅한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의 산물인지를 구분하지 않는다.

현실은 세 요소가 다 섞여 있기 마련인데, 단지 ‘고용 4%를 차지하는 초대기업이 순이익의 60%를 차지한다’는 것을 근거로 사법적 단죄가 가능한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의 산물로 규정한다. 그것도 화재 사고가 자주 난다고 온통 국가 소방 인력과 장비를 강화하고, CCTV 많이 설치하고, 사고 낸 놈 엄히 처벌하는 식이다. 인화 물질 등 화재 요인 자체를 없애고, 유사시 최대의 피해자인 민간의 노력으로 화재를 초동 진압하는 등, 원인 제거와 자위, 자조 개념이 없다고나 할까.

물론 정글과 같은 시장생태계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갑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가 없을 리가 없다. 공정위와 사법기관이 매의 눈으로 살펴 강력하게 응징하면 이런 행태를 많이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차의 근원인 기업 간 생산성 격차와 불리한 거래 조건을 걷어차고도 살아갈 수 있는 ‘을’의 대항력 격차마저 줄일 수는 없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호소하는 협력업체들도, 재벌 대기업이 완전히 공정하고 합법적인 경쟁 입찰을 통해 부품이나 자재를 공급받는다고 했을 때, 거래조건이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독과점 시장구조 등으로 원청이 하청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상 거래조건은 나쁠 수밖에 없지만, 사법적 수단이나 도덕적 호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1960~80년대 정부주도의 이권 몰아주기 방식의 산업발전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수많은 국가독점기업, 민간독과점 시장구조와 높은 진입장벽은 불공정의 본산이지만 사법적 단죄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경쟁, 개방, 규제합리화, 공기업 분할 및 민영화, 합리화 정책 등으로 해결할 문제다.

한국 재벌 대기업의 문제는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 국외에서 돈 많이 벌어오는 간판 기업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국외에서 돈도 잘 못 벌어오면서, 간판 기업에 기대어 연명하고, 더 나아가 시장생태계까지 교란하는 수많은 내수위주 계열사들에게 있다. 이들은 대체로 국내 독과점 사업자인데,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기에 갑질도 더 심하게 한다. 결정적으로 혁신적인 독립 중소·중견기업이 올라오는 것을 방해한다.

한국 재벌 대기업의 주요한 문제는 역사적으로 변화해왔다. 과잉중복투자, 문어발식 확장(경제력 집중), 황제경영, 일감 몰아주기, 변칙편법 상속, 재무통이 주도하는 지나친 보수적 경영 등. 그런데 지금의 핵심 문제는 삼성전자 등 몇몇 기업을 빼놓고는 중국의 빠른 추격에 밀려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주도산업과 혁신적 중소·중견 기업이 별로 없기도 하고, 나오기도 힘들게 되어 있다.

단적으로 한국의 생산물시장, 노동시장, 금융시장은 다 같이 소비자, 노동자, 약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온통 기득권 보호용 규제로 칭칭 감아 놓았다. 핵심 생산 요소인 돈과 인재에 대한 유인보상체계도 지극히 안정 지향적이고 지대추구적이다. 고시공시 열풍은 그 기념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하성은 유력재벌의 계열사들과 중소규모 재벌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간판 기업의 많은 이익(사내 유보금 등)과 연결해, 국가규제와 사법적 수단으로 간판 기업을 포함해 재벌 전체를 옥죄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1960~80년대 산업정책이 낳아 기른 몇 안 남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조차 죽여 버리거나, 별 볼 일 없는 알을 낳는 거위로 만들려고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시장의 이중화는 생산물 시장 이중화의 단순 투영(파생)인가?

사실 장하성의 가장 치명적인 맹점은 첫째, 둘째 오류다. 노동시장의 이중화의 책임을 오로지 생산물 시장의 이중화에만 묻고, 더 나아가 초대기업 사주에게 묻는 것이다. 물론 근로자 임금이 시장에서 구매하는 일반 생산 요소처럼 기업 규모, 고용형태, 근속연수에 상관없이 오로지 생산성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정해진다면, 초과이윤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본에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용임금 등 근로조건은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나라보다 기업능력(지불능력)과 교섭력(단결투쟁력)과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 이 지불능력도 국가규제(진입장벽)와 독과점 등에 크게 의존한다.

상식적으로 재벌 대기업도 국가독점기업(공기업)도 자본과 노동의 결합체다. 자본이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로 초과이윤을 얻는다면 노동은 자본 논리의 집행자이자, 그 과실의 최대 수혜자이다. 임금 등 근로조건은 한번 올라가면 내려올 줄 모르기에, 노동의 초과임금은 자본이 지속적인 초과착취에 나서도록 압박한다. 초과이윤과 초과임금은 ‘악순환’하면서, 협력업체나 소비자에 대한 가혹한 갑질을 지속하게 한다.

노동(시장) 역시 불법적 갑질에 큰 책임이 있는데 장하성은 여기에 대해 너무 관대하거나 둔감하다. 재벌 대기업의 초과착취를 성토하면서도, 재벌 대기업의 고용임금 수준은 정상으로 간주하며, 노동(시장)에 불평등의 책임을 거의 묻지 않는 것은 여간 심각한 논리적 모순이 아니다.

한국의 불평등의 근원은 자산격차보다는 소득격차라는 장하성 전 교수

무슨 일 하냐 vs. 어디 다니냐

노동시장의 이중화를 생산물 시장 이중화의 단순 파생물로 보는 사고방식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에서는 잘 나가는 기업에 다니면, 직무에 상관없이 임금 등 근로조건이 좋은 게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 상식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진국의 노동시장은 대체로 산업이나 지역 차원에서 직무성과에 따른 근로조건의 표준(직무성과의 공정 가격)이 있다. 천문학적 수익을 내는 회사에 다녀도 직무성과가 낮으면 고임금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장기근속한다고 해도 생산성(숙련)이 허용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임금이 계속 올라가지도 않는다. 업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근로자가 있다면, 정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큰 어려움 없이 합법적으로 내 보낼 수가 있다.

쌍용차 같은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유사시 결행하는 정리해고가 살인으로 간주되지도 않고, 또 살인적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노조가 세다고 해도 명실상부한 산별노조이기에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근로조건은 외부노동시장 수준과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선진적 노동시장은 공정성, 연대성, 유연성과 적정한 사회안전망에 의해 생산성과 임금 등 근로조건이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 기업 횡단적인 근로조건의 표준이 관통한다.

그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어디 다니느냐’보다 ‘무슨 일을 하는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어디 다니느냐’가 최대 관심이다. 소속직장의 성과를 근로자 개인의 성과와 동일시하는 문화 때문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최고 선망하는 직장은 세금이나 독점 요금으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공공부문일 수밖에 없다. 그다음이 생산성과 지대(초과이윤)가 둘 다 높은 글로벌 초대기업이고, 그다음이 생산성은 낮아도 지대가 두터운 독과점 대기업과 은행, 방송, 통신 등 규제·면허 산업이다.

사람값(근로조건)이 그 본원적인 능력, 즉 생산성이 아니라 소속 직장에 따라 천양지차가 나는 직장계급 사회라는 노동시장의 치명적인 부조리를 바로 잡지 않고, 재벌 대기업의 초과 착취와 과소 고용을 바로 잡을 수는 없다. 물론 선진국처럼 직무에 따른 기업 횡단적인 표준을 정착시킨다고 해도, 기업과 개인의 생산성 격차가 있는 한 생산물 시장의 이중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압력이 한결 줄어들면서,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문제는 훨씬 완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잘 나가는 기업에 다니면, 직무에 상관없이 임금 등 근로조건이 좋은 게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 상식처럼 굳어진 곳(출처 MTN)

장하성은 한국 사회의 전방위, 전층위에 걸쳐서 일어나는 무한갑질(초과착취와 부담전가) 구조를 잘 모르다 보니, 2차, 3차, 4차 협력업체의 피폐도 하청 구조의 최정점인 재벌(초대기업)에 돌린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재벌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의 피폐와 저임금 및 고용불안은 원청(재벌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의 오남용(갑질)에 어느 정도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2차, 3차, 4차 협력업체에까지 묻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2차는 1차의 책임이고, 3차는 2차의 책임이고, 4차는 3차의 책임이다. 협력업체 중에는 불법적인 갑질이나 불리한 거래를 거부할 힘(대항력)이 있는 존재도 적지 않다.

반대로 원청이 아무리 공정하고 합법적인 행태를 취해도, 협력업체의 독보적인 기술력(교섭력)이 없는 한, 저가 입찰 경쟁이 내몰릴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얼마든지 피폐하고 불안할 수 있다. 협력업체 전체의 피폐와 저임금 및 고용불안의 책임을 재벌 대기업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갑질 탓으로 돌리는 것도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요컨대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모든 공무원과 사회 구성원들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재벌 대기업이 1차 협력업체에게 ‘공정하고 합법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해서 가치생산사슬 전반이 공정하고 합법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장하성은 오로지 재벌 대기업의 불법적인 갑질에 혐의를 두고, 국가규제와 국가형벌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물론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7년 7월호에 게재된 글(장하성식 현실 괴리 정책 한국경제에 부담)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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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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