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성 해방 ‘피임’에 달려

박찬운 교수의 글은 이해하지만, 한국에서 양성평등을 위한 성 해방이라는 게 사실은 남녀 모두 합의되지 않은 사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일단 남녀 자신도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서 ‘착취적 방종’과 ‘이중잣대’를 투영하는 문제가 있다. 즉, 성을 소비(?)하는 측면에서는 여성의 개방성을 옹호하는 반면, 배우자 선택(정조 관념)이나 직업여성에 대한 성적 자기 결정권 관점은 저열한 수준이다.

문제는 여성도 성 개방에 대해서 거부감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로 ‘피임’에 대한 인식이다. 남성은 ‘무책임’, 여성은 ‘수동성’과 ‘무지’를 강요받는다.

콘돔
콘돔

섹스숍 이용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사적으로는 방종에 가까운 성 문화의 산물이다. 개인으로서 한 인격으로서의 성생활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성도덕이 혼재되어있다고 해야 할까나?

후자의 경우에는 당사자의 합의와 약속보다 우선 고려되기도 한다. 동거와 미혼모, 청소년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사회적 공론에 대해서도 그러한 인식이 투영되고 있다.

이런 건 여성주의 운동을 하는 여성에게서도 드러나는 이중잣대이기도 하다.

확실한 사례로 잘못된 인식을 꼬집자면 ‘성을 판매하는 직업여성’이라고 일이 아닌 ‘사적’으로도 난잡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여성이 공공연하게 매우 개방적 성 인식을 드러낸다고 당연히 나에게 열린 여자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게 인지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야하게 입었다면 하고 싶다는 말 아니야?”라는 저열한 해석이랄까? 좀 야하게 입었고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너와 한다”거나 “네가 노골적으로 시선을 보내는 것을 환영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닌데 말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10개월간의 임신 기간은 자연상태에서 약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본래 여성은 남성 선택이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이건 인간뿐만이 아니라 암컷이 임신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해당한다.

게다가 여성의 성적 억압이라는 관점은 영장류가 무리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 만들어졌다. 무리의 리더인 수컷은 많은 암컷을 거느리는데, 인류가 유목이나 농경을 하면서 물적 기반을 상속함에 따라 여성에게는 정조관념이 탄생했다.

바로 모계는 자신의 핏줄을 직접 확인할 수 있지만, 부계는 탄생한 아기가 ‘내 핏줄’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부장적인 정조관념이 탄생한 것이다. 영장류였던 상태에서는 무리의 새로운 리더는 일단 이전 리더의 태어난 새끼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행동을 한다. 이건 사파리의 다른 포유류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성 해방은 사회적 인식도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피임’을 통제하는 순간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성관계에 대한 위험부담이 여성에게 사라지는 과학적 성취가 탄생하면 사실 정조관념은 사라진다. 그냥 행위의 하나로 되어버린다.

성의 완벽한 해방은 ‘피임 도구’의 확실성에 달렸고 현재 수준에서는 피임 인식의 보편화 수준에 달린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사후피임약 복용에 관한 절차 강화가 딱히 여성에게 반가운 일은 아니다.

임형찬

헬조선 개청년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