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참사 ‘박기영 사태’ 또다시 반복할 것인가

한국생명윤리학회 역대 회장과 제1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윤리계 위원이 지난 14일 정부는 ‘박기영 사태’를 계기로 올바른 생명윤리 및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라는 성명을 냈다.

지난 2006년 1월 10일, 황우석 연구팀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을 규명하기 위해 구성된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20여 일 간의 조사를 거쳐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요지는 “황 교수의 2005년 및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은 날조되었고, 복제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2005년 논문의 경우, 2개의 줄기세포로 11개 줄기세포의 데이터를 만들어 냈으며, 그 2개의 줄기세포도 복제된 것이 아니라 미즈메디 연구소의 수정란 줄기세포이다.

한편 매매를 통한 것과 여성연구원들의 난자를 포함해 2000개 이상의 난자가 연구에 사용되었다. 황 교수의 거듭된 부인과 전혀 다르게 여성연구원 P는 황 교수가 직접 병원에 데려가 난자를 채취하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황우석 사태의 전말을 알고 싶다면 ‘진실, 그것을 믿었다’ 일독을 권합니다

이로써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과학사기사건’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사태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구성된 바로 다음 날인 12월 16일, 황우석 교수는 ‘복제배아 줄기세포’가 누군가에 의해 바꿔치기 당했다고 주장했고,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며칠 전까지, 과학적 근거를 갖춘 여러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였다.

사실 황 교수팀은 ‘적어도’ 한 달 전에 복제배아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황 교수팀은 연구의 문제점들을 치밀하게 파헤쳐 들어온 〈피디수첩〉에 11월 12일 줄기세포를 내주면서 자신들도 DNA 검사를 하겠다고 공언했고, 그 결과를 11월 18일에 받았다. 검사 결과는 미즈메디의 수정란 줄기세포였다.

황 교수가 최소한의 양심과 양식이 있다면, 또 자신이 누군가에게 속은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때 그 사실을 공표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가 그때부터 한 달 동안 한 일은 오직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방해하는 일이었다.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피디수첩〉 규탄 집회, <YTN>의 ‘청부 취재와 보도’, ‘난자기증자 1000명 돌파 기념·연구복귀 기원 진달래꽃 행사’, 대통령까지 포함된 고위인사들의 일방적인 황우석 비호, 급기야는 ‘서울대병원 입원극’까지 한국사회를 온통 광란으로 몰아넣는 일들이 이어졌다. 한 사람의 생각과 태도에 따라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

영화 제보자

그랬던 그가 왜 갑자기 줄기세포를 바꿔치기 당했다고 주장하게 된 것일까? 온갖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조사가 불가피해졌고 조사가 시작되는 이상 진실은 밝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택한 길은 고백과 참회가 아니라 느닷없는 ‘바꿔치기’였다.

복제배아 줄기세포는 만들어진 적이 없다.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그것을 만드는 ‘원천기술’도 존재하지 않는다. 황 교수가 과학 연구의 아이콘이자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위인’으로 떠오른 계기는 1999년 2월 12일에 태어났다는 ‘복제 암송아지 영롱이’다. 하지만 영롱이가 복제로 만들어졌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다시 말해 영롱이는 복제 동물이 아니다. 그가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광우병 내성 소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 요컨대 ‘황우석의 성공 신화’는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온통 거짓 위에 떠 있는 신기루일 따름이다.

이런 허구 위에서 아무런 검증도 없이 막대한 지원을 받아가며 희대의 과학사기극을 벌인 책임, 더욱이 한 달 남짓 온 사회를 광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은 책임은 물론 황 전 교수에게 있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크고 작은 과학사기극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온 국민을 광란 소동에 끌어들인 경우는 세계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하다.

이런 사기극과 그보다 더 악랄한 광란극은 정부와 관계 당국의 공조와 방임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2005년의 사태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바 있다. 그리고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정부와 관계 당국의 한가운데에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있었다. 당시 박 보좌관은 이 문제에 관해 대통령의 눈과 귀였고, 입과 손이었다.

박기영 ‘황금박쥐’ 일원으로 불리며 황우석 도와(출처 JTBC)

박 전 보좌관은 지난 ‘12년’(11년이라고 하는 것은 책임 회피를 위한 술책이다) 동안 참회와 사죄는커녕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8월 10일과 11일의 ‘사과’조차 아무 내용도 의미도 진정성도 없는 허언에 불과하다. 더욱이 사퇴 이후 그가 보인 언행은 12년 전의 사기극과 광란극의 피해자인 국민을 또다시 능멸하는 만행이다.

자신이 가장 크게 책임져야 할 그 끔찍한 사태에 대해 반성할 기미조차 없는 박 전 보좌관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임명한 것은 단순히 인사 참사에서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가 그 사태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비슷한 사태가 반복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12년 전의 ‘과학사기 광란극’은 과학기술을 단지 경제성장과 이윤추구의 도구로 삼으려는 정부의 개발주의 과학기술정책에서 배태된 것이었다. 또한, 성장과 이윤을 위해서는 인간의 생명과 인권은 희생되어도 무방하다는 반인간적이고 반민주적인 사고가 낳은 산물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산물인 이러한 개발주의 과학기술정책을 청산하지 못하고 역대 모든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마저 답습하려 하는지 안타깝고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우리는 새 정부가 생태 친화적인 에너지 정책,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중시하는 보건의료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려는 데에 대해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것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과학기술 정책과 인사를 고집하는 점에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용납할 수도 없다. 이런 처사는 촛불 시민이 바라는 개혁에도 크게 벗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이번 ‘박기영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올바른 생명윤리 및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12년 전의 국기문란에 준하는 과학사기 광란극과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 책임자의 진지한 성찰 및 반성과 명시적인 견해 표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