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성인이 아니라 학인(學人)으로 봐야 한다

“군자의 도란 게 세 가지가 있으나 나는 이에 한 가지도 능한 것이 없구나. 어진 자는 근심치 아니하고 지혜로운 자는 미혹되지 않고 용기 있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공이 이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어 말씀하신 것이다”(헌문편 30장)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힘써 탐구하는 사람일 뿐이다”(술이편 17장)

공자를 보면 늘 학문 앞에서 정직했고 겸손했는데 그러면서 자성(自省), 자계(自戒)를 할 줄 알았다. 학문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경계할 줄 알고.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소탈하게 드러냈고. 그런 사람이 공자였다. 그렇기에 그 유명한 위정편 4장은 일반적인 해석과는 다르게 독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뚜렷한 지향점이 섰으면
마흔에 유혹되지 않았으며
쉰에 천명을 깨달았고
예순에 남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고
일흔이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행하여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노라.”

15세 지우학
30세 이립
40세 불혹
50세 지천명
60세 이순
70세 종심소욕불유구

공자가 인생역정을 돌아보며 한 말이다. 기존에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나잇대별로 공자가 성취한 것들을 순차적으로 말했다고. 이른바 스테이지 클리어다.

영화 갈무리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 갈무리

내가 보기엔 이 해석은 전혀 아니다. 겸손한 공자 성격상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회한에 차서 한 말이고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해야 한다.

“나는 나이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어야 했는데
나이 서른에 뚜렷한 지향점이 섰어야 했는데
나이 마흔에 유혹되지 않았어야 했는데
나이 쉰에 천명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나이 예순에 귀가 순해졌어야 했는데
나이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했는데.”

이렇게 해석하는 게 바르다고 본다. 논어를 읽을 때 가장 문제가 그거다. 공자를 성인으로 보는 시각. 성인으로 전제하고 있는데 성인이 아니라 그냥 우리와 같이 살아 숨 쉬는 사람으로 보며 특히 학인(學人)으로 봐야 한다. 학문을 좋아했고 사랑했고 그걸 통해 성장하려고 했던 사람이 공자다.

늘 공부와 학문 자기 성장 앞에서 겸손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살피고(자성) 자신을 경계했으며(자계) 소탈하게 자기 고백을 했던 사람 공자이기에 성인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사람이자 학인이었다.

그렇기에 위정편 4장의 공자의 말은 이와 같이 해석하는 게 옳지 않을까. 기존의 해석보단 훨씬 사람 냄새 나고 또 공자의 가르침이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나와 가까이 있는 거 같아서 나도 좀 해보겠다, 분발도 좀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논어는 성인이 진리를 설파한 것으로 보면 안 된다. 사람이 한 이야기들을 모은 거고 성인이 아닌 학인이 한 말들이 기록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임건순

멸종 위기의 젊은 동양철학자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리를 간다' 저자
moo925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