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주의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은 ‘진보 파시즘’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68운동을 통해 ‘진보 파시즘’ 바라보기

유령 하나가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을 둘러쓰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이라는 근거 없는 질서를 강요하며 이 맥락들을 가지고 극단주의를 설파하는 유령이 최근 세상을 떠돈다. 이 유령에 대해 일부 좌파세력들은 (급진적이나) 진보적 무지개 빛 움직임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설파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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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자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움직임이 일종의 ‘파시즘’ 양태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유령 같은 파시즘의 정체를 어떻게 규명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고전주의-신파시즘과는 확실히 다른 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한 부분의 맥락에서 필자는 유령 같은 현재의 새로운 파시즘 경향과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그 맥락과 근원적인 면이 필자 시선에서는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진보 파시즘(Progres fascism)’으로 명명할 수 있다.

진보 파시즘이라는 단어는 서로 모순적인 단어로 보일 수 있다. 인류의 역사를 전진시키는 의미 ‘진보’와 극단주의적인 이념 ‘파시즘’이 어떻게 한 단어를 이룰 수 있냐고 말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진보와 파시즘이 결합한 사례는 존재한다. 바로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68운동 말이다.

68운동은 21세기의 진보 파시즘과 닮았다

미국의 베트남전에 대한 반발로 출발한 68운동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에 불어닥친 반체제·반문화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전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그 끝은 극단주의로 귀결되면서 점차 대중적 지지를 잃어버렸고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면서 실패한 운동이라는 딱지를 붙게 된다.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68운동

68운동주의자들은 그 당시에 상당히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으로 인식되던 (왜곡된) 마오주의와 문화대혁명(문혁)을 지지했으며 초창기에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시각을 수용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적 흐름을 갖추고 있는 68운동과 현재의 진보 파시즘은 상당한 유사성을 갖추고 있다.

우선 지지계층부터 살펴보자 68운동의 운동의 주축은 ‘신좌파’ 대학생이라는 청년 계층인데 이들은 자신을 신좌파라고 명명하면서 그들 스스로 구좌파로 분류하는 ‘현실 사회주의’ 좌파들과 선을 그으며 “우리는 다르다”는 노선을 분명히 했고 비판의 목소리를 올렸다.

이는 진보 파시즘의 주요 지지계층인 극단주의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들에게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극단주의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청년 계층이라는 점과 더불어 그들의 행동 과정에서 기존의 진보 운동권 계열과는 선을 긋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인 점에서 유사성을 관찰할 수 있다.

두 번째, 그들의 이념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정 시각을 이용했다는 점도 유사성을 띠고 있다. 비판이론으로 대표되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시각은 68운동의 초창기 주요한 시각으로 이용되었다가 그들 스스로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게 된다. 이는 진보 파시즘이 그들의 이념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이용했다가 그들만의 독자적인 행보로 뻗어 나아간 것과 상당한 유사성을 띠고 있다.

세 번째, 그들은 자신을 ‘꽤 진보적인’ 사람들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68운동의 지지자들은 자신을 신좌파라고 말하면서 과거의 모든 관습·시스템을 타파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대한 논리적 맥락 중 하나로 그들은 마오주의와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던 문화대혁명에 열광하기도 했다.

진보 파시즘주의자들 역시 자신들이 꽤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이라는 셀프 인식을 통해 현 사회체제에 대한 그들만의 페미니즘적인 방식으로 타파를 이야기한다. 진보 파시즘 대동맹에 속한 정치적 올바름 주의자들은 이에 한 발짝 더 나아가 언어와 행동에 대한 (그들만의) 페미니즘한 질서를 강요한다.

자유주의 관점에서 68운동을 통해 진보 파시즘 바라보기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68운동과 진보 파시즘은 소름 끼칠 만큼 유사성을 띠고 있다. 이 유사성을 가진 두 상황에 대해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성이 존재한다. 이 시점에서 위대한 자유주의자 한 사람을 소개하자.

1899년에 태어나 일찍이 자유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며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올린 위대한 자유주의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회에 진보적 가치로 지지를 받던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의 주장대로 현실 사회주의는 몰락했다. 그런 그가 사회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설명한 논지를 통해 68운동을 보고 현대의 진보 파시즘을 진단하고자 한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출처 EBS)

먼저, 하이에크의 구성주의적 합리주의 오류를 살펴보면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하다고 본 하이에크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라고 설파했다. 그러나 이성의 힘을 과신해 자유를 파괴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같은 행동을 두고 하이에크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 오류라고 비판했다.

인간은 구조적으로 무한대로 무지한데 이를 거스르고 이성이 완전하다는 오류에서 기인해 이성의 힘을 믿고 인위적 질서의 강제함을 통해 자유를 파괴하는 그 부분을 지적했다. 이 맥락을 통해 하이에크는 이후 ‘치명적 자만’이라는 논지를 꺼내 듦으로써 왜 자신의 사상이 다른 사상에 비해 우월함에도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데 실패하겠느냐는 설명으로 확장케 한다.

하이에크는 이같은 맥락적 논지를 통해 사회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했다. 인간의 이성을 통해 사회를 유토피아로 만들 수 있다는 사회주의의 논리에 대해 인간의 자만에 불과하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입장이다.

이 논지에 대입해 68운동과 진보 파시즘 조류를 바라보자. 68운동의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진보적’이며 ‘우리는 꼰대들과 다르다’는 신좌파적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하이에크가 지적한 치명적 자만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치명적 자만은 진보 파시스트들이 ‘우리는 한남들과 달라’, ‘우리가 한남보다 더 똑똑해’라며 자신들을 합리화시키는 (그들만의) 급진주의 페미니즘 선민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68운동은 마오주의와 중국에서 벌어진 문화대혁명에 열광했다. 여기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뒤섞여 있는데 대부분은 하이에크의 사상적인 설명으로 지적되는 오류이다.

68운동 지지자들은 서구적 종교관에 대한 반감으로 동양적 사상에 대한 동경을 보냈고 그런 맥락에서 동양에서 벌어진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수장인 마오쩌둥이 진행하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열광을 보냈다는 것이다.

문화대혁명 포스터

문화대혁명(Cultural Revolution)은 1966년 5월부터 1976년 10월까지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 주도한 극좌 사회주의운동으로, 계급 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을 통해 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들을 제거하고 권력 재탈환을 기도한 일종의 권력 투쟁이다. 공식 명칭은 ‘프롤레타리아계급 문화대혁명’이며, 약칭 ‘문혁’이라 한다.

이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 오류를 가지고 있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사회주의 혁명은 그 자체로 구성주의적 합리주의 오류 덩어리다. 이성의 힘을 과신해 인위적 질서를 강요하는 사회주의는 결과적으로 자유를 빼앗음으로써 그 자체로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이런 맥락에서 중국의 사회주의 역시 사회주의 내의 근본적인 문제를 안을 수밖에 없다.

문화대혁명 역시 이성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유토피아로 만드는 ‘인위적인 질서’이며 따라서 그 자체로 치명적인 자만을 가지고 있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 오류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68운동의 보여준 특정 사상에 대한 열광적인 분위기는 68운동 지지자 스스로가 극단주의 행보를 보임으로써 그들이 지지했던 사상의 ‘문제적인 본질’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진보 파시즘 내의 극단주의 페미니즘 운동과 정치적 올바름 주의자들의 행동과 인식적 오류에도 맞닿아 있다. 그들은 자신의 파시즘화 된 ‘집단 이성’을 가지고 그들의 우월주의를 표출하고 그들이 만든 페미니즘적인 인위적 질서를 강요하면서 기존의 진화적 축적 인식들을 ‘다 때려 부수는’ 모습에서 68운동의 극단주의화 경향뿐만 아니라 문화대혁명의 홍위병들과 유사성을 띠기에 충분하며 이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 오류의 폭력화된 행태로 설명할 수 있다.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로 점철된 진보 파시즘의 ‘치명적 자만’

위의 내용을 통해 자유주의적인 관점을 통해 68운동을 통해 현재의 진보 파시즘을 살펴보았다. 치명적 자만과 구성주의적 합리주의 오류를 진보라는 형태의 포장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68운동을 잇는 최악의 행태라고 볼 수 있다.

재미난 것은 진보 파시즘과 닮아 있는 행태를 보였던 68운동에 대해 프랑크푸르트학파 내에서도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일례로 비판이론을 만든 위르겐 하버마스는 68운동에 대해 “좌파 파시즘에 불과하다”라고 강한 비판을 제기하다 68운동 지지자들에게 공격을 받은 바가 있다.

하버마스가 68운동의 극단주의적 폭력적 성향을 보고 좌파 파시즘이라 규정한 것처럼 얼핏 진보 운동으로 착각하게 한 극단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 대동맹은 그 극단주의적 성향과 폭력성에서 파시즘으로 분류되어야 하며 그들에게 걸맞은 표현은 진보 파시즘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극단적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 대동맹으로 이루어진 진보 파시즘 세력들은 결코 사회적 진보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들의 폭력적이고 극단주의적인 성향은 ‘혐오는 사랑보다 강하다’는 신파시즘에 맞서는 현대 진보 세력의 가치와는 정면적으로 배치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의 행위에 따른 반동적 움직음으로 반대급부의 파시즘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68운동의 폐해의 전철을 진보 파시스트들 역시 그대로 밟아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