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런던 화재 참사’ 막을 고분자·나노 기술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인간의 문화와 생활은 꾸준하게 발전했다. 문명 발달과 함께 인류가 쓰는 재료의 개발 또한 같이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이것을 Age(시대)라고 명명했고 석기시대를 시작으로 청동기시대, 그리고 철기시대가 열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무슨 시대일까? 필자는 서울대 화학과 최태림 교수의 말을 빌려 현시대를 ‘Polymer Age(고분자시대)’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류는 목재가 아닌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성능이 우수하며 값싼 재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부산물을 이용해 고분자, 우리가 흔히 아는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가장 처음으로 널리 알려진 고분자로는 나일론 스타킹이 있다. 목재의 접착을 위해 접착제를 만들기도 했으며 이후 폴리프로필렌,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수지) 등 여러 고분자를 개발했다.

현재는 식기부터 자동차, 항공기까지 모든 분야에 고분자가 사용되고 있다. 필자가 두드리는 키보드도 고분자이며 이 기사를 보는 독자의 모니터나 스마트폰 또한 고분자다. 건물에 많이 쓰고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단열재도 있다. 건축용 단열재 종류는 글라스울(유리섬유)이나 현재는 금지되었지만 예전에 널리 사용되던 석면 등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 고분자 발포 소재를 사용한 경우도 많다.

사진=바깥판과 내부판 사이에 단열재(유리섬유)를 끼워 시공

고분자 단열재는 저렴한 가격과 시공과정에서의 안전성과 작업 편의성 그리고 우수한 단열성능을 보여주기에 많은 건설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우수한 고분자 재료가 건축 단열재로 사용될 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따른다. 바로 화재에 대한 안전성이다.

기본적으로 고분자는 원유 정재 부산물로 만든다. 원재료가 석유이다 보니 잘 연소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고분자 재료에 불이 붙었을 때 화재가 급격하게 커지게 된다(암모니아 같은 할로겐족 원자를 포함하는 고분자는 기본적으로 난연성을 가지고 있지만, 연소 시 할로겐족에서 만들어지는 독성물질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렇다면 화재 난연성에서는 어떤 부분이 중요할까? 아예 불에 타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연소하는 유기물은 다른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불에 타는 성질이 꼭 위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불에 얼마나 천천히 타는가이다. 같은 양의 물질이라도 천천히 타기 시작하면 거주자가 침착하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그러나 급격한 연소를 일으키는 물질은 순식간에 불이 건물 전체로 번진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은 올해 6월 14일에 일어난 런던 그린펠타워 아파트 화재다. 1973년 완공된 이 아파트는 2016년 리모델링을 거쳤으나 기본적인 스프링클러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외부 단열을 위한 고분자 발포 폼의 양면에 알루미늄 패널을 덧대 만든 외장재를 사용했다. 최초 발화지점을 시작으로 불길은 위층으로 그리고 양옆으로 퍼져나가 결국 건물 전체를 뒤덮었다.

영국 런던 아파트 화재(출처 BBC)

만약 이 건물에 난연성 외장재를 사용했다면 거주자들이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피해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고분자 소재의 건축재는 충분한 난연성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난연성을 어떻게 만들까? 초기에는 고분자의 난연성을 만들기 위해 할로겐족 원소를 포함하는 물질을 첨가하는 방법을 주로 썼다. 그러나 할로겐족 원소가 포함된 플라스틱은 연소과정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성 가스를 방출해 화재 대피 인원의 생존율을 급격하게 떨어트리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되는 추세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소과정을 화학적으로 방해하는 물질을 사용했다. 고분자 같은 유기물이 열에 의해 연소하는 과정에서 큰 분자가 작은 분자로 쪼개지는데 그 과정을 화학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방해를 받은 물질은 가연성을 띠는 가스로 변하지 않고 숯과 같은 탄소 덩어리로 전환되며 연소가 지연되는 효과를 낸다.

이에 나노 크기의 Clay, 즉 점토를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흔히들 나노-클레이로 불리는 이 물질은 무기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우 얇은 판 형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판상 형태의 무기질 재료는 플라스틱 내부에 촘촘히 퍼져 존재하게 되며 재료의 연소가 일어날 때 열에 의해 분해돼 불에 잘 타는 물질들이 산소와 접촉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리고 작은 판들이 서로 기대는 형상을 만들어 아주 작은 공극을 만들고 이것들이 열을 차단하고 연소와 분해 부분의 거리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연소 특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나노 크기의 물질들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다. 어떤 하나의 덩어리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덩어리를 한번 두번 세번 계속 반복해 자른다고 생각해 보면 질량은 일정하지만, 표면적은 계속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나노 크기가 될 때까지 반복하게 된다면 표면적은 엄청나게 커진다. 단 1g의 물질이 큰 강당 하나를 덮을 만큼의 표면적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넓은 표면적에서 기인하는 나노 물질들의 특성을 이용한 연구가 이학·공학 분야에서 폭넓게 연구되고 있다. 실생활의 여러 부분에 고분자 기술 및 나노 기술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김훈

김훈

서울대 박사과정 수료 연구원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산림과학부 환경재료과학 전공·나노-고분자 복합재료 및 접착 전공
서울대 김현중 교수 연구팀, Lab. of Adhesion & Bio-Composites
c12o2cl4@nate.com
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