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포비아 페미니즘

<포비아 페미니즘>은 지난해 ‘메갈리아·워마드’ 논란과 ‘강남역 사건’에서 출발하여 ‘DJ DOC 여혐 논란’에 이르기까지 타인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을 자극하는 최근 페미니즘 담론의 조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책이다. 국내의 저명 페미니스트 일부는 메갈리아·워마드의 혐오 발언을 정당화하며, 잘못되거나 왜곡된 통계를 인용하며 확산시켰고, 남성 전반에 ‘잠재적 가해자’ 혹은 ‘혐오주의자’ 낙인을 가하며 성별 대립 프레임을 고착화했다. 이처럼 남녀 간의 혐오감과 공포심을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부추기며 실제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는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가 바로 ‘포비아 페미니즘’이다.

포비아 페미니즘. 박가분 지음. 인간사랑 펴냄

국내 최초로 ‘포비아 페미니즘’에 이의를 제기하다!
이 책은 그동안 ‘약자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백지수표 아래 양해되었던 페미니즘 일각의 잘못된 관행과 담론에 대한 일련의 비판적 논점을 제기한다. 일부의 페미니즘을 비롯한 진보진영 일각의 담론은 도덕적 엘리트주의자를 ‘자처’하는 집단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현실에서 유리된 ‘정치적 올바름’의 규범에 집착한다. 이로써 이들은 방향을 잃고 다수의 지지와 사회적 연대로 사회구조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정치적 추동력을 상실했다. 또한, 페미니즘 일각은 취사선택되거나 왜곡된 통계와 사실관계를 유포함으로써 공포를 확산시키는 황색저널리즘과 공포상업주의에 호소해왔다. 나아가 페미니즘 일각은 남성집단 전반에 ‘잠재적 가해자’ ‘혐오성향’ ‘한남’ 등의 낙인 프레임을 씌움으로써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분리주의 성향으로 치달았다.

물론 이러한 페미니즘 일각의 문제는 페미니즘 자체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유리된 ‘정치적 올바름’의 규범에 집착하는 진보·좌파 일각의 잘못된 경향은 글로벌한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리버럴은 이를테면 백인 하층계급 남성 노동자들이 보수반동이 되었다고 비난하지만, 그들이 왜 이민자와 외국자본에 대한 경계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돌아보지 않는다. 이렇듯 ‘자칭’ 도덕적 엘리트들이 다수의 대중을 차별주의자와 혐오주의자로 낙인찍는 관행은 결국 트럼프 당선이라는 불행한 결과로 이어졌다.

여러 학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포 상업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왔다. 언론·관료·학자 등의 엘리트 집단은 대중의 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겁주는 이야기’들을 즐겨 사용하지만, 이는 대중의 정치적 주체화를 낳기는커녕 오히려 사회 전반의 정치적·도덕적 퇴행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프랭크 푸레디라는 사회학자는 이제 좌파와 우파는 정책과 강령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대해 겁에 질려 있는지’로 구분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것은 개혁과 변화를 향한 추동력보다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반동으로 이어졌다.

한편 이 책은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의 관행을 비판한다고 해서 페미니즘이 문제를 제기하는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따라서 이 책은 그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현실, 이를테면 남녀임금 격차와 가사노동의 불평등 그리고 여성 대상의 범죄 문제에도 접근한다. 그러나 정작 이 문제에 접근할수록, 왜 남성과 여성의 대결 프레임이 무의미한 것인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불행과 차별을 겪는다. 여성이 더 많은 가사노동을 전가 받는다면 남성은 야근·잔업 등의 더 많은 (비자발적)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남녀 모두가 환영할 수 있는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 시간당 임금의 상승과 노동시간 줄이기 그리고 일자리 나누기와 같은 정책. 이것을 페미니즘이라고 말한다면 대다수의 사람이 긍정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여성 대상의 범죄를 환영하는 남성은 아무도 없다. 여성의 복지와 치안 문제 해결 활동에 많은 남성이 종사하거나 납세자로서 그 재원을 조달한다. 그러나 여성을 일방적인 약자·피해자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상정하는 포비아 페미니즘의 논의 구도로는 절대로 젠더이슈에 대한 사회적 연대와 합의를 이룰 수 없다. 결국, 이 책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남녀 대결 구도보다 더 나은 논의의 양상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어지는 ‘팩트폭력’
박가분의 전작 <혐오의 미러링>에서는 여성 혐오에 대한 ‘미러링’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메갈리아·워마드 유저들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메갈리아 신드롬이란 실은 디씨인사이드 여초 갤러리에서 오래전부터 놀이문화처럼 존재해왔던 혐오 발언을 무차별적으로 확산시킨 것이 사후적으로 정당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지적한다. 또한, 그는 메갈리아·워마드 내부 게시물의 내용과 게시물 추천 수를 통해 메갈리아 유저 사이에서 일베와 다를 바 없는 소수자·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 만연했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다. 이렇듯 실제의 사실을 통해 메갈리아 옹호자들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반론을 제시함으로써, 박가분은 일각에서 ‘팩트 폭격기’, ‘팩트리어트’, ‘팩트 폭력범’ 등의 별명을 얻게 되었다.

<포비아 페미니즘>에서도 그는 주요 사안들에서 페미니스트들이 가져온 잘못된 근거와 논리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몇 가지만 열거하자면, 강남역 사건 당시 즐겨 인용된 주요 국가들의 살인 피해자 성비는 실제 여성의 치안 문제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전달해주지 않는다. 강력범죄의 피해자의 80%가 여성이라는 보도는 한국 특유의 강력범죄 통계분류 체계의 산물이며 강남역 살인사건이 제기한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한국이 아동성범죄 세계 4위라는 <경향신문>의 언론 보도는 실제로는 5개국 사이의 비교를 인용한 것이었다. 아동성범죄를 부추긴다는 대중문화의 이른바 ‘로리타 컨셉’은 그 실체가 불분명하며 실제로는 그것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조차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 한국의 높은 남녀 임금 격차는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임금을 지급한 결과라기보다는 오랜 기간 가족임금제를 취해온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이로 인한 여성 경력단절의 문제 그리고 단기간의 압축성장과 경제구조의 단절이 결합한 산물이다. WEF의 성평등 순위(115위)는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실제 여성의 삶의 수준을 국가 간에 비교하는 지표가 아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녀가 각각 지배·피지배 계급과 같은 젠더권력의 시스템에 사로잡혀 있다는 주장에 대한 무수한 반례가 존재함에도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들만을 취사선택하고 일반화한다. 일베와 같은 여성 혐오가 사회적 병리 현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에노 치즈코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성 혐오란 그 자체로 보편적인 사회문화구조라고 할 수 없다. 미소지니는 여성 혐오보다 더 많은 심오한 의미를 함축한다는 주장 자체가 모호한 언어에 의존한 논변에 불과하다. 페미니즘 일각은 개념의 의미를 무한히 확장하거나 개념을 새로 창조하는 것으로 설명과 논증을 대체하는 나쁜 습관을 지니고 있다. 여성이 중요한 권한을 가질 때 남성보다 더 평화롭고 비폭력적인 해법을 가져온다는 것은 완전한 환상이다. 폭력성에 있어서 남녀는 실제로 큰 차이가 없으며 실제 남녀 간에 이루어지는 폭력의 양상을 관찰해야 문제의 해법을 가져올 수 있다. 등등···. 이렇듯 이 책은 그동안 페미니즘 내부에서 무비판적으로 통용된 통념과 잘못된 논리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다.

외면받는 포비아 페미니즘의 폐단
포비아 페미니즘의 폐단은 단지 일부 언론의 선정적 보도와 학자의 곡학아세 그리고 인터넷의 과열된 논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포비아 페미니즘이 부추기는 타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 그리고 대결 구도와 낙인 프레임은 보통 사람들에 대한 집단 폭력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이는 성소수자와 같은 소외계층과 약자에 대한 괴롭힘으로도 이어졌다. 이는 일베가 과거 저질렀던 사이버 폭력 및 집단 괴롭힘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석연치 않은 폭로로 전국적으로 성추행을 일삼는 악덕 업주로 보도되어 생활 파탄에 이른 한 자영업자의 사례에서부터 시작해서 SNS의 성폭력 폭로 캠페인이었던 ‘해시태그’ 운동 당시 있었던 ‘일부’ 거짓 폭로 때문에 고초를 겪은 사람들에 이어 성소수자와 여성 자신이 특정 페미니즘 이슈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협박과 신상털이 그리고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는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실제로 제보받은 사연들로 구성된 이 대목은 포비아 페미니즘의 확산이 실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책의 구성
이 책의 1장은 우선 지난 미국 대선에서 혐오 발언과 성차별 발언을 일삼았던 도널드 트럼프가 주류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의 예측과 달리 왜 대통령에 당선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혹자는 이것이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혐오와 차별이 심각하다는 문제로 받아들이며 그래서 더 많은 정치적 올바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겠지만 그것은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한 진보 담론이 반대진영에 대한 낙인찍기와 편 가르기에 집착하게 됨으로써 대중의 지지에서 멀어졌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실제 삶의 문제에서 유리된 정치적 올바름의 유행이 진보의 정치적 무능력을 낳았다는 것이다.

2장은 현재의 페미니즘 담론의 경향을 요약하는 ‘포비아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에 할애될 것이다. 포비아 페미니즘이란 비현실적인 공포심과 혐오감을 부추김으로써 자기 정당화를 하는 페미니즘 담론을 의미한다. 포비아 페미니스트의 심리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공포와 혐오에 입각한 확증편향이다. 포비아 페미니즘은 공포와 혐오를 자극하는 취사선택되거나 왜곡된 정보들을 통해서 자신에게 무한한 정당성을 부여하며 진영 바깥과 어떠한 진지한 소통도 거부하는 퇴행적이고 자폐적인 페미니즘을 의미한다. 포비아 페미니즘의 조류는 특히 작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선정적인 방식으로 왜곡하는 데서 정점에 달했다.

3장은 남녀 임금 격차에서부터 여성 연예인 대상의 로리타 마녀사냥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포비아 페미니즘이 자극적인 방식으로 행한 문제 제기들에 대한 팩트 체크를 행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포비아 페미니즘이 어떻게 해서 실제 현실의 문제해결과 유리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또 다른 피해자들을 낳았는지를 지적할 것이다.

4장은 지금까지 문제를 제기한 포비아 페미니즘이 사회에 미친 악영향들을 정리할 것이다. 특히 포비아 페미니즘은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이 지금까지 견지해왔던 입장과 모순된 행동을 저지르거나 이를 정당화했다. 그들은 전체주의적 방식의 여론형성과 사회적 검열을 옹호하는가 하면 문제해결을 위한 공론장 자체를 붕괴시켜왔다. 평범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데 아무런 성찰의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포비아 페미니즘은 온라인상에서의 사이버테러를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겉보기에 페미니즘의 이름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그동안 진보진영이 가져왔던 윤리적 잣대와 역행하는 사건들이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노출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5장은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적 비판들을 소개한다. 또한, 페미니즘이 논쟁 과정에서 자신을 지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져오는 각종 전문용어의 옹알이에 어떤 논리적 속임수가 동반되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현학적인 정치철학 용어에 대한 의존은 오히려 자신의 지적 파산을 보여주는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페미니즘 진영은 어떤 개념의 외연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는 것으로 공론장에서 설명과 논증을 끝냈다고 여기는 태도를 지양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여기서는 페미니즘이 줄곧 행했던 가부장제와 미소지니 등 주요 개념들의 무한확장과 남용이 어째서 현실의 복잡한 현상들을 설명하지 못하고 남녀대결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게 했는지를 해명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스스로 대결 프레임에 갇혀있는 한 그러한 주장은 다수의 사람에게 동의를 얻긴 힘들 것이다.

젠더갈등 이면의 계층갈등과 세대갈등에 주목하라
이 책은,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란의 본질이 어쩌면 젠더갈등 이전에 세대갈등 내지는 계층갈등의 문제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2016년 여름, 메갈리아 논쟁이 달아오를 때, 유명논객 진중권은 메갈리아의 혐오 발언을 비판하는 남성 네티즌들 전반에 ‘초라한 남근다발’이라는 욕설을 지면상에서 퍼부은 바 있다. 이처럼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진출한 40~50대 남성들이 페미니즘과 반대되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젊은 20~30대 남성에게 타박을 주고 자신들의 뒤틀린 부채의식과 죄악감을 전시하는 모습이 때때로 연출되곤 한다. 당연히 이미 과거의 가부장적 의식과 마초이즘 그리고 부채의식에서 탈피한 많은 젊은 남성들은 이들에 대해 ‘오히려 당신이야말로 시혜주의적인 마초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발한다. 이 일화는 과거 불합리한 구조를 만든 기성세대가 상징적 문화 권력으로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억누르며 젠더문제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젠더문제에 대처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일부 젊은 여성 역시 여성을 일방적으로 피해자·약자로 상정하는 기성세대의 담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으며, 지난날 메갈리아 논쟁에서도 많은 여성이 ‘메갈리아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상에 인증하는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현재 인터넷과 SNS 일각을 오염시키고 있는 남녀 간의 젠더논쟁의 실체란 실제로는 삶이 불안정해진 빈곤 여성과 빈곤 남성들이 손쉬운 혐오와 원망의 대상을 발견하려는 절박한 시도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젠더갈등의 이면에는 세대와 계층 간의 갈등이 잠복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파행적인 젠더논쟁에서 길을 잃은 20~30대 남녀를 위한 책
이 책의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의 의도가 페미니스트와 ‘논쟁’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논쟁이 성립한다면 다행이지만, 애초에 대다수 페미니스트는 같은 진영의 논자가 아니라면 토론을 하는 것조차 꺼리기 때문에 논쟁이 성립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 책이 상정하고 있는 독자는 이미 페미니즘이나 안티페미니즘 등의 ‘강한’ 신념을 형성한 독자가 아니다. 이 책은 어느 누구에게도 ‘사이다’를 선사하지 않는다. 이 책은 단지, 성별 대결 구도로는 어떠한 젠더문제와 그 이면에 잠복한 계층갈등 및 세대갈등도 풀어나갈 수 없다는 원칙론을 이야기하며 사실과 논리에 충실히 하고자 노력한다. 페미니즘이나 안티페미니즘과 같은 주의주장을 떠나서, 현재 과열되고 있는 젠더논쟁에 혼란감을 느끼는 20~30대 남녀 독자들이 균형감각을 가지고 스스로 혼란한 세태를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자 소개

박가분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블로그를 통해 인문학과 각종 사회문제에 관한 비판적 글쓰기를 해왔다. 2010년 그동안의 블로그 글을 묶어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를 발표하면서 주목받았다. 이후 <무엇이 정의인가>(공저), <일베의 사상>,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등으로 논의의 지평을 넓혀왔으며,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라는 평론으로 <창작과비평> 제4회 사회인문평론상을 수상하였다. 이 글은 일본의 저명한 서브컬처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가 창간한 <겐론>지에 수록되기도 했다. 현재 경제학 석사를 수료하고, 개인 블로그 ‘밝은 서재’에서 다양한 메타비평과 시사비평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주요 문제의식은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이른바 ‘시민사회’와 ‘공론장’이 도대체 우리나라의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여러 정치철학 담론과 사회이론을 공부하던 중, 이른바 시민사회와 공론장의 무능력이 ‘일베’라는 괴물을 낳은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에서 일베 신드롬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책 <일베의 사상>을 집필하였다.

<혐오의 미러링>은 <일베의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얼마 전 사회적 논란을 낳은 ‘메갈리아 신드롬’을 분석한다. 메갈리아·워마드의 출현 배경과 실태를 추적하면서, 그들이 내세우는 ‘미러링’이라는 명분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또한, 현재 인터넷에 만연한 젠더 혐오의 진정한 원인을 탐구하고, 건전한 인터넷 공론장의 회복 방안을 모색한다.

나아가 <포비아 페미니즘>에서는 무엇이 진보진영과 언론 그리고 여성계 일각으로 하여금 메갈리아발(發) 혐오 발언과 낙인 프레임에 대한 정당화에 집착하게 했는지를 파헤치며, 성별대립 프레임을 넘어선 사회적 진보의 방향을 제시한다.

출판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