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된 페미니즘

여성혐오는 성별이원제 젠더 질서의 깊고 깊은 곳에 존재하는 핵이다. 성별이원제의 젠더 질서 속에서 성장하는 이들 가운데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중력처럼 시스템 전체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너무나도 자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탓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조차 할 수 없다.
-우에노 치즈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12~13p

우에노 치즈코를 대표적인 여성학자로 단정 지으면 적은 비판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또한, 모든 페미니스트가 위의 문단에 동의한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에게 해당 내용에 대한 찬성, 반대표를 돌린다면 아마 찬성하는 응답률이 월등히 높게 나올 것은 분명하다.

우에노 치즈코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혐오’를 중력에 비유했다. 그만큼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보통 사람들은 인식조차 못 한다는 의미이다. 여성혐오가 공기와 물처럼 보편적이고 사회에 만연해 있는 현상이라는 것은 아마 거의 모든 페미니스트의 일치된 의견일 것이다.

이것을 풀어 설명하자면 ‘남성 중심’의 사회는 오랜 시간 ‘가부장적 질서’ 하에 공고한 여성 혐오 연대를 구축해 여성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쥔 채 그들을 억압·핍박해 왔으며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것이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 상태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가설은 사실 음모론에 불과하다. 필자는 이를 일종의 페미니즘 신화(feminism myth)라고 생각한다. 신화의 특징은 어떤 자신들이 믿고자 하는 관념이나 체제를 신성 혹은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그에 내포된 잘못된 구조나 오류를 정당화한다.

그 근거로 먼저 여성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들만을 지나치게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를 놓고 볼 때도 가정 폭력, 칠거지악, 열녀제 등을 증거로 가져오며 여성을 ‘남성 중심’ 사회에서 타자화 혹은 대상화되고 때론 폭력에 노출되는 일방적 피해자였다고 주장하곤 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토대와 상부구조(Basis and superstructure)‘에서 ’토대(Basis)’가 될 만큼 확고한가 의심해보지도 않은 채 몇 가지 일례들을 당시의 사회 문화 구조를 규정하는 근간으로 단정 지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역사적으로 가정 폭력이, 특히 가장이 아내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정당화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숙종의 사례나 궁예가 아내에게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당시 사회적 분위기 등을 놓고 보면 전통사회에서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었지 그 나라 전통이나 문화가 아니었다.

그리고 대명률에 명시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7가지 조항인 칠거지악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내쫓아선 안 될 ‘삼불거’라는 3가지 조건이 함께 따라붙었다. 열녀제 또한 ‘과부’라는 사회적 약자를 ‘열녀’라는 이름으로 지위 상승시킴으로써 사회적 멸시로부터 보호한다는 접근 또한 가능하다. (물론 필자는 칠거지악과 열녀제를 옹호하거나 두둔하고 싶은 의도가 전혀 없다. 어찌 됐든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강제로 규정하는 제도들이었으며 역사는 ‘인권’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거의 항상 틀려왔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예를 덧붙여서 조선 후기 민비(명성황후)가 시해당했을 때 “‘국모‘가 시해당했다”는 격문을 돌렸던 것은 다름 아닌 ‘유학자’들이었다. (여성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유교’는 가부장제의 원흉과도 다름없다.) 즉, 남성의 권위가 여성의 우위를 누리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여성을 마치 백인 중심사회에서의 ‘흑인’이나 ‘노예’와 같은 선상에 놓고 접근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허점이 노출된다는 뜻이다.

영화 타이타닉

칙칙한 역사 이야기는 옆으로 치워두자. 사회가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적 접근이 아니더라도 영화나 매스컴, 미디어 등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남성의 스테레오 타입을 대표하는 ‘기사도 정신’이 잘 묘사된 중세 전쟁 영화들이나 <타이타닉>과 같은 재난 영화를 보더라도 ‘여성’과 ‘아이’를 외부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거의 불문율로 여겨진다.

실제 타이타닉 침몰 사건에서도 여성과 아이를 먼저 대피시키느라 1등 칸의 유력자 남성들의 사망률은 3등 칸 여성의 사망률을 상회했다고 한다.

타이타닉 탑승자 구조 현황(출처 위키백과)

이 외에도 여성혐오의 일상적 반례들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이나 소설과 같은 가상 현실 속에서도 여자 주인공 혹은 여자 캐릭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남자 캐릭터들은 찬사의 대상이 되고 멋있게 묘사된다. 반면,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여자 캐릭터를 이용(예 <데스노트> 야가미 라이토)하거나 사리사욕의 대상(혐오 기제)으로 써먹는 남자 캐릭터들은 대부분 악역이거나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지닌 싸이코로 나온다.

즉,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선은 ‘혐오’, ‘멸시’ 따위가 아닌 ‘보호’이자 ‘배려’였으며, 여성은 남자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남성성을 인정받기 위한 최종적 ‘주체’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회가 여성을 혐오하기보단 온정적인 스탠스를 취했다는 것은 인적 자원의 측면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여태까지 항상 노역, 전쟁터로 팔려 나가거나 일회성 소모품으로 취급되었던 성별은 단연 남성들이었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남성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며 ‘어머니’ 같은 존재로 간주됐다.

실제로 1842년 영국에서는 광산의 작업 실태에 대한 조사보고서가 출판되자 대중들이 충격에 빠졌던 일례가 있었다. 광부들은 장시간의 노동 착취에 시달리고 있었고 사고도 다반사였으며, 심지어 그곳엔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광산의 업무환경을 개선해 사상자를 줄이려는 조치를 하기로 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조치라면 이 위험한 업무 자체를 전면 금지해야 했지만 국가에서는 석탄이 필요했으므로 결국 ‘수요 유지’와 ‘국민의 생명 보호’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했다.

즉, 국가에겐 이 일을 해줄 사람들이 필요했다는 건데 해결책은 이 사회의 가장 소모적 존재들이 남아서 작업을 하도록 배치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 소모적인 존재는 바로 남성들이다. 영국은 10세 미만 아동들의 광산노동을 금지했으며 더불어 여성들도 나이와 관계없이 광산에서 일하는 것이 금지됐다. (1842년 8월 10일 영국 광산법 제정)

지금은 어떠한가. 산업재해 사망률의 1등은 언제나 항상 남성들(95%·로이 바우마이스터, <소모되는 남자> 참조)이었으며 저임금 육체 노동직 종사자 비율도 남성이 월등하게 높다.

필자가 이러한 예시들을 내세우는 이유는 여성주의자들의 주장들과 달리 실제 주류 사회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여성에 대한 혐오가 아닌 ‘보호’와 ‘배려’였으며 가부장적 질서에서 이뤄지는 ‘여성=맹목적 피해자’설은 또 다른 중요 요소들을 깡그리 무시한 지나친 비약이라는 설명을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선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모든 사회 문화 구조를 설명할 수 없으며 그 사회의 토대가 된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 신화는 여기서도 가히 종교적 수준의 논리적 곡예를 펼치곤 한다. 바로 여성에 대한 ‘보호’, ‘우상화’, ‘동정’ 모두 여성을 규정하는 ‘여성혐오’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여성주의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성혐오는 마치 중력이나 물, 공기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까.

이들은 자주 기존의 통념과 다소 다른 의미를 띄거나 심지어는 정반대의 개념들까지도 모조리 ‘혐오’라는 범주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이러한 원천 봉쇄식 논리는 애초에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 뿐이다. 소모되는 남성이나 남성성 강조 등 남성에 관한 스테레오 타입 모두 젠더 이분화 과정에서 이뤄지는 ‘여성혐오’로 만들어버리는 기이한 상황을 연출하고 만다.

박수현

대학생 인턴기자. 사회복지학 학부생입니다. 각종 사회 현상과 문제 등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젠더 이슈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psh557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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