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페미니즘, 최대 피해자는 젊은 세대

우리 사회를 떠도는 ‘양성 간의 혐오 전쟁’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SNS상의 남혐·여혐 논쟁으로 커지면서 사회적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사회적 전개에는 반드시 사회적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 시초가 메갈리아식 페미니즘의 확산이었고, 전개되고 있는 양상은 마치 1970년대 초 급진 페미니즘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현상을 보인다.

물론 급진 페미니즘도 여러 유형이 존재하지만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필자는 여러 차례 이 문제에 관해 글을 쓴 바 있으나, 1970년대 이른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정립되었던 시기, 그중에서도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벌어졌던 논쟁과 유사한 국면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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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스웨덴의 급진 페미니즘 전개를 간략하게 되돌아보는 취지도 함께 담긴 글이다.

메갈리아에게 고마워하라는 글을 한겨레에 게재한 여성학자 정희진

필자는 현재 상황을 이렇게 진단한다. 정당이 중심이 된 일단의 구좌파 세력대학 강단에서 이제는 유명무실해진 여성학을 되살리려는 강단 페미니스트, 구좌파가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는 여성단체 간의 상호 간 암묵적 협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정당은 주로 군소정당의 일부 구좌파들의 급진 페미니즘 소유권 주장과 (드러내지는 않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진보언론에 포진한 언론계 종사자들의 급진 페미니즘 경도가 양성 간의 혐오 전쟁으로 비화된 상황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이 2016년 10월 8일 서울 서대문구 벙커1에서 열린 ‘대한민국 넷페미사’ 라운드 페이블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날 손 연구원은 ‘배운여자, 여시, 트페미, 페미나치, 메갈’이라는 표현을 “온라인 페미니스트의 ‘멸칭’의 역사이자 넷페미 수난사”라고 말했다.

입으로는 진보를 외치고 진보 포지션에 있으나, 머리는 구진보에 머무르고 있는 부류, 진보주의자니까 페미니즘 옹호는 당연하다고 인식하는 이들, 본인들이야말로 남아선호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시절 가장 수혜를 입은 남성들(80년대 학번)의 ‘회개성 남성 페미니스트’ 선언 등이 뒤섞여 있는 현실이다.

출처 한겨레 토요판

또 하나 중요한 점, 모든 이념에는 헤게모니 다툼이 자리 잡고 있다. 페미니즘 역시 이들 간의 보이지 않는 헤게모니 쟁탈전이 페미니즘을 자기 진영에 유리한 국면으로 끌어당기려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현시대 페미니즘, 이퀄리즘에서 휴머니즘으로 진화
필자가 살아온 이력을 보면 당연히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할 사람이다. 그것도 급진 페미니스트로. 주변 지인은 필자가 급진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전혀 거부감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급진 페미니스트가 아닌 게 이상할 정도로 볼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과 성평등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필자는 개량주의자로 현실은 끊임없이 개량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성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여성주의’만을 외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원래 급진 페미니즘은 성평등에 비판적이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청년반란의 일부로 불붙은 급진 페미니즘은 의제를 ‘여성해방’을 내세운 반계급적이고 반권위적이었다. 그러므로 남성 중심 사회에 항의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대는 변했고 페미니즘의 패러다임도 변한 지금, 페미니즘이 아니라 이퀄리즘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휴머니즘이 넘치는 세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이데올로기, 개념을 우리 손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서구의 개념을 수입했다. 페미니즘 역사도 마찬가지다. 서구 여성들이 피 흘리며 획득한 여성참정권도 우리나라는 1958년 민주적인 법체계 도입에 의해 자동으로 얻었다. 페미니즘의 투쟁 역시도 전무한 상태로 1970년대 대학 강단에서 문화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 것에서 시작됐다.

서구 페미니즘 역사, 그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성평등한 국가를 이룬 스웨덴·노르웨이 페미니즘 투쟁은 서구 각 나라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그전에 1880년대 영국 여성들의 ‘참정권보장’ 투쟁을 시작으로 여성들의 법적·정치적 권리 신장을 향한 페미니즘의 물결이 시작됐고 진정 값진 역사다. 그 누가 이를 부정할 것인가.

영국 여성들의 참정권 쟁취 투쟁은 1928년에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세계 최초로 여성 투표권을 허용한 나라는 1893년 뉴질랜드다. 유럽 최초로 핀란드가 1906년, 독일이 1918년이다. 프랑스가 1944년에야 완전한 여성 투표권을 허용했다.

프랑스에서는 1944년이 돼서야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됐다(출처 Shoulder to Shoulder)

급진 페미니즘의 산실 노르웨이·스웨덴, 세계 최고 성평등 국가
노르웨이·스웨덴의 급진 페미니즘의 활동력은 그 어느 나라보다 격렬했으며, 다른 나라 여성운동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두 나라는 서로 비슷하게 발전했지만,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페미니즘 전개 양상은 차이가 있었다.

차이점은 스웨덴의 여성 참정권 문제는 노동계급과 부르주아 여성들 간의 협력이 있었고, 노르웨이는 그렇지 못했다는 차이가 있다. 노르웨이 여성운동은 사회주의적 성격, 즉 마르크스적 관점의 여성운동이 강했기에 페미니즘 확산에 미온적이었던 시류가 있었고 노동계급과 부르주아 계급 간의 협력이 없었다. 반면 스웨덴의 여성 계급 간 협력에는 알바 뮈르달의 지도력이 큰 역할을 했다.

노르웨이 여성들의 여성 참정권 도입은 2단계로 이루어졌는데 1907년 제한적 여성투표권, 즉 노동계급 여성은 투표권에서 배제, 1913년 완전한 투표권을 획득하게 됐다. 스웨덴은 노르웨이보다 뒤늦은 1921년에 가서야 스웨덴 총선에서 여성 보통선거권이 도입됐다.

이들 양국 여성들의 참정권 투쟁, 여성권리 신장을 위한 투쟁은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힘겹게 이루어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0년 말부터 시작된 급진적 여성해방 구호는 급진 페미니즘의 흐름을 가져왔으며 다른 국가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노르웨이·스웨덴의 급진 페미니즘 양상은 한층 격렬히 전개되었는데, 이때의 슬로건이 ‘저항하라, 울지 말라, 기뻐하라, 선제공격을 가하라’,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로 남성 중심사회에 본격적으로 항의하는 국면이 전개됐다.

노르웨이 여성 운동가들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고 한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1970년대에 관해 묻는다면, 그 시기는 진군하는 여성들의 활기와 함께 기쁨의 10년이자 여성공동체의 10년 그리고 우리가 처음으로 ‘해방’이란 단어를 말하게 된 10년이었다.

좀 더 나은 보육서비스, 좀 더 나은 직장 환경, 자유 낙태 등 오늘날에도 여전히 부르짖는 의제들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1970년부터 시작된 급진 페미니즘은 ‘양성 간의 권력 문제’가 핵심이었다. 복지국가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던 노르웨이·스웨덴은 상당수 여성이 내각에 진출하는 등 여성권리 신장이 타 국가보다 월등히 앞섰음에도 더욱 급진적 성향을 띄었다. 바로 ‘양성 간의 권력 문제’가 급진 페미니즘의 중심이 된 것이다.

급진 페미니즘에 있어 ‘남성혐오’라는 단어의 등장도 최초로 생겨났는데, 노르웨이 급진 페미니스트 ‘니나 카렌 몬센’이 자신의 저서에서 주장했다. “어떤 정치·경제 유형이 인간존재의 분석을 위한 기반으로 취해진다 하더라도 남성은 혐오스럽다.”고 남성혐오를 들고 나왔다. 그로부터 1년 뒤 또 다른 급진 페미니스트 ‘벤셰 옐룸’은 “적대시할 것은 남성들이 아니라 자본가들, 생산수단의 소유자들”이라고 주장했다.

필자가 왜 이처럼 노르웨이·스웨덴 페미니즘 역사를 말하느냐면 이들 나라는 이미 40~50년 전에 다 겪었던 갈등을 이제서야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는지 답답해서이다. 요즘 페미니스트들이 들고나오는 슬로건도 이미 노르웨이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수십년 전 사용했던 의제들이다. 노르웨이·스웨덴은 급진적이고 고립된 페미니즘을 버리고 성평등, 이퀄리즘의 실현에 그 어떤 나라보다 앞서고 있다. 예컨대 노르웨이 여성들의 ‘남녀 공동징병제’ 아닌가. 여성 의무복무제는 노르웨이 여성들이 주체가 돼 관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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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성평등 시작은 ‘남녀 공동징병제’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전개 양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서구 여성들이 약 140년간 걸친 투쟁의 역사의 결과물과는 달리 페미니즘 역사가 없는 나라에서 양성 간 혐오 전쟁만 벌이고 있는 데다, 구좌파 세력, 구좌파주의자들, 강단의 급진 페미니스트, 진보언론, 여성단체가 뭉쳐 양성 혐오를 부추기는 실정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출처 여성신문)

노르웨이·스웨덴은 급진 페미니즘으로부터 시작했으나 성평등 관점으로 정교하게 이행됐고, 무엇보다 공동체 의식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페미니즘은 뒤죽박죽에 근본적인 공동체 의식이 결여됐고, 이론적 개념도 부실하다.

오늘날 우리나라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인가. 힘은 분명 남성이 우위에 있지만 그렇다고 여성들이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인가. 예컨대 남성 사기꾼 못지않게 여성 사기꾼도 많다. 남성 범죄자만큼 여성 범죄자도 막상막하다.

이렇게 구분 짓기 방식의 대결 양상은 개개인이나 공동체 발전에 전혀 이롭지 않음은 명백하지 않은가. 더구나 SNS상의 양성혐오 전쟁은 유튜브를 통해 상호 간에 광고 수익을 내는 혐오 비즈니스로 전락했다.

시대착오적이고 정체불명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이퀄리즘을 말해야 한다. 모두가!
휴머니즘이 넘쳐흐르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모두가!

제발 페미니즘도 진화하자. 양성 간의 혐오 전쟁, 누가 더 피해자인가 경쟁은 어리석다. 그 피해는 예전과 달리 성평등 의식이 당연한 일로 여기며 성장한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