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없었더라면 당나라가 쳐들어오지 않았을까

연개소문의 쿠데타와 강경노선이 당의 침입을 자초했고 인조의 바보짓 때문에 청의 침입을 자초했다고 한다. 후자만 봐도 좀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조선의 문제보다는 경제적 파탄과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청의 문제가 훨씬 크게 작용을 했다. 병자호란이 단순히 인조 때문에 벌어졌다고 할 일은 아니다.

영화 ‘남한산성’ 박해일 스틸 컷(출처 CJ엔터테인먼트)

연개소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구려의 문제보다는 당의 문제, 우리보다 훨씬 국력이 강한데다가 칼자루를 쥐었던 그들의 입장을 먼저 봐야 한다. 그래야 당시 고당전쟁을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당 태종 이세민은 젊은 시절 국내 할거 세력을 평정하는 통일 전쟁으로 시작해서 사상 유례가 없는 북방 이민족 지배를 성공적으로 실현한 데 이어 서쪽 토욕혼과 고창을 정벌하고 잦은 외정을 치러내며 모든 전쟁을 성공으로 치렀다. 당나라는 수나라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대외원정을 치러내며 제국의 팽창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고 정말 육식동물 그 자체였다. 육식동물은 고기를 계속해서 찾는 게 본성이다.

당이 이렇게 제국으로서 팽창하게 된 결정적인 동력은 630년 돌궐 제국이 무너진 직후 당에 항복해온 10만 이상의 유목민 용사들 때문이었다. 돌궐 출신 아니고도 많은 유목민 전사를 당은 부릴 수 있었다. 기동력 ‘만렙’, 호전성 ‘만렙’이었던 그들은 당나라에 포획된 최강의 전쟁 기계들이라고 보면 된다. 당 태종은 그들을 몰아 제국의 팽창을 계속했다. 유능한 직원들에게 일거리를 줘서 회사를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유목전사, 용병들이 참여하지 않는 전쟁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당 제국 군사체계의 필수적인 부분이 됐다. 전쟁으로 일어나서 만들어진 제국은 전쟁이 관성이 되어가고 전쟁을 통해서만 사회가 굴러가게 된다. 당제국의 대외원정은 하나의 관성이 된 것이다.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역사적 사례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상대는 고구려밖에 없었다.

당에 포획된 전쟁 기계들과 그들의 수령은 계속해서 대외원정을 원했다, 전리품을 획득하고 약탈을 할 기회를 원했던 것이다. 또 그런 것들이 있어야 유목민들의 단결이 지속되기 때문에 그들은 여러 가지로 전쟁을 원할 수밖에 없었다. 군부의 수장 중에 유목민들의 수령이 많은 이상 아무리 한족 문신과 조정이 대외원정을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당 태종은 대외문제 특히 고구려와 관련해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유목민 사회의 생리, 현재 이민족을 흡수해 돌아가는 당의 국가체제와 시스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거기에 뿌리 깊은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까지 있었던 이상 고구려 침략문제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구려 침략을 이세민이 천명하는 순간 장안의 당나라 정가는 패닉상태에 빠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이세민도 싫었을지 모르지만 해야 했던 전쟁이었을 것이다.

‘대조영’ 고당전쟁 (출처 KBS)

그리고 고구려 침략문제에 결정적이라 할 수 있는 산동지방의 경제력이 회복됐고 고수전쟁에 동원되었던 산동지방 수나라 병사들의 자식들이 이제 장성해 어른이 된 상황이었다. 고구려 침략하는 데 있어 동원해야 할 물자와 한족 병사력은 요동과 가까운 산동지방에서 빼 와야 하는데 산동의 힘이 거진 회복한 셈이다.

고구려 침공은 당 태종 한 개인의 적개심과 욕심도 컸지만, 더 중요한 건 국내 사정이었다. 양날의 검인 이민족 전쟁 기계들은 군사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 그들을 전쟁 기계로 계속 쓰지 않는 이상 그들은 변경을 때려 부수거나 당의 내부를 향해 창을 들 수 있는 잠재적인 불안요소이자 시한폭탄들이었다. 이런 구조와 체제의 문제로 인해 당 태종은 고구려 침략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국은 자신의 통치 아래 들어와 있는 유목 부족들 사이에서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따로 유목 부족들의 호전성과 전쟁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소위 ‘껀수’를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약탈하고 전리품을 챙기고 싸움질을 하게 일거리를 줬어야 했다. 그래야 변방이 안정되고 사회 혼란이 방지된다. 당시 당나라는 변경의 평화를 위해서도 팽창정책, 대외 강경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당전쟁의 뒤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연개소문이 없었더라면, 영류왕이 계속 왕 노릇을 했더라면 당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왜 계속 당 태종은 연개소문이 전면에 등장하기도 전에 사신에게 많은 돈과 비단을 쥐여주어 고구려에 파견해 정보를 수집했을까. 특히 당의 사신 진대덕은 어디를 가든 황제가 준 비단으로 고구려의 지방관리를 구워삶아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했으며 예전에 얻은 고구려 지도에 나온 지형, 지세가 정말 맞는지 자주 확인했고 고구려에 대해 잘 알고 많은 정보를 가진 수나라 출신 포로들의 송환에 힘썼다.

‘칼과 꽃’에서 연개소문역의 최민수(출처 KBS)

그들은 연개소문 등장 이전에도 고구려 침략을 준비하고 있었고 정치·군사적 문제 때문에 고구려 침략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망나니 강경론자 연개소문 때문에, 그가 당을 자극하고 어그로를 끌어서 당이 쳐들어와 고구려가 망했을까.

광해군 대신 조선 왕이 된 인종, 단순히 그 암군의 꼴통 짓 때문에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영양왕을 죽이고 고구려를 접수한 독재자 연개소문 때문에 당 태종이 쳐들어왔다고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당과 청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사태가 그렇게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강대국의 의사와 이유가 중요하지 약한 나라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임건순

임건순

멸종 위기의 젊은 동양철학자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사상가',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오기, 전국시대 된 군신 이야기',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리를 간다' 등 다수의 인문학 도서 저술
moo9257@hanmail.net
임건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