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찬의 리얼한 대한민국] 모든 사후 대책은 관치주의로 통한다?

지난 5월 28일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도 이제 발생한 지 20일이 넘었다. 지금까지 숱한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있었지만, 구의역 사고처럼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은 드물었다. ‘컵라면’과 숟가락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우리 사회는 왜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됐다.

이후 언론 취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사건은 서울메트로와 그 퇴직자, 그리고 은성PSD라는 하청업체의 비정상적 인력 구조(속칭 ‘메피아’)에 따른 구조적 사건임이 드러났다. 즉, 당사자였던 김모군은 초기 보도와 달리 개인 과실이 아니었던 셈이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한 스크린도어가 고장나니까 핏덩이 청년 하나 보내 수리케 하다가 변을 당하게 하더니,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달자 직원 3명이 와서 떼냐? 박원순 시장이 온다니까 다시 붙이고? 이 중 한명만이라도 같이 나와 있었어도 그분 그렇게 비명횡사는 안했다. 와~~ 정말 철밥통, 자본의 왕왕이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니들은 요금 적다고 지랄말고, 야근 많다고 투정마라. 그정도도 안하면 헬조선에서 어떻게 살려고. 추모 포스트잇 철거라는 특급 작전에 직원 3명이 투입되는 졸라 효율적인 조직. 이런 거나 구조조정해야 하는데 -서울메트로 페이스북에 한 시민이 단 댓글과 시진
서울메트로 페이스북 갈무리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뒤늦게 감사와 대책을 부랴부랴 준비했고, 화제성 때문에 국회와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에서도 이례적으로 발 빠른 대응을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앞으로는 산업재해에서 하청업체뿐만 아니라 원청업체에도 책임을 묻도록 한다는 법안이었다.

법안의 주요 골자는 도급인이 안전·보건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작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다른 시공사 간의 일정과 작업 관리를 하는 ‘안전보건조정자’를 발주자가 선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대응 방식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의 상당수는 제도적 완비성이 아니라 제도를 집행하려는 의지의 문제였던 전력들 때문이다.

물론 고용부에서 입법 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책임자의 선임권을 발주처로 변경함에 따라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유의미하다. 그러나 매번 부족한 인력을 운용하는 고용부의 인력 구조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감시 인력 확충을 전제하지 않은 규제는 관료 1인당 재량권을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더군다나 노동 문제도 엄연히 시장 경제의 분쟁에 해당한다. 비록 노동자가 약자이긴 하더라도 갈등의 해결 방법은 절대자에 가까운 관료의 판단보다 당사자의 대항력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과거 이마트가 고용노동부 관료를 포섭한 사례를 기억한다면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회 갈등 구조에서 사법부보다 지나치게 행정부에 의존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폐단이 그러하듯 임금체납과 산업재해에서도 행정 관료의 재량과 판단에 의존적이다. 만약 그들이 약자인 노동자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핑계가 많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에서 관료들의 역량이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문민정부 이후 관치주의 경제의 폐단이 어떤 후유증을 낳았는지는 최근 산업계 구조조정과 법정관리 문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문제는 이러한 관료 중심 갈등 조정 구조는 매우 불투명하고, 약자에게는 지극히 불리하다는 것이다. 약자 스스로 대항할 힘을 키워주는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

임형찬

헬조선 개청년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