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입진보’로 불리나?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위시한 진보세력이 연일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첫 번째 계기는 오는 28일에 예정된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였다. 주최 측인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비상행동)’이 발표한 <촛불은 계속된다! 촛불 1주년 대회> 행사계획에 청와대를 향한 행진이 포함돼 논란을 일으켰다.

출범한 지 5개월도 안 된 정부에게 “공약이행이 2%도 안 됐다”는 항의 메시지를 보내거나 여소야대로 여러 가지 개혁 입법 및 조치가 난망한 상황에서 비난의 화살이 청와대로 향하는 것에 대해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 네티즌은 “작년처럼 이석기, 한상균 석방하라는 구호와 반미구호 외치러 가는 겁니다”라며 주최 측의 의도에 의혹을 표하기도 했다.

이같은 주최 측의 결정에 반발한 네티즌들은 광화문 집회를 보이콧하는 동시에 ‘여의도 촛불파티’ 집회를 자발적으로 기획했다. 집회참여와 자원봉사를 독려하는 이들의 홍보 포스터는 이미 다수의 커뮤니티와 언론에 공유됐다.

여의도 촛불파티 홍보 포스터

이 집회제안은 집회 장소 근처 보수야당에 대한 시민들의 자유발언대를 기획하고 있어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성향의 시민뿐만 아니라 현재의 보수야당에 대해 비판적인 성향의 많은 시민 사이에서 공감을 받고 있다.

논란에 한층 더 기름을 끼얹은 것은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복원을 위한 대화 자리를 보이콧한 사건이었다. 지난 1999년부터 민주노총이 보이콧을 한 이래로 대통령 직속 노사정위원회(노사정) 테이블은 반쪽짜리로 전락한 채 공회전을 거듭했다. 물론 여기에는 무분별한 정리해고 등 노동개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부와 기업의 책임도 크다.

그러나 노동계의 각종 길거리 투쟁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동안 변함없이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분배가 악화됐을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확산과 노동시장 자체도 양극화가 심각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사정 간의 사회적 합의체 복원을 바라는 여론은 더욱 커졌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노동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당사자 간의 대화와 합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기존의 비정규직·정리해고·민영화 의제에 더해 노동계 사이에서도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와 같은 새로운 의제들이 등장했다.

민주노총 12·28 총파업집회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노총은 청와대가 특정 산별노조와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것에 대해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는 형식논리를 강변하는 데 급급하다. 급기야 민주노총 대변인은 자신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정부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언론에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적다.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를 거부한 배경에는 제 정파들 사이에서 정부에게 제출할 요구안에 대한 입장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분석, 혹은 향후 다가올 위원장 선거에서 강경파의 표심을 다지기 위한 일환이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강온파 간의 내부갈등에 골몰해 있는 양상으로 비친다.

수많은 시민이 이같은 민주노총의 행태에 크게 실망하고 분노했다. 이미 민주노총이 다수의 노동자를 대변하는 세력이 아니며 특정 정파의 이익과 소수 대기업 정규직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이라는 인식이 뒷받침된 정서이다.

실제로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10% 남짓(2015년 기준 10.2%)에 불과하고, 무상급단체 노조가 늘어남에 따라 노동계를 대표한다는 양대 노총의 조직률은 이에 더욱 못 미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노조 조직률 격차도 심각하다. 2016년 하반기 기준 정규직 노동자의 노조조직률은 16.5%인 반면 비정규직은 2.5%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조직노동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위는 단연 대기업 정규직 노조이다. 정작 이들 중 일부는 현장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가 하면, 고용세습 관행이 드러나기도 해 노동귀족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현대차 노조 채용세습 사측에 요구(출처 SBS)

또한, 그 누구보다 비정규직 문제와 미조직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민주노총이 정책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현실성이 결여된 특정 정파의 이념과 구호에 집착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노사정 틀을 깨고 오직 정부와 노조 간의 대화의 틀만을 고집하겠다는 그동안의 태도가 단적인 예이다. 정규직의 양보로 사회연대기금을 마련해서 비정규직과 영세소상공인과 상생해야 한다는 정책의 목소리도 있지만, 소수파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민주노총의 노사정 대화 불참에 대해 급기야 ‘입진보’라는 말까지 등장해 감정 섞인 갑론을박으로 비화됐다. 한편, 입진보라는 말은 결국 민주노총을 위시한 진보세력이 더는 노동자와 서민 그리고 약자를 대변하는 세력이 아니라는 대중의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이 없는 노조, 시민이 없는 시민단체가 ‘입으로만’ 노동과 시민사회를 대변한다는 불만이다.

사정이 왜 이렇게 됐을까. 많은 좌파 급진 단체는 자신들 내부의 문제해결 능력과 시민의 지지를 얻는 능력을 잃고 관성적으로 대통령과 청와대 등에 비난의 화살을 집중시키는 습성을 가지게 된 것이 하나의 배경으로 보인다. 물론 대통령 권력을 남용한 지난 보수정권 9년이 이들의 습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한편, 정치권력을 교체해도 자본권력과 각종 사회적 기득권은 온존하며 새정부는 이들 권력 사이에 포위된 상태에서 개혁을 진행해야 한다는 상황을 좌파들이 더욱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정작 현실에서 그들은 정치권력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시민의 지지를 얻을지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좌파 역시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노동과 서민의 삶을 후퇴시킨 권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노동계 역시도 정치권력이 필요하고 시민사회와의 소통과 의제의 공유가 필요하다. 과거 진보진영을 대표한 단체들이 이제는 입진보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한 현 세태는 역으로 진보의 역량 파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민주적 권리와 더불어 노동권이 심각하게 제약당했던 과거에는 민주노총이 온전한 노조활동의 권리와 민주주의의 보루로 여겨지며 진보세력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민주노총은 시대적 상징이었다.

한편 이러한 과거의 ‘상징’에 회고적으로 집착하는 이들에게 민주노총의 행위를 어떤 이유에서든 옹호하는 진영논리가 작동하겠지만, 정작 대다수 시민에게 점점 그 같은 진영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비상행동의 청와대 행진 계획에 많은 시민이 반발하는 배경에도 촛불시위의 역사적 의미를 특정 단체와 이념이 독점하려는 태도에 대한 반발심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촛불을 통해 교체된 정권이 힘을 가지고 개혁을 무사히 성공시키는 것이 촛불 정신의 진정한 계승이라고 믿는 많은 시민이 있다. 이들을 배제하고서 작년의 청와대 진격상황을 기계적으로 연출하는 데 급급한 이들이 촛불 정신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작년 촛불시위에서 비록 동의하기 힘든 뜬금없는 구호가 나와도 시민들은 참을성 있게 자리를 지키고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대의를 위해 시민들이 양보한 것이다. 이제 누가 시민들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는 분명하다.

박가분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단행본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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