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찬의 리얼한 대한민국] 지하철 ‘여성 전용칸’은 사실 가부장적 발상이다

언론에서는 ‘업소녀’라고 표현한다. 혹은 어떤 사람은 ‘고소녀’, 그리고 험악한 표현은 ‘꽃뱀’이라고까지 한다. 이것은 최근 붉어진 JYJ 멤버 박유천 성폭행 스캔들과 관련된 대중들의 표현이다.

이 언어들을 보면 독특하게도 현재까지 피의자인 박 씨보다 수사상 피해자의 신분인 여성들에 대한 비하로 주로 쓰인다. 특히 여기서 투영되는 ‘업소녀’와 ‘꽃뱀’의 언어적 장치를 살펴보면 ‘유혹했다’라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업소녀’라고 지칭된 ‘유흥업소 여성 종사자’에게는 ‘유혹과 성을 판매하는 자’라는 인식이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유흥업소 여성 종사자’(여성 종사자)는 성범죄에 관대해야 할까? 사실 어디까지나 성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계약 관계’ 하에서만 용인될 수 있다. 스킨십의 수준 혹은 불법적인 성매매라고 하더라도 양자 합의를 벗어난 행동은 성폭행이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이러한 원칙은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기준에 의해 판단할 수 있다. 즉, 상대 여성의 남성 편력이 심하건 말건 혹은 여성 종사자건 성매매를 하는 사람이건 성적 자기 결정권은 개별적이고도 고유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남성들이 이러한 ‘개별적’이고 ‘고유한’ 결정을 무시한다는 데 있다. 이 말은 나와 오랫동안 성관계를 맺어왔던 여성이라도 본인 의사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한다.

그리고 성을 판매하는 사람이라도 계약 관계를 맺은 사람은 타인이지 내가 아니므로 그녀의 과거 행태만으로 자의적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한다.

즉, 암묵적 동의로 간주하는 것도 사적인 신뢰관계가 최소한 되어 있을 때만 성립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박유천의 스캔들은 우리 사회에 과연 “‘(그들이 판단하기에)문란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무엇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독자들은 필자가 제목으로는 ‘지하철 여성 전용칸’을 이야기했지만 왜 갑자기 ‘박유천 스캔들’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이야기했는지 의문일 것이다. 이유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고립과 분리주의적으로 보호하려 했던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고대 그리스는 매우 이성적 사회였지만 여성에게는 전혀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가 통용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대낮에 포럼을 활보하는 여성들은 그 시대에 ‘매춘부’로 취급받았다. 즉, 고대 그리스는 여성을 정숙하고 조신한 ‘공간’과 ‘아닌 공간’에 존재하는 인간으로 바라봤다.

이러한 공간과 시간에 대해 분리 혹은 고립적 여성 정책은 오늘날 여성 인권이 바닥이라는 이슬람에서도 통용된다. 이슬람 여성은 외출할 때 남성의 동의와 동행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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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차도르, 히잡, 니캅 혹은 부르카를 착용해야 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공간적 분리에 더하여 시각적 분리를 했다. 남성과 동행하며 특정 의상을 착용한 여성은 ‘정숙’하고 보호받아야 할 여성으로 간주하였다.

자세히 살펴보면 인도 또한 유사한 복장이 있으며, 전근대 조선에서도 이와 유사한 복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바로 쓰개치마였다. 또한, 조선 시대에 양반과 상인(양천제도에서의 천민이 아닌 양인) 여성은 전용 통행 시간이 있었다. 그 말은 낮에는 외출을 자제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의 성을 보호하는 각종 조치들은 공간과 시간, 시야의 분리 혹은 구분이었다. 여기서 사회적 신호는 바로 보호해야 할 여성과 보호할 필요 없는 여성을 구분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필자가 박유천 스캔들과 유흥업소 종사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보호해야 할 성적 자기 결정권이란 신분과 직업, 시간과 공간, 시야를 막론하고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존중하지 않아도 될 직업이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직장 내 성희롱에도 통용된다.

바로 성 착취 범죄자들의 이중적 기준에는 다름 아닌 ‘분리된 경계’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부로 행동해도 될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경계 말이다.

부산교통공사가 22일부터 부산 도시철도 1호선에서 출·퇴근 시간 여성들만 이용할 수 있는 ‘여성 배려칸’을 시범 운영한다.(부산교통공사 제공)
부산교통공사가 22일부터 부산 도시철도 1호선에서 출·퇴근 시간 여성들만 이용할 수 있는 ‘여성 배려칸’을 시범 운영한다.(부산교통공사 제공)

이제 핵심 주제를 가지고 올 때가 되었다. 과연 지하철 여성 전용칸(배려칸)이 만들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지금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는 부산교통공사는 지하철 내 성범죄가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한다.

그렇다면 분리된 객차에 탄 여성과 아닌 여성을 진짜 성범죄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진짜 고민은 여기에 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잠재적 범죄자는 ‘모든 남성’이 아니라 실제 성범죄를 실행하는 범죄자들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심리에서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남성과 달리 ‘구분된 경계’가 있다.

즉, 자신이 위계관계 혹은 당연히 합의되었다고 착각하는 판단 기준들이 있다. 여기서 여성 전용 객차와 아닌 객차에 탑승한 여성은 자연스럽게 구분되게 된다.

물론 다수의 여성은 안심하고 타겠지만, 그 객차에 탑승하지 못한 여성들은 오히려 성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은 기존보다 훨씬 높아지는 것이다. 차라리 무차별적 탑승이라면 잠재적 성범죄자인 그들은 더 많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 꼭 자신의 옆에 있다고 범행을 실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객차 분리가 공리주의적 관점으로 여성 안전에 더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사회가 꼭 여성만이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라는데 있다. 이건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적 사례로서 여성을 고립시킴으로써 얻는 안전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정책이 아니었다. 남녀칠세부동석처럼 만에 하나의 모든 위험 가능성까지 싹을 잘라버리고자 했던 방향성은 결국 여성이 시간과 공간적으로 고립되는 처지로 변질한다는 점이다.

여성을 공간적·시간상으로 분리하는 것은 타국에서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여성의 활동 반경을 제약하는 요인으로만 작용했다. 필요한 것은 자유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규범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여중과 여고, 남중과 남고가 있다. 심지어 대학도 여대가 있다. 여성에 대한 이러한 고립과 분리를 추진했던 시기가 과연 성 평등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지 아니면 가부장적 가치가 횡행했던 시절인지 자문해보면 알 것이다.

간단한 결론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여성을 끊임없이 분리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한 사회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란 ‘존중될 사람’과 ‘무시해도 될 사람’으로 구분해놨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범죄 예방을 위해서 아주 간편한 방법을 쓴다. 떼어놓으면 된다는 것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지만, 각자의 결정권은 고유하다’라는 생각인데 말이다.

임형찬

헬조선 개청년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