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링 옹호자는 사실상 남성 우월주의자

페미니스트에게도 곤혹스러운 메갈리아·워마드
작년 전 사회적인 논란을 확산시킨 메갈리아·워마드는 어떤 측면에서는 페미니즘 진영에게도 곤혹스러운 존재이다. 이들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어린이·노인·비정규직 등의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혐오발언을 일삼는 세력이며(자세한 내용 <포비아 페미니즘> 참조) 현재에도 이들이 확산시킨 밈은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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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포비아 페미니즘

최근에는 워마드 유저들이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신상정보를 타 커뮤니티에 유출하는 테러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들의 극단주의적인 언행은 ‘이론상’으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페미니즘 진영에게 곤혹스러움을 안겨준다.

한편, 이러한 곤혹스러움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 진영에서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무적의 논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미러링’이다. 쉽게 말해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자 피해자이므로 이들이 하는 극단적인 행동은 그동안 누적된 피해에 대한 복수심의 발로라는 것이다.

메갈리아에게 고마워하라는 글을 한겨레에 게재한 여성학자 정희진

이러한 입장에도 물론 편차는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이나영처럼 메갈리아·워마드를 마치 독립투사처럼 묘사하며 무한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이들의 극단주의적 언행을 경계하면서도 이들의 행위가 일종의 불가피한 정당방위(?)였다는 변호론도 있다.

어찌 됐든 이들 모두 메갈리아·워마드가 ‘피해여성’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강변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입장을 공유한다. 다음과 같은 페미위키의 설명은 미러링의 논리에 대한 옹호론을 잘 요약한다.

미러링에 대한 페미위키의 서술. ‘경젱’ 등의 오타가 오랫동안 수정되지 않아 다수 이용자의 피드백에 기반을 둔 위키로서의 기능이 다소 미흡하다는 인상을 준다

미러링 논리에 대한 그동안의 반론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는 이미 <혐오의 미러링>과 <포비아 페미니즘>에서 자세하게 반론을 해 놓았으므로 길게 재론하지는 않겠다. 다만 아직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간단하게만 요약하도록 하자.

혐오의 미러링과 포비아 페미니즘

우선 여성이라는 집단 전체를 마치 계급으로 변별되는 일방적인 피착취, 피억압, 피해집단인 것처럼 상정하는 전제 자체가 의심스럽다. 게다가 남녀 간의 대립처럼 보이는 사회현상의 이면에는 실제로는 계층대립과 세대 간의 대립이 놓여 있는 경우가 빈번하다.

예컨대 대한민국에서 35%에 달하는 남녀 간의 임금 격차를 벌려놓은 주범은 중장년층 기성세대이며 정작 상호 간의 젠더혐오 발언이 제일 빈번한 20대 남녀 간의 임금 격차는 5%에 지나지 않는다(<포비아 페미니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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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남녀 격차가 가장 적은 세대에서 이성혐오가 심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일자리와 미래가 불안정한 계층일수록 혐오발언과 극단주의 경향에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인구집단의 세대 차이와 계급 격차를 고려한다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익숙한 일부 젊은 여성 네티즌들 중심으로 이용된 메갈리아·워마드가 피해여성 전체를 대표한다는 전제 자체도 의심에 부쳐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이들의 미러링이 정확히 무엇에 대한 미러링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설사 메갈리아·워마드의 공격적인 언어가 피해자와 약자의 위치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인정하더라도 그 공격성이 남성 어린이(한남유충), 장애인(윽엑), 비정규직(구의역 희생자), 노인(최초 메르스 감염자)과 같은 피해자와 약자로 향한다면 애초에 ‘미러링’이라는 논리가 성립할 수 없다. 그것은 약자가 같은 만만한 약자를 혐오하고 공격하는 노예근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메갈리아가 일베의 여성혐오 발언에 대한 ‘저항행위’로 만들어졌다는 서사 자체가 사실관계에서부터 거짓이다. 실제로 메갈리아·워마드는 메르스 사태가 터지기 한참 이전부터 음지에서 일베의 혐오발언을 모방하고 일삼아왔던 일군의 여성 네티즌(예 디시인사이드 남자연예인 갤러리)에서 시작된 혐오신드롬이다.

더군다나 여성 네티즌들이 혐오발언과 사이버 폭력의 책임에서 면제된 순진무구한 존재라는 것은 대표적인 페미니즘 신화 중 하나이다. 여성 네티즌 역시 빈번히 사이버 폭력과 조리돌림의 가해자였으며 SNS와 인터넷 게시판의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이 진상이 나중에 수면 위에 드러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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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일가견이 있다면 여성이 넷상에서 일방적이고 순진무구한 피해자라는 환상은 버릴 수밖에 없다.

여성의 도덕적 자기객체화
이미 충분히 근거와 사실관계들이 정리된 만큼 위와 같은 논점을 다시 길게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은 미러링의 논리가 주류 담론에 진입하면서 발생한 다른 더 심각한 폐단이 있으므로 여기에 화제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시, 미러링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작가 목수정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메갈이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 싸움에 뛰어든 그들은 전술을 선택했다기보다, 불가항력적으로 이 살벌한 전선에 섰다고 본다. (불가항력은 일베라는 집단으로 대변되는 광범위한 여혐현상이었고) 내가 아는 한, 그 어떤 여자도, 폭력적 어휘를 오래 난사하면서 기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종류의 발언을 전형적인 ‘여성의 도덕적 자기객체화’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실제로는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폭력적 어휘를 오래 난사하면서 기쁠 수 있는’ 여성들이 있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이들에 대한 목수정 식 옹호론은 그 논리적 귀결에서 궁극적으로 여성의 도덕적 주체성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여성의 도덕적 자기객체화는 오늘날 현대 페미니즘 담론에 만연한 문제이다.

목수정(출처 벙커1)

무분별한 미러링에 대한 옹호론자들과 논쟁하다 보면 ‘먼저 남성들이 혐오를 그만두면 메갈리아·워마드도 없어지지 않겠느냐’는 항변을 자주 들을 수 있다. 혐오발언을 난사하는 일부 여성 측을 변호하려는 의도에서 행해지는 이러한 발언은 근본적으로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다’와 같은 옛날의 성차별적 편견과 논리적으로 다르지 않다. 미러링의 논리는 ‘여자가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이것 역시 ‘여성의 도덕적 객체화’의 한 사례이다.

사실 과거에도 여성의 도덕적 주체성을 전면 부정하는 입장이 사상적·철학적 형태로 포장된 바 있다. 예컨대 (해석상의 논쟁 여지는 있지만) “여자는 남자의 증상이다”라고 발언한 자크 라캉과 같은 정신분석학자의 발언이 대표적인 반여성적 사유를 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여성에게는 어떤 도덕적 실체도 책임도 없다. 여성이 표출하는 징후적인 행위들은 오로지 남성이 무엇을 생각하고 의욕하고 행위하는지를 비틀어서 비추는 거울에 지나지 않는다. 비슷한 예로, 과거 낭만주의 계열 예술작품들은 남성의 은밀한 환상과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수동적 매개체로 기능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묘사하곤 한다. 이 역시 여성을 도덕적 객체로 사고하는 흐름이다.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반여성주의 사상가 오토 바이닝거는 <성과 성격>에서 “여성에게는 지적 양심이 없다”고 말하며 여성에게는 도덕적 책임의식과 자아가 결여되어 있다는 식의 극언을 서슴지 않는다. 동시에 다른 곳에서 그는 그만큼 남성 측의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의 회복을 더욱 강조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일부 여성 측의 잘못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미러링’의 논리가 남용되면 남용될수록 이는 역설적으로 남성우월주의적인 사상에 더욱 가까워진다. 여성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관점은 도리어 여성의 도덕적 주체성과 행위능력 자체를 박탈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윤리21>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의 도덕철학을 요약하면서, ‘어떤 사건에 대해 사후적인 책임을 지는 것에서 비로소 주체의 도덕적 행위능력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시작한 일이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때 거기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 혹은 ‘불가항력이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메갈리아·워마드의 미러링을 옹호하는 경향신문

나가며
누차 반복했듯이, 메갈리아·워마드와 같은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언행이 사회적 신드롬이 된 근본적인 원인은 남녀의 문제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이에 반해서 오늘날 페미니즘 담론의 주류를 점하게 된 ‘포비아 페미니즘’은 그 근본에서는 세대갈등과 계급갈등이 중첩된 젠더문제를 오로지 남녀 간의 적대적인 대결 구도로 풀어 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풀릴 수 있는 젠더문제는 단 하나도 없다.

이러한 구도 자체에 집착하는 과정에서 포비아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에게 불리한 것으로 보이는 어떠한 사실과 사건(예 일부 젊은 여성 역시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혐오신드롬에 동참하는 현실)도 탈진실화(Post-truth)하려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정작 자신이 옹호하는 집단의 주체성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논리에 깊게 사로잡힌다.

메갈리아·워마드의 혐오발언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는 그 책임을 지속해서 외부에 전가하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그 논리에서는 여성의 도덕적 책임능력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던 남성우월주의자들의 입장과 동일하다.

많은 양식 있는 시민들 그리고 다수의 여성이 포비아 페미니즘의 조류에 의심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안에서 정작 다수의 페미니스트가 남성과 여성을 자유롭고 평등한 도덕적 주체로 사고하거나 최소한 그러한 상태를 지향하는 ‘평등관’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박가분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단행본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paxwon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