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체제 인식 결핍증후군 2

헌법 기관들의 좀도둑질
한국 헌법 기관들의 좀도둑질이나 특수이익 추구가 여간 심각하지 않다. 헌법 제7조에 따라 직업공무원은 국민 일부가 아니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역할을 전제로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국민 전체의 처지와 조건도 모르고, 공무원 교육을 통해서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는다.

직업 공무원들은 헌법에 명기된 ‘신분보장’을 배경으로 자신과 일부의 특수이익을 위해 열심히 위해 봉사하고 있다. 무사히 정년 마치고 두둑한 연금 타거나 기회가 있으면 권한·예산·조직 늘리고, 퇴직 후 산하 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가서 빛나는 노후의 꿈을 즐긴다.

군인도 안정된 직장, 두둑한 연금에 목메는 군복 입은 공무원에 불과하다. 군대가 장성을 위해 존재하는지, 국방을 위해 존재하는지 의심받고 있다. 북한보다 국방 예산이 수십 수백배가 되지만, 미군 없이 우리가 독자적으로 북한의 침략을 막아 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따지고 보면 정치적 중립성이 적용되지 않는 선출직·정무직 공무원이 가진 모든 권한 역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역할을 전제로 주어진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탄핵 논리를 적용하면, 온전할 선출직·정무직 공무원은 거의 없을 것이다.

헌법 제8조에 따라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세금으로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받는 정당 역시 공공성·민주성과는 높은 담을 쌓고 있다.

한국 정당은 공적 가치, 비전, 정책을 공유하는 결사가 아니라, ‘출마자 카르텔’ 혹은 ‘선거 상조회’처럼 됐다. 아예 정당의 목적은 ’선출직 공직자‘가 되는데 필요한 브랜드를 제공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정권을 잡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호한 상태에서) ’정권 획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한국 정당에는 현실에 단단히 뿌리 박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경세방략인 이념이 없다.

한마디로 공공성, 즉 보편이익의 옹호가 본령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통합과 조정의 중심인 정치와 정당과 공무원이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멀면 공동체는 산산이 조각날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 반대 시위(출처 연합뉴스)

헌법 제31조에 따라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받는 교육기관 및 교육자들은 초중고 교육 자치와 대학 자치를 교육자(교장·교원 등 교육 면허를 가진 자와 임용된 교수)들만의 자치(사실상 독재)로 바꿔놓았다. 학부모, 산업과 기업, 지자체 등 교육비용 부담자, 졸업생 구인자들과 면허는 없지만, 교육 능력이 있는 사람·기관들도 배제해 버렸기 때문이다.

정치적 중립성의 미명하에 정당을 교육자치에서 배제했으나, 정당을 기반으로 집권한 대통령은 교육부(관료·예산·법령 등)를 통해 교육에 무한 개입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2015년 가을의 국정교과서 소동은 그렇게 일어난 것이다.

헌법 제33조에 따라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받은 노동조합은 아예 특수이익 추구를 본령으로 삼는다. 노동계급 일반의 이익 내지 기업 횡단적인 근로조건의 표준(노동시장의 공정가격)을 형성, 교섭력이 약한 근로자의 노동권을 옹호하는 것이 노조운동의 본령이라는 생각 자체가 사라졌다.

사실 한국 헌법은 노동자와 노동조합 역시 사용자 및 사용자단체와 마찬가지로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이른바 갑을 관계가 얼마든지 역전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간과했다는 얘기다.

한국 헌법 정신에는 대항력의 균형 내지 무기대등성의 원칙이 없다. 단지 법률을 통해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을 명기해 놓았다. 노동자는 약자라는 것을 전제로 온정주의가 거세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스위스 연방헌법 체계와 비교해 보면 명확하다. 스위스 연방헌법 제26조는 “소유권의 보장”이고 제27조는 “경제적 자유” 조항이다.

①경제적 자유는 보장된다.
②경제적 자유는 특히 직업선택의 자유와 자유로운 사적 영리활동의 참여와 그 자유로운 영위를 포함한다.

그런데 노동3권을 보장한 한국 헌법 제33조와 가장 대비되는 것이 스위스 헌법 “제28조 단결의 자유”이다. 그 조항은 다음과 같다.

①노동자와 사용자, 그 조직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단결하고, 단체를 결성하고, 단체에 가입하거나 가입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②쟁의는 가능하면 협상이나 중재로 조정되어야 한다.
③파업과 직장폐쇄는 그것이 노동관계에 관련된 것이고, 노동평화의 유지의무나 조정교섭의무에 반하지 않는 경우에 허용된다.
④법률로 특정한 법 위의 사람에게 파업을 금지할 수 있다.

헌법 제3장(제40조~65조)에 상세히 명기된 국회와 국회의원의 좀도둑 행태는 언론과 SNS 여론의 핵심 소재이다. 권력 구조와 선거제도를 연구하는 정치학자·행정학자들은 좀도둑적 행태를 상세히 파헤쳤다.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부처의 장 등의 좀도둑적 행태 역시도 그 못지않은 단골 시비 대상이었다.

헌법 제117조, 제118조에 언급된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의원 역시 그들이 움켜쥔 결코 작지 않은 권한(예산권·인사권·규제권 등)을 특수이익을 위해 농단하는 징후가 역력하다. 부정부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직자들에게 최고 선망의 일자리가 된, 위험(risk)은 적고 이익(return)은 큰 공공부문 일자리(비정규직 채용과 정규직화)는 본질적으로, 지자체장에 의한 국민 세금(지방 재정)을 전용한 매표 행위의 수단이 됐다. 엄청난 사회간접자본 유지·보수·건설 사업은 중앙과 지방 공무원(지자체장 포함)의 후한 지대(이권) 선심 대상이 됐다.

헌법 제123조에 따라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으로 설립, 운영되는 농협 등도 그 임직원들의 특수이익 추구 수단이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기업 등 공공기관·금융·의료·언론 등 공공성을 전제로 다양한 특권·특혜가 주어지는 거의 모든 곳에서 공공을 참칭한 지대추구가 만연하다.

공공기관 ‘빚과 방만 경영’ 경제 위협(출처 KBS)

물론 이 집단이나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심성이 선진국보다 특별히 나빠서가 아닐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구조적·제도적으로 주권자 국민이 대리인인 정치인, 지자체장과 의원, 정당, 관료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 체제와 1987 체제
조선 체제와 1987 체제의 모순 부조리 인식이 결핍되면서 (파리바게뜨·삼성 등) 자본 갑질에는 매우 예민하지만, 국가(공공) 갑질에는 너무나 둔감하다. 공공부문과 노동조합과는 일종의 연정과 협치를 하려고 한다. 이들의 기득권 존중은 필연이다.

국가 갑질은 과거에는 군사독재였지만, 지금은 법률 폭력, 행정(규제·예산) 폭력, 사법 폭력, 정책 폭력, 터무니없이 높은 공공부문 임금 연금 폭력 등으로 나타난다. 폭력은 정의와 상식에 현저히 반하는 제도와 행위를 말한다.

분단체제의 문제는 휴전선, 군사적 충돌, 탈북자, 북핵 위기, 국가보안법, 병역의무와 40조원 넘는 국방예산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인식하기 쉽다. 물론 1930년대 후반에 태어나 분단, 전쟁, 정전체제와 군사독재의 패악질(창비 폐간, 해직 등)을 겪었고, 무엇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먹고 사는 문학과 출판 일을 한 백낙청 선생만큼 사무치게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조선의 양반 사족들처럼,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국가(공공)부문의 갑질과 지대추구는 거의 합법의 외피를 쓰고 있기에 문제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500만명이 먹을 파이를 250만명의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먹어도 표가 나지 않는다. 한해 100조원 넘는 예산을 낭비해도 국민은 모른다. 한해 500조원의 부가가치를 더 만들어낼 산업, 기업, 청년 인재의 창의와 열정을 틀어막고 짓이겨도 잘 모른다. 그것은 선진국과 상세비교를 하거나 기회비용을 인식하는 눈이 있어야 보이기 때문이다.

특수이익(사익)을 위해 보편이익(공익)을, 단기적 이익을 위해 중장기적 이익을 희생시키는 충동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양반 사족 등 지배층은 백성에 대한 가렴주구를 넘어, 자연(환경)과 미래세대에 대한 약탈(부담 전가)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이 참상이 19세기 말 조선 사회를 살펴본 외국인들의 이야기(조선 여행기) 속에 넘쳐난다.

사진=이사벨라 버드 비숍

1894년에 조선에 와서 이후 3년에 걸쳐 조선·중국·연해주 일대를 여행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이 본 조선의 핵심 부조리는 정부의 가렴주구와 재산권 보호 문제였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가난이 그들의 최고의 방어막이며, 그와 그의 가족에게 음식과 옷을 주는 것 이외에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탐욕스럽고 부정한 관리들에 의해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중략)만일 한 사람이 얼마의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면 관리는 그것을 빌려달라고 요구한다. 그것을 들어주면 빌려준 사람은 원금 또는 이자를 결코 받지 못한다. 만일 상환을 요구하면 그는 체포되어 조작된 죄목에 의해 부과된 벌금 때문에 투옥되고 자신이나 친척이 관리들이 요구하는 금액을 낼 때까지 매를 맞는다. 겨울이 아주 추운 한국의 북부에서 농부들은 수확으로 얼마간의 현금을 가지게 될 때, 그것을 땅속의 구멍에다 넣고 거기에다 물을 뿌리는데, 관리와 도적들로부터 안전해질 때까지 돈 꾸러미는 그렇게 얼려진 땅속에 묻힌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389~390p

관의 가렴주구가 가능했던 것은 겉으로 보면 왕과 양반 관료 지배층의 윤리, 도덕과 통치 능력의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한 꺼풀 더 벗겨보면 외세 외에는 전혀 견제할 수없는 무소불위 국가권력의 필연적인 타락이다.

조선은 백성은 가난하고, 그나마 지방의 양반 관료들의 세금 포탈(과세 대상 토지 누락 등), 중간착취 등이 심해서 정부가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나라였다. 왕권은 대원군 집권 시기를 제외하고는 양반 관료들을 거의 제압하지 못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는 왕조가 약탈 면허증처럼 취급되던 관직을 팔아서 재정을 조달하는 나라였다. 목마르다고 마신 바닷물처럼, 매관매직은 양반 관료의 가렴주구를 더욱 심화시켰다.

공무원, 노조, 농협, 경제세력, 지방세력 등의 약탈이나 좀도둑질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대한민국과 말기 조선은 점점 닮아가고 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지식인과 정치인의 이상주의적 열정이 만든 조선 체제가 만든 참상은 지금 권력 구조 개편 등 헌법 개정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대목이 아닌가 한다. 우리 사회의 지난 역사에 대한 관심은 일제 침략(만행)사나 친일청산 실패사가 아니라 조선 망국사로 옮겨가야 한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socialdesign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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