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하는 대중과 퇴행하는 반성폭력 운동

연예계와 사내 성폭력사건 논란에 부쳐

1. 일련의 성폭력사건 보도에 신중 모드로 돌아선 대중여론
최근 연달아 언론 지면에서 성폭행사건이 기사화됐다. 배우 조덕제의 성추행 논란과 한샘 그리고 현대카드 사내의 성폭행 논란이 연이어 터진 것이다. 이 사건들은 초기에는 대중의 공분을 샀지만 이후 석연치 않은 대목이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이 더욱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 모두 언론상의 보도와 인터넷상의 폭로로 불거진 성폭력사건들이다.

남녀를 불문하고서 예나 지금이나 대중은 성폭력사건에 대해서는 불관용을 원칙으로 반응한다. 인터넷 댓글 창을 보면 성범죄 혐의만 걸렸다 하면 마치 당사자를 목 매달에 사형에 처할 기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안들에 대해서조차 자칭 피해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구체적인 정황과 맥락이 알려지면 대중은 곧바로 신중 모드로 돌아선다.

최근의 극명한 사례는 바로 배우 조덕제의 영화촬영 중의 성추행 논란이었다. 2심에서는 1심과 달리 촬영하는 여배우를 성추행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자 배우 조덕제는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자처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출처 디스패치

그리고 이어서 <디스패치> 등의 언론을 통해 유출된 메이킹 필름에서 이 갈등이 강간씬을 찍으려는 영화감독의 무리한 지시에서 비롯된 문제였을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법원이 이 메이킹 필름을 증거로 채택하라는 여론과 더불어 배우 조덕제에 대한 동정론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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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내비치는 이러한 급격한 ‘태세전환’의 배경에는 그동안 성폭력 허위폭로사건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 자행된 마녀사냥에 대해 축적된 학습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는 240번 버스기사 마녀사냥이 있었고 가까운 시일 내에서도 채선당 사건과 그 유명한 ‘섹스촌’ 사건이 있었다.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부당한 일에 대한 폭로에 여론이 들끓다가도 급격하게 여론이 전환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타칭 한샘 성폭행 가해자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로 처리된 것이 뒤늦게 알려짐에 따라 일각에서는 성폭행사건의 진위에 대해 의구심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또한, 현대카드의 성폭행 폭로사건은 이후 사측을 통해 자칭 피해자 측의 끈질긴 교제 요구에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평소 고충을 상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폭로의 사실 여부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사내 성폭행 논란에 대한 현대카드의 입장

2. 대중의 불신을 초래한 것은 여성계의 무분별한 ‘피해자 중심주의’
물론 이러한 대중의 ‘신중 모드’는 그동안 축적된 여성계의 ‘피해자 중심주의’의 오류와 맞물려 있다.

이 점에서 여성계는 그 내부 자성의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의 이른바 ‘100인위 사건’ 당시로부터 담론의 발전이 없다. 100인위 사건이란 서울대 등 당시 대학가에서 시작된 운동권 내 성폭력 연쇄폭로 사건을 의미한다. 이 중에서는 실제 성폭력 사건도 있었지만 이를 무리하게 여론화하려는 과정에서 다수의 무고한 피해자를 낳아 비공식적으로나마 여성계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술자리 회고담 같은 방식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100인위 사건과 같은 파행적 여론화를 지탱한 것은 이른바 ‘피해자 중심주의’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란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여성은 자신의 피해 경험을 진술하는 데 있어 거짓을 말할 동기가 전혀 혹은 거의 없으며, 따라서 이들의 폭로의 진실성을 공동체가 무한히 신뢰해야 하고 이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허구적인 가정에 기초해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에는 자칭 피해자 측의 폭로 과정에 공익적 동기만이 존재하며 거기에는 다른 어떤 다른 사적인 동기도 개입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가정이 뒷받침된다.

경희대 총여학생회

그러나 그것을 반증하는 가장 극명한 사례는 2000년대 중반 대학가의 여성단체들이 경희대 국문학과 서정범 교수를 성폭행범으로 몰았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이때 그를 성폭행범으로 무고한 여성은 사실은 교수에 대한 연애감정이 좌절되자 복수심으로 허위폭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공익적인 동기로 포장된 폭로사건들이 사실은 전혀 다른 원한 감정이나 공명심 혹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행해지기도 한다.

물론 제도적인 절차가 미비할 때 내부폭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폭로자들을 지원하는 데 관련 여성지원단체의 존재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동기에 기초한 폭로에 대한 방어장치나 내부적인 검증과정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지원단체들은 1990년대 이래로 조금도 발전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피해자 지원단체 측에서 허위폭로의 상황을 상정한 시나리오 내지는 프로토콜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지난날 교육현장에서 여학생에 대한 성희롱을 저지른 것으로 고발당한 교사가 자살한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때 사건을 처리한 모 인권위원회는 고발당한 교사의 제자들이 성폭력 고발이 다른 동료 교사의 원한 관계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탄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해 더욱 큰 논란에 휩싸였다. 성폭력 무고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상정하지 않은 인권현장의 사건 대응방식이 낳은 비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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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피해자 지원단체는 실제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근거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더욱 경청하고 이들에 대한 법률적 지원과 심리상담 등의 지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바로 그만큼 충분한 근거가 확보되지 않는 한 자칭 피해자의 주장만으로 성명을 발표해 여론재판을 유도하는 것을 삼가고, 자신의 행위로 가해자로 잘못 지목된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보상과 사과 방식을 내부적인 절차로 마련하며, 나아가 성폭력 무고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최소한 공익적인 책임성이 없다면 그들 스스로가 공익성을 주장하며 피해자 지원을 자처하는 것은 모순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러한 공익적 책임성을 소홀히 하는 이들이 일부 성폭력 폭로 사건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가하는 대중여론을 공익적인 이유에서 비난할 자격은 더더욱 없다.

3. 더더욱 발전이 없는 언론
더더더욱 한심한 것은 이러한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는 일각에서 ‘기레기’로 지칭되는 언론들이다.

한 언론은 최근 폭로된 사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표제들로 보도한 바 있다. “‘한샘’ 내부 성폭행 사건 고발에 불매운동으로 확산”, “‘H카드 직장 내 성폭행’ 고발 글도 올라와”, “가해자 ‘카톡’ 해명에 “호감있다고 강간하는 것 아니다 비판” 등. 이들은 기사 소제목으로 ‘친절한 기자들’을 자처하며 최근 성폭행 폭로주장 전체를 진실로 단정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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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중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호감이 있다고 해서 성폭행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은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성폭력 사건에 대해 조심을 기할 것을 대중에 요청하는 기자 자신이 정작 폭로된 타칭 가해자를 성폭행 가해자로 단정하는 성급한 논조는 아무리 봐도 모순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폭로자를 함부로 꽃뱀 등으로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수긍되지만 동시에 가해 지목자는 성폭행 가해자로 함부로 단정 지어도 된다는 저 ‘선택적인 인권의식’이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자칭 피해자가 타칭 가해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성폭력이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성폭력 폭로주장이 그 자체로 주장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명제는 상호모순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기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어떨까. 인터넷 기사 베플들을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한샘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제일 정확히 알 것 같네요. 남직원 여직원 둘 모두를 곁에서 본 사람들이 가장 확실히 파악을 하겠죠.

정리해 주신 건 고마운데. 정리내용에 그 글이 빠졌네요. 경찰 측에서 모텔직원 및 CCTV 확인했는데 여자분이 쓴 글이랑 다른 상황이었다는 거요. 몰카랑 성추행은 이미 확실하니까 그렇다 쳐도.. 오히려 무혐의 처분 나오고 지금 한창 재수사 얘기 나오는 시점인데 기자가 그냥 남자가 가해자가 맞다는 뉘앙스는 잘못된 것 같습니다.

저 기자는 뭐임? 어떻게 강간이라고 확신할 수가 있지? 본인이 아닌 이상? 강간이라고 하는 쪽과 아니라고 하는 쪽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으면 증거를 찾고, 조사를 해봐야 아는 일일 텐데 어떻게 제3자인 사람이 강간이라고 확신하며 떠들 수가 있는지 신기하네

<한겨레> 기사 베플

이처럼 기자 자신이 상상하는 문제점과 달리 정작 대중은 단지 자칭 피해자의 행실을 ‘문란하다’느니 등등의 손쉬운 방식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그보다 그들은 과거 경험에 비추어 주장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데 있어서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활의 지혜를 체득한 것일 뿐이다.

그들은 언론들보다 더 불공정한 방식으로 이 사안을 대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대중의 학습된 신중함에 비해 인터넷 폭로 사건에서 학습능력 퇴행을 보이는 측은 신중함을 상실한 일부 언론 기자 자신들이다.

박가분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단행본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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