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희의 트랜스젠더 발언, ‘개인적 일탈’일까

트랜스젠더가 불편한 한서희

빅뱅 탑과 대마초 흡연 협의로 입건된 이후 ‘페미니즘 선언’으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한서희에게서 나온 트랜스젠더 관련 발언이 최근 들어 화제가 되고 있다.

한서희는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트랜스젠더는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물학적으로도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고 발언했다. 이어 그는 (페미니즘 운동과 관련해) “여성만 안고 간다”고 발언했다. 페미니스트로서 트랜스젠더 인권도 챙겨달라는 한 댓글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사진=한서희 인스타그램 라이브 영상 캡처

이러한 발언은 즉각 논란이 됐다. 하리수는 이에 대해 반발하며 “이 사람의 인성도 저지른 행동도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라는 공개 저격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어서 그는 자신에게도 쏟아지는 (자궁이 없다는 둥의) 악플에 대해 “병 때문에 혹은 암에 걸려 자궁적출 받으신 분들도 계시는데 저 글에 따르면 그분들도 다 여자가 아닌 거죠?” 등의 항변을 이어갔다.

트랜스젠더를 불편해하는 여성들

수많은 언론과 기자가 한서희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편 한서희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공중의 날 선 반응은 다소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의 발언은 여초 커뮤니티와 넷 페미니즘의 전반적인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갈리아 워마드와 같은 혐오사이트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젠신병자(트랜스젠더+정신병자)’와 같은 극단적인 언행이 일상어로 정착됐다. 여성이 아니면서 여성을 흉내 내는 정신병자라는 반감이 담겨 있는 언어이다.

이뿐만 아니라 여초커뮤니티 일각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을 중시하는 일부 페미니즘 조류에 대해 ‘쓰까페미’라고 비아냥거리는 신조어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페미위키’에도 등재된 이 단어는 ‘여성인권’만을 챙겨야 할 페미니즘이 타인(ex 성소수자, 남성)의 인권을 ‘섞는다’고 반발하는 데서 생긴 말이다.

이러한 신조어들은 메갈리아나 워마드와 같은 극단적인 부류뿐만 아니라 여초 커뮤니티 내에서의 일반적인 인식에 의해 뒷받침한다. 설사 ‘젠신병자’나 ‘쓰까페미’와 같은 비아냥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생리도 해 보지 않는 것들이 무슨 여자냐’ 등과 같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위화감을 표출하는 모습은 여초 커뮤니티 내에서 흔하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이버 테러

워마드 내부 트랜스젠더에 대한 욕설(출처 워마드 커뮤니티)

여성커뮤니티 내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반감은 현실의 사이버 테러로도 이어진 바 있다. 워마드 회원들이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회원 신상정보를 외부에 유출한 일이 대표적이다.

<포비아 페미니즘>에 실린 사례를 제보한 한 트랜스젠더는 이와 관련한 실상을 전한다.

그들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로 들어와서 트랜스젠더들의 사진을 외부 사이트로 퍼 나르고 있습니다. 꽤 전에 봤는데 아마 지금도 하고 있을 겁니다. 아무도 그것으로 고소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거든요. 그 때문에 한동안 모든 트랜스젠더 커뮤니티가 신규회원을 받지 않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자기들 커뮤니티에 크로스드레서나 트랜스젠더 사진이 포함된 게시물을 복사해오는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올려서 비웃거나, 아니면 아예 관계없는 다른 카페로 퍼가기도 하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워마드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서 어디로 주로 퍼 날랐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다음카페 ‘취X뽀개기’에 퍼간 것을 실제로 확인했었습니다.
-<포비아 페미니즘>, 228~229페이지

여기서 페미니즘에서 한동안 회자되었던 ‘혐오의 피라미드’ 이론을 복기해 보도록 하자. 현실의 소수자·약자에 대한 테러는 일상 속에 켜켜이 쌓인 혐오문화의 관행 위에 성립한 것이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워마드의 사이버테러 역시 여성 커뮤니티에 만연한 트랜스젠더에 대한 반감과 차별의식을 뿌리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성계의 트랜스젠더 혐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경멸감을 드러내는 일은 해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로 줄리 빈델과 같은 페미니스트는 지난 2004년 <가디언>에 기고한 한 글에서 “남자들이 자기 성기를 잘라내는 것은 개의치 않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청바지 안에 진공청소기 호스를 집어넣는다고 해서 남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트랜스젠더를 야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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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Gender benders, beware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차별의식은 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난 1970년대에 페미니스트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한 잰시 레이몬드 역시 “모든 트랜스젠더는 여성의 몸을 일개 인공물로 환원하고 여성의 몸을 착취한다”고 격렬하게 비난한 바 있다(출처 <The Gender Games>). 심지어 일부 페미니스트는 트랜스젠더를 여성연대를 교란하기 위한 가부장제 음모의 결과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행이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구글 검색을 통해 ‘트랜스 포비아 페미니즘’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 보라. 지금도 수많은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블로그와 SNS 계정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해외 페미니스트의 혐오스러운 언행들을 인용하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반감과 혐오의식을 이론적으로, 지적으로 정당화하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

여성계 내부의 소수자·약자 ‘포비아’를 돌아보아야
지금도 수많은 자칭 페미니스트는 트랜스젠더들이 ‘본연의’ ‘올바르고’ ‘도덕적’인 여성성 그리고 여성의 신체를 희화화한다고 분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들에 한해서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명제는 거짓이 아닐까.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페미니즘 일각이 드러내는 천박한 의식은, ‘가부장제’만이 남성과 여성의 위치를 본질화하고 성소수자를 탄압하며 주변화하는 유일한 주범이라고 소리 높여 외쳤던 페미니스트 자신들의 이론적 거짓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들 스스로가 차별의식의 주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벨 훅스(출처 예스24)

다름을 관용하지 못하는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문제 제기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벨 훅스는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라는 저서에서 남녀 간의 증오를 부추기고 흑인들이 겪는 인종적 문제와 빈곤층이 겪는 계급적 차별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위선을 폭로한 바 있다. 특히 그는 여성우월적 관점에서 남성을 적대시하는 페미니즘 일각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적시한 바 있다.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흑인 여성들이 많았다. 반남성적 태도는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데 정상적인 기반이 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반남성적 태도와 같은 증오심에 찬 감정표현은 여성과 남성 사이에 이미 존재했던 적개심을 증가시킴으로써 성차별을 강화했다고 그들은 확신했다.

흑인 여성들은 흑인 남성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는 서로 적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사회화를 거부해야 한다.” 흑인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유대를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반인종주의 투쟁이었다.
-벨 훅스,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 121페이지

물론 혐오의식에 기반을 둔 다수 페미니즘 지지자에게 벨 훅스는 전형적인 ‘쓰까페미’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자칭 페미니스트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몰이해와 반감의 대상은 트랜스젠더에만 그치지 않는다.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똥꼬충’ 등의 게이 혐오 발언이 만연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워마드의 ‘태일해’와 같은 산업재해 피해자 조롱 발언에서 엿보이듯이 빈곤남성과 약자에 대한 혐오 역시 활발하다.

한편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계는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혐오’가 많은 사회문제와 범죄를 일으켰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보다시피 혐오와 차별의식의 문제는 특정 성별의 문제만은 아니다. 혐오문제에 대한 전 사회적인 자성을 요구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들 스스로 내부에 만연해 있는 성소수자·약자 혐오를 돌아보고 자성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박가분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단행본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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