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에서 문명을 생각하다 1

아주 오랜만에 IPTV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을 봤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박열의 지성과 기지가 번득이는 법정투쟁방식, 가네코 후미코역을 맡은 배우의 빼어난 연기, 1920년대 일본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풍미하던 시절의 사회 분위기 등이었다.

1970~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그랬듯이, 1920년대 박열은 재판정을 선전선동의 장으로 활용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일본이 유럽과 미국 못지않은 문명국으로 보이기 위해 현대적 사법 절차(형사소송절차)를 준수하려고 적지 않게 노력했기 때문이다.

영화 <박열> 포스터

당시 일본은 (‘박열’이 십분 활용했던) 일본이 문명국임을 과시하려던 근대적 사법절차 및 다이쇼데모크라시 세력과 조선인 6000명을 학살한 자경단 및 내무대신(3·1운동 당시 조선 총독부 내무책임자)의 ‘야만’ 간의 긴장과 갈등이 심했던 듯하다. 수사와 재판 과정 자체가 말로만 듣던 다이쇼데모크라시의 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해방공간이 넘치던 야만의 수수께기
그런데 1945~53년 시기 한반도에서 벌어진 좌우익 갈등과 한국전쟁 과정에서는 근대적 사법절차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졌다. 물론 아무리 문명사회라 할지라도 군대 대 군대의 전쟁에서는 모든 문명이 휴지조각이 된다. 하지만 민간 대 민간, 군인 대 민간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이는 살인이고, 전쟁 범죄가 된다.

1980년대 내내 필자는 1945~53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상상을 초월한 야만에 대한 증언을 들으면서 당혹해하고 분개하고 몸서리 쳤다. (개인적으로 자서전, 수기, 평전을 참 좋아하는데, 그 때문에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것이 더 소설 같으니···.)

해방을 계기로 에도시대를 거쳐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식 근대화 과정을 통해 축적한 일본 문명을 완전히 쓸어내 버리자, 인권·재산권·법치·사법절차·개인주의·상대주의와 완전히 담쌓은 말기 조선 문명(악습)이 일거에 부활했다. 제주·거창·함양 등 전국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 연좌제, 보도연맹 대학살, 가족·씨족간 상호 보복 학살, 사적 감정에 의한 살해, 재산 강탈과 강간 등이다.

일찍부터 필자는 제주도 내 본적지(신촌) 옆집의 아버지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자 4·3 당시 유격대장이던 이덕구의 젖먹이 아들을 토벌대가 (나중에 후환을 없앤다고) 머리에 총을 쏴서 죽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외에도 경주의 이덕우라는 놈이 저지른 만행,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의 입산 경위, 경남·전북 일대 좌익 부역자들과 가족들이 대거 지리산으로 들어간 경위 등 무수한 얘기들을 들으며 몸서리쳤다.

솔직히 아직도 필자는 왜 그렇게 잔악한 ‘가족 연좌죄’에 근거한 고문과 학살극이 벌어졌는지 그 심리와 논리를 이해 할 수 없다. 필자가 아는 한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아주 괴이한 일이다.

제주 4·3 평화 기념관

이해 안 가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1946년 당시부터 좌익은 미국을 미제국주의라 부르며 대결주의적으로 나갔다. 그 당시 미국이 어떤 나라였나? 그 강대한 일본을 패망시켜 조선을 해방하고, 나치독일의 침공에 허덕이던 소련에 엄청난 전쟁 물자를 제공했고, 당시로는 유일한 핵무장 국가였다. 그런데 그런 미국과 어떻게 그리도 일찍 대결주의적 자세로 나갔는지? 그때 보여줬던 무모함, 편협함(국제감각 제로), 허장성세 등이 지금 북한과 남한 내 극좌들의 태도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남한은 일제 철수 후 말기 조선 문명이 부활했지만, 곧바로 미국 문명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사실 미국 문명은 기독교 선교사를 통해 19세기 후반부터 들어와서 바닥을 깔아놓은 상태였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은 물러갔지만, 일본이 깔아둔 법적, 제도적 인프라는 거의 그대로 썼다. 이병철, 정주영 등 기업가들은 일본으로부터 기술과 설비를 많이 들여와서 한국 경제발전의 기틀을 닦았다. 일본이 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면서, (부품에 주력한 대만과 달리) 반도체,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철강, 가전, LCD 등에서 일본과 정면 대결의 길로 갔고,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북한은 일제 철수 후, 남한처럼 말기 조선 문명이 부활했지만, 동시에 스탈린 시대 소련 문명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그런데 남한과 달리 일본 문명이 가진 합리적인 핵심을 대체로 무시해 버렸다. 미국·유럽 문명도 마찬가지로 무시해 버렸다. 결국 후진 문명 2개가 중첩되고 융합된 결과가 지금의 괴이한 국가, 북한이 아닐까 한다.

국가주의
북한이야 실패 국가라 치고, 문제는 남한이다. 이제 전환기의 포연과 안개가 걷히고 보니, 대한민국 역시 말기 조선 문명이 스믈스믈 기어 나와 대한민국을 거의 삼켜버릴 지경이라는 느낌이 든다.

조선 문명이 낳은 가장 강하고 질긴 악덕이 ‘국가주의=권력만능주의’다. 이놈은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관주주의로, 시장경제를 관치경제로 변질시키고 있다. 국가는 시장이나 사회(커뮤니티)와 달리 강제로 자원(세금·자산·인력 등)을 수취(수용·징발·징집)하고 운용할 수 있다. 이 명분은 국민전체의 이익(국리민복) 증진, 곧 공공성(public)이다. 시장과 사회는 기본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와 요구(사적 이익)를 받아 안지만, 국가는 국민전체의 이해와 요구를 받아 안는다.

그런데 공공성은 아무래도 애매할 수밖에 없다. 국민전체의 이해와 요구는 관점에 따라, 시점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고, 또 계량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애매할 수밖에 없는 공공성의 이름으로, 자신의 가치와 판단을 강제적, 폭력적으로 관철할 수 있다는 것이 국가의 핵심 권능이자 약점이다.

그렇기에 국가의 관여·개입 영역이 많을수록, 국가에 대한 민주공화적 통제가 허술할수록 국가 운영자들의 지성과 덕성이 부실할수록, 국가는 온 사회를 착취하고 억누르는 괴물로 변신하게 되어 있다. 또 국가가 괴물에 근접할수록 국가권력 쟁탈전은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또한 권력에 근접하는 것, 즉 국가 부문 종사자가 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 된다. 이는 조선의 쇠락, 북한의 야만, 지난 20여년에 걸친 대한민국의 점진적 쇠락 현상 등을 설명할 수 있다.

20세기에 탄생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정도의 차이는 좀 있지만 거의 예외 없이 일당독재, 개인숭배로 내달린 이유는, 자본가들의 반발과 자본주의 국가들의 간섭 분쇄의 필요성(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 때문만이 아니다. 이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국가가 시장을 내쫓고, 가치와 자원을 일방적으로 분배하는 한, 인간의 불만과 불신을 잠재울 방법이 독재나 기본권(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 억압 외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창의와 노력으로 최대의 이익(효용)을 추구하다가, 시장에서 한계를 절감하지 않는 한, 신이 가치와 자원을 분배한다고 해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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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socialdesign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