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에서 문명을 생각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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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에서 문명을 생각하다 1

가족주의
또 하나 조선 문명이 낳은 강하고 질긴 악덕이 바로 가족주의다.

가족을 개개의 가족 성원보다 중시하고, 가족적 인간관계를 가족 이외의 사회관계에까지 확대 적용하려는 주의다.
-두산백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족은 위계와 서열이 있다. 안(내부자)과 밖(외부자)의 구별이 뚜렷하다. 가족(가장)의 부·권력·지위는 가족 성원에게도 상속된다. 무임승차를 허용한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가족·친족과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집단이 취약했다. 20세기 이후 기업·종교단체·노동조합·협동조합·직능단체·향우회·동창회·동호회 등 무수히 많은 단체가 생겨나긴 했지만, 이들은 보편적, 포괄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예컨대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이나 산업·업종·지역 노동자들의 이익을 의식하지도 않고 대변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종업원으로서의 이익을 추구한다. 단위 기업 차원에서는 노사가 대립하지만, 협력업체나 소비자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담합한다. 한국의 중간집단은 대체로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사는 것”을 지향한다.

노조도 계급이 있다(?)

하나 같이 안(내부자)과 밖(외부자)을 가르는 벽이 높다. 외부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당연시한다. 가족의 구성원이 되면 가족의 부·권력·지위가 자신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집단의 구성원이 되면 집단의 부·권력·지위가 자기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무임승차, 즉 집단의 지대(렌트)를 개인적으로 누리는 것을 당연시한다. 가족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뚜렷한, 땅(소속) 역할을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랑·존중·배려의 가족 윤리는 가족 안에만 존재하지만, 사회 전반에는 가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결합해 만든 위계와 서열은 존재한다. 외부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도 존재한다. 내부자가 되기만 하면, 별 기여가 없어도 집단이 가진 부와 권력과 지위, 혹은 권리와 이익과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도 흔들림이 없다.

이는 결국 좋은 직장(소속) 진입경쟁으로, 위(위치)로 올라가려는 승진 경쟁으로 나타난다. 직장이나 부서에서 전직과 현직, 동문이나 동향 선배와 후배를 가족처럼 엮어, 서로 상부상조하게 하면서, 수많은 마피아를 만들어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본질에서 ‘지대추구’다.

국가는 본래 공공=도덕의 이름으로 강탈과 재분배를 하는 존재다. 민주주의 이전에는 공공은 허울이었고, 본인(권력집단)들을 위해서 강탈을 했다. 그래서 조선, 북한 등 권력의 힘이 강한 나라는 예외 없이 사회 저변에 약탈주의가 거세게 흐른다. 권력을 통해 자원을 분배하고 사회를 운영하는 곳은 예외 없이 위계와 서열이 분명하다. 백성이나 인민을 ‘사농공상’이나 ‘당성’을 기준으로 등급화한다. 특권과 특혜 혹은 배제와 차별이 내면화되어있다. 조선은 군사부일체라고, 가족 윤리와 국가 윤리를 하나로 통합하려고 했다.

1907년 12월 1만 의병의 총대장(13도창의총대장) 이인영이 의병 전쟁 중 부친 사망 소식을 듣고, 지휘권을 다른 사람(허위)에게 넘기고 낙향해 장례를 치르고, 이후 의병총대장 복귀를 종용받았으나 번번이 3년 상을 이유로 복귀하지 않은 것은 공적 윤리와 사적 윤리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국가주의는 권력만능주의고, 모호한 도덕=공공지상주의다. 또한, 약탈주의, 위계서열주의, 위선적 도덕(명분)주의가 필요하다. 가족주의는 위계서열주의, 외부자와 내부자 차별, 내부자에 대한 무임승차 주의를 내장하고 있다.

요컨대 조선에서 유래하는 국가주의와 가족주의가 낳은 악덕이 관피아와 공공양반사회, 직장계급 사회가 아닌가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 반대 시위

지난 30년의 성찰
나이가 들면서 역사를 30년, 50년씩 끊어서 보는데, 러시아의 오늘의 모습, 북한의 모습, 남미의 모습 등을 보면서 역사적 유산이 얼마나 강고한지 절감하게 된다. 최근 들어서는 문재인 정부의 하는 행태를 보면서 또 한 번 절감한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친 수많은 인생이 바다에 쟁기질 한 농부라는 것을!

생각해 보니, 지난 30여년 동안 역사의 주도권을 쥔 민주화 세력에게는 자주·민주·통일·저항·투쟁·권리·쟁취 같은 개념은 있었지만, 보편적 문명 개념이 없었다. 유럽·미국 문명과 일본 문명이 어떤 정신과 방법으로 만들어졌는지 잘 보지 않았다. 당연히 한국의 근현대사는 그런 관점에서 보지 않았다. 북한은 남한 보다 훨씬 심했고···.

안창호 등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선각자 중 일부는 무실역행-충의용감과 이상촌 계획 등 나로부터 출발해서(나부터 훌륭한 문명인이 되어), 내 이웃을 바꾸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든다는 운동과 정치의 기본에 충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나라가 없었기에 권력이라는 수단은 일제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는 권력이라는 사회변혁의 수단이자, 개인의 먹거리가 생기면서, 문명 건설의 기본을 잊어버렸다. 19세기 독일 사민주의 운동이나 노동운동은 국가의 개입, 지원을 거부하고, 노동자들끼리 혹은 노동과 자본이 비용을 2대 1로 분담해 자치적으로 사회보험제도 등을 건설하려고 했다.

1880년대 초 공적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할 당시, 이 창안자 비스마르크 수장은 원래 보험료를 기업이 3분의 2, 국가가 3분의 1을 분담하거나 아니면 기업이 모두 부담하는 방식, 한마디로 무상보험을 제공해 노동자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려 했다.

1894년 흉갑기병 제복을 입은 오토 폰 비스마르크

그러나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은 비스마르크식 ‘과도한 국가개입과 중앙통제의 효율성에 회의하고 반발해’ 국가 부조를 완전히 배제하고, 보험당사자(노동자)가 3분의 2, 기업이 3분의 1을 분담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보험조합 집행기구도 보험료 부담 비율에 따라 노동자가 3분의 2, 사용자가 3분의 1을 차지했다. 또한, 보험조합도 지역이나 직종에 따라 분산했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정치 세력과 노동운동에는 자조와 연대, 즉 우리 호주머니를 털어, 연대를 통해 우리의 문제(질병·실업·산재 등)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개념이 없다. 국가 통제에 대한 두려움은 더 없다. 오히려 기업이나 국가에 더 많은 부담을 시킨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자조에 기초한 연대가 아니라, 연대에 기초한 (권리·이익) 쟁취가 기본 이념이다.

권리·이익에 상응해 누군가가 질 의무, 부담은 안중에도 없다. 자본과 국가에 요구해 쟁취할 뿐이다. 그리고 국가권력에 다가갈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가권력을 통한 권리, 이익 강제=의무, 부담 강제 의지는 더 강해지고 있다. 이는 본질에서 약탈주의요, 지대추구다. 20대 내내 노동운동 한답시고 뛰어다닐 때는 한국 민주화운동, 진보운동, 노동운동의 특이한 철학 가치라는 유전자를 잘 보지 못했다.

그래서 20세기 식민지 시대 선각자들, 안창호와 (광주의 성자) 최흥종 목사에게 참 감동을 많이 받는다. 그 시대는 일본 강점기였기에, 일제의 힘을 빌려서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 19세기 후반 독일 사민주의자들과 노동운동과 생각이 많이 통했을 것이다. 국가가 개입할 조짐만 보이면, 국가가 던져주는 사탕일지라도 먹지 않으려고 하였다. 자조·연대·자치·자율책임 정신이 강했다.

그런데 해방 이후, 특히 1970년대 이후 노동운동이든 농민운동이든 뭐든 국가에 뭔가를 요구하거나(따내거나), 자본에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 기조가 됐다. 하지만 유럽과 달리 연대의 단위는 오로지 가족과 가족의 확장(동향, 동문, OB-YB 등)일 뿐이었다. 끼리끼리 잘살아 보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가 지금 조선적 철학, 가치의 핵심인 국가=권력 만능주의, 가족주의, 약탈주의와 지대추구가 대한민국의 정신과 문화를 황폐하게 하고, 시장생태계도 황폐하게 하고, 국가는 혼미 무능하게 만들어 끝내 헬조선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삼류 국가를 피하는 길
대한민국이 삼류 국가로 퇴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대한민국 안에서 천하 만물을 좌지우지하는 국가(정치·행정·사법)의 행위와 비용(고용·임금·연금·복리후생·경상비 등)을 최대한 공개해, 시시비비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공공부문과 권력 행위에 공개화,투명화라는 CCTV를 달아야 한다. 공직 및 공공기관 인사든, 정책이든, 예산이든, 법안이든, 검찰 수사든, 국세청 조사든, 감사원 감사든 누가 어떤 근거로 하는지를 사후라도 반드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 밀실과 비공개를 최대한 없애서, 떳떳하지 못한 일을 아예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국가가 행사하는 많은 권력은 시장으로, 사회로, 지방으로, 공공성과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 위원회로 대거 이동할 것이다. 가족 밖(직장 등)으로 튀어나온 가족주의도 공개화, 투명화라는 햇볕을 쬐면 빠르게 녹아내릴 것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socialdesign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