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의 몰락

[독자기고]

<한겨레>가 처음 창간됐을 때의 신선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해직 기자들이 모여서 만든 신문, 독재 권력에 맞서서 할 말은 하던 신문, 우리나라 최초로 가로쓰기 판형을 도입한 신문,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 등등 <한겨레>가 최초 또는 최고라고 가지고 있는 타이틀은 매우 많다.

평생 <조선일보>만 보신 아버지 덕분에 <조선일보>만 보던 필자에게 <한겨레>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때마침 있었던 ‘89년의 전교조 대량 해직사태’는 더더욱 그 불을 질렀다. 필자를 가르치던 가장 좋은 선생님들이 줄줄이 해직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사회에 대한 반항의식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해직된 선생님들의 자리를 채운 교사들의 실력이 형편없었던 것도 더욱 그걸 부추겼다.

마음대로 신문을 사보지 못하던 중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에 들어가자 <한겨레>는 필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당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다니던 도서관 옆문에는 총학생회에서 구매해 놓은 <한겨레>가 항상 놓여 있었고 때로는 대자보로 게시되기까지 했다. 학생회 차원에서 <한겨레> 구매 운동을 하기도 했었다. 당시 좀 웃기는 게 도서관 정문은 학교 측이 장악해서 학교의 공식적인 게시물 외에는 볼 수가 없었지만, 반대로 옆문 쪽은 학생회가 장악했는지 그쪽 게시물과 <한겨레> 같은 것들이 널려 있었다.

한겨레·경향신문

사실 NL 계열이 주류였던 학생회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파시스트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겨레>는 대학 시절 가장 즐겨 읽는 신문이었다. <조선일보>와 비교해 가면서 읽을 때 재미가 극대화됐다. 같은 사건에 대해 정반대의 시각을 보여주는 점도 신선했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주류 신문이 다루지 않는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심층 취재하는 기사는 다른 신문이 따라오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점점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한겨레>와 멀어졌음을 고백한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포털과 SNS로 뉴스를 소비하게 된 점도 있지만, 인터넷으로도 <한겨레> 홈페이지는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볼 때마다 욕하는 <조선일보>는 가끔 포털이 아닌 홈페이지까지 찾아가서 읽는데 (물론 필자의 입에서 좋은 반응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한겨레>는 이젠 아예 찾아가지를 않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왜일까.

원래 <한겨레>는 정보의 질 측면에서는 다른 언론사보다 못했다. 젊은 시절 <한겨레>를 보여드렸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읽고 싶은 이야기(정보)가 없다’였다. 그분들은 <한겨레>의 논조가 아니라 그분들이 원하는 정보, 그러니까 부동산이나 생활 정보 같은 게 부족해서 읽기 싫다고 했다. 사실 자본력이 부족한 <한겨레>로서는 다른 대형 신문사들처럼 전방위적인 취재는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한겨레>를 읽었다. 정보력은 <한겨레>의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게 이유가 아니라면 대체 왜, 언제부터 <한겨레>를 읽지 않게 되었을까.

아마 <한겨레> 기사를 읽고 처음으로 기겁을 했던 게 이 기사였다. “난 한국인 무슬림이다” 한국 여자가 파키스탄 남자의 둘째 부인으로 들어가서 애들도 파키스탄식 율법교육, 그러니까 탈레반과 IS 식의 원리주의 교육을 하고 있는데 그거 왜 인정 안 해주냐고 징징대는 내용이다. 엄연히 한국에서 불법인 중혼을 무슬림이니까 인정해 달라는 <한겨레>의 논조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는 한국 여자와 결혼해서 한국 국적을 얻은 뒤에 이혼하고 파키스탄에서 자기 사촌이랑 결혼한 남자가 그 결혼 인정 안 해준다고 항의하는 기사도 있었다. 다들 알겠지만 사촌 간 결혼은 파키스탄에선 합법일지 몰라도 한국에선 아니다. 그런 무슬림들을 위해 한국의 문화적 전통이나 여론을 다 무시하고 법률을 고쳐야 하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닌가? 이걸 기사랍시고 보도하는 <한겨레>를 보면서 ‘얘네들 왜 이러나’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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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한겨레> 또한 당파성이 매우 강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기억하는 과거의 <한겨레>가 진보진영 전체를 대변하는, 따라서 진보적 입장에서 불편부당의 공정성을 가진 매체였다면, 오늘날의 <한겨레>는 진보 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입장만을 대변해 조금이라도 입장이 다른 진영은 싸잡아 홀대하는 매우 편파적인 매체가 됐다는 느낌이 강하다. <조선일보>가 때로는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기관지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보수 전체를 포괄하는 스탠스를 견지해 왔다는 점과 비교해 보면 <한겨레>의 편향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정보는 원래부터 빈약했고, 그나마 공정성을 가지던 시각도 이젠 막 편향되고, 도저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기사나 남발하고, 이러니 이 신문을 볼 이유가 없다는 게 지금의 심정이다.

마지막으로 <한겨레>가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필자 나름대로 추측을 말해 보고자 한다.

<한겨레>가 창간된 지 이제 30년이 다 되어 간다. 애초 창간 멤버들, 그러니까 조선·동아의 해직 기자 출신들은 이제 거의 <한겨레>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남아 있더라도 주요 포지션에는 없을 것이다. 대형 언론사에서 기자로서 훈련받고 독재 시절을 거치며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이젠 없다는 거다. 바꿔 말하자면 실력과 윤리를 갖춘 선배들이 없다. 그럼 지금 <한겨레>를 이끄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조선·중앙·동아일보

조중동 들어가려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들, 아니면 원래부터 운동권으로 투신했던 사람들이 아닐까.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보다는 특권을 누리고 싶은 의식으로 뭉쳐진 사람 아니면 언론을 어떤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주류 아닌가? 필자는 추측해본다. 한마디로 ‘수준이 안되는 자들’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전적으로 추측이고 틀릴 수 있지만 요즘 <한겨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필자의 추측이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기자가 선배 기자를 때려죽이고는 그거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통문을 돌리질 않나, (재판도 보면 가관이다) 페이스북에서 독자에게 욕을 하질 않나, 한마디로 구성원들의 수준을 의심하게 하는 사건이 최근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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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겨레>는 언론의 필수적인 정신인 비판의식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비판의식은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자신을 비판 못 하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과연 <한겨레>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필자는 지금도 박재동 화백이 시사만화를 연재하던 <한겨레>가 그립다. 아마 그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필자도 변했지만 <한겨레>도 변했다.

김준 기자

리얼뉴스 편집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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