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파산’ 남의 일 아니다

[서평] <노후파산: 장수의 악몽> NHK 스페셜 제작팀

노인대국 일본의 충격적인 노후파산 실상
저출산과 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노인대국이 된 일본은 장수가 재앙이 되어가고 있다. 이 책은 <NHK> 스페셜 제작팀이 2006년부터 지속해서 취재·방송하는 프로그램인 <워킹푸어: 아무리 일해도 풍요로워지지 않는다>, <인연 없는 사회: ‘무연사(無緣死)’ 3만2000명의 충격>, <치매환자 800만명의 시대> 후속편 격이 바로 <노후파산>이다.

<노후파산: 장수의 악몽>은 2014년 9월 <NHK> 방송 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집필됐다. 이 프로그램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NHK 스페셜 제작팀의 <노후파산: 장수의 악몽>(다산북스, 2016)

필자는 <NHK> 무연사회프로젝트팀에서 지은 무연사, 즉 고독사를 다룬 <무연사회: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와 <노후파산> 두 편을 연속해서 보았다.

먼저 한국 빈곤 노인들의 현장을 보여주는 장면 하나.

한국 빈곤 노인들의 ‘짤짤이 순례길’
필자는 짤짤이 순례 노인 행렬을 여러 차례 목격했는데, 실제로 보면 상당히 충격적이다.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들이 배낭을 멘 채 교회에서 주는 동전 500원을 받고 나면 일제히 몸을 돌려 지하철역으로 달음박질을 한다. 대개 50여명 이상의 무리가 또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 이들의 동선은 지하철 무료 구간에 한정되어 있다.

매우 슬픈 현장이다. 짤짤이 순례는 하루에 많으면 10곳이라 한다. 그래서 손에 쥐는 돈은 4000~5000원 정도. 점심은 교회나 단체에서 주는 무료 식사, 또는 간식으로 해결한다. 어느 노인은 간식으로 받은 음료수, 과자 등 뭐든 배낭에 넣어 집으로 가져간다. 1000원 한 장 어디서 나올 곳이 없는 이들은 염치고 체면이고 다 던져버린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짤짤이 순례도 몸이 건강해야 다닐 수 있다. 짤짤이 순례, 폐지 줍는 노인은 한국의 비참한 노후 현실의 일부분이다.

출처 JTBC <뉴스룸>

연금 받아도 조금씩 궁지에 몰리다 노후파산하는 일본 노인
언뜻 이해가지 않는 일본 노인들의 노후파산?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앞선 1961년부터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한 연금 선진국이다. 개인 저축률이 세계 상위권에 있으며 사회보장제도 또한 매우 잘 구축된 국가이다. 그럼에도 의학과 공중보건 등의 발달로 장수하는 노인, 초고령화 시대는 이러한 제도 자체가 힘을 쓰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다.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노후파산의 현장을 찾아 취재한 이 책에 드러난 일본 노인들의 가혹한 삶을 보자. 일본 노인들의 평균 연금 수령액은 60만~100만원 정도다. 그런데도 조금씩 궁지에 몰리다 노후파산의 지경에 도달하는데, 예를 들어 연금 100만원을 받아도 월세 30만~40만원 정도 지출, 각종 공공요금, 돌봄서비스보험비, 의료비를 지출하다 보면 실제로 생활비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한 끼에 1000원~2000원 안팎, 하루 세끼 5000원 이상을 지출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어느 노인은 1000원 숍에서 산 즉석 카레 1인분을 두 끼로 나눠 해결하며 다음 달 연금 수령 일까지 버틴다.

연금을 받아도 늙으면 아프고 병이 들기 마련이고 그에 따른 의료비, 돌봄서비스 이용을 못 한 채 그냥 버티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다행이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노후파산 상태가 된다. 어느 자료에 따르면 노환 간병비가 5년 동안 대략 1억엔(한화 9억6740만원)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간병지옥이라는 말이 일본 사회에는 널리 회자되고 있다.

현재 일본 노인세대는 과거 고도경제성장으로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세대이다. <NHK> 스페셜팀이 찾아다니는 노후파산 지경에 이른 노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살다 보면 과거 사업에 실패하거나 자녀 뒷바라지, 병들어 가산을 탕진하게 되어 집 팔고 월세로 옮겨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그런 사연들이 있었다. 이 또한 누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수명까지 길어지니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실감 나는 일본 노인들의 실상이다.

출처 <다산북스>

노후파산자의 죽고 싶다, 죽고 싶다?
노인들의 대표적인 흔한 거짓말이 ‘죽어야지, 죽어야지’라는 말이 있다지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그렇다는 현실이 노후파산이다. 아파서 병이 들면 예금을 헐어 쓰게 되고 잔고가 제로인 상태가 된다. 그래서 노후파산은 서서히 다가온다. 고령자들이 단번에 파산하는 것이 아니라 집 팔아 저축한 돈 쓰다 보면 최종적으로 파산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 아프거나 몸을 움직이기 힘든 환자가 되었을 때 이용하는 돌봄서비스에 드는 돈도 아끼고, 아주 최소한의 시간만 사용하며 버틴다. 일본의 돌봄서비스보험료 부담 비율은 10%이지만 이조차도 사치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 책에 소개된 일본의 의료비 부담 내역을 보자.

60대 의료비 부담액은 현역 세대와 같은 30%
75세 미만은 20% 부담
75세 이상은 10% 부담

한국의 고령자일 경우 60~70대의 본인 부담액은 약 30%인 것을 감안하면, 일본 노인들은 의료비 부담액이 낮아도 병원을 가지 않고 참는다고 한다. 이유는 의료비에 쓸 돈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순간, 노후파산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돈이 든다. 근근이 먹고 살아도 고령이 되면 아프고 병이 드는 게 순리다. 문제는 의료비 부담이다. 고령이 되어 병이 들면 노후파산의 불씨가 지펴진다는 말은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다. 연금을 받아도 의료비 부담으로 치료도 못 하고 영양실조 지경이 되는 처참한 노년의 삶은, 노년이 되었을 때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대비는 어느 정도까지인지 가늠이 어렵다.

한국의 경우 간병비 부담은 고령의 부모를 둔 이들에게는 이미 큰 고통이다. 의료비보다 간병비가 더 들어 한 달에 풀타임으로 간병인을 두면 월 200만~250만원 정도 든다. 대개 부모의 예금을 헐어 쓰기도 하지만, 이도 없다면 자녀들이지는 간병비 고통은 가계파산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도 있듯 부모 간병하다 자녀와 부모가 동시에 파산상태에 이르는 사례도 취재했다.

진짜 문제는 다음 세대로의 계승
현재 한국의 부모세대는 자녀들의 부양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생활비나 의료비 보조를 자녀가 부담하는 것이 도리라는 것이 아직은 풍속이다. 하지만 평생 미혼, 평생 독신이 늘어나고 가족 간의 유대가 날로 약화되는 세태에서 다음 세대는 과연 어찌할 것인가? 이 책은 이처럼 저출산, 초고령화 시대에서 현재의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의 연금제도, 사회보장제도는 고령자가 드물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는 노후파산 현상을 심각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닐까?”라고 묻는다. 일본도 과거 3대가 같이 거주하는 사회였고 현존하는 사회보장제도 또한 이런 범주 내 구축이 되었다면 과연 급변하는 시대에 사회보장제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초고령화 시대 노후파산 대비하고 있는가?
익히 알다시피 한국의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 노인자살률 1위이다. 65세 이상 국민연금을 받는 인구는 지난해 기준 34.8%에 그치고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헬프에이지(HelpAge International)라는 국제노인인권단체가 2014년 10월 발표한 세계노인복지지표(GAWI)에서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수준이 세계 96개국 가운데 50위를 기록했다. 일본은 9위이다.

전체 1위는 세계 최고의 복지체제를 구축한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노르웨이(100점 만점에 93.4점)가 차지했으며 스웨덴, 스위스, 캐나다, 독일 등이 뒤를 이었다.

출처 JTBC <비정상회담>

일본은 세계노인복지지수 순위에서 상위권인 9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초고령화 시대는 사회보장제도가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을 비추어보면, 초고령화로 질주하고 있는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가적 대비 하지 못하면 10년 후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일본은 2030년이면 현역 한 명이 고령자 한 명을 부양하는 구조가 된다고 한다. 한국도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당장 개선되어야 할 방안으로, 의료비 본인부담액이 고령자로 갈수록 경감되어야 한다. 일본은 75세 이상 본인부담액이 10%라도 그것도 부담이 되어 병원비 지출을 못 하고 있지 않은가. 또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은, 연금생활자들을 위한 공공주택 건립이다. 저렴한 공공주택을 건설하여 돌봄서비스를 원활하게 이용하게 하는 등 당장 초고령화 문제에 대한 방안이 실천돼야 한다.

일본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자의 수가 상당히 많다. 노인인구가 증가하다 보니 발견되지 않고 드러나지 않은 채 방치 상태인 고령자들의 실상은 비참하다. 한국은 이보다 더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자의 수는 추산이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다. 지금으로부터 5~10년은 한국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기간이다. 저출산 초고령화, 평생 미혼, 평생 독신의 증가는 사회보장제도를 정교하게 다듬어 방안을 세우지 않으면 머지않아 나락으로 떨어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은 이런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복지제도는 정치적으로 만들어지는데도 말이다.

정치인들이 이같은 문제 인식에 희박하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부족하니 한국사회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장차 고령자에게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건네는 덕담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이영희

사회연대네트워크 공동대표
murphy80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