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한민국, 진단과 해법이 먼저다 1

정치세력이 던져야 할 핵심 질문
사상이념이든, 정치 노선이든, 국가개혁비전과 전략이든 그 시대 그 정치공동체가 당면한 치명적인 문제에 대한 진단(해명)과 해법을 담아야 한다. 이는 곧 국민의 고통과 불만, 분노와 공포에 대한 공감이자 응답이다.

새로운 사상이념이나 정치 노선이 옷이라면 문제는 몸(체형)이고, 날씨와 계절이다. 이 날씨와 계절에 해당하는 것이 세계화, 기술진보, 인구구조변화(저출산 고령화), 도시화, 기후변화 등으로 총칭하는 문명사적 변화, 즉 메가트렌드(mega trend)다.

그래서 1990년대에 등장한, “제3의 길”이나 “신중도” 정책 노선은 예외 없이 이런 메가트렌드를 언급한다. 몸(체형)에 해당하는 것은 국민의 고통과 불만, 분노와 공포이다. 이 중심에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 저성장, 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공포 등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재산 상위 10%가 대한민국 총 자산 66.4%(출처 JTBC 썰전)
재산 하위 50%가 대한민국 총 자산 1.7%(출처 JTBC 썰전)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명인 정치세력과 지식사회가 묻고 답해야 할 첫 번째 질문은 “무엇이 진짜 문제이며, 무엇이 아닌가?”이다. ‘진짜 문제’라는 것은 정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자, 시급하고 중차대한 문제(위기=부조리)다.

그런데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분별하는 것은 대단한 지혜이다. 기독교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년 6월 21일~1971년 6월 1일)의 유명한 기도문은 이 일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말한다.

하나님,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담담히 수용할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시고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둘 중 어떤 경우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두 번째 질문은 “진짜 문제의 건축공학적 구조와 혁파·해체 공법”이다. 공법의 핵심은 결국 “무엇을 위해 누구와 싸우는가”이다. 이는 가치의 우선순위(가치체계)와 주체 역량(비용과 기술)과 밀접하게 연결됐다.

정치 노선의 본질이자, 정치세력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단 하나의 가늠자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해, 누구와 싸우는가”이다. “누구”는 한마디로 대립물이다. 이는 가치, 이념, 제도(인센티브 체계와 거버넌스 구조)일 수도 있고, 이를 지지 옹호하는 정치·경제·사회 기득권(집단)일 수도 있다.

요컨대 정치세력의 존재 의미도, 존망도 위기=부조리의 원흉인 주적과 문제해결의 킹핀을 정확히 규정해, 이를 대중과 공유하는 데 있다.

그런데 2016년 2월 창당된 국민의당은 (국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비전이 아닌) “친문·친노패권주의 반대”를 주로 표방했고, 양당 독과점 정당 체제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오만, 독선, 구태, 추태에 대한 대중적 분노에 따른 반사이익을 쓸어 담아서 정당득표율 2위(26.7%)와 호남의석 대부분을 석권했다.

새정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그 이후 반사이익을 적극적 지지로 바꿔내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지지층과 국민에게 한국 정치의 새롭고 진정한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민주당과 함께 한국 정치를 주름잡아온 새누리당(자유한국당)에서 뛰쳐나와 새로이 정당을 하면서도, 대중의 감동과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비전이 취약하기로는 바른정당도 마찬가지다.

프레임과 사상이념
정치세력의 총 노선은 세상(모순 부조리)을 보는 편광안경인 프레임과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국가개혁방안(파괴·건설 공법)의 총화인 사상이념을 갖춰야 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36년에 발표한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의 유명한 마지막 문장은 사상 혹은 세상을 보는 프레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의 사상(idea)의 힘은 옳고 그름을 떠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세계는 그 사상들이 움직여 나간다. 어떤 지적 영향도 받고 있지 않다고 믿는 실용주의적 인간도 사실은 이미 죽은 어느 경제학자의 정신적 노예이기 일쑤다. (중략) 선하건 악하건 결국에는 위험한 것은 사상(idea)들이지 기득권들이 아니다(soon or late, it is ideas, not vested interests which are dangerous for good or evil).

사상이념은 더 이상 근거를 댈 수 없는 공리(인간의 존엄성, 법 앞의 평등, 보통선거권 등), 종교적 신념, 과학성과 체계성을 갖춘 이론, 집단적 이해관계의 총화다. 사상이념은 국제관계와 자연환경(풍토), 집단적 욕망과 공포, 사회에 보편적인 꿈과 이상, 경험과 지혜 등을 녹여내어 정련한 세계관과 가치관의 총체다. 세계관은 역사와 현실(세계)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 핵심은 주된 대립 구도, 곧 프레임이다. 가치관은 힘, 용기, 소명을 끌어내어 현실을 바꾸는 가치체계다.

헌법과 법률은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사상이념을 기술해 놓은 것이다. 1987년 헌법은 1인 장기집권과 독재를 막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이 곳곳에 묻어 있다. 헌법의 각 조문마다, 동서고금의 역사적 경험과 이상, 꼼수, 착각이 숨어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프레임은 선 vs. 악, 민주 vs. 독재, 민족 vs. 외세, 좌파·진보 vs. 우파·보수, 노동 vs. 자본, 기득권 vs. 비기득권, 부자 vs. 서민 등이다. 세계 정치경제의 흐름을 설명하는 프레임도 여럿 있다. 그중에는 미국 일극이니, 미·중 양극(G2)체제니 하는 것도 있고, 지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판도를 17세기 중엽의 명청 교체기로 보는 시각(미국을 명나라, 중국을 청나라에 비유한다)도 있다. 지금을 ‘환율 절하 등 근린 궁핍화 정책’을 경쟁적으로 시도하던 시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인 1930년대와 비슷하게 보는 시각 등도 있다. 하나 같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vs. 중국

연역과 귀납의 조응
중도, 개혁, 미래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려고 하는 정당들의 총노선을 집약하는 프레임 및 사상이념의 유력 후보인 “공화주의”(공화정을 주장하고 실현하려는 정치적인 태도나 이념)는 역사와 정치이론은 물론이고, 언어 습관과 연상(어감) 작용 등을 고려한 현실적인 효능(파괴력, 전파력과 차별성)까지 살펴야 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는 문제를 정확하게 포착해, 해법을 도출할 수 있느냐다. 역사, 이론, 언어 습관, 연상 작용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어느 정도의 당세가 있다면 언어 습관과 연상 작용 정도는 새롭게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공화주의는 역사, 이론, 헌법 해석에서 핵심 가치를 도출하는 연역과 한국 특유의 현실(모순 부조리)에 대한 진단과 해법에 대한 공구를 통해 핵심 가치를 도출하는 귀납이 서로 조응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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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socialdesign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