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여혐 습격받다

힙합은 모두 그렇고 그런 말 한 보따리다

미국 힙합계의 구루로 불리는 어떤 이가 했다는 이말 만큼 힙합을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현재 국내 페미니스트 진영과 힙합 가수들과의 가시 돋친 언쟁이 넷상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랩 음악 가사에 담긴 여성비하, 여성혐오 표현을 골라내어 페미니스트, 여성단체가 실력 행사 중이다. 랩 가사를 둘러싼 여혐 충돌은 수년째 계속되다 최근 들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여혐’ 논란이 됐던 송민호의 랩 가사(출처 쇼미더머니 시즌4)

말 그대로 “힙합은 모두 그렇고 그런 말 한 보따리다”라고 볼 수 있는데, 랩 가사 하나하나에 검열 잣대를 들이대면서 색출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힙합의 특질은 원래부터 비난, 욕설, 설교, 거리의 삶 등을 노래하는 장르 아니던가.

지난해 여혐 사태 하나.

정의당 ‘중식이밴드’의 여혐 논란이 그랬다. ‘중식이 밴드’는 정의당 총선 테마송 협약을 맺고 활동하기로 했으나, 이전에 불렀던 그들의 곡 중 상당수가 성차별, 여혐 가사라는 항의를 정의당내 페미니스트 그룹과 여성단체들의 거센 항의로 결국 사과문 성격의 해명 글을 쓰고 물러난 일이 있었다.

문제로 삼은 곡의 가사를 보았지만, 페미 진영이 주장할만한 여혐 내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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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중음악 가사를 검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논란이 지속되며, 창작열 또한 자기검열,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위축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가요 검열 역사는 오래됐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금지곡이 있었으며, 절정기는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1975년 긴급조치 9호였다. 그때 퇴폐풍조 조장, 사회 질서문란으로 판정받은 곡이 200곡이 넘었으며, 해당 가수들도 활동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이는 음악산업의 다양성 위축과 창의성 저하로 이어진다.

그 시절 대중가요 검열이 정권 차원에서 진행됐다면, 오늘날에는 페미니스트 진영의 검열이 이루어지는 시대인가?

힙합을 포함한 음악산업의 본질은 결국 “음악으로 돈을 버는 것”이며, 대중문화생산패턴, 테크놀로지 발전과 창의성이 결합하는 것 아닌가. 그런 본질을 고려해서 음악의 소비자로서 각자의 취향대로 대중음악을 즐기면 된다.

힙합계를 강타한 여혐 논란은 많은 래퍼가 여혐 가사 대상에 올랐는데, 지난해 연말 광화문 촛불집회문화제에서 DJ DOC도 같은 이유로 공연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DJ DOC, 촛불집회 동참 예정(출처 SBS)
‘여혐’ 가사 항의에 DJ DOC, 촛불집회 출연 무산(출처 연합뉴스TV)

지금은 인기 힙합 래퍼 여러 명이 여혐 가사 논란으로 페미니스트 진영의 리스트에 올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말 나온 김에 힙합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필자는 1970년대 초부터 약 1985년까지 이어진 팝의 황금기를 누린 세대로 주로 정통 대중음악 취향이다. 힙합은 즐겨듣지도 않거니와 필자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장르이다. 하지만 1980년 초 시작된 힙합의 발발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힙합은 흑인 예술이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흑인들이 족쇄를 차고 노예로 팔려와 자신들의 온갖 삶을 구두로(토스트라고 한다) 주고받으며 읊조리는 스타일에서 나왔다. 흑인들에게는 새로운 음악도 아닌 흑인 음악의 일부다.

필자는 미국 대중음악의 슈퍼스타인 프린스의 팬이다. 필자가 최초로 인상적으로 들었던 랩도 프린스가 작사·작곡하고 샤카 칸에게 준 ‘I feel for you’다. 이 곡은 인트로가 랩으로 시작하는 곡으로 팝차트 3위까지 오르며 랩의 전성기를 열었다.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뉴욕 출신 힙합그룹 퍼블릭에너미의 등장이었다. 큼지막한 안경에 거의 자명종 시계만큼 큰 시계를 목에 걸고 걸쭉한 목소리로 속사포 랩을 불러대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퍼블릭에너미는 주로 정치적인 랩을 구사했지만 곧이어 갱스터 랩이 떠오르며 MC해머, 아이스 큐브(닥터 드레, 스눕독) 등 힙합 밀리언셀러 시대가 열렸다.

뒤이어 서부 힙합(남캘리포니아), 동부 힙합(뉴욕)으로 나뉘어 경쟁하는 시대까지 필자가 아는 힙합이다. 그래도 대중음악의 비평적 소비자로서 국내 힙합계를 포함해서 힙합계 현상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랩은 언어가 강조되는 음악으로 흑인들이 주로 도시 게토의 황폐한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기에 가사가 거칠고 시비를 걸자면 한도 끝도 없는 음악이다. 물론 랩 음악의 위험성이 제기되는 일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정통 대중음악이 절정기를 지나고 음악산업은 힙합 마케팅으로 돌아선 지 오래다.

“내가 지옥의 페미니스트다”라는 래퍼 ‘슬릭'(출처 EBS 스페이스 공감)

페미니스트 진영이 래퍼들의 여혐 가사를 문제 삼는 한편에 페미니스트임을 내세우는 래퍼도 등장했다. “내가 지옥의 페미니스트다”를 외치는 래퍼 슬릭은 ‘메갈리아 사이트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며 활동 중이며, 래퍼 키디비는 페미니즘 가사로 노래한다. 바로 이러한 형태가 랩 음악이다.

이런 와중에 래퍼 딥플로우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이 인상적이다.

그는 “아티스트를 검열하지 마세요. 기호대로 소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 랩은 본래 그런 것임을 이해한다면 여혐 논쟁에 날을 세울 필요가 없다. 랩은 그렇고 그런 말 한 보따리 아닌가.

대중음악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

이영희

사회연대네트워크 공동대표
murphy80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