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한민국, 진단과 해법이 먼저다 2

위기의 대한민국, 진단과 해법이 먼저다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1조 1항(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민주공화정을 채택한 나라이다)에 명기된 “민주”는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는 간명한 가치(개념)이다. 그래서 정치투쟁이나 대중투쟁의 무기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 높은 효능으로 인해 정치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생활의 전 분야로 개념이 무한 확장됐다.

하지만 “공화”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별로 주목받지도 못했다. “민주”처럼 간명한 가치도 아니다. 일제에 의해 조선왕조가 폐지되어서인지 정치·대중 투쟁의 무기로도 사용되지 않았다.

민주정(democracy)은 다수(대중=국민)의 지배로, 주권재민 사상으로 통한다. 그래서 논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심각한 결함이 있다. 바로 다수파의 전횡(소수파 억압)과 중우정치(포퓰리즘)이다. 동서고금의 정치사는 대중의 지성과 덕성이 낮을 때, 즉 대중이 저열한 사상과 감성에 휩쓸릴 때 일어난 대참사를 숱하게 보여주었다.

문화대혁명 포스터

사실 “공화”(공화정 또는 공화주의)의 역사, 개념, 이론이 어떻든, “민주”(민주정 또는 민주주의)의 구조적 결함을 보완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공화”의 주된 대립물이던 왕정(군주정)이 폐지된 이상, “공화”는 “민주”의 그늘이 짙을수록 왕성하게 자라나는 생명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공화”의 핵심 가치(개념)는 시공간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다. 주된 대립물이 달라져 왔기 때문이다.

사실 사상이념의 본질과 효능은 주된 대립물을 보아야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공화파나 공화주의의 주된 대립물은 왕당파 내지 근왕주의였다. 그래서 1789년 프랑스 혁명과 1776년 미국 혁명의 기치는 왕정 타파, 곧 공화였다.

민주파와 민주주의의 주된 대립물은 왕, 귀족, 군부, 특정 계급, 종족, 유력 집안, 정파 등에 의한 독재다. 국민 다수의 의지와 유리된, 모든 형태의 권력 독과점이 민주주의의 적이다. 심지어 경제력 집중조차도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공격한다.

한편 자유파와 자유주의의 주된 대립물은 전체주의, 사회주의, 국가자본주의, 국가주의 등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관치금융 등 과도한 국가규제가 주된 대립물로 부상했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반독재 투쟁의 피와 땀으로 얼룩져 있고, 자유(민주)주의는 해방공간에서 북한식 전체주의·사회주의와 피 어린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와 결합해 한국 사회 저변에 흐르는 국가주의와도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

상해 임시정부

따라서 세 가치의 주된 대립물로 보면 ‘공화’가 그 시대적 소명을 가장 빨리 끝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거의 만장일치로 민주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18~19세기적 ‘공화’ 가치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화(국)에 대한 해석은 엄청나게 다르다. 중국과 북한도 공화국을 표방하고, 남한도 공화국을 표방하는 것이 그 증거다. 또한, 민주주의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이상 ‘공화’는 새롭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일본 메이지 시대 지식인(번역자)들이 서양의 ‘res publica’를 번역할 때 ‘공화’로 한 것은 그 핵심 특징이 세습되는 왕이 아니라 제후, 귀족, 원로(유력자), 의원(민의 대표자) 등 현능한 자들의 합의에 의한 통치 체제였기 때문이다. 중국 주나라 여왕이 백성의 폭동으로 도망쳐 왕이 부재하게 되었을 때, 유력한 제후였던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공동의 합의에 따라 정무를 맡았던 시대를 ‘공화 시대’라 부르는 것에서 착안해, ‘res publica’를 공화국으로 불렀다.

근대 이전 가장 잘 작동한 공화정은 로마 공화정(BC 508년~BC 27년)과 베네치아 공화정(AD 697년~1797년)이다. 두 공화정의 중심에는 원로원이 있었다. 이는 다수 민중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귀족정이나 과두정으로 운영됐다.

그래서 공화정은 로마-베네치아식 귀족적 공화정, 중국이나 북한식 일당 독재적 공화정과 국민주권주의에 의해 선출된 대리인(의회와 대통령 등)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는 민주공화정 등이 있다. 당연히 21세기 한국판 (민주)공화정을 창조할 수 있다.

By the people vs. For the people
민주주의의 부동의 가치가 “by the people”이라면, 공화주의의 부동의 가치는 “for the people”이다. 한마디로 “정치공동체 내지 국민 전체의 지속할 수 있는 발전(자유와 행복)”이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에서 소외되기에 십상인 소수파와 (발언권도 투표권도 없는) 미래세대 배려, 즉 약탈주의(지대추구)적 포퓰리즘 반대, 보편 이성으로서의 법의 지배, 높은 지성과 덕성을 가진 자(세력)의 인도, 정치인과 관료라는 대리인들의 책임 있는 역할 등이 도출된다. 공화주의가 중시하는 이념과 제도는 법치주의, 대의민주주의, (지성과 덕성을 겸비한) 정당정치 등이다.

“Res publica(라틴어)”=“Repulbic(영어)”을 “共和(공화)”로 번역해 사용하는 일본, 한국, 중국 등 한자문화권에서는 한자어에 의한 개념의 첨삭도 일어난다. 한자문화권에서 共和(공화)는 “더불어”, “다 함께”, “和而不同(화이부동)”, “구동존이(求同存異)”, “연정과 협치” 등으로도 해석되고, 또 해석할 수 있다.

영화 변호인

언어 작용
사람들은 공화라는 말에서 연상하는 것이 제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헌법 제1조 1항에 나오는 “민주공화국”을 연상한다. 이는 1919년 상해 임정부터 지금(1987년 헌법)까지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허경영의 공화당, 미국의 공화당, 북한의 약칭인 ‘공화국’을 연상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공화(주의)의 역사, 이론,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공화(주의)라는 프레임이 갖는 현실(모순 부조리)설명력과 전파력(관통력)이다. 한마디로 공화(주의) 프레임으로 싸 안은 핵심 가치, 비전, 정책이 얼마나 넓고 깊은 대중의 공감과 기대를 불러일으키느냐 문제이다. 달리 말하면 공화(주의)의 적을 얼마나 간명하게 규정해 대중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느냐 문제이다.

“정치공동체 내지 국민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자유와 행복)”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것이 현실이라면 공화주의는 시대의 부름을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치명적인 위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국가(정치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위기는 자연재앙과 외부침략이라는 외파 위기와, 성장과 통합의 실패라는 내파 위기로 크게 나눈다. 문명의 기초인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하지 못해, 세계시장에 뭔가를 내다 팔아야 하는 대한민국은 성장과 통합 위기는 곧 산업·기업의 경쟁력 위기고, 이는 곧 외파위기로 전환된다.

지금 대한민국에 밀어닥치는 3대 외파 위기는 북한과 중국에서 오는 안보·주권 위기, 중국의 추격 및 추월, 주력산업의 수명주기, 제4차산업혁명에 대한 응전 지체로 인한 산업경쟁력 위기, 기후변화 등에 따른 환경생태 위기다. 3대 내파 위기는 그 운영 원리와 핵심 가치가 다른 3대 시스템인 국가(지방), 시장, 사회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체제의 근간인 민주주의, 시장경제, 사회(community) 위기다. 지금 대한민국의 위기는 외파 위기와 내파 위기가 동시에 엄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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