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 없는 환자의 권리

에크모(ECMO)라는 장치가 있다. 응급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는 이 장치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쓰러졌을 때 사용돼 유명해졌고, 메르스가 창궐했을 때 수많은 환자를 살려내 또 한 번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장치이기도 하다.

출처 MBC

필자가 대학병원에서 전임의를 하던 때의 일이다. 어느 20살 젊은 대학생이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쓰러졌고 병원에 도착한 지 수일 만에 폐기능이 완전히 정지돼 에크모를 장착하게 됐다.

에크모의 부품 중에는 폐기능을 대신하는 ‘막형 산화기’라는 소모품이 있는데 며칠이 지나 막형 산화기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간호사가 원무과에서 막형 산화기 장비를 내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져 물었다.

왜 안 내어 주는 겁니까?

원무과 직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1개만 인정해 주거든요. 더 쓰면 돈을 못 받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만 규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이 환자의 보호자에게 금액을 부담하게 할 테니 장비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원무과에서는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품목을 비급여로 부담시키는 것은 현행법에서 불법입니다

막형 산화기라는 소모품을 추가로 사용하는 것은 보험적용이 안 되니 내어줄 수가 없고 보호자가 사 오는 것도 불법이라서 내어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라는 겁니까? 환자를 포기하고 죽게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겁니까?

원무과 직원은 대답이 없었다. 필자의 언성은 높아져 갔고 결국 어렵게 막형 산화기 하나를 더 얻었지만(병원이 손실을 떠안았다) 안타깝게도 환자는 며칠 후 사망했다.

이 사건은 필자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경제적 치료’를 강요하는 제도가 일선의 의사에게 ‘치료 중단’과 “환자포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에크모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다.

응급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심폐기 ‘에크모’

그런데 2014년 더욱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병원에서 에크모를 사용하는 횟수가 늘어나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에크모 장치의 비용을 ‘환자가 살아난 경우에 한해서’ 병원에 비용을 지급하겠다는 원칙을 만들어 적용했기 때문이다.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에는 “어차피 살지 못할 환자에게 에크모를 사용한 것은 낭비”라는 이유를 대며 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에크모의 하루 사용 비용은 약 70만원으로 환자 평균 약 350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환자는 이 중 약 10%를 부담하고 나머지 90%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한다. 그런데 장치를 사용했다가 환자를 살려내지 못하면 그 90%를 받지 못하게 되니 병원은 큰 손실을 떠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논리로 따진다면 병원은 에크모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환자가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의사가 어찌 외면하겠는가. 그래서 의사들은 에크모를 사용한다.

메르스 사태 때 “에크모 비용을 계속 삭감한다면 에크모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라는 의료계의 으름장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삭감하지 않고 비용을 지급하겠다”라고 약속을 한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비극적인 해프닝이다. 그런데 메르스의 파고가 지나간 후 에크모에 대한 삭감은 또다시 시작됐다.

그래서 에크모를 사용하는 의사들은 병원 경영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 자칫 손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사들에게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이 에크모의 사례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거의 모든 의료서비스가 에크모와 같은 처지다. 그 바쁘게 진료하는 이국종 교수가 한 해 10억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신생아중환자실이 병상 1개당 평균 한 해 5800만원의 적자를 기록해서 신생아중환자실의 숫자가 계속 줄어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국종 교수(출처 아주대학교의료원)

신생아중환자실의 경우 늘어나는 적자 폭을 견디지 못하고 병원들이 계속 병상을 폐쇄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무려 25%가 줄어들었다. 신생아의학회에서는 신생아중환자실이 없어서 사망하는 신생아가 한 해 약 500~1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것이 정부가 강요하는 ‘싼값 의료’의 적나라한 현장의 모습이다. 중증외상센터, 중환자실, 응급실 등은 왜 모두 적자행진을 하는 것일까. 이 진료 분야는 모두 생명을 다루는 분야로써 비급여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거의 모든 병의원은 비급여 흑자로 급여적자를 메꾸고 있는 실정이다.

환자에게는 두 가지 권리가 있다. 경제적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권리와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권리 중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국가가 관리하는 의무보장으로 이뤄진 1단계 의료서비스와 가입자의 선택사항으로 이뤄지는 2단계 의료서비스로 구분하고 있다.

그것이 환자의 두 가지 권리를 다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데 문재인 케어는 2단계 의료서비스를 없애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른바 쿠바식 의료다.

이제 국민과 의사들은 정부의 ‘경제적 치료’ 선언에 밀려 ‘최선의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아직 국민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건강보험의 경제적 치료의 강요 때문에 상처를 받아온 의사들은 일찌감치 문재인 케어로 인해 진료현장에서 무수히 일어나게 될 비극을 알고 있다.

12월 10일 12시 30분부터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전국의사 국민건강수호 총궐기대회

추운 겨울, 수만명의 의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제 최선의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