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절대 매매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2012년 1월 12일, 한 달 수익이 결정된다는 선물옵션 만기 날. 돌이켜보면 그날은 절대 매매를 하지 말았어야 할 날이었다. 그러나 인생을 다시 살아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만 같아 두렵다. 승부의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누군들 그 자리에서 쉽게 멈출 수 있었을까. 오늘 하루만 더, 조금만 더, 초롱불을 비켜 날갯짓을 하는 불나방 같이 뛰어들지 않았을까. 승부의 노예가 되어가는, 금단의 열매에 대한 금단 현상. 오늘의 이야기다.

사진=강원랜드

필자는 가끔 강원랜드에 갔다. 전문 도박사나 다름없는 트레이더 주제에 ‘도박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이 가당키는 한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도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적 당구를 쳐보니 천장에 당구공이 아른거려 일상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승부에서 지면 참을 수가 없었고, 없는 돈으로도 내기라면 잘 받아주는 자신을 발견했다. 도박에 너무 쉽게 빠지는 성격인 것 같아 일체의 고포류(고스톱·포커류)를 배우지 않고 살았다.

항간에는 O형이 도박을 배우면 패가망신한다는 설도 있었다. 감정적인 편인 데다 자기주장이 강해서 과연 패가망신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에 도박을 의식적으로 미워하며 피해 지냈다. 그러나 트레이딩을 시작하고 나서는 결국엔 이것도 운명이라 받아들이며 혼자 가방을 싸매고 강원랜드에 구경하러 다녔다.

카지노는 시장과 닮은 점이 참 많다. 도박쟁이에 대한 온갖 설명들이 난무하지만, 무엇도 대단히 합리적으로 들리지 않은 것마저 닮았다. 도박 중독자들과 투자 중독자들도 많은 부분이 겹친다. 더욱이 파생 쪽은 개인들에겐 그야말로 투자 폐인들로 이뤄진 최후의 노름판이라 하지 않던가.

포넷 같은 게시판에 가보면 ‘파생쟁이’의 불안하지만 뜨거운 동료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강원랜드에서 도박쟁이들이 늘어놓는 무용담과 씁쓸한 결론까지, 무서울 정도로 동일한 구조의 서사들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전체 시장에서 노니는 프로가 한 명이라도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정도.

영화 <타짜>

필자는 모니터 너머에서 상대하던 적수들의 눈빛을 보고 싶었다. 공포에 젖었을 때, 희망에 찼을 때, 용기를 끌어낼 때, 자포자기할 때의 눈빛을 보지 않으면 그들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단체로서의 그들의 행동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누가 이 판의 호구인지 알 수 없으니, 필자가 호구가 아닐까 하는 막막함이 싫었다. 우리의 눈은 일초에 최소한 서너 번은 움직인다. 사람을 직접 관찰하면 무의식적으로라도 흡수할 수 있는 정보가 많을 수밖에 없다.

또한, 필자가 어떤 사람의 표정을 하고 싶은지, 혹은 어떤 사람의 표정을 하고 싶지 않은지를 확인해야 했다. 젊은이가 혼자 인생군상들 사이에서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담배를 피우고, 모텔에 묵노라면 듣고 보는 게 많다. 그 느낌들은 새벽 4시에 카지노를 나올 때의 음산함으로 대변된다. 찌를 듯한 적개심과 혼란과 동종 의식이 새벽 안개처럼 파다하다.

돈은 별로 잃지 않았다. 애초 의미 없는 베팅을 했기 때문이다. 종일 홀짝에 거는 수준으로 놀아 하루가 지나도 5만원을 따거나 잃고 끝났다. 10만원쯤 따게 되면 차비에나 보태 썼고, 돈을 조금 잃는 중이라면 수강비라 생각하고 흔쾌히 두고 왔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이게 만약 전 재산이라면 어떤 기분일지를 상상하며 마인드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홀수가 20번 연속으로 나오는 경우가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지, 그럴 때의 감정은 어떨지를 생각해봤다. 일종의 모의매매에서 느끼는 충동이나 심리적 변화를 관찰하며, 트레이딩룸에서의 더 큰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지를 자문했다. 동시에 남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이들이 얼마나 현명한지, 혹은, 어리석은지를 눈에 남기고 싶었다.

이 모든 건 돈을 많이 벌기 전의 일이다. 돈을 벌고 나서는 어땠냐면 베팅 그 자체가 업무처럼 느껴져 고통스러웠다. 팀 차원에서 마카오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가는 비행기에서 블랙잭 통계표를 달달 외워서 하룻밤 블랙잭을 해본 적이 있다. 옆에 중국 아주머니들이 훈수 두고는 잘되면 돈을 뺏어가서 짜증이 났다. 같이 간 부사수가 돈 다 잃었다길래 밤늦게 열심히 베팅해서 150만원인가 벌어 쿨하게 손실을 메꿔준 기억이 난다.

주니어는 카지노에서 돈 잃고 나오면 메사끼 없다고 얕잡아봐서 주눅이 든다. 아예 베팅을 안 하는 게 남는 장사다. 여하간에 처음엔 블랙잭이 생소해서 재미가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기껏 최선을 다해야 49%의 승률밖에 안 되는 게임을 하자니 막노동처럼 피곤해서 죽을 맛이었다.

매매하며 매일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몇억이 오가던 시절이었음에도 이렇게 적은 돈에는 더 큰 긴장과 피로감이 몰려온 이유는 확률 때문이었다. 내 매매는 승률이 70%가 넘었지만, 그래도 잃을 확률을 생각하며 매일 스트레스를 견뎌왔는데, 적은 돈이라지만 더 낮은 승률의 게임에서 왜 이렇게 고생하고 있어야 하는가 생각이 들어 다시는 카지노가 가기 싫어졌다. 지금도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다. 지는 게임에 대한 증오가 있어야 트레이더다.

어쨌든, 카지노에서 나는 모든 트레이더들이 내면에 간직하며, 때론 달래고, 때론 경멸하고 있는, 폐인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다. 카지노 폐인의 한 부류는 슬롯머신 앞에 앉아 있다. 이들은 종일 슬롯을 당긴다. 이번에 실패했으면 다음에도 실패할 것을 알만도 한데, 오늘 실패했으면 매일 반복해봤자 안될 것을 알만도 한데, 이들은 동공이 풀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계속 돈을 펴 넣는다.

사진=강원랜드 슬롯머신

일종의 트랜스 상태다. 만성 알코올 중독처럼, 매 순간 ‘멈출까’, ‘아니 한 번만 더할까’, 두 가지 중 본능이 이끄는 쪽으로 선택을 반복한다. 이들의 무의식에는, ‘오늘만큼은’, ‘이번만큼은’, ‘나만큼은’ 특별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만이 지배하고 있어, 매 순간 실망과 기대를 오가며 돈을 무한히 넣고 있는 것 아닐까. 운명의 여신이 등 뒤를 스쳐 지나가는 감각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진화과정과 연관 있다고 생각한다. 이쯤이면 완전한 폐인이라 답이 없다. 아마 스스로 이보다 나은 일상이 존재조차 할 수 없도록 삶을 파괴해놨으리라. 숨을 쉬는 유일한 이유가 그 찰나의 긴장감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한편으론 슬롯머신 앞에 앉아는 있지만, 지폐 따위를 접어 기계에 영역표시를 해놓고 게임은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뭔고 하니 제갈량이 동풍을 기다리는 느낌이다. 이 기계들 안에 어떠한 메커니즘에 의해 운이 움직일 것이라는 강렬한 기대를 자조감으로 짓누르며 기다리는 중인 셈이다.

혹은 자릿세를 받고 개평이라도 받으려는 사람들이다. 스페인 내전 때 병원에 실려 가는 부상병을 부축하는 동료들이 값나가는 물건은 다 털어갔다 하던데, 이런 무리가 떠올랐다. 다들 빚이 많아 카지노 안에서만 마음의 평온을 느끼는 사람들 같았다.

또 한 부류는 뭔가 머리를 써서 도박하고 있다. 알고 보면 동전 던지기나 다름없는 게임들에, 독특한 게임룰이 더해지면,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구조를 이해하고 전략을 짜느라 열성이다. 필자는 주로 룰렛을 했는데, 룰렛은 쇠공을 굴려 0~36 숫자 사이에 아무 데나 떨어지는 단순한 게임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구사하는 전략을 보니 가관이었다. 슬롯머신과 달리 이곳은 사람들의 눈이 매섭게 반짝인다. 전쟁터에서 전술을 지휘하고 있는 제갈량의 눈빛이다. 손가락 끝에서 이뤄지는 한치의 감각으로 운명의 자취를 쫓으려는 듯, 몸짓이 예술적이고 시적이다. 종이에 지금까지 나온 숫자들을 다 적어놓고 엄청난 분석과 고민을 하기도 한다. 과장하자면 분수로 표현할 수 있는지, 혹시 피보나치 수열인지 확인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돈은 딜러가 쓸어 담는다(강원랜드 딜러)

세련되게 미친 셈이다. 100만원을 걸어 98만원은 딜러가 쓸어 담아 버렸지만, 남은 2만원이 테이블 위에서 36배가 불어나 74만원치 칩을 화려하게 돌려받았다고 해보자. 룰렛의 재미는 주위에서 부러움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런 순간의 우쭐함인 것 같다. 방금 26만원을 잃었는데도 말이다. 그 맛에 계속하나 보다. O형들이 패가망신할 때는 룰렛 테이블을 찾아가서 하면 딱 적당할 것 같다. 우쭐하게 망할 테니까.

그나마 포커처럼 손님들끼리 다투는 게임에는 타짜들이 숨어있다. 필자가 몰라서 하는 소린지 몰라도, 슬롯이나 룰렛 판에는 직업 투기꾼이 없다. 약자를 공략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운을 시험하러 온 약자들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시장에서도 많이 보았다. 프로지망생한테서도 봤고, 취미로 시작한 사람들한테도 봤다. 똑똑한 사람한테서도 많이 봤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한테도 많이 봤다. 시스템 트레이더, 퀀트, 펀드 매니저, 직종을 불문하고 발견할 수 있다. 너무 많이 봐서, 95% 이상이라고 얘기하고 다닌다. 물론 내 안에서 뼈 아플 정도로 가장 많이 확인한 것이었다. 슬픈 얘기다.

다시 2012년 1월 12일, 문제의 선물옵션 만기 날. 아무리 되새겨 봐도 그날은 매매하지 말았어야 할 날이었다. 지난 글에서 ‘빠르게 건너뛰기’ 한 그간의 사정은 우쭐했던 취업과정과 달리 처절하게 힘들었고 많이도 헤맸다. 여러 회사 여러 부서를 돌며 나름의 내공을 많이 쌓았고, 남들과는 차별화된 무기들을 장착해왔지만, 꿈은 항상 트레이딩룸에서 세계적인 트레이더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자산운용사로의 이직을 거쳐 금융업 커리어의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KTB 투자증권 트레이딩 룸에 입사했다. 트레이딩 룸 바깥의 세계에선 트레이더들은 ‘쓰레기’ 취급 당한다는 얘길 들었다. ‘인생 막장’, ‘왕따 새X들’이니 절대 돌아가지 말라는 얘기를 임원급 선배들한테 마저 들었다. 브로커리지와 주식운용팀까지 경험한 마당에 다시 트레이딩룸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날 받아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꿈을 좇았다. 12년 1월 즈음까지 또 수개월간의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영원히 불가능할 것만 같던 BEP를 달성할 기미가 보였다. 월간 BEP 1500만원, 그 돈을 못 벌면 인간 취급도 못 받고, 인간다운 삶을 스스로도 살아갈 수도 없다. 게다가 주니어에게는 유난히 기회의 문이 좁은 법이다. 애초 한도가 너무 적어 극단적인 수익률을 올리지 않으면 BEP를 할 수 없을뿐더러, 선배들보다 공격적으로 매매하면 손실 폭이 커져 망하는 지름길이다.

그 월물에 처음으로 1000만원을 만기 전날까지 벌었다. 옵션트레이더들에겐 매월 둘째 주 목요일인 옵션 만기일이 큰 승부의 날이라 대개 한 달 수익의 60% 이상이 만기 당일에 벌린다. 그러니 1월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BEP를 하는 것일까 싶었다.

큰 승부가 걸린 옵션 만기일 그날은 결혼식 이틀 전

다만 그날은 필자의 결혼식 이틀 전,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그 혹독한 주니어 시절을 끝낼 기회가 왔으니 두 번 생각지 않고 최선을 다해 매매했다. 600만원을 벌었을 때 끊었어도 되었으련마는 미친 듯이 매매를 해서 당일 1600만원을 벌었다. 매 주말을 사무실에 살다시피 하며 보낸 지긋지긋한 주니어 시절에 자력으로 종지부를 찍은 날이었다.

매달 1500만원씩 사납금처럼 쌓여간 비용은 아직 빚처럼 남아있었지만.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갔는데, 마지막 한주의 매매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신혼의 흥분감과 성취감이 뒤섞여 비현실적인 기분이었다. 이국의 맑은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여의도에서 도대체 왜 그리 악바리처럼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이제부턴 이런 천국 같은 여행을 주기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매매가 얼마나 멋지고 화려했고 특별했는지 도취감에 젖어 들어갔다. 이후 필자는 트레이더로 자리를 잘 잡았다. KTB 사고를 포함해 수많은 고생길이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돌이켜보면 무서운 선택이었다. 만약 결혼식 직전의 매매에서 예상치 못한 일로 큰 손실을 봤다면 필자는 돈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신혼여행의 행복을 잃었을 것이다. 절대로, 중요한 일을 앞두고 불필요한 모험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스승에게 배운, 모든 사람에게, 하지만 특히 트레이더에게 더욱 중요한 자세다. 무엇이 중한지를 아는 자제력 말이다.

필자는 당시에 수익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한 상태였으니, 결혼 직전의 승부를 미루었어도 실은 괜찮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손실을 볼 위험도,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망칠 위험도, 인생을 망칠 위험도 없었을 것이다. 젊은 혈기에 만용을 부려 운 좋게 사자 가죽을 둘러업고 결혼식장에 나타난 격이었다. 무릅쓸 이유가 전혀 없는 위험이었음을 당시엔 정녕 몰랐다. 오로지 앞만 보고 도전해야 할 정도로 절박해 있었다.

듣자니 첫 아이를 낳은 날 아이를 보러 가지 않고 만기 매매를 하러 출근하신 선배도 계셨다고 한다. 돈이 아무리 중하다고 해도 이런 것은 만용이다. 그날 돈을 잃고 첫 아이를 만나러 간다면 자신의 무의식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일 터, 그런 가능성을 사전에 막는 것이 리스크 관리다. 제아무리 멘탈이 강하다고 해도 말이다.

필자도 이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 훗날 창업을 할 때 모든 위험자산을 다 팔아 안전한 곳으로 돌렸다. 아무리 투자에 큰 자신이 있고 큰 기회가 있어도 사업의 성패에 영향을 줄 정도의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과연 그날 매매를 안 할 수 있었을까.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받아들였을지 자신이 없다.

카지노의 폐인들과는, 명함 한 장 두께의 차이, 그것이 트레이더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