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특집] 여자 쇼트트랙 쌍두마차, 심석희·최민정 선수

1회 최고의 라이벌? 최고의 단짝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역사는 라이벌의 역사

대한민국 쇼트트랙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낼 땐 항상 한 명의 에이스와 그에 못지않은 이인자가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1992년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던 알베르빌 올림픽 때는 김기훈 선수와 이준호 선수가, 1994년 릴레하메르 올림픽에서는 남자부의 김기훈 선수와 채지훈 선수, 여자부의 전이경 선수와 김소희 선수가,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는 남자부는 김동성 선수와 이준환 선수, 여자부는 전이경 선수와 원혜경 선수가,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는 남자부는 김동성 선수와 안현수 선수, 여자부는 고기현 선수와 최은경 선수가,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남자부의 안현수 선수와 이호석 선수, 여자부는 진선유 선수와 최은경 선수가 서로 경쟁하며 선두에서 한국 쇼트트랙을 이끌었다.

다만 이후 2번의 올림픽에서는 남녀 대표팀의 전력이 엇박자가 나서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여자부가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부진했고,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는 남자부가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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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래도 밴쿠버 올림픽에선 이정수 선수와 성시백, 이호석 선수가 남자부의 선전을 이끌었고, 소치 올림픽에선 박승희 선수와 심석희 선수가 여자부에서 분전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올림픽 개인전 종목별 금메달은 하나뿐이고 함께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계주 경기가 아닌 한 선수들 개인 간에 승자와 패자는 갈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주를 제외한 쇼트트랙 종목에 출전하는 대표 선수들이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영광을 위해서도 뛰지만, 본인의 성공과 명예, 포상금 등을 얻기 위해 뛰는 것도 사실이다.

‘Winner takes all’이란 팝 그룹 ABBA의 노랫말처럼 승자, 특히 금메달을 딴 이가 더 많은 조명과 환호, 포상금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 스포츠의 세계이다.

그래서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점지한다는 말이 진리처럼 전해지고 있고 그 극단적인 예로 2002년 솥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스티븐 브래드버리처럼 앞서 달리던 선수들이 준준결승부터 준결승, 결승까지 앞선 선수들이 실격과 미끄러짐 등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도 여러 번의 좌절과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을 이겨내고 출전한 4번째 올림픽이었고, 선수들 간의 경쟁이 치열할 것을 예상하고 일부러 뒤에서 달리는 전략을 펼쳤다고 하니 그냥 주어진 행운은 없다는 것 역시 증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장황하게 서두를 꺼내는 이유는 대한민국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강력한 원투 펀치, 쌍두마차, 일·이인자를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한 선수는 2014 소치 올림픽에서 금, 은, 동메달을 하나씩 따냈고, 2014년 세계선수권 개인 종합 우승을 했던 선수이며, 다른 한 선수는 2015 세계선수권과 2016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개인 종합 우승을 한 선수이다.

두 선수는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선 나란히 2관왕에 오르며 계주 금메달을 합작하기도 했다. 1살 터울로 절친한 선후배 사이이자 같은 소속사(갤럭시아SM)이며 얼마 전 MBN 여성스포츠 대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기도 한 두 사람은 바로 대한민국 쇼트트랙 여자 국가대표 선수인 심석희와 최민정 선수이다.

롱다리 심석희

긴 다리로 세계를 평정하다

사진=심석희 선수

평창 올림픽 빙상 경기가 열리는 강릉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심석희 선수는 7살 때 오빠가 스케이트 타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막내딸이 재능을 나타내자 아버지 심교광 씨는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왔다.

‘기린’이란 별명이 있는 심석희 선수는 어릴 적부터 독보적으로 키가 컸다. 심석희 선수의 어린 시절 경기 사진을 보면 다른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머리 하나 더 큰 심석희 선수가 튀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쇼트트랙 선수로서 큰 키(176cm)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키가 크면 긴 다리 길이로 한걸음에 다른 선수보다 더 멀리 갈 수가 있어서 많이 유리할뿐더러 체력도 덜 소비하기 때문에 중장거리에서 유리하다. 대신 좁은 공간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야 하는 쇼트트랙의 특성상 순발력과 코너웍에서 손해를 보기 쉽다. 무게 중심이 높아서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심석희 선수 본인도 이런 본인의 키에 대해 많이 고민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그냥 남자 선수다….’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키가 큰 덕에 일단 자세를 잘 잡으면 힘 있게 스케이팅을 해나갈 수 있다는 또 다른 장점도 있기도 하다.

어쨌든 심석희 선수는 그 큰 키를 잘 활용하여 2012년 1월 동계유스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른 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3관왕과 종합우승을 하였다. 그리고 2012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우승하며 화려하게 성인 무대에 데뷔하였고 이후 월드컵과 세계 선수권에서 박승희 선수와 함께 여자팀의 선전을 이끌었다.

그리고 2년 후 대망의 소치 올림픽. 심석희 선수는 최소 2관왕은 가능할 거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아쉽게도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개인전에선 은메달 하나와 동메달 하나를 따냈다. 특히나 본인의 주 종목인 1500m에서 중국의 저우양에게 막판 역전을 허용한 장면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던져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30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선 심석희 선수는 반칙을 일삼는 중국 여자대표팀에게 멋지게 설욕하며 금메달을 따내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다.

소치 올림픽 내내 이어진 여자 대표팀의 불운과 남자 대표팀의 부진, 안현수 선수의 귀화 파동, 피겨에서 편파 판정으로 금메달을 빼앗기고 2연패에 실패한 김연아 선수에 대한 안타까움 등으로 답답해하던 대한민국 국민의 막힌 속을 뻥 뚫어주었던 그야말로 ‘분노의 질주’였다.

그 후 이어진 2014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심석희 선수는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면서 1000m, 1500m, 3000m 슈퍼파이널까지 3관왕에 오르며 첫 개인 종합우승도 거머쥐었다. 바야흐로 세계 여자 쇼트트랙에 심석희 시대가 열리는 것만 같았다.

슬럼프를 극복하며

하지만 이후 심석희 선수는 컨디션 난조에 시달리며 한 살 어린 후배 최민정 선수에게 세계 정상의 자리를 내준 것은 물론이고 국제대회에서도 기대만큼의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몇 년간 강행군하며 누적된 피로에 국제무대에서 본인의 전략과 특성이 파악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도 해가 갈수록 조금씩 예전 기량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며 최민정 선수와 선의의 경쟁을 펼친 끝에 지난 시즌 월드컵 종합 랭킹 3위, 세계 선수권 3위의 성적을 거두며 세계선수권 종합 3위에까지 주어지는 평창 동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4년 전 막내로 출전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국가대표팀의 주장이 되어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심석희 선수는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을 이끌 전망이다.

2017~2018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 데이에서 두 선수의 라이벌 대결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심석희 선수는 “너무 진 적이 많아서 자존심 상할 일이 없다”며 웃었다. 그리고 최민정 선수의 장점으로는 강력한 파워를 꼽았다.

얼음 여제 최민정

무서운 고등학생 스케이터

사진=최민정 선수

이렇게 키가 큰 심석희 선수보다 최민정 선수는 상대적으로 163㎝의 단신(?)이다. 1998년생인 최민정 선수는 1997년생인 심석희 선수와는 연도상으로는 1살 차이지만 심석희 선수의 생일이 1월이라 학년 상으로는 두 살 차이가 난다. 그래서 2012년 성인무대에 데뷔한 심석희 선수보다 2년 늦게 성인 무대에 데뷔해야 했다.

소치 올림픽은 1998년 6월생까지 올림픽 출전이 가능했는데 1998년 9월생인 최민정 선수는 고작 석 달 차이로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고, 국내 무대에서부터 차근차근 실력을 키워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쿨하게 말했다.

6살 때 고려대학교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스케이트 특강에서 스케이트를 처음 접한 최민정 선수는 그것을 계기로 쇼트트랙 선수가 되어 여기까지 왔다. 그녀는 중학교 2학년 때 심석희 선수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같은 팀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심석희 선수의 스케이팅에 감탄했다고 한다. 최민정 선수가 들어옴으로써 조재범 코치가 지도를 함께 받게 된 두 선수는 서로 자극받고 경쟁하면서도 언니 동생으로서 우애를 키워나갔다.

심석희 선수가 성인 무대에 올라간 후 최민정 선수는 2014 주니어 세계선수권 선발전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며 종합 1위로 주니어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였지만 가벼운 부상과 그로 인한 준비 부족으로 종합 3위에 그치며(?) 아쉬움을 던져줬다.

하지만 곧이어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쟁쟁한 선후배를 제치고 종합 2위의 성적으로 국가대표팀에 승선했고 이후 무서운 기세로 세계 무대를 접수했다. 그리고 2015 세계선수권과 2016 세계선수권을 연달아 제패하며, 전이경, 최은경, 진선유 선수에 이어 대한민국 여자선수로는 네 번째로 세계선수권을 2연패 하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나 대한민국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6 세계선수권에서는 고군분투하며 마리안느 셍젤레(캐나다)와 고작 2점 차이로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어려움 끝에 2연패를 하는 감격을 맛봤다.

세계선수권 3연패 무산을 딛고

그리고 2016-2017시즌, 최민정 선수는 대한민국 이승재 코치의 조련 아래 기량이 급상승한 엘리스 크리스티(영국)의 거센 도전을 받는다. 말 그대로 미완의 대기이자 넘치는 힘을 주체 못 하는 폭주 기관차였던 엘리스 크리스티는 2016 월드컵 대회부터 여러 차례 최민정 선수를 추월하더니 2017 세계선수권에서도 완벽한 기량을 자랑하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유럽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대회여서인지 이상하리만큼 유럽 선수들에게 판정이 유리했고 우리 선수들, 특히 최민정 선수가 판정에 불이익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판정의 문제만으로 종합 6위에 그친 최민정 선수의 부진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아무래도 3년간 최민정 선수의 전략이 많이 노출되었고 본인도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하는 데 많은 부담감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세계선수권 3연패에 실패한 최민정 선수는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한 달 후 출전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국내 선수들과의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과시하며 전 종목에서 우승, 종합 1위로 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따냈다.

이제 다시 도전자의 입장에서 심석희 선수와 경쟁하며 엘리스 크리스티에게 맞서야 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좋은 예방 주사를 맞은 최민정 선수. 더욱 독해지고 강해진 그녀의 레이스는 벌써 무섭다.

한편 최민정 선수는 선배인 심석희 선수에 대해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선배라며 특히 노련한 경기 운영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최민정-심석희 선수(왼쪽부터)

두 선수의 공통 목표는 계주 우승

두 선수는 2년 차이 나는 선후배로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친한 언니, 동생으로 보인다. 최민정 선수에게 가장 친한 선수를 묻는 말에 주저 없이 심석희 선수를 꼽을 정도로 두 선수는 돈독한 사이다.

또한, 두 선수는 서로 본받을 점이 많다고 칭찬하지만,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연습에 몰입하는 연습벌레이기도 하다. 두 사람 모두 공통으로 꼽는 목표는 계주 우승이다. 특별히 심석희 선수는 계주 종목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에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한국 쇼트트랙의 역사는 라이벌의 역사였고, 상대적으로 기량이 앞서는 에이스 선수가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에이스와 이인자 간에 신경전과 불미스러운 일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파벌 파동도 에이스인 안현수 선수와 그 외 선수들 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여자 대표팀은 그러한 논란에서 자유로운 편이지만 신경전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여자 국가대표팀의 쌍두마차 심석희, 최민정 선수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두 선수는 서로를 인정하고 아끼며 행여 경쟁에서 진다고 해도 서로 축하해 줄 사이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계주 우승이라는 공동 목표가 있기에 두 선수는 더욱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심석희-최민정 선수

경기 스타일에서 두 사람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체력이 좋은 심석희 선수가 중반 이후 앞에서 레이스를 이끄는 중장거리 종목에 강하다면 상대적으로 최민정 선수는 단거리까지 골고루 좋은 성적을 거두며 막판 스퍼트로 경기를 뒤집는 묘기를 자주 보여주었다. 상호 보완하는 콤비인 두 선수의 힘찬 질주와 승리의 환호, 코칭 스태프와의 감격스러운 포옹을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꼭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편 이번 시즌 두 선수는 4차례 열린 월드컵 시리즈에서 1500m는 최민정이 1위, 심석희가 2위를 차지했고, 1000m는 최민정이 2위, 심석희가 3위를 기록했으며, 500m에선 최민정이 2위를 차지했다.

두 선수의 경쟁상대로 작년 세계선수권자인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뿐만 아니라 이번 시즌 들어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는 캐나다의 킴부탱과 마리안느 생젤레가 꼽히고 있다. 킴부탱은 1000m 랭킹 1위, 마리안느 생젤레는 500m 랭킹 1위에 올랐다. 계주 랭킹에서도 캐나다는 대한민국, 중국에 이어 3위에 올라있다.

이전 올림픽의 경우 중국과 대한민국의 2파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캐나다는 3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시즌 캐나다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모습을 보이지만, 소치 이후 중국은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중국 여자 대표팀의 저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중국 여자 선수들은 계주 이외엔 메달 획득이 어려워 보일 정도로 매우 부진하다. 대한민국의 숙명적인 라이벌이자, 반칙 군단인 중국이 올림픽에서는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 아니면 캐나다가 넘버3의 설움을 벗어던지고 대한민국의 강력한 라이벌로 급부상할지도 흥미로운 관전 요소이다.

그리고 지난 시즌 폭주 기관차의 오명을 벗어던지고 무서운 질주를 했던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가 올 시즌의 부진을 씻고 다시 최민정과 심석희를 위협할 수 있을지도 대한민국의 올림픽 성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요소다.

시즌 초 부상 때문에 극도로 부진했던 엘리스 크리스티는 목동에서 열린 4차 대회 500m에서 최민정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내며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앞서 거론한 캐나다의 선수들과 엘리스 크리스티, 이탈리아의 백전노장 아리아나 폰타나, 중국의 판커신과 조우양이 대한민국 선수들과 자웅을 겨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