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제도 설명서 1

선거인단제도란 무엇인가?

2016년 11월 8일에 치러진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는 다소 독특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Hilary R. Clinton)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보다 전국 득표에서 근 300만여 표를 더 득표했음에도 선거인단 투표에서 트럼프가 304 대 227로 압승을 거둬 당선됐다.

우연하게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인단 투표로 결과가 뒤바뀐 사례 모두 공화당이 이득을 봤다. 1876년에는 러더퍼드 헤이스(Rutherford B. Hayes)가, 1888년에는 벤저민 해리슨(Benjamin Harrison)이, 2000년에는 조지 W. 부시(아들 부시)가 직접투표를 뒤집었다.

힐러리 vs. 트럼프 전국 득표
트럼프 vs. 힐러리 득표 격차

20세기 이래로 치러진 주요 대선에서 결과가 ‘거의 뒤집힐 뻔했던’ 케이스도 대부분 공화당 쪽에 웃어주는 경우였다. 1916년에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에 맞선 찰스 에반스 휴즈(Charles E. Hughes)가 캘리포니아에서 전국 총투표수 기준으로 0.02%만 더 득표했거나, 1948년에 토마스 듀이(Thomas E. Dewey)가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으로부터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오하이오에서 3만여 표를 뺏어왔거나, 1960년에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 케네디(John F. Kennedy)가 (최소한) 일리노이와 텍사스에서 자행한 부정선거에 승복하지 않았다면 윌슨의 14개조 평화원칙, 트루먼 독트린, 아폴로 계획은 없었을 것이다. 일련의 불운의 연속 탓인지 미국 민주당 진영을 중심으로 간선제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대통령 간선제란 무엇인가? 대다수 한국인은 “간단하게 직접투표로 뽑으면 되는 걸 뭘 저렇게 복잡하게 하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CNN>의 편향성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만 비판 없이 받아쓰기하는 한국 언론의 국제면은 미국정치에 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전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 간선제, 선거인단, 주별 승자독식제도, 전부 한국인에겐 생경한 제도다.

그나마 국제이슈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도 미국의 선거제도에 대한 찬반양론을 모두 접하기는커녕 반대 측의 일방적인 주장만 범람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직접선거가 아닌, 538명의 선거인단 중 270표를 획득해야 하는 이 기괴한(?) 제도의 양면을 이해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독특한 연방 국가의 본질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오늘날 대부분 민주국가는 직접민주제가 아니라 간접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단순히 지리·인구·기술적 여건상 직접민주제가 불가능해 도입된 필요악이 아니다. 현대 민주정은 다수의 폭정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간접성을 필수불가결하게 전제하고 있다.

이를 위한 장치로써 삼권분립, 다당제, 의회의 의사일정을 방해하거나 우회하는 방책들, 초과반수 의결제도(super majority), 경성헌법제도(개헌 시 한국은 국회의 3분의 2 동의와 국민투표 과반이, 미국은 50개 주 중 4분의 3의 동의가 필요하다) 등이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이러한 고민 끝에 다수의 독재를 제어하고자 직선제 대신 선거인단과 승자독식제도를 도입했다.

‘United States(미국)’를 직역하면 ‘주(州) 연합’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영어단어 ‘state’는 주로 ‘주’보다는 ‘국가’로 번역된다. 전자로 이해해야 하는 때는 대개 미국과 관련된 경우이다. 이는 연방국가 미국의 건국 자체가 독립된 주들의 대표가 모여서 기초한 독립선언으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각 주는 삼권분립에 따라 행정부로는 주지사와 주장관, 사법부로는 주 법원, 입법부로는 주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하나의 완전한 정부를 구성한다. 또한, 독자적인 법률(state laws)과 군대(주 방위군)까지 보유하고 있다.

주의 자치권을 수호하려는 이념은 연방의회의 구성에도 반영돼 있다. 연방 하원은 인구비례로 배분돼 큰 주에 더 많은 권한을 줌으로써 연방 전체의 여론과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다. 반면 연방 상원은 주마다 두 명씩 선출된다. 소수를 존중하고 지역 간의 평등한 의사 결정을 보장하는 원칙에 따라 크기와 상관없이 각 주에 동일한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인단도 한 주의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수를 합계·산정해 균형을 유지한다.

가장 작은 주라도 상원의원 수(2명)에 인구비례인 하원 선거구 숫자를 더해 최소 3명이 할당된다. 이렇게 제일 인구가 적은 와이오밍(선거인단 3)부터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55)까지 선거인단 수가 정해진다. 최소한의 선거인단 수를 보장하면서 하원의원 선거구 수를 기준으로 인구수에 따른 비례성도 고려한다. 그러므로 완벽한 인구비례가 아니다.

트럼프-힐러리 TV토론(출처 CNN)

2016년 11월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엄밀히는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각 주의 공화당 혹은 민주당 선거인단에게 표를 던진다. 이들이 12월에 모여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는다. 이는 단순한 선거제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간선제하에서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전국 구석구석에 걸쳐 최대한 많은 유형의 유권자 그룹에게 어필해야 한다. 특정한 계층이나 지역의 몰표만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4자필승론’ 같은 발상은 미국에서는 불가능하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표적 예이다. 동부와 서부 해안의 도시 주를 묶은 ‘Blue Wall’만 사수하면 이긴다는 나이브한 선거 전략은 바로 그 텃밭이 무너져 내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승자독식제도의 취지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982만6675㎢의 면적과 3억2662만5791명의 인구를 보유한 미국에서 각 시민은 연방 공화국의 국민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나고 자란 주의 주민이기도 하다. 본토 시간대만 4~5(알래스카와 하와이 포함 시)개를 쓰는 나라를 단일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틀리다. 각 주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인단을 선택했다면 그것을 존중해 반영하는 것이 승자독식제도이다. 승자독식으로 뽑힌 선거인단은 소속된 주의 의사를 대표해 538표 중 일부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각 주가 독자적인 주권을 갖고, 작은 주라도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큰 주의 입김을 인정(하원 선거구 기준 배분)하는 동시에 최소한의 선거인단을 보장(상원의석수 기준 배분)해 아무리 작은 주라도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을 갖는다.

미국의 간선제는 수많은 논란과 반대 속에서도 건국 이래로 쭉 유지돼 온 연방 공화국의 위대한 전통이다. 하지만 한국의 척박한 지성계에서는 위에서 논한 여러 장점은 도외시된 채 무분별한 비난만 넘쳐난다. 선거인단 제도가 정말 반민주적일 뿐인 문제투성이 제도라고 한다면,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고찰하는 것이 공화당 탓을 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인 태도 아닐까. 다음 글에서는 간선제에 관한 주요 비판에 대한 재반론을 소개하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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